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5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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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晋遠 |
영어음역 | Park Jinw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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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박송학(朴松鶴) |
어머니 | 진주하씨 |
아내 | 창령조씨 |
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
성별 | 남 |
생년 | 1860년 7월 20일 |
몰년 | 1932년 6월 16일 |
본관 | 밀양 |
자 | 일삼(日三) |
호 | 강재(康齋) |
[정의]
조선 말기·일제강점기의 학자.
[가계]
본관은 밀양. 호는 강재(康齋), 자는 일삼(日三). 밀양박씨 청재공파 박후령(厚齡)의 12세손으로 1860년 7월 20일 아버지 박송학(朴松鶴)과 어머니 진주하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진도 읍내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서 살며 문장에 뛰어나 당시 진도를 대표하는 학자였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중증진도읍지(重增珍島邑誌)』를 편찬할 때에 도유사(都有司)를 맡았던 것으로 미루어 당시 진도를 대표하는 학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가 진도에 유배와 있을 때 교류한 흔적이 정만조의 『은파유필(恩波濡篳)』에 남아 있다. 1893년 진도에 유배되어 온 여규형(呂圭亨), 미산 허형과 읊은 시도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기성사(箕聖祠)를 세울 때 관여하였다. 아들 박종협(朴鍾俠)[1901~1944]은 3·1운동에 참여하여 일본 경찰들에게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저술]
28세 때부터 36세 사이에 쓴 유고 135수가 담긴 『혜사시고(蕙史詩稿)』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