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순
-
천운 마을 회관에서 동림 마을로 향하다 보면 왼편에 널찍한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 한 끝 스탠드에는 ‘화순 광업소 운동장’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보인다. 높이 쳐진 그물망 안으로 스무 명 남짓 되는 야구 선수들이 열심히 연습 중이다. 하얀 운동복에 빨간 모자가 활기차 보인다. 사람도 드문 이곳에 이토록 큰 운동장이 왜 필요했을까? 광업소 종사자들의 여가와 건강을 위해서....
-
먹거리가 풍부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누구나 허기를 반찬삼아 곯은 배를 채웠으며, 맑은 물에 몇 가지 건더기를 넣고 끓인 죽과 국으로 배를 채웠다. 탄광 마을 사정도 비슷해서 노동자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것들에는 시래기죽, 시래기밥, 김치죽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밥에 시래기나 김치를 넣고 푹 끓인 단순한 요리지만 탄광노동자들에겐 노동의 단맛이 한 그릇 가득 담긴 먹거리였다....
-
‘탄광’하면 연상되는 것이 검은 흙, 석탄, 탄가루 등 주로 검은 색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탄광 마을과 사람들도 무채색 빛 애환이 담긴 삶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화순 광업소와 탄광 마을 사람들은 한때 산업 전사로서 지역 경제를 이끌었고, 버거운 환경에서도 활력 있는 삶을 살았다. 특히 석탄 산업 경기가 호시절이던 1970~80년대에는 화순 광업소 월급날이면 마을뿐만 아니라...
-
천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천운 마을 회관이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마을 입구 양쪽으로 넓은 공터가 있고 마을 회관이 마을의 가장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 회관 입구에서부터 동네 주민들의 신발이 한 가득이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 보니 천운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일정표와 함께 마을 소식들이 빼곡하게 적혀있고, 반대...
-
천운 마을 최병철 이장은 1953년에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을 두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 혼자서 자식들 키우고 생활을 꾸려가다 보니 그 고생이야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최병철 씨는 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버렸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 혼자 살아가게 된 최병철 씨는 전국 각지 안다녀본 곳이 없을...
-
화순에서 충의로를 따라 동면으로 진입하면 천운 마을이다. 충의로 길가의 퇴색한 건물들과는 달리 천운 마을 표지석, 버스 정류장이 깔끔하고 조경도 잘 되어 있다. 천운 마을 회관 앞 양쪽으로는 너른 터가 펼쳐져 있다. 빈 터는 1980년대까지 번창했던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장] 극장]과 천운장이 있었던 자리이다. 천운 마을에서 오동 마을로 연결된 길을 중심으로 오...
-
천운 마을 조효순 부녀회장은 1953년 화순군 동면 서석리에서 2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친정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지만, 어머니가 ‘가슴앓이’를 앓고 있어서 아홉 살 때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밭 매고 물 길어서 밥도 해서 식구들 저녁도 차려야 했다. 어느 때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불러내서 기어코 일을 시키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고 한...
-
화순군 동면 천운 마을로 다가가면, 입구에서부터 여느 촌락과는 다른 경관이 눈을 끈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아파트 때문이다. 화순군 면 단위 유일의 아파트 사택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깔끔한 조경과 산뜻한 천운 마을 표지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제 막 지나온 충의로 주변 회색과 검은 빛 경관과는 사뭇 다르다. 충의로에서 천운길로 접어들면 오른 쪽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