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005T02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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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郡面 回洞里-특성-神秘의 바닷길 祝祭-靈登祭 |
이칭/별칭 | 회동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신비의 바닷길 축제의 근간-영등제]
신비의 바닷길 축제의 근간은 영등살 때 회동마을 사람들이 모셨던 영등제에서 찾을 수 있다. 회동마을에서는 영등제를 갯당제라 하였는데, 80여 년 전에 중지되어 현재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영등제는 한국의 농어촌에서 일반적으로 봉사되는 풍신제이며, 영등할머니는 영등제에서 봉사되는 풍신으로 농어촌에서 고루 봉사되는 신격이다.
회동마을 사람들이 영등제를 모신 곳은 마을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넓은 분지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뿔치바위라 불렀다. 과거에는 제터인 뿔치바위에서 영등제를 모셨고, 이어서 용왕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비는 각 집마다 조금씩 모아서 마련하다가 뒤에는 마을 자금으로 충당했다.
제가 끝나면 의신면과 고군면의 젊은이들 100여 명이 뿔치바위에 모여들어 거나한 굿판을 벌린다. 바닷길이 갈라져 육계도인 치등이 드러나면 남자들은 치등을 걸어 다니면서 놀고 여자들은 낙지, 반지락, 소라, 미역, 해삼 등을 채취한다. 젊은이들은 갈라진 바닷길을 지난다는 기대감, 신비감, 흥분으로 들뜬다.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뻘을 던지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며 노래도 부른다.
이때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희롱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여기서 남자와 여자들이 벌이는 시비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이 장면을 연애판이라고 표현한다.
모르는 사람들도 남녀 불문하고 밀치고 구르는 일이 벌어져 때로는 마을 사이의 싸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돌아가는 길에도 패를 지어 북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길놀이가 펼쳐진다. 치등에서의 난장은 다른 지역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처럼 영등살 때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벌이던 마을굿은 점차 인근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큰 굿판으로 확대되었다.
신비의 바닷길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였던 피에르 랑디가 진도에 내려와서 바닷길이 열리는 현장을 목격하고 귀국한 후에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신비의 바닷길은 2000년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