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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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安車氏 |
영어음역 | Yeonan Chassi |
영어의미역 | Yeonan Cha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집성촌 | 진도군 지산면 소포|의신면 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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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644년 |
성씨시조 | 차효전(車孝全) |
입향시조 | 차명호(車明浩) |
차효전을 시조로 하고 차명호를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연안(延安)은 황해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구려 때 동음홀 또는 고염성이라 부르다가 신라 때에는 해고군으로 불렸다. 고려에서는 염주·영응현·복주·석주·온주 등으로 불렸고, 충선왕 때 연안부로 고쳤다. 1914년에 백천군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연안을 단본으로 하는 차씨(車氏)는 고대 중국의 황제(姓은 姬, 諱는 軒轅)의 후예이다. 우리나라 차씨의 연원은 황제의 후손 사신갑(似辛甲)이 중국에서 고대 조선으로 망명하여 평양 일토산 아래에 정착하여 살며 왕조명(王祖明)으로 변성명하였고, 그 후손 왕몽(王蒙)이 정치적 화를 피하기 위하여 전(田), 신(申) 등으로 개성하였다가 후에 차무일(車無一)로 변성명하면서 차씨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
신라 초기에 승상을 지냈던 차무일의 아들 8형제 중 일곱째 차신을(車神乙)[본명 주림]이 차씨의 성을 계승하였다. 후손 대에서 25명의 승상이 배출되어 명문대가의 기틀을 다졌다.
차무일의 32세손 차건신(車建申)의 아들 차승색(車承穡)은 신라 애장왕 때에 김언승이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헌덕왕에 오르자, 아들 차공숙(車恭叔)과 함께 전왕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헌덕왕을 암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었다. 차건신과 차공숙은 황해도 유주로 달아나 숨어 살며 조모의 성인 양씨(楊氏)를 모방하여 류씨(柳氏)로 변성하고 자신의 이름은 류환(柳桓)으로, 아들의 이름은 류숙(柳淑)으로 개명하였다. 그의 6세손 류차달(柳車達)의 아들 대에서 류씨(柳氏)와 차씨(車氏)로 갈라졌다.
류차달(柳車達)[본명은 柳海]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칠 때 수레 1천대를 만들어 양곡을 실어 군량미로 보급하여 줌으로서 후삼국 통일을 달성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태조 왕건은 그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며 벽상이등공신으로 대승공에 봉하고 이름도 차달(車達)로 하사하였다. 그 후 차달의 아들 중 장남 효전(孝全)에게는 본성인 차씨(車氏)의 성을 잇게 하고 식읍을 하사하면서 대광백 연안군에 봉했으며, 차남 효금(孝金)은 소윤(少尹)의 벼슬과 문화군에 봉하여 류씨(柳氏)의 성을 잇도록 하였다.
연안차씨의 진도 입도조는 시조 차효전의 31세 차순백(車舜白)의 아들 차명호(車明浩)이다. 그가 1644년 진도읍 송현으로 들어와 정착한 뒤 그 후손들이 지산면 소포리, 의신면 사정리 등에 퍼졌다.
2000년 현재 진도에 사는 연안차씨는 101가구 268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