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경모재(敬慕齋)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진향의 14세손 정희백(鄭希伯)과 15세손 정두찬(鄭斗燦), 정두형(鄭斗炯), 정두환(鄭斗煥), 16세손 통정대부 정국필(鄭國弼), 17세손 정세(鄭世), 18세손 정래진(鄭來晋)의 추정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이다. ‘경모(敬慕)’란 공경하고 사...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경모재(敬慕齋)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진향의 14세손 정희백(鄭希伯)과 15세손 정두찬(鄭斗燦), 정두형(鄭斗炯), 정두환(鄭斗煥), 16세손 통정대부 정국필(鄭國弼), 17세손 정세(鄭世), 18세손 정래진(鄭來晋)의 추정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이다. ‘경모(敬慕)’란 공경하고 사...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오르면 금양교회가 있다. 경본재(景本齋)는 금양교회 앞쪽에 위치한다. 경본재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정진경(鄭晋卿)의 16세손 정국원(鄭國元)과 17세손 정태구(鄭泰龜) 2대의 시향(時享)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로서, 1918년 3...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는 금남면의 부자 마을로 유명하다. 하동군 금남면의 대치리 마을에는 진양 정씨(晉陽鄭氏) 은열공파가 오랫동안 세거해 왔다. 진양 정씨의 이 마을 종가이자 규모가 가장 큰 대표적인 전통 가옥이 금남면 대치리 정씨 고택이다. 하동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남해와 맞닿아 있는 금남면의 주산인 금오산(849...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대치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 산포지.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는 본동마을, 창말마을, 진곶이마을, 솔개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서, 일제 강점기 금양면과 남면이 합쳐져 금남면이 되었다. 대치리 마을의 유래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 없지만, 금오산[849.1m]에 큰 재가 있어 이것이 대치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인근에서...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선사 시대 화석 유적.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는 들이 넓은 평지에 자리한 농촌 마을로, 대치마을, 마음골, 솔개마을, 원골, 창몰마을 등과 몇몇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치소류지와 걸문게저수지가 자리한다. 대치리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인 고도와 수영도, 무섬이 대치리 화석 유적지에 해당한다. 고도에 퇴적물이 쌓여 있고, 퇴적물은 전이되면서 범람...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첨중추(僉中樞) 정대수(鄭大壽)는 오봉로수(鰲峰老叟)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광남군 이광악(李光岳)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방어하다가, 맏아들 정이함(鄭以諴)이 고성에서 전사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현재(大見齋)에 머물렀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으로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첨중추(僉中樞) 정대수(鄭大壽)는 오봉로수(鰲峰老叟)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광남군 이광악(李光岳)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방어하다가, 맏아들 정이함(鄭以諴)이 고성에서 전사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현재(大見齋)에 머물렀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으로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
개항기 및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하동 출신이거나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하동은 동학 농민 운동, 3·1 운동을 거치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하동에는 독립운동의 사적지와 독립운동의 공적으로 정부 차원의 서훈을 받은 애국지사가 5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촉발된 의병 운동은 하동에서도 활발했다. 의병 활동과 교전 회수의 80%...
-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 양포역(良浦驛)은 1462년(세조 8) 역로 정비 때 소촌도(召村道) 역승이 관할하는 16곳의 역 가운데 하나였다. 양포역은 곤양군에서 남해현까지 효율적인 교통과 통신망의 구축을 목적으로 지금의 하동군 진교면 양포리에 설치된 역참이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따르면 1462년 8월 5일 병조의 건의로 각 도의 역참을 파하...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로로 계속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계속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끝 부분에 원모재(遠慕齋)가 위치한다. 원모재는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정씨 고가들 중 남쪽 건물에 해당한다. 정씨 고가 내에 있는 행랑채를 진양 정씨(晉陽鄭氏) 문중에서 매입해, 1909년(순종...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로로 계속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계속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끝 부분에 원모재(遠慕齋)가 위치한다. 원모재는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정씨 고가들 중 남쪽 건물에 해당한다. 정씨 고가 내에 있는 행랑채를 진양 정씨(晉陽鄭氏) 문중에서 매입해, 1909년(순종...
-
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호(李範鎬)는 1883년(고종 20) 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서 태어난 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55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정낙영(鄭洛榮)·정재운(鄭在雲)·정희근(鄭禧根) 등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 18일 하동읍 장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각각의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건물. 재실(齋室)은 종중(宗中)에서 조상의 묘제(墓祭)나 망제(望祭)를 지내기 위해서 세운 건물이다. 이를 재각(齋閣), 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재실은 종중, 또는 문중의 공유 재산이며, 선산(先山)·종산(宗山)·위토(位土)·사당 근처에 위치한다. 재실은 묘제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숙식과 제례 음식 등을 준비...
-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형(致亨), 호는 한재(韓齋). 고조할아버지는 만포(晩圃) 정달진(鄭達晉)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경재(警齋) 정익헌(鄭益獻)이며, 할아버지는 정재환(鄭載煥)이다. 아버지는 정원휘(鄭元暉)이다. 어머니는 하진흡(河鎭洽)의 딸 진양 하씨(晉陽 河氏)이다. 부인 조씨(趙氏)는 죽하(竹下) 조용주(趙鏞周)의 딸이다. 슬하에 2남 4녀를...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은 1879년(고종 16) 3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66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권 회복의 첩경이라 생각하여 1909년 4월 19일 현산학교(懸山學校)를 설립하고, 이후 약 8년간 교사·교감·교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양력 과세와 단발 등 주민 계몽에도 앞장섰다. 또한 충의공...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낙영[1879~1947]은 1919년 3월 29일 하동군 금남면과 진교면의 3·1 운동을 지도 지휘하고, 남해군남해읍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만든 독립선언서는 정낙영을 비롯한 하동 출신 인사 12명이 지은 것으로 현재 하동군청 민원실 입구에 복사 확대본이 게시되었고, 독립기념관...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달경(達卿), 호는 만포(晩圃). 아버지는 정태구(鄭泰龜)이고, 어머니는 유태영(柳泰泳)의 딸이다. 정달진(鄭達晉)은 1737년(영조 13) 5월 경상남도 하동의 곤양(昆陽)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자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감지하였다. 1795년(정...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양(晉陽). 이름은 정순종(鄭舜鍾), 자는 재백(再伯)이다. 자를 ‘ 재백(在伯)’으로 잘못 기록한 곳도 있다. 정순종이라는 본명 보다 자인 정재백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독립운동사』 3권에도 정재백으로 쓰여있다. 정순종은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진교장날 정...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재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재기(鄭在淇)[1906~1983]는 본관이 진주(晉州)이고, 호는 해당(海堂)이다. 지금의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서 태어났으며, 학문이 높아 수사(秀士)라는 호칭을 받았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받을 만큼 민족의식이 강하였고, 불교계의 중추적 인물인 다솔사 주지 최범술...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재운(鄭在雲)의 본관은 진양(晉陽)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기룡(鄭起龍)의 후손이다. 1895년 5월 4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28번지에서 태어났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던 금양국민학교의 전신인 현산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고 어려서부터 집 안에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 3월 29일 진교장날 정재운은 하동...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서문(瑞文), 호는 오헌(鰲軒). 아버지는 정국원(鄭國元)이고, 어머니는 권임형(權任亨)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부인은 유태영(柳泰泳)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정달진(鄭達晉)·정규진(鄭逵晉) 두 아들을 두었는데, 정달진은 효행으로 호조좌랑에 증직되고 정려가 섰다. 정태구(鄭泰龜)는 1703년(숙종 2...
-
정예·정자우·정장·정헌을 시조로 하고 정대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진주의 토성인 진양 정씨는 정예(鄭藝)·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을 중시조로 하는 네 계열이 존재한다. 네 계열은 신라 말을 전후하여 조상을 같이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으므로 서로 간의 세계를 밝힐 수 없다. 진양 정씨의 시...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진양 정씨(晉陽鄭氏) 입향조인 오봉공 정대수의 현손인 정국형(鄭國亨)은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은거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였는데, 이러한 법도를 세 아들인 정서구, 정순구, 정우구에게 물려주었다. 후손들은 처사(處士) 정국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925년 첨모재(瞻慕齋)를 산소 곁에 건립하...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흥(咸興).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에 소속되어 장수로 활약한 추수경(秋水鏡)[1530~1600]의 9세손이다. 부인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그 사이에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을 두어 양자를 들였다. 추홍순(秋鴻順)[1894~1959]은 1894년 3월 12일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23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