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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마을-특성-중요 무형문화재의 전승양상-강강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8038
한자 智山面 禿峙마을-特性-重要 無形文化財의 傳承樣相-강강술래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문화마을
인구(남) 198명
인구(여) 211명
가구수 181가구

[강강술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는 인지마을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다만, 강강술래를 안무할 당시에 해남군 우수영 강강술래를 지도한 사람이 인지리의 박병천이었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 왕성하게 강강술래를 보존시켜오고 있는 마을 중의 하나가 인지마을이라는 점에서 강강술래와의 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본래 강강술래는 진도읍양홍도를 중심으로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러나 익히 알려져 있듯이, 강강술래는 진도를 포함한 서남해 도서지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연행되고 전승되던 민속놀이자 민요에 속한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 전승력이 약화되면서 일부 마을에만 그 전통이 남게 되었는데, 인지마을도 그 대표적인 마을에 속한다는 뜻이다. 대개 진도지역에 국한해 얘기하면 문화재로 지정된 군내면 둔전리진도읍 동외리가 대표적이고, 지정되지 않은 마을 중에 왕성한 전승력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 지산면 인지리소포리, 그리고 임회면 십일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임회면 십일시는 전승력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진도의 4개 마을에 강강술래가 전승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개의 강강술래가 그 현행방법과 구조에 있어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승력이나 방법에 있어 동일한 것 또한 아니다. 이것은 진도 내에서도 그 전승의 양상이 달랐음을 말해주는 증거라 하겠다.

강강술래 구성에 대해서는 다음의 14가지 놀이를 대표적으로 든다. 긴(늦은)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자진(잦은)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꺾기, 청어 엮기, 청어풀기, 기와 밟기, 덕석몰기,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문 열기, 가마등, 도굿대 당기기, 이외에도 수건 찾기, 품고동, 봉사놀이 등이 추가될 수 있으며 새롭게 꾸밀 수도 있다. 허리끈 돌리기와 춘향아씨 놀이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강강술래가 구성되고 연행되는 과정은 진도지역을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지역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혹자는 강강술래를 술래놀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술래놀이가 강강술래에 포함되어 놀이된 것은 비교적 근자의 일로 여겨진다. 1976년 발간된 진도군지의 내용을 보면 이를 암시하는 기록들이 엿보인다.

어떤 강강술래든지 한 사람의 설소리꾼, 소리꾼, 멕이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이 사람이 목청을 가다듬고 멋지게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면 ‘강강술래’하자는 신호로 알고 한 사람 두 사람 희망자가 나와서 손을 잡고 돌면서 시작을 한다. 이것이 2~30명 장소에 따라 1~2백명도 가능하다. 여기에서는 쑥스러워서 안하려는 벗이 있으면 처녀건 새각시건 손을 잡아 끌어들이면 사양하다가도 뛰어든다. 이리하여 설소리, 메김소리에 맞추어 일반은 ‘강강술래’ 소리만 내고 발을 맞추어 돈다. 얼마쯤 돌다 ‘설소리꾼이 가사가 바꿔지고 메기는 속도가 바뀌면서 잡았던 손을 상하로 더 흔들면서 발에도 힘을 주어 돌면은 이제부터 뛴다는 신호이다. 이러다가 설소리꾼이 뛰면 그 다음 다음으로 전원이 뛴다. 어느 사람이 신이 벗어진다, 힘이 겨워 쓰러진다 하도록까지 돈다. 이리하여 아미에서 땀도 나고 숨도 휘몰아 쉰다. 그러나 해산은 잘 하지 않으며 도로 시작하되 정히 피로한 사람은 빼고 새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고 설소리꾼이 교대되기도 하고 같이 하면서 一旬式을 교대하기도 하고 그 변화무쌍하다.

설소리꾼이 긴강강술래調로 唱을 바꾸면 자연히 전체가 바꿔진다. 이것은 아주 느린調가 되기에 엄격히 손을 잡을 필요도 없고 뛰지도 않는다. 잡는 대신 손을 자연히 늘어뜨리는 사람, 손을 허리에 대고 도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몸을 좌우전후로 약간씩 흔드는 사람 가지각색으로 멋을 내며 입으로는 설소리에 맞춰서 강강술래를 그 調에 맞게 부른다. 시간과 회수에 제한은 없고 또 설소리꾼이 창을 바꾸면 거기에 따라 잦은 강강술래로 바꾸기도 하고 긴강강술래로 계속하면서 설소리꾼이 바꿔지기도 하며 그야말로 자유자재 강요도 없고 부담없이 흥나는 대로 마음껏 논다. 추야장 긴긴 밤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며 혹 명절에 강우등 일기기 불순하여 이 놀이를 못하면 부녀들은 아주 심심해한다.

이러한 역동성을 가진 강강술래는 지역에 따라서 ‘중로보기’를 통해 연행되기도 한다. 나이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육, 칠세 이상만 되면 강강술래를 한다. 누나나 언니를 통해서 강강술래를 접하는 것이 예사다. 물론 아이들은 자기 벗끼리 별도 장소에서 할 수도 있다. 큰 마을에서는 강강술래 판이 2, 3개소 벌어지는 수도 있고 합동으로 넓은 장소를 고르기도 한다. 설소리꾼이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 이렇게 ‘옷이 땀에 푹 젖도록’, ‘장단지가 아파서 문지방을 못 넘을 정도로’, ‘손에 손잡고 날아다니듯이’ 신명나게 놀다가 여러 가지 놀이들을 곁들이기도 하고 다시 긴강강술래로 바뀌기도 한다. 전통시대에 강강술래가 구현되었던 현장은 이처럼 역동성이 넘치는 신명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한편, 강강술래에는 협의의 강강술래와 광의의 강강술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긴강강술래에서 자진강강술래까지 넘나들었던 것이 협의의 강강술래에 속하는 셈이다. 이것은 술래놀이를 포함한 부속놀이들이 따로 연행되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하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표준화되기 이전까지는 협의의 강강술래만 연행되거나,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놀이들이 따로 연행되기도 하고, 또 강강술래와 함께 자유롭게 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76년도(대통령상 수상)에 구성되었던 놀이 중에서 가마등, 도굿대 당기기 등은 현재 연행되지 않았다. 대신 ‘개구리타령’과 ‘손치기,발치기놀이’, 경우에 따라서는 ‘쟁기질 놀이’가 가미되기도 한다.

여기서 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과 인지마을의 강강술래를 비교해보겠다. 1980년대 후반 키쓰하워드가 옥주의 얼과 1984년에 연행된 인지마을의 강강술래를 비교해놓은 것이다.

Keith Howard, Bands, Songs, and Shamanistic Rituals: Folk Music in Korean Society (Seoul: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1989)

이 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특히 다른 마을에서 행하는 ‘문열기놀이’가 인지마을에서는 ‘바늘귀뀌기’로 연행되는 사례가 많음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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