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22 |
---|---|
한자 | 李常白 |
이칭/별칭 | 광견(光見),죽오(竹塢)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수용 |
[정의]
근대 화순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견(光見), 호는 죽오(竹塢).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문계(李文繼)이고,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 최봉권(崔鳳權)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상백(李常白)[1857~1924]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조용하거나 혼자 있는 곳에서도 삼가 몸을 지키고, 성리학의 깊은 뜻을 명석하게 발휘하니, 스승이 ‘나를 일으키는 자’라고 칭찬하였다.
능주의 영귀정(詠歸亭)에서 정의림, 기우만(奇宇萬) 등을 모시고 춘추로 강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스승을 끝까지 극진히 모셨으며, 스승의 사후에는 장례나 유집의 간행을 주간하였다.
경술년의 국치 이후로는 망국의 한을 품고 세상을 피해 산으로 들어가 성현의 글을 읽고 절개를 지키며 살았다.
1919년 고종이 죽자 원수인 일본을 증오하며 3년간 상복을 입고 살았다.
[학문과 저술]
유집으로 『죽오집(竹塢集)』 2권 1책이 있다.
[묘소]
묘는 화순군 능주면 당산촌 청룡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