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흥
-
○ 이수일(李守一) : 만력 계묘년(선조 36년, 1603)에 촉석성(矗石城)을 중축하고 을사년에 길주목사(吉州牧使)로 갔다. ○ 오정방(吳定邦) : 만력 을사년에 와서 병오년(선조 39년, 1606)에 갔다. ○ 김태허(金太虛) : 만력 병오년에 와서 무신년(선조 41년, 1608)에 갔다. ○ 한희길(韓希吉) : 만력 무신년(선조 41년, 1608)에 와서 이 해에 갔다. ○...
-
○ 최이(崔迤) : 영목(領牧)이 되었다. ○ 안노생(安魯生), 조세안(趙世安), 임인산(林仁山), 정사(鄭賜), 안지귀(安知歸), 이영견(李永肩) : 모두 목사(牧使)가 되었다. ○ 손소(孫昭) : 목사(牧使)가 되어 옥송을 잘 판단하고 정사가 너그러우니 백성들이 사모했다. ○ 이우(李堣) : 목사(牧使)가 되어 맑고 간결하게 다스렸다. ○ 김광진(金光軫) : 유애비(遺愛碑)가...
-
진주성 바깥 성벽에 위치했던 동쪽 누각. 동장대는 조선시대 진주성에 설치됐던 4개의 장대 중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동쪽 누각을 말한다. 지금의 중앙사거리와 중소기업은행 진주지점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장대는 진주성 외성벽의 신북문과 동문 사이에 위치해 있던 관계로 가장 치열한 접전 장소가 되었다. 임진왜란 중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왜군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
승려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법을 수행하고 설하는 장소. 사찰은 순수 우리말로 ‘절’이라고 한다. 절은 불상과 당탑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쳐 펴는 기능을 가진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통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비봉산(飛鳳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665년(신라 문무왕 5) 2월 혜통조사(慧通祖師)가 창건하여 월명사(月明寺), 숭의사(崇義寺)라고 불려왔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에는 이 절에서 승병들은 양성하여 왜적과 싸웠으며, 진주성이 함락된...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김충은 원래 당(唐)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경덕왕으로부터 여남(汝南)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남민의 7대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
-
조선시대 때 경상남도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였던 관아 영남포정사의 정문.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사를 지내던 남이흥이 내성의 동쪽문을 고쳐 세우고 옆에 대변루(待變樓)를 새로 지었는데, 이것이 망미루의 본래 건물이다. 후에 1895년(고종 32)에 전국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시행됨에 따라 진주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다. 1896년에 전국을 13...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누각. 호정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矗石樓記)」에 의하면 남강 가에 뾰족뾰족한 돌들이 솟아 있는 까닭에 그 모습을 따서 누각의 이름을 촉석루라고 지었다고 하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촉석산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진주성의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고도 불린다. 전자의 남장대라는 이칭에서는 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성. 진주성은 남강에 면한 단애상에 축조한 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삼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이며,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 시에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곳이다. 진주성은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居列城)이었...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누각. 현판에는 진남루(鎭南樓)로 되어 있으나, 진주성의 북쪽에 위치하여 북장대로 불린다. 또한 내성의 북쪽 끝에서 내성과 외성에 주둔한 병사 모두를 지휘할 수 있어 공북루(拱北樓)라는 별칭이 생겼다. 1584년(선조 17) 목사로 부임한 신점(申點)이 처음으로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167번지 진주성 서북쪽의 높은 언덕에...
-
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 진주성(晋州城)은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하며, 촉석성(矗石城) 혹은 진양성(晋陽城)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진주성의 내성과 그 주변 지역 176,804㎡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남강 가 돌벼랑 위에 세워진 우뚝한 누각으로, 남강 가 뾰족뾰족한 돌의 모양을 따서‘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주성의 남장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