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남해 척식 주식회사 함안 농장의 비료 대금 과다 징수 사건. 1926년 10월 26일 조진규, 조문극 등이 주축이 되어 함안 소작인 조합을 결성하였다. 함안 소작인 조합은 농민의 권익 보호와 문맹 퇴치를 목표로 농민 야학과 순회강연 등을 실시하였다. 이후 1927년 7월 16일에 대회를 개최하여 함안 소작인 조합에서 함안 농민 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함안 농민 조합...
일제의 식민 지배의 모순을 타파하고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함안 지역의 실천 활동. 1900년대 근대적 학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함안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9일 칠북면 이령리연개 장터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 협동조합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함안 지역은 1894년 민란을 통하여 개항 체제 아래서 빚어지고 있던 봉건적 모순과 새로운 모...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함안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 함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저항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3·1 운동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어 일제 무력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식민지 민족 해방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로 상봉면·하봉면·사봉면이...
1927년~1931년에 함안군의 청년 운동을 지도했던 사회단체. 3·1 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청년 운동은 1925년을 전후로 ‘혁신 대회’ 또는 ‘부흥 대회’ 등을 통해 기존의 장년층 중심의 청년 단체에서 소장층 중심의 청년 단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는 군 단위의 청년 연맹들이 생겨나고 이념적 성향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하였다. 이후 각...
1929년 4월 함안 청년 동맹의 군북 지부로 결성되어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3·1 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청년 운동은 1925년을 전후로 ‘혁신 대회’ 또는 ‘부흥 대회’ 등을 통해 기존의 장년층 중심의 청년 단체에서 소장층 중심의 청년 단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는 군 단위의 청년 연맹들이 생겨나고 이념적 성향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농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