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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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聖一 |
이칭/별칭 | 서병훈(徐丙勳),고암(孤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오경택 |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대구(大邱). 호는 고암(孤岩). 일명 서병훈(徐丙勳).
[활동 사항]
서성일(徐聖一)[?~1908]은 1905년(광무 9)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외교권이 강탈당하자 이때부터 국권 회복에 뜻을 두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07년(융희 1) 체결된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으로 인해 군대가 해산되자 동년 9월 진안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진안 동맹회(鎭安同盟會)’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항일 대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 진안 일대의 대표적인 의병 조직인 이석용(李錫庸) 의진(義陣)에 합류한 후 진안읍을 습격하여 일본군을 패주시키고 많은 군수물자를 노획하기도 하였다. 1908년(융희 2) 3월에는 운현(雲峴)에서 일본군과 일대 격전을 벌였으나 박운서(朴雲瑞) 등 16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묘소]
묘는 전라북도 임실군 화의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기리어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2년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에 조성된 소충사에 배향되었으며, 2005년에는 임실군 성수면 추모 공원 내에 운현 전적 의혼 추모비(雲峴戰績 義魂 追慕碑)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