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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B010102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용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계영

[용이 승천한 연못]

‘용소’ 하면 ‘용이 승천한 연못’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옛날 용소마을 앞에 있는 큰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한다. 『진천군 지명유래』라는 책을 보면, 용몽리 용소마을은 약 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200년 전 마을 앞 들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연못에서 용이 치솟아 오르더니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 후 용 용(龍)자와 못 소(沼)자를 써서 용소마을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조성복 할아버지는 용소마을 지명 유래에 대해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용소마을이라는 것은 현재 경로당 앞에 방죽이 있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용샘이라고 합니다. 이 용샘에서 용이 나서 용소라고 불리는 거죠. 아, 근데 이 용소를 50년도쯤에 논농사를 위해 메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조그마한 벌판만 있어요.”

[가뭄이 들어도 물이 줄지 않았던 샘]

용샘이라 불리는 방죽 말고도 용소마을 안에는 마을 사람들의 생명수라고도 할 수 있는 샘이 있었다. 마을에 40~50가구만이 살 때 4m 정도 깊게 판 우물이었는데, 자연수라 물이 아주 잘 나와서 용소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진천 지역에서는 최초로 간이 상수도 사업의 일환으로 이 샘에서 물을 끌어올려 마을 사람들한테 공급했다. 가뭄이 들어도 물이 줄지 않아서 마을 사람들이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도 되고, 또 샘이 있는 땅이 개인 소유지라 어쩔 수 없이 샘을 묻었다고 한다.

[용소마을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어]

『진천군 지명유래』 등에 따르면, 용소마을은 조선 후기 전주이씨와 하동정씨들이 들어오면서 마을 꼴을 이루었다. 전주이씨의 경우 이병희 노인회장의 7대조 선조부터 용소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다고 한다.

용소마을은 얼마 전까지도 60가구 이상이 산 적이 없는 아담한 마을이었는데, 현재는 70가구 정도가 모여 살고 있다. 1988년 산마루 가는 길에 새마을이라고 해서 10가구 정도가 더 생겼기 때문이다. 산마루 가는 길은 용소마을회관에서 마을 입구를 바라볼 때 차들이 지나다니는 그 길로 쭉 뻗은 길을 말한다. 정부에서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그쪽에 새 집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수박 하우스가 많이 들어서 있는 한우촌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원래 한우를 많이 키우던 마을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수박 농사를 많이 짓는데도 마을에 한우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옛날에는 소가 나가는 길 주변을 황봇들이라고 했다는데, 왜 그렇게 불렸는지에 대한 연원은 분명치 않았다.

용몽리 용소마을에서는 현재 수박 농사 외에도 논농사 조금과 고추 정도를 짓고 있다. 이병희 노인회장의 말에 따르면, 용소마을 노인회와 부녀회에서는 폐기물이나 비닐 등을 수거해서 재생 공장에 넘겨주고 받은 수익금을 마을 재산으로 관리하는 등 다른 마을에 비해 자치적인 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단다. 또한 부녀회와 노인회에서 자주 점심도 마련해서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많아서인지 단합도 잘된다고 자랑이 끝이 없었다.

[정보제공]

  • •  조성복(남, 1931년생, 용몽리 용소마을 주민)
  • •  이병희(남, 1937년생, 용몽리 용소노인회장)
  • •  장기영(남, 1941년생, 용몽리 용소경로당 사무장)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최** 충북진천 최고입니다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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