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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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橋里全松訓家屋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원운1길 1-8[운교리 690-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남해경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가옥.
[개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전송훈 가옥은 백운면 면소재지 쪽으로 흘러내린 덕태산 자락의 맨 끝에 있는데 오목하게 감싼 작은 마을의 중심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전송훈의 조부가 1916년에 지었다고 한다. 전송훈의 부친이 돌아가신 조부를 기리기 위하여 마을 안쪽 산자락에 모운정을 건립하였는데 정자 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부연을 2단으로 설치할 정도로 상당히 장중하고 화려하여 이채롭다.
[위치]
진안군 백운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국도 30호선을 2㎞ 정도 가다가 운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서쪽 방향으로 800m 쯤 가면 원운교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서 남쪽으로 상표천 건너 나지막한 산자락 안쪽 마을 중앙부에 운교리 전송훈 가옥이 위치하고 있다.
[변천]
운교리 전송훈 가옥은 1916년에 건립되었는데 당시 주인은 지역의 부호였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집을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집의 형태는 초창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단지 시대의 변화와 생활의 편의를 위해 내부가 약간 변형되었고 겨울의 추위 때문에 건물 전면에 섀시를 달아 공간을 활용하는 정도이다.
[형태]
운교리 전송훈 가옥은 7칸 규모의 긴 대문간채를 골목길에 면하여 북향으로 배치하고, 비교적 넓은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광채·헛간채를 대지의 경계를 따라 나란한 방향으로 배치하였다. 즉 대문간채를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ㅡ’자 형 건물로 동향으로 배치하였다. 평면은 좌측 1칸은 부엌으로 사용하고 우측 4칸은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의 전면에는 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중앙 2칸은 전퇴로 구성하여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구조는 낮은 기단위에 방형 기둥을 세운다음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가구는 전체적으로 민도리 형식이나 전면 중앙 2칸의 전퇴 부분에는 도리 밑에 장혀를 넣어 수장하였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이며 시멘트 기와를 얹었다.
사랑채는 넓은 마당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田’자 형 건물이다. 대문 쪽 전면 한 칸에 아궁이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고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지면과 거의 동일한 높이의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방형 기둥을 세운다음 민도리 양식의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하고 용머리는 기와를 수장하였다.
광채는 사랑채 안쪽에 있는데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 내부는 광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ㅡ’자 형 건물로 안채 및 사랑채와 직각 방향으로 도로에 면하여 위치하고 있다. 대문간채는 창고·방·헛간으로 구성되었으며 우측 2번째 칸에 대문이 나 있고 방의 전면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었다, 구조는 낮은 기단위에 방형 기둥을 세운다음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 양식이고 지붕은 골슬레이트를 얹었다.
[현황]
초창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안채는 현재 주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겨울의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전면에 섀시를 설치하여 외형은 변해있는 상태이다. 아울러 마루를 섀시를 설치한 부분까지 연장하여 설치하고 있다.
사랑채는 근래에 살림집으로 개조하였는데 기존의 창호들을 모두 벽으로 막고 남동 편에 1칸을 경량 철골로 증축하고 출입구를 설치하였다. 광채는 벽채의 외부를 전부 함석으로 막아 놓았다. 마당 안쪽으로는 우물이 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로 덮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