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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현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322
한자 金峴城
이칭/별칭 금이성(金伊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영관

[정의]

삼국시대 충청북도 진천 서쪽 지역에 있던 백제의 성.

[개설]

금현성은 550년(백제 성왕 28년, 고구려 양원왕 6년) 백제가 고구려 영토에 있던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고구려가 이에 대응해 함락시킨 백제의 성이다.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군 서쪽이라는 설이 있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과 전의면의 경계에 있는 금이성(金伊城)이라는 설도 있다.

[관련기록]

금현성과 관련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百濟本紀)」 성왕 28년 3월조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양원왕 6년 3월조 및 「신라본기(新羅本紀)」 진흥왕 11년 3월조에 유사한 기록이 각기 실려 있고, 「이사부열전(異斯夫列傳)」에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내용]

550년 정월에 백제 성왕이 오늘날의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과 도안면의 경계에 있는 고구려의 도살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고구려 양원왕은 그 해 3월 백제의 금현성을 점령하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즉 달기(達己)가 이끄는 백제군이 증평의 도살성을 수중에 넣자, 고구려군이 역으로 백제의 금현성을 함락시켜 양측이 서로의 허를 찌른 것이다. 이는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군이 백제군과 싸우자 동맹국인 백제를 돕기 위해 이찬 이사부를 보내 금현성을 탈환함과 동시에 고구려의 도살성마저 점령하였다. 그러나 신라군은 얼마 후에 백제와의 나제동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구려의 도살성만을 점령하고 금현성은 백제에게 돌려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듬해인 551년에 양국이 연합하여 한강 유역의 고구려군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변천]

금현성은 처음 백제의 성이었으나, 550년 고구려군에게 함락되었던 것을 신라의 이사부가 탈환하여 백제에 돌려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금현성은 백제 동부의 접경 지역으로서,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영토였다.

[의의와 평가]

금현성은 550년 무렵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국경을 맞대고 각축하던 곳 중의 하나로서, 애초에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에게 탈취당했다가 다시 신라에게 함락되는 등 요충지였다. 금현성이 진천 지역에 위치하였다는 주장도 있고, 도살성의 위치가 증평 지역으로 비정되고 전의의 금이성이 금현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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