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양씨
-
○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
○ 전주최씨(全州崔氏) : 열부(烈婦). 최운개(崔云凱)의 딸이요, 승사랑(承仕郞) 진양(晉陽)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임진년에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항상 칼을 차고 스스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만일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죽음을 결단할 것”이라고 했다. 해를 넘겨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과연 왜적이 이웃 마을을 핍박하여 거의 모두 죽기에...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 있는 남원양씨 효행비. 남원양씨는 어머니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키는 등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강수제(姜壽齊)에게 시집간 후로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었으나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셨고, 아들을 장가보낸 뒤에는 자신의 일은 다 마쳤다고 여겨 약을 먹고 숨을 거뒀다. 이와 같은 행적을 기리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원래는 1654...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경상대학교 문천각 소장의 행정문서집. 경상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구단자와 준호구철은 김상조가 여러 가문에 잡다하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모아 편철한 것으로 총 6책이다. 제1책에는 남해 거주 남원양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22건(19세기), 곤양·삼가 거주 청주한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6건(19세기), 여수·사천·곤양 거주 남평문씨 가문의...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에 있는 효적비. 유인 남원양씨가 시아버지에게 행한 효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효행내용을 기록하여 두문마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두문마을 산기슭에 위치한다. 비좌는 방형이고 비수는 한옥와가 형태의 가첨석인데, 방형의 받침돌 사방에 석주를 세워 대형의 비수를 받치고 있어서 마치 보호각의 역할을 겸하도록 하였다. 비문은 한문...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이천리에 있는 남원양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남원양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진성면 유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이천리 도동마을 남쪽 어귀 경전선 철길 건널목 근처에 동북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62㎝, 폭 55㎝, 두께 27㎝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의 제목은 “효부정유인남원양씨비(孝婦鄭孺人南原...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
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여삼(汝三). 조선 전기의 문신 하경복(河敬復)의 후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남원양씨 부인을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다. 그의 나이 14세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영약인 잉어를 구하기 위해 디딜방아 공이를 다듬어 읍내 장에 가서 팔려고 가다가 수곡의 조계마을 앞 길 위에서 쓰러져버렸다. 이튿날 햇살에 놀라 황급히 일어나 자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