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005T01002 |
---|---|
한자 | 珍島邑 城內里-自然과 地理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호기,박철웅,황금연,이옥희 |
[자연과 지리]
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진도군청, 등기소, 농협중앙회 등 관공서가 몰려있는 성서리가 있다. 진도읍은 동쪽에 군내면, 남쪽은 의신면과 임회면, 서쪽은 지산면, 북쪽은 조도면과 군내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진도읍 성내리는 향교가 있는 북쪽과 서쪽은 교동리, 남쪽은 남동리와 쌍정리, 그리고 동쪽은 군강공원과 과거에 옥(獄)이 있었던 옥거리에 맞닿아 있는 동외리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는 진도군청, 농협, 등기소, 공공도서관, 진도초등학교 등 진도의 중추기능이 몰려 있는 핵심 지역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다만 1957년 성내리에 세워진 진도면사무소는 진도읍이 남쪽으로 확대되면서 1999년 남동리 신청사로 옮겨갔다. 진도의 핵심인 군청은 성내리의 좌상방향에 자리하고 있으며, 경-위도 좌표로는 북위 34도 29분 10초와 동경 126도 15분 49초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해발고도는 약 30m 정도이며, 남쪽을 향해서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진도읍은 조그만 읍내임에도 불구하고 읍성터를 중심으로 남북방향과 동서방향의 주간선도로에 구획되어 있는 체계적 도로망과 읍성을 중심으로 성밖 북쪽 위를 북상(北上), 남쪽은 남상(南上), 남하(南下), 서쪽을 서외(西外), 동쪽을 동외(東外)로 구분하여 불렀다.
또 성안은 동(東)과 서(西)로 구분하여 동상(東上), 동중(東中), 동하(東下), 서상(西上), 서하(西下) 등의 이름으로 불려진 것으로 보아 진도읍성이 아주 계획적으로 조성된 계획도시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은 구시가지의 중심상가를 형성하고 있어 각종 관공서와 교육, 문화, 상업 및 병원 등 서비스 기능이 탁월하다.
진도읍은 18번 국도를 따라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약 20여㎞쯤 달리다 보면 오른쪽 철마산(鐵馬山)[303.5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진도읍의 진산이 되는 철마산은 정상 서쪽에 있는 높이 290m의 북산에 말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철마(鐵馬)를 모신 마조단이 있는 데서 유래된 명칭인 것 같다. 그래서 성내리 광장도 철마광장이고, 진도초등학교의 체육관도 철마관이 되었다.
진도 진산 철마산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년 전의 지질시대 중생대 백악기에 활동한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많은 화산재와 작은 돌(lapilli) 등이 층을 이룬 암석(화산쇄설암)으로 이루어졌다. 북산-철마산뿐만 아니라 진도의 안산(案山)이라 할 수 있는 남산도 같은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흔히 지질도에선 여귀산응회암으로 불리는 암석이다. 진도는 대부분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재와 돌가루들이 쌓여 만들어진 암석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 기괴한 형상을 한 산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성내리를 끼고 있는 진도읍은 서쪽 정그럼재를 중심으로 철마산-북산-망적산의 북쪽 산줄기와 수리봉-양미골-남산-문마산의 남쪽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그 분지상에 동에서 서로 흐르는 진도천이 이루는 풍수형국은 나름대로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다.
성내리는 철마산을 이고 동쪽의 동산과 서쪽 교동의 산줄기로 둘러싸여 마치 좌청룡 우백호 명당 형국을 보이고 있는 데다, 방형을 이루고 있는 읍성터를 중심으로 하는 진도읍의 중심지이다.
북쪽의 배산으로 추운 겨울 북풍을 막아주고 남쪽으로는 진도천에 임수한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국이다. 이렇게 명당수이면서 교통 및 방어 기능을 지닌 진도천은 동쪽사면에서 흘러내리는 여러 물줄기를 용두 부근에서 모아서 서쪽으로 흘러가다 해창리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 후에 소포리가 있는 진도 서해로 흘러간다.
과거 뱃길은 남동리 원둑머리 포구까지 이어졌다. 진도천의 수량은 적지만 소포포구에서 올라오는 조수의 영향을 받아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서해로 흘러가는 하천의 하항들이 내륙에 있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이곳의 법정리인 성내리는 행정리로 성동리(城東里)와 성서리(城西里)로 나누어진다.진도초등학교와 진도 공공도서관이 있는 성동리에는 군강공원과 충혼탑이 있고 산 언저리에 읍성터가 일부 복원되어 있다. 1792년 청주한씨가 입향하였고 그 후에 밀양박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큰 마을을 이루었다.
현재 271가구 중 농가는 100여 가구이고 나머지가 서비스업 계통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인구는 729명이며 산록부가 돌출되어 있어 논보다는 밭이 많이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서리는 군청을 비롯하여 진도군의 주요 관공서가 밀집한 곳으로 1792년 역시 청주한씨가 입향한 후 밀양박씨 등 주요 성씨를 이루었다. 현재 총 140가구 중 농가는 5가구로 대부분이 도시형 3차산업에 종사하는 가구이다. 관공서가 밀집되어 인구는 262명으로 성서리의 1/3 수준이다.
이에 따라 밤에는 중심지역의 인구가 주변부로 빠져나가는 인구공동화(人口空洞化) 현상이 나타나는데, 읍단위 촌락에선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그만큼 이곳 성내리는 대도시로 말하면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중심업무지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업무기능이 집중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