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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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聖材 |
영어음역 | Kim Seongj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조선후기 신임사화로 진도에 유배된 광산김씨 인물.
[배경]
조선후기 광산김씨 집안은 격화되는 노론·소론 당쟁의 중심부에 있었다. 김춘택(金春澤)[1670~1717]은 노론으로 광산김씨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인경왕후(仁敬王后)[1661~1680]의 아버지이자 숙종의 장인이었던 김만기(金萬基)였고, 숙부는 당대 문장가로 유명한 김만중(金萬重)이었다.
장희빈의 소생이 원자로 책봉되면서 당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는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김춘택은 인현왕후의 복위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인현왕후는 김춘택을 비롯한 노론의 힘으로 복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즉위한 후 1721년 3월, 경종 시해를 모의하였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을 계기로 노론 일파는 이듬해에 걸쳐 노론 4대신을 비롯한 관련자 50여 명이 처단되고, 그 외 170여 명이 유배 또는 연좌되어 처벌을 받았다. 이른바 신임사화(申壬士禍)이다.
[경과]
김춘택은 이미 1717년(숙종 43)에 사망하였으나, 신임사화의 참화는 그의 형제와 후손들에게 미쳤다. 1723년(경종 3) 1월 10일『경종실록』에는 김춘택의 네 형제와 아들, 조카 등 열 명이 유배된 기록이 나온다.
당시 김춘택의 동생 김정택(金廷澤)과 그의 조카 김성재(金聖才)는 진도군으로 유배되었다가 1725년 영조가 즉위한 후 어린 소년이라 하여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