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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마을-특성-문인화의 현재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5047
한자 義新面 斜上마을-特性-文人畵의 現在性
이칭/별칭 비끼내,빗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복

[문인화의 현재성-기량과 격조]

우리의 전통회화의 바른 이해에 있어 넘어야 할 산과 선결되어야 할 어려운 점은 한 둘이 아니다. 이 중에서도 힘든 난제의 하나는 우리의 단절되고 달라진 미감에 대한 인식이다. 문인화 이해의 코드이기도 한 격조와 기량의 상관관계를 들 수 있다. 시차에 따른 사고와 심미안의 차이는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격조라 하는 것은 기실 가시적으로 표현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화가의 내면과 정신성, 즉 이면의 문제인 이념미(理念美)이기에 그 어려움이 배가된다. 완벽에 가까운 묘사력과 짜임새 있는 구도와 조화를 갖춘 구성 등 외견상 전혀 흠잡을 부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문화권의 전통회화에서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요구되어 왔으니 다름 아닌 바로 격조의 문제이다.

격(格)은 도덕성과는 별개로되 창작의 주체로써 화가의 인격과 인물 됨됨이에 속하는 문제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창작에 임하는 자세나 행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예술존재 의의 등 본질과 직결되는 성격을 지닌다. 혹자는 이를 동양 특유의 계급과 신분질서에서 유래한 전근대적인 것인 양, 과거 동양의 전통사회에서 지배계층인 식자계층의 문인화가들이 그들 자신의 그림과 구별하여 전문 직업화가들의 그림을 폄하한 데서 유래된 낡은 개념 정도로 가볍게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지나간 시대 권위적인 지배자적 논리의 단순한 일면모로 예술의 도덕성이나 윤리성과 동일맥락의 전근대적이며, 이미 흘러간 시대의 빛바랜 모럴(moral) 정도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이런 입장에서는 심지어 이 점을 문제로 삼거나 논의 대상으로 거론하는 행위까지 복고성향의 시대착오적 발상과 전근대적 사고에서 유래된 것인 양 못마땅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오늘날, 즉 현대의 문인화론(文人畵論)은 논외로 하더라도, 조선 말기 화단에 있어 주류로 큰 흐름을 보인 남종화풍(南宗畵風) 자체는 간과할 수 없다. 조선 후기에 국풍화가 이루어졌고, 문인화가만이 아닌 직업화가들까지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그림세계를 개진한 것은 주지된 사실이다. 말기에 이르러 추사파 또는 김정희파로 지칭되는 일군의 서화가에 의해 예단(藝壇)에 확장되었지만, 청화풍(淸畵風)과의 빈번한 교류 등 그 성격은 이전과는 구별된다. 다만 추사가 마치 조선 후기 진경시대의 고유색 짙은 진경산수나 풍속화 등에 이를 종식시킨 장본인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며 지양되어야 할 사항이다.

말기적 양상은 이에 앞서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어떤 의미로는 추사의 역할과 의의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본격적이고 본질적인 자성에의 표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추사의 사고체계는 복고적으로 이해될 소지가 없지 않으나 그를 따른 이들 및 사승관계를 살필 때, 또 세상을 살필 때 보다 진보적이다. 조희룡·전기 등 적지 아니한 중인들이 그를 따랐고, 잘 알려진 "세한도" 또한 중인 제자인 이상적(李尙適)[1804~1865]에게 그려준 그림인 것을 볼 때, 이 사실을 증좌(證左)한다 하겠다. 조선왕조 말기에 남종문인화가 주류를 점한 것은 중인들의 신분상승 욕구에 편승된 식자층화 경향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이 추사파의 분석에 의해서도 명백해진다. 나아가 서풍(書風)에서 추사에 방불하며, 스승보다 분방하며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조희룡의 필획(筆劃)에 대해 외형만을 흉내낸다고 꾸짖은 정황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추사에 있어서 남종화나 일견 중국적인 취향은 동양이 이룩한 오랜 전통의 본질로의 회귀를 의미하여 단순한 복귀와는 구별된다. 다만 그를 따른 중인 출신 제자들은 더욱 고답적이며 과거지향적이었으니 시대 경향은 추사와 사뭇 어긋나게 된다. 이는 어쩌면 동시대를 산 이들의 역량과 한계에 기인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 말기 화단은 무관심과 선입견 그리고 부정적인 시각 등으로 해서 우리들에게 그 실상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해 인식에 있어 적지 아니한 오류가 내재되어 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의 노년기만 대상으로 하여 평생의 활동이나 업적을 논할 수 없듯, 말기 그림을 우리 전통그림 전체의 실상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음이 현실정이니, 이는 꽤나 편협하고 굴절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관심은 고무적인 것이며 20세기 전반 및 오늘날 우리 화단의 제 문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선결되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한국 근대회화 백년』(삼화서적, 1987) 국립현대미술관,『근대를 보는 눈, 한국근대미술 : 수묵·채색화』(삶과 꿈, 1998) 국립광주박물관,『호남의 전통회화』(1984) 『한국 근대회화 명품』(1995) 전라북도추진위원회,『호남 한국화 삼백년』(1985)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간송문화』-근대, 제15호(1978) 『간송문화』-근대산수, 제32호(1987) 『간송문화』-근대회화 명품, 제64호(2003) 한국미술사료선 1,『19세기 문인들의 서화』(열화당, 1988) 고서화도록 3,『구한말의 그림』(학고재, 1989) 광주시립미술관,『남도미술 백년-그 뿌리를 찾아서』(200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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