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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512
한자 昌寧曺氏
영어음역 Changnyeong Jossi
영어의미역 Changnyeong J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집성촌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서리|고군면 오산|임회면 용호
입향시기/연도 1300년대
성씨시조 조계룡(曺繼龍)
입향시조 조희직(曺希直)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연원]

창녕조씨 시조는 경상남도 창녕의 옥암동에서 태어나 진평왕(眞平王, 579~632 재위)의 사위가 된 조계룡이다. 조계룡(曺繼龍)은 벼슬이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상주국(上柱國) 대도독(大都督)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라 창성부원군(昌成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이 창녕(昌寧)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 경위]

시조 조계룡으로부터 28세인 조희직(曺希直)이 진도에 정착하였다. 조희직은 개성에서 살면서 정언(正言, 정5품관) 벼슬을 했으나 1356(공민왕 15년) 신돈을 탄핵한 죄목으로 진도 가흥현(嘉興縣) 호장으로 유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도 군내면 정자리에 압구정(押鷗亭)이란 정자를 짓고 살다가 생을 마쳤다.

입향조인 조희직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조근(曺謹)은 진도군 군내면 오산에 자리 잡고, 작은아들 조심(曺諶)은 처음에는 의신면에 정착했지만, 그 후손들은 후일 고군면 지막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조근의 집안을 오산파, 조심의 집안을 지막파라고 하며 이 두 파 밑으로 다시 13개 문중으로 나뉜다.

[세거 현황]

창녕조씨의 후손들은 진도에 799가구 3,233명(2000년 현재)이 살고 있으며, 진도 4대 씨족을 이루고 있다. 국내 성씨 순위로는 28위이지만 창녕조씨는 진도에서 4위에 속하는 성씨로, 진도의 거성일 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인정하는 토착 성씨라 할 수 있다.

[인물]

조희직의 할아버지는 나주 불회사 스님이 된 조한용(曺漢龍)[元禛國師]이며, 증조부는 조정통(曺精通)이다. 조정통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강진조에 나오는 조정(曺精)이란 인물과 동일인이다. 조정통은 바둑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해 오룡(五龍) 집안이라 하였다. 또한 조희직의 8세손 조복명(曺復明)이 참군(參軍, 정7품관)으로 진도에 군을 설치하는 데 기여하였다.

[묘역]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남평 오령동에 조정통의 집안, 즉 오룡 집안의 유적비가 남아 있다.

이용자 의견
창** [연원]
창녕조씨 시조는 경상북도 창령의 옥암동에서 태어나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경상북도가 아니라 경상남도로 수정 해야 되겠네요.
  • 답변
  •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주신 내용에 따라 수정하였습니다.
201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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