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육영독지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찬서(纘書).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청주이씨는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호신(李鎬臣)[1868~1943]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수성가하였으며, 많은 사회사업을 하였다. 특히 교육 부문에 힘썼는데, 처음 상산초등학교가 지금의 삼수초등...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이호신의 공적을 기리는 비. 이호신(李鎬臣)은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천석지기의 부농이 되었으며, 많은 재산을 교육 사업에 바쳤다. 1940년 상산초등학교는 현재의 삼수초등학교 터에서 28년을 지내오는 동안 협소한 부지와 노후한 교실로 인해 학생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1862년 충청도 진천현에서 발생한 농민항쟁. 1861년 7월에 부임한 전임 현감 이호신(李鎬臣)에 의해 과도하게 책정된 결가(結價) 20냥을 축소해 달라는 청원이 1862년 1월에 부임한 신임 현감 김병유(金炳儒)에 의해 거부당하고, 오히려 징수 집행에 들어가자 진천현의 군민들이 항거하여 일으킨 농민항쟁이다.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농민항쟁, 이른바 1862년 농민항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