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정 은행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259
한자 銀杏亭銀杏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 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기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 「은행정 은행목」, 『(우리고장 전통가꾸기) 천령의 맥』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12월 15일 - 「은행정 은행목」, 『우리고장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은행정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은행나무|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금기의 위배|신성한 나무|경계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에 은행나무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은행정 은행목」은 운곡리 은행마을 앞에 자리한 은행나무가 생기게 된 유래담과 일제 강점기에 은행나무를 베어내려고 하였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는 1999년에 천연기념물 제40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함양군에서 발간한 『(우리고장 전통가꾸기) 천령의 맥』의 249쪽 ‘유서깊은 나무’ 편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17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은행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배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우물을 파면 마을이 큰 화를 당하게 된다고 전하였다. 사람들이 모여 마을이 형성되자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은 우물을 파서 사용하였다. 그 후에 송아지가 빠져 죽었고, 이것을 불길한 일이라 여긴 사람들이 우물을 메웠더니 그 자리에서 은행나무가 자랐다. 마을 사람들이 심었다고도 전해진다. 마을이 배의 형상이라 은행나무가 돛을 상징한다고 하여 주민들은 신성하게 여겼다.

일제 강점기 때 마을 유지들이 은행나무를 베어 팔아서 마을의 발전을 위해 쓰고자 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죽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은행나무를 베는 것을 의논한 유지들에게도 화가 미쳤다. 이로 인해 은행나무를 베려던 계획은 취소되었다.

[모티프 분석]

「은행정 은행목」의 주요 모티프는 ‘금기의 위배’와 ‘신성한 나무’이다. 마을이 배의 형상을 하고 있어 우물을 파면 안 된다는 금기를 어기고 주민들이 우물을 파자 송아지가 빠져 죽는다. 또한 신성한 나무를 베어 내려고 하자 마을에는 상여 나가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나무를 베는 것을 의논하였던 사람들도 앓거나 죽게 된다. 금기를 위반해서는 안 되며 마을의 신성한 자연물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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