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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입향한 진주강씨 입도조. 본관은 진주. 시조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강희맹[1424~1483]이고, 조부는 강학손(姜鶴孫)[1455~1523]이며, 아버지는 강기수(姜期壽)[1481~?]이다. 진주강씨 진도 입도조로, 부인 창녕조씨와의 사이에 강극성·강극주·강극세 세 아들을 두었다. 할아버지 강학손이 무오사화 때 영광에 정착한 뒤에 그 후손들이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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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入島祖). 도강김씨(道康金氏) 조사공파 파조 김일(金鎰)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척강(金陟岡)이다. 부인은 조복명(曺腹明)의 딸이며 아들은 김분(金盆)[1497~1569]이다. 그 후손들의 집성촌이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에서 진도군 고군면 향동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후손 김몽규가『옥주지(沃州誌)』를 지었다. 진도군 고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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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김씨 두계공파 5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종(琮)이다. 아들은 김의춘(金義春)이다. 김익문은 1583년 장흥군 장동면에서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들어와 정착했다. 경주김씨 백촌공파 9세손 김상혁(金尙赫)[1630~?]은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정착했다. 김익문의 후손 중에서 김병삼(金炳三)이 체신부장관을 지냈다. 김상혁의 후손 중에서 김옥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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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진도김씨 시조. 본관은 진도. 고려조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김혁흥(金奕興)의 후손으로 진도김씨의 시조이다. 아들은 김간(金澗)이다. 『조선씨족통보』와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는 사용(司勇)에 오른 그의 후손 김천손(金天孫)을 1세조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 때 삼정의 하나인 군정에서 일하던 김국빈을 1세조로 하는 문헌도 전한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강도 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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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광산. 문숙공파 26세이다. 아버지는 김광선(金光善)[1560~?]이다. 형은 김제흥이다. 아들 김여만(金汝萬)이 있다. 형 김제흥과 더불어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서 살다가 진도군 의신면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그의 아들 김여만(金汝萬)이 광산김씨 의신파의 파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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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광산.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으로부터 26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광선(金光善)이다. 부인은 장흥마(馬)씨이다. 동생은 김제성이다. 아들은 김여용(金汝龍)이다. 1624년에 태어났으며 해남군에서 진도군 군내면으로 들어와 정착하였고, 그의 증손 김덕기(金德起)[1701~?] 때 지산면 관마리에 옮겨 정착했다. 그의 동생 김제성은 진도군 의신면에 정착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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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김해. 증조부는 김해김씨 경파조 김목경(金牧卿)이며 할아버지는 김임수(金林秀)이다. 아버지는 김사검(金思儉)이고 아들은 김가우(金嘉佑)[또는 金嘉義]이다. 고려말 신돈을 피해 경상남도 하동에 살다가 전라남도 장흥 장택으로 옮겼다. 장흥에 살 때 진도가 비어있고 살만하다 하여 아들 김가우를 데리고 여말선초에 진도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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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1543년(중종 38)에 태어나 1605년(선조 38)에 죽었다. 본관은 광산. 광산김씨 문숙공파의 22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귀문(金貴文)이며 부인은 장흥 (任)씨이다. 아들은 김모길(金謀吉)이며 며느리는 현풍곽씨이다. 후손들이 주로 진도읍과 의신면 명금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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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남평. 남평문씨 20세손이다. 문익점의 9세손이다. 문익점의 다섯 아둘 중 둘째 아들 문중성(文中誠)의 후손들을 순질공파(純質公派)라 하는데 순질공파의 후손이다. 전라남도 나주에 살던 문한장(文漢章)의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창녕조(曺)씨이며 아들은 문억매(文億每)이다. 아들 문억매(文億每)가 진도군 지산면 오류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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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남평. 남평문씨 20세손이다. 문익점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문귀중(文貴重)이다.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로 들어왔다. 진도에 있는 남평문씨 집안은 문만 집안, 해남군에서 군내면 대사리로 들어온 22세손 문종(文宗) 집안, 지산면 오류리에 들어온 20세손 문덕련(文德連) 집안 등 세 집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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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밀양. 밀양박씨 시조 박언침(朴彦忱)의 24세손이고 밀양박씨 청재공 박심문(朴審問)의 증손자이다. 아버지는 박세부(朴世莩)이다. 아버지 박세부는 나주에서 살았었는데, 박용 대에 이르러 진도로 옮겨왔다. 부인은 창녕조씨이다. 박연(朴衍)·박정(朴挺)·박동(朴棟)·박종(朴樅) 등 아들 4형제를 두었다. 진도에 들어온 후 박용은 현재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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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함양(咸陽). 박혁거세 시조로부터 50세손이다. 박선(朴善)의 15세손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공신인 박기수(朴麒壽)이다. 어머니는 당시 진도 토호로 명문을 이루고 있던 진도 설군 유공자 조복명(曺復明)의 손자 조극인(曺克仁)의 딸이다. 동생은 박흥종(朴興宗)과 박흥세(朴興世)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강진에 살았으나 아버지가 진도 창령조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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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무안박씨 15세이다. 아버지는 박숭지(朴崇智)[1432~1532]이다. 형이 박종정(朴從貞)이다. 1505년 영암군수가 된 둘째 형 박종정(朴從貞)을 따라 영암에 왔다가 진도가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도군 고군면 하율로 들어와 정착했다.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있는 청신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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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백씨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수원. 수원백씨 시조 백휘(白揮)로부터 23세손이다.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살다가 조카 백한병(白漢秉)[1718~?]과 함께 진도로 들어와 현재의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대천리 일대에 정착하였다. 백상문의 후손들은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사천리와 오류리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조카 백한병의 후손들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와 오산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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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이천. 이천서씨 시조 서목의 21세손이다. 고려 고종 때 영평(永平)[지금의 남평] 감무를 지낸 서린(徐轔)의 후손이다. 1560년(명종 15) 전라남도 나주군 봉황면에서 태어났다. 16세기 말에 진도군 의신면 거룡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1608년(선조 41)에 향년 49세로 타계하였다. 그 뒤에 이천서씨 23세손인 서매동(徐邁東)[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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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순흥. 시조의 16세손이다. 강원도 원주에 살다가 1609년(광해 1)에 진도읍내 성동 옥거리에 옮겨와 정착했다. 그 후손 중에서 안국민(安國民)이 진도 공방(工房)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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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동복. 자는 명국(名國).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오극신(吳克信)[1554~1597]이다. 아버지는 오계적(吳啓績)[1572~1597]이고, 어머니는 연일정(鄭)씨이다. 아버지 오계적이 정유재란에서 전사하자 어머니 연일정(鄭)씨가 형 오명신(吳名伸)을 데리고 군내면 세등에 들어왔다. 그 때에 유복자로 태어났다. 뒤에 지산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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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전주. 정종의 아홉째 아들 석보군(石保君) 이복생(李福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이계옹(李繼翁)으로 거령부령(居寧剖令)을 역임하였다. 부인은 김해김씨 김세옹(金世翁)의 딸이다. 아들이 넷 있다.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로 아버지가 해남에 유배되었고 이거(李琚)는 진도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있다. 진도군 임회면 송정리 정혜사(靖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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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전주이씨 입도조의 조상. 본관은 전주. 정종(定宗)의 열다섯 왕자 중 아홉 번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숙빈 윤씨이다. 부인은 판중추부사 대민공(戴敏公) 김연지(金連枝)의 딸 원주김씨이다. 아들 셋과 딸 다섯을 두었다. 그의 5세손 이거(李琚)가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정착한 진도의 전주이씨 입촌조이다. 진도 전주이씨 후손들이 1872년 진도군 임회면 송월리의 정혜사(靖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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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도조. 본관은 경주. 호는 묵재(黙齋). 경주이씨 26세손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이계선(李繼先)이다. 아들은 이석강(李錫康), 이석복, 이석정이다.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임회면 선학리로 옮겨 정착했다. 그 후손들이 고군면 도론리, 임회면 고산리·매정리, 지산면 가치리·길은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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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원주. 원주이씨 21세손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다가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정착한 이영화(李英華)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춘발(李春發)이다.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진도군 진도읍 서외리에 살기 시작하였다. 현재 그의 후손들이 의신면 돈지와 군내면 둔전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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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광산이씨 11세손이다. 기축옥사로 삼족이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이다. 아버지 이길도 이때 죽었다. 아들은 이준기(李俊基)이다. 기축옥사로 온 집안에 참화가 미치자 동생 이원준과 같이 제주도로 도망가던 중 진도군 고군면 원포에 내렸다. 무안박씨들의 도움으로 의신면 거룡에 정착했다. 후손으로 독립운동가 이병영(李炳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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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기축옥사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정여립(鄭汝立)[1544~1589]의 모반을 조작해 동인(東人)들을 숙청했던 사건이다. 이때 동인계의 실권 배후 인물이 광산이씨 이발(李潑)[1544~1589]이었기때문에 그의 형제와 어머니와 아들 등 삼족이 죽임을 당하는 참화를 입었다.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이길(李洁)이다. 이길은 1589년의 기축옥사로 형인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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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기축옥사를 피하여 전라남도 진도에 자리잡은 광산이씨 입도조이다. 할아버지는 기축옥사로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인 이길(李洁)이다. 아버지는 당시 진도군 고군면 원포로 피신해 정착한 이원섭(李元燮)이다. 주로 조도와 성남도(城南島)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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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의 형제가 있었다. 장세림의 후손은 무안파로, 그 후손 장승언(張承彦)이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東巨次) 막금으로 들어가 진목도 등에 자손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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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2세손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의 형제가 있었다. 장백림의 13세손 장태산(張泰山)[1562~1622]이 진도군 가사도에 정착하였고, 그 후손인 장시재(張時才)가 진도군 지산면 마사(馬沙)에 옮겨왔다. 1624년(인조 2)에 태어났으며 1682년(숙종 8)까지 향년 5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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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의 26세손이다. 진도의 인동장씨는 세 갈래인데, 장세림의 후손 장부개(張傅凱)의 후손들은 무안파라 한다. 아버지는 장부개의 8세손으로 장여인(張麗仁)이다. 장춘백(張春栢)[1644~1712]은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와 길은리로 옮겨와 자리 잡았다. 동생 장춘손[1655~1722]은 임회면 쪽 목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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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60세손이다. 정진은 석성공파(石城公派)로, 아버지는 정화중(鄭和重)[1649~1709]이고 경기도 연천에 살았다. 부인은 청주한씨이다. 아들이 정도형(鄭道亨)·정운형(鄭運亨)이다. 그 후손 중에서 정상호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장, 정용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정공흔 제주대학교 해양대학장 등 많은 학자가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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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도조. 본관은 압해. 압해정(丁)씨 35세손이다. 1713년(숙종 39)에 태어났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고군면 금호도로 옮겨와 정착했다. 손자가 관해정과 서당으로 유명한 정민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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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58세손이다. 정효분은 경주정씨 문헌공파의 진도 입도조이다. 정효분은 본래 진도군 군내면이였던 북치(北峙)로 들어왔는데, 후일 정자리(亭子里)와 진도읍내로 자손이 번졌다. 정효분의 후손 중에서 미군정기 진도군수를 역임한 정승한(鄭承漢), 자생병원장 정중원 등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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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의 입향조. 신안을 본관으로 하는 주씨는 중국 송나라 때 주희(朱熹)[1130~1200]를 중조로 하는 성씨이다. 그의 증손자 주잠(朱潛)이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를 거쳐 화순 능주에 정착하였다. 주수는 주잠(潛)의 22세손이며 아버지는 주옹명(朱滃鳴)이다. 전라남도 나주군 금천에서 1573년 진도에 들어와 당시 국영 목장이 있던 군내면 덕병리에 정착했다. 그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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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촌조. 본관은 진주하씨. 15세손 하숭리(河崇理)[?~1543]의 3남 중 큰아들이다. 그의 아들 하린(河燐)이 해남군에서 옮겨와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정착하였다. 그의 부인은 창녕조씨 조중문(曺仲文)의 딸이다. 그의 동생 집안이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하숭리의 묘는 해남 계곡에 있었고, 하극창의 묘는 진도읍 동외리 정거름재에 있다.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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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진도 입촌조. 본관은 청주. 청주한씨 참의공파 15세손이다. 고려 후기의 무신인 한방신(韓方信)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한충상(韓忠常)이다. 사위가 현풍곽씨 곽안방(郭安邦)인 것으로 보아 진도군 고군면 석현에 정착했던 것 같다. 청주한씨는 중종조에 정착했다고 정리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도 진도에 한씨들이 많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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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촌조.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종유[1645~1707]이다. 1664년 전라남도 고창군 해리에서 태어나 진도군 지산면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부인은 동래정씨이고 아들은 한희민(韓希敏)이다. 그 후손들이 지산면 보전리와 진도읍내 동외리에서 살면서 일제강점기에 한명이, 한승이 등 자산가를 배출했다.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백야산 기슭 용골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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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청주한씨 인물. 청주한씨 27세손이다. 아버지는 한의유(韓義裕)이다. 아버지 대에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에서 진도읍내로 들어왔다. 부인은 인동장씨이다. 아들로 한찬이, 한승이, 한명이 3형제가 있다. 한승이, 한명이는 일제강점기에 재력가로 알려졌으며 기성사 설립과 향현사 복원에 힘을 보탰다. 한승이는 전라남도 도평의원, 한명이는 전라남도 도참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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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청주. 전라남도 해남에서 1564년 한덕일(韓德鎰)의 아들로 태어났다. 진도군 조도면 육동 박희언(朴希彦)의 딸과 결혼해 조도한씨의 시조가 되었다. 아들이 한석열(韓錫烈)이다. 1625년 향년 62세로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