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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83
한자 桑村 遺稿
영어공식명칭 Sangchonyugo
이칭/별칭 『상촌 선생 문집(桑村先生文集)』,『상촌집(桑村集)』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69년연표보기 - 『상촌 유고』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상촌 유고』 영인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경상 대학교 문천각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501[가좌동 277-4]
성격 문집
저자 오재선
간행자 오계순
권책 3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19.7×28.3㎝|16.2×20.4㎝[반곽]
어미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상촌 유고(桑村遺稿)
판심제 상촌 유고(桑村遺稿)

[정의]

1969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오재선의 문집.

[저자]

오재선(吳在善)[1871-1954]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학삼(學三), 호는 상촌(桑村)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당(新塘)에서 태어났다. 9대조 오후기(吳後起)부터 신당 마을상령(桑嶺) 아래에 살았다. 증조할아버지는 오해권(吳海權), 할아버지는 오경로(吳敬魯), 아버지는 신신헌(新新軒)오치훈(吳致勳)이고, 어머니는 박계상(朴啓尙)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조복규(趙福奎)의 딸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아들은 오박순(吳珀淳), 오근순(吳瑾淳), 오임순(吳琳淳), 오관순(吳瓘淳), 오찬순(吳瓚淳), 오우순(吳瑀淳)이고, 사위는 윤갑조(尹甲祚)이다.

이수형(李壽瀅), 조병규(趙昺奎)에게 수학하였고, 조선수(趙譱秀), 이준구(李準九), 조석제(趙錫濟), 안유상(安有商) 등과 교유하였다. 1908년 함안군 가야읍의 인산재(仁山齋)에서 이유선(李有善)의 문집인 『수재집(修齋集)』을 간행할 때와 조병규, 안종창(安鍾彰)의 문집을 간행할 때 글씨를 담당할 정도로 단정한 서체로 이름이 있었다. 1954년 2월 19일에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솔태산(率太山) 임좌(壬坐)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1969년 오재선의 조카 오계순(吳繼淳)의 주도로 상촌 수계(桑村修契)를 조직하여 오장근(吳章根)과 함께 원고를 수집하였고, 서문은 김황(金榥)에게, 묘지명은 이태권(李泰權)에게, 묘갈명은 안종희(安鍾禧)에게 요청하였다. 이호섭(李鎬燮), 조용구(趙鏞玖), 이박현(李珀鉉) 등이 대방가(大方家)에서 교정하였으며, 오보근(吳堢根)과 오창근(吳昌根) 등이 인쇄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경인 문화사에서 1997년 『상촌 유고(桑村遺稿)』를 영인, 간행하였다. 『상촌 선생 문집(桑村先生文集)』, 『상촌집(桑村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3권 1책의 목판 영인본(木板影印本)으로,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19.7㎝, 세로 28.3㎝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2㎝, 세로 20.4㎝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상촌 유고(桑村遺稿)'로 되어 있다. 국립 중앙 도서관, 경상 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김황(金榥)의 서언(敍言)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詩) 34제 41수와 스승인 조병규(趙昺奎)에게 보낸 편지 4편이 실려 있다. 시 가운데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한 상황을 노래한 「경인 하피란 우부산(庚寅夏避亂于釜山)」과 그해를 지내온 심정을 노래한 「경인 제석 이절(庚寅除夕二絶)」이 있다. 또 자신의 평생을 4수의 시로 정리한 「자만(自挽)」 등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처음으로 조병규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내용과 자신의 족질을 조병규에게 소개하는 내용, 유학의 쇠퇴에 대해 근심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권2에는 기(記) 1편, 비명(碑銘) 1편, 제문(祭文) 2편, 상량문 1편이 수록되었다. 권3 부록에는 이수형, 조병규, 노상직(盧相稷), 조병택(趙昺澤)이 오재선에게 보낸 답서 6편을 모은 「사우 간독(師友簡牘)」과 조성부(趙性孚)가 지은 「숙오학삼신신재(宿吳學三新新齋)」, 80명이 지은 97수의 만시, 조열제(趙說濟) 등 7인이 지은 제문과 오보근(吳堢根)이 쓴 가장(家狀), 조전규(趙典奎)가 지은 행장(行狀), 묘지명, 묘갈명, 전(傳), 조열제가 기록한 「상촌 수계 발문(桑村修契跋文)」 및 이박현, 오장근, 오계순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1871년부터 1954년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당(新塘) 마을에 살았던 오재선의 활동 사항을 확인할 수 있어, 당시 지방의 사정을 연구하기에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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