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005T08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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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智山面 禿峙마을-特性-重要 無形文化財의 傳承樣相-珍島씻김굿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선 |
[진도씻김굿]
본래 진도씻김굿은 진도 전역을 통괄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인지리 출신의 박병천 일가를 중심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인지마을이 진도씻김굿의 본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된 후 박병천 일가가 인지리를 떠나 서울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지마을에서의 전승활동이나 연행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진도읍에 설치된 무형문화재 전수관을 통해서 전승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또 전수교육보조자(조교)로 지정된 이들이 인지마을 출신이 아닌 까닭에 딱히 인지마을에서 씻김굿의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박병천의 일녀인 박미옥이 진도읍에서 학습 겸 씻김굿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그 맥락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진도씻김굿은 박병천 일가를 중심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 사설이 박병천의 모친인 김소심본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지산면 인지리를 진도씻김굿의 중심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진도씻김굿의 양상은 대개 문화재지정본과 채정례본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의 문화재지정본이 사실상의 인지마을의 씻김굿이 되는 셈이다. 사설이나 연행의 절차 등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지만, 씻김굿 현장 혹은 공연의 현장에서 변경되거나 조정되는 경우가 있게 된다. 이때는 으레 박병천의 지휘나 결정에 의해 조정되거나 변경되는 것이 보통이다.
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벌이는 굿이다. 사령을 위한 굿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는데, 호남지역의 사령굿을 씻김굿이라고 한다. ‘씻김’이란 말은 이승에 살 때 맺힌 원한을 지우고 씻어준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굿 도중에 맑은 물, 쑥물, 향물로 망자의 영혼을 씻어주기 위한 ‘씻김’이라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이 굿 전체의 이름이 되었다. 진도씻김굿은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굿으로서 오래 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음악적으로 세련되고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아 왔다. 1980년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씻김굿은 굿의 목적이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띤다. 상가에서 하는 굿은 곽머리씻김굿, 날을 받아서 하는 굿은 날받이씻김굿, 물에 빠져 죽은 혼을 건지기 위한 굿은 혼건지기굿, 미혼으로 죽은 이를 위한 굿은 저승혼사굿이라고 한다. 상황에 따라 굿의 절차가 약간씩 달라지기도 한다. 수사자를 위한 굿에서는 물가에서 혼건지기굿을 한 후에 집안으로 영혼을 모셔와 굿을 하며, 객사한 영혼을 위한 굿에서는 안당을 한 후 골목 어귀에서 혼맞이를 해서 불러들인 후 본격적인 굿을 한다. 그리고 미혼으로 죽은 영혼을 위해서는 혼맞이와 결혼굿을 한 후 씻김을 한다. 또한 어떤 경우 ‘진굿이 아니다’는 관념적 구분에 의해 조왕굿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나 씻김굿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된다. 전반부 - 중반부 - 종반부 구성이 그것이다. 안당부터 선영 모시기까지의 과정은 산사람들의 복덕을 축원하는 전반부에 해당하고, 그 뒤부터 길닦음까지는 망자를 천도하기 위한 중반부이며, 마지막 종천은 굿을 마감하는 종반부다.
씻김굿의 전승은 본래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전통 속에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인지마을의 씻김굿도 박병천의 모친인 김소심본을 며느리인 정숙자가 승계하였다. 아들인 박병천은 바라지 악사로 그 업을 승계하였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도 악사로 지정된 바 있다. 당시 무가를 구송하는 당골로는 임회면 출신의 김대례가 지정받았기 때문에 정숙자는 오랫동안 후계자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아쉽게도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현재 진도씻김굿 전승양상은 세습무 연행과 강신무적 연행이 양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세습무 연행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 거의 강신무적 연행이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인지마을의 씻김굿 맥락은 박병천의 일녀인 박미옥이 계승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이를 강신무적 무업 연행과 비교해보면 아래 표와 같다.
다만 박미옥은 전통적 연행을 고집하는 것에 비해, 연행 횟수가 적을뿐더러 뚜렷한 독자적 행보를 행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당골 가계의 혈통을 잇고 있는 거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인지마을의 전통을 계승한 인물이기 때문에, 여건의 변화와 성숙에 따라 진도의 무속을 짊어지고 갈 중심 인물로 성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로 송순단은 지산면 고길리 출신으로 진도씻김굿 전수보조자(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활동 중에 있다. 김오심은 강신계 중에서는 제일 왕성했던 굿판의 내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의신면 진설리에 지장암이라는 절을 지어 무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순심은 진도의 강신무 중 가장 강신적 경향을 띠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병굿 등 영적인 기능이 보다 더 요구되는 굿거리에서 이른바 뛰기를 통해 공수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겠다.
한편, 박병천의 2남인 김성훈도 악사로 씻김굿에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활동이 미약해서 온전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표 2)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누이인 박미옥의 굿에만 참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도씻김굿에서 분화된 지전살풀이춤의 전승은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인지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도읍의 지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들을 비롯해, 서울 등지에서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박병천의 북춤까지 포함하여 전승의 폭을 확장시켜가고 있다. 진도의 춤꾼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은 정숙자(1939~1991)이다. 원래 충청도 출생으로 인지리의 씻김굿 가계인 박병천과 결혼하여 무업을 시작하였다. 본래 유랑극단의 단원으로 진도에 들어와 박병천을 만나게 되었는데, 특히 제석굿의 중염불소리를 잘할 뿐만 아니라 살풀이춤을 잘 췄다. 정숙자의 살풀이춤은 진도씻김굿의 지전춤으로 ‘지전살풀이춤’이라고도 한다. 이후 후학들에게 전수되어 진도 내외에서 진도씻김굿을 배우거나 연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숙자류의 지전살풀이춤을 추고 있다. 살풀이춤은 조선 중기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의 발달이 활발해지면서 광대예술이 발전되고, 이에 따라 창우(倡優)들이 창작한 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춤의 핵심적인 형식은 손에 수건을 들고 남도무악인 살풀이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다. 이때 수건을 들고 추는 까닭은 춤을 만들어낸 창우들이 판소리를 할 때 땀을 닦거나 멋(발림)으로 사용한 데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고, 춤꾼이 자기의 감정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전살풀이춤은 씻김굿의 지전을 들고 추는 살풀이이고, 살풀이춤은 긴 무명베 수건을 들고 추는 살풀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