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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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坍- |
이칭/별칭 | 복조리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덕안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동복군 외북면 송단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외북면 송단리로 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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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2년 - 전라남도 화순군 외북면 송단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로 개편 |
전구간 | 송단 마을 -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 |
성격 | 전통 마을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에 있는 전통 마을.
[개설]
송단리는 자연 마을인 송단(松坍)·강예·평지·흑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흑석 마을은 1950년 6·25 전쟁으로 폐촌이 되었다. 송단 마을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마을에서 연간 10만여 개의 복조리를 생산하던 곳으로 한국 ‘복조리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조리는 대나무의 일종인 산죽(山竹)의 속대를 엮어 만든 것으로 밥을 하기 전 알곡에서 자잘한 돌이나 쭉정이 등을 걸러내는 데 사용하던 도구이다. 옛날에는 도정 기술이 지금처럼 뛰어나지 못하여 쌀에 돌이 많았기 때문에 밥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조리로 쌀을 일어 돌을 걸러내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쌀 가공 공장에서 완벽하게 돌을 걸러내기 때문에 조리질을 할 필요가 거의 없어졌다. 그나마 편리한 플라스틱이나 철망으로 조리를 만들기 때문에 산죽으로 만든 조리는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리는 본래의 역할보다는 ‘복이 일어나는 조리’라는 뜻의 ‘복조리’로서의 의미가 강조되어 일종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이용되게 되었다. 조리질을 하면 쌀이 일어나듯 복이 일어나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집안을 장식할 때 사용한다. 옛 사람들은 섣달그믐에서 정월 초하루 사이에 1년 동안 쓸 조리를 사서 집안에 걸어 놓았다. 흔히 조리 한 쌍에 돈이나 실 또는 성냥 등을 넣어 방 귀퉁이나 대청에 걸어두고 1년 내내 복을 받고 재물이 불어나길 바랐다. 조리를 새해에 일찍 살수록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새해 첫 장날에 달음질 쳐서 사기도 했다고 한다.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명칭 유래]
송단리의 지명은 송단(松壇)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송단 마을은 원래 솔단이라 하여 작은 마을을 의미한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송단(松壇)’이라 하였는데 이를 일제 강점기에 잘못 표기하면서 ‘송단(松坍)’으로 불리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전라남도 화순군 외북면 송단리(松坍里)로 개편[강예 마을·평지 마을·흑석 마을·송단 마을 일부]되고 1932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외북면과 내북면을 합하여 북면으로 고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가 되었다.
송단 마을에서 복조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 마을이 ‘복조리 마을’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백아산에 지천으로 자라는 산죽(山竹)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자연환경]
송단 마을은 높이 810m의 백아산(白鵝山) 북쪽 기슭에 자리한 산골 마을이다. 마을 북쪽을 동복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데 이 하천을 따라 약간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마을의 방향은 전반적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다.
흑석 마을은 곡성군 삼기면으로 넘어가는 현재의 송단제 저수지 고랑에 있었으나 폐촌되었다. 흑석 마을 동쪽에 있는 고지는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석곡면이 분기되는 곳으로 화순군의 극동 지점이기도 하다.
평지 마을의 남쪽으로는 백아산의 산등이 뻗어와 있으며 동쪽으로는 돌곳봉·송치, 남쪽으로는 각시 바위·매봉이 있고 서쪽으로는 깃대봉이 위치하고 있다. 내가 마을 동쪽과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강예 마을 앞에 이른다. 내와 골짜기를 중심으로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 방향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현황]
복조리는 산죽 가운데 직경 0.7~0.8㎝이고 반드시 그 해에 새로 돋은 가지만을 사용한다. 복조리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산죽을 베어다 삶은 후 하루쯤 햇볕에 말려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네 가닥으로 쪼개서 물에 반나절 정도 담구어 댓살을 부드럽게 한다. 그 다음 한 줄씩 씨줄과 날줄로 꿰어 조리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복조리는 추수를 끝낸 후 농한기인 겨울철 3개월 동안 만드는데, 설 직전에 작업이 끝난다. 복조리의 수요가 많을 때는 마을에서 한 해 10만 개까지도 만들었다고 한다. 기업이나 중간 상인들이 선불로 복조리 값을 치르고 물건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렸고, 복조리 장수들은 며칠씩 마을에 머물다가 설날 직전에 복조리를 가져다 팔았다고 한다. 1990년대 초까지도 가격이 좋았고 판로도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산 복조리가 들어오면서 판매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요즘은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에 한하여 그때마다 조금씩 생산을 한다. 기업체와 군청에서 새해 기념품으로 주문이 들어오거나 화순군에서 축제를 할 때 복조리 만들기 체험 행사를 담당하며 판매도 한다.
2012년 현재 송단 마을의 총인구는 68명[남자 32명, 여자 36명]이다. 주민의 주 소득원은 벼농사이다. 벼농사 외에 여느 산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구마·감자·찰옥수수·콩 등을 심어 생활하고 있다. 복조리 생산으로 인한 소득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지만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 틈틈이 만들고 있다. 복조리의 재료인 산죽도 숲 가꾸기 사업 등으로 많이 없어져 많은 양을 구하기 어렵다. 마을 회관 2층에 공동 작업장이 마련되어 있고, 마을로 이어진 새로운 주소가 ‘복조리 길’로 명명되어 있어 과거 흥청거리던 ‘복조리 마을’의 모습을 흔적이나마 찾아볼 수 있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