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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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綱閭記-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334-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송만오 |
작성 시기/일시 | 1905년 1월 - 「삼강려기」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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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2월 30일 - 「삼강려기」 진안군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3호로 지정 |
소장처 | 「삼강려기」 소장처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334-1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이번|이홍진|해주 오씨|송병선 |
용도 | 정려 |
문화재 지정 번호 | 진안군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3호 |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살았던 이번과 그의 후손 등 세 사람의 정려를 기록한 문서.
[개설]
「삼강려기」는 1905년에 전주 이씨 이번(李繁)과 그의 손자 이홍진 및 효자 이희식의 부인인 해주 오씨 등 세 명의 충(忠)·효(孝)·열(烈)을 기리기 위해 작성되었다. 「삼강려기」의 충과 효 및 열의 주인공은 각각 이번과 이홍진 및 이희식의 부인인 해주 오씨이다. 풍래군(豊來君) 이번은 병자호란 당시 임금을 호종한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봉되었으며 현록 대부(顯錄大夫) 정1품으로 오위 도총관(五衛都摠官)을 지냈다. 이홍진은 이번의 손자이다.
「삼강려기」는 1998년 12월 30일 진안군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3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삼강려기」의 글은 1905년(광무 6) 1월에 연재(淵齎) 송병선(宋秉璿)이 지었으며, 글씨는 간재(艮齎) 전우(田愚)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강려기」를 소장하고 있는 이부용은 1900년대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이덕응의 손자이다. 이덕응은 송병선의 문인으로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진안으로 이거하여 활동하였다. 이 글은 이덕응이 송병선에게 의뢰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
「삼강려기」는 낱장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가 80.3㎝이고 세로는 30.3㎝이다. 한편 이 「삼강려기」는 나중에 현판으로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