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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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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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공진(河拱辰) : 성종(成宗) 때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가 목종(穆宗) 때에 중랑장(中郞將)에 제수되었다. 임금의 병이 매우 심하니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芳)과 중랑장 탁사정(卓思政)과 더불어 항상 근전문(近殿門)에서 지키다가 이어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郎中)으로 옮겼다. 현종(顯宗)이 거란(契丹, 글안)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하니 하공진이 따라가 길에서 배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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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하공진에 얽힌 공북당에 관한 설화. 「공북당」 설화는 진주시에서 1983년에 편찬한 『내 고장의 전설』에 처음 수록되었다. 그 후 1994년 진주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주문화』제16집에 다시 수록되었다. 진주성 안의 충의당(忠義堂)은 옛날 공북당 자리인데, 이곳은 고려 시랑(侍郞) 하공진(河拱辰)의 태실 자리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 관아를 세우려고 공역(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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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있는 서원. 경상도 지역에 건립된 193개의 서원 중 경상남도 지역은 19개 군에 44개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진주지역에 해당되는 서원은 7개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다. 재실의 수에 있어서도 진주지역에 약 5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도 문중에 따라 새로 건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재(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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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사우. 고려 초 거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절한 충신 하공진(河拱辰)[?~1011]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1804년(순조 4) 수곡면 사곡리 낙수암(落水菴)에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향사를 일시 중지하였으며, 1869년 부조묘(不祧廟)로 되어 다시 자손 봉사하게 되었다. 하공진 장군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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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문서류 단목마을에는 동산문화재로서 진양하씨 가문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중요한 고문서들이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 단목리와 금곡면 운문리에 대대로 살고 있는 진양하씨 소장의 고문서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고문서집성』에 수록되었다. 2000년 대곡면 단목리 창주 후손가 소장 고문서를 『고문서집성』47~48권으로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금곡면 운문리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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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마을. 단목마을은 진주시 북쪽 대곡면 단목리에 위치하고 있다. 단목리 안에는 단목(丹牧)·지내(池內)·신흥(新興) 등 3개 자연마을이 속해 있는데, 모두 진양하씨(晋陽河氏)들의 집성촌으로 현재 약 120호의 마을 주민 중 70% 정도가 하씨이다. 마을의 가장 중심부에는 진양하씨의 시조인 하공진(河拱辰)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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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인적 구성- 『세종실록 지리지』에 소개된, 진주 토성(土姓)의 하나인 진양하씨의 집성촌인 단목에 언제부터 하씨들이 모여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하공진의 13세손인 하기룡(河起龍) 때부터라고 알고 있다. 하기룡은 15세기 중엽의 인물이니 단목마을의 역사는 600여년 정도가 되는 셈이다. 현재 진양하씨는 3개의 파가 있는데, 단목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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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하륜(河崙)[1347~1416]이 태어난 곳. 하륜의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이다. 이방원(李芳遠)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이후 영의정부사·좌정승·좌의정을 역임하였다. 사후 태종의 묘정(廟庭)에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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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주는 가야시대에 고령가야의 고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983년(성종 2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년)에는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진주는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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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인 하수일(河受一)[1553~1612]의 문집. 현재 초간본은 장서각(4-6197),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1022), 고려대학교 도서관 晚松文庫(D1-A1450),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중간본은 국립중앙도서관(古3648-文88-8), 성균관대학교 도서관(D3B-617)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광정(李光靖)이 지은 행장에 “공이 일찍이 저술을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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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싹실마을에 있는 진양하씨의 시조인 하공진의 봉당(奉堂).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사곡동 싹실마을에 있는 하시랑공(河侍郞公)의 봉당(奉堂)은 진양하씨(晋陽河氏)의 시조(始祖)인 하공진(河拱辰)의 사당으로, 매년 음력 12월 보름에 제의(祭儀)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제의(祭儀)는 각 종파에서 선출된 10명 내외의 제관(祭官)들이 주관하는데, 인근 후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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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학자 하진달(河鎭達)의 문집. 하진달은 단목에서 태어났고 자는 영서(英瑞)이며 호는 역헌(櫟軒)이다. 부친은 하해호(河海浩)이며, 생부(生父)는 하수호(河壽浩)이다. 자신은 선조들의 유업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호를 쓸모없는 나무라는 뜻으로 역(櫟)을 사용했다. 하진달은 외모가 엄정하고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경전의 공부에 힘을 쏟고 예서를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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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대우마을에 있는 진양하씨 재실. 낙수암은 진양하씨 재실로 송정 하수일을 위해 세워졌다. 낙수암에는 진주 사곡리 진양하씨송정종택소장책판이라는 진양하씨 송정종택에서 보관하고 있는 4종의 책판 판목이 한 때 보존되어 왔던 곳이기도 하다. 이 책판들은 16세기 후반 남명학파의 면모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최근 진양하씨 후손들이 송정 하수일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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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소재한 진양하씨송정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책판. 모두 4종의 책판 판목으로, 현재 보관중인 목판은 총 112매이다. 이 가운데 『송정집(松亭集)』 목판이 62매, 『각재집(覺齋集)』 목판이 30매, 『백암일고(白巖逸稿)』 목판이 8매, 『대각서원칠선생실기(大覺書院七先生實記)』 목판이 12매이다. 원래 하공진(河拱辰)의 사당인 경절사(擎節祠) 아래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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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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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진주하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을 지내고 평장사(平章事)에 추증된 하공진(河拱辰)이다. 그런데 하연(河演)[문효공(文孝公)]이 1451년(문종 1) 처음으로 족보를 내면서 그 서문에 ‘세계가 전함이 없고 『고려사(高麗史)』에 홀로 하시랑 공진이 있어 듣기에 기쁘나 동원(同源)이면서 분파가 확실치 않다.’고 한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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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신은 전통시대의 사상을 포괄하여 내려오는 용어이지만, 나라에 충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는 기본적 덕목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후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은 그 마음이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어느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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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경부(敬夫), 호는 춘당(春堂). 고려 문하시랑평장사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진평군(晉平君)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사천이씨(泗川李氏) 이륜(李綸)의 딸이다. 부인은 함안이씨 이인형(李仁亨)의 증손녀로 이응춘(李應春)의 딸이다. 1566년(명종 21) 태어나 형들을 따라 공부하였고, 자라서는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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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하공진의 사적비.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하공진은 자신을 볼모로 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하공진의 이와 같은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69년에 하공진의 후손이 건립하였다. 방형의 대좌와 거북형태의 비좌가 한 돌로 되어 있고 비신 위의 비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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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하위보(河魏寶)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하변(河忭)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 이유눌(李惟訥)의 딸이다. 부인은 연일정씨(延日鄭氏) 정계(鄭戒)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 출생하여 일찍부터 문장에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았다. 1660년(현종 1) 25세에 생원에 합격했는데 스스로 이름을 숨기면서 성균관에 들어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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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용강(龍岡).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단지(丹池) 하협(河悏)이며, 어머니는 진양정씨 정승훈(鄭承勳)의 딸이다. 부인은 은진송씨(恩津宋氏) 참봉 송흠원(宋欽遠)의 딸과 현풍곽씨(玄風郭氏) 통덕랑(通德郞) 곽창후(郭昌後)의 딸이다. 용강(龍岡)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은, 남양 땅 와룡강(臥龍岡) 아래에 은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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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1347년(충목왕 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 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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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면(河沔)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 조정견(趙庭堅)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언례(尹彦禮)의 딸과 밀성손씨 손천뢰(孫天賚)의 딸이다. 1553년(명종 8)에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전수받은 종숙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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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영서(英瑞), 호는 역헌(櫟軒). 부친은 하해호(河海浩)이며, 생부(生父)는 하수호(河壽浩)이다. 하진달(河鎭達)은 1778년 진주 단목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특해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았으며, 부모를 섬기는 데는 얼굴빛을 밝게 하고 정성을 다하였다. 훗날 부모상을 다해서는 자식의 예를 다하기도 했다. 선조들의 유업을 후세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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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굉지(浤之).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이며 어머니는 일선김씨(一善金氏)로 대사헌을 지낸 송파(松坡) 김지경(金之慶)의 딸이다. 부인은 남양홍씨로 현감을 지낸 홍억령(洪億齡)의 딸이다. 1469년(예종 1)에 출생하여 1496년(연산군 2)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참봉을 지냈다. 당시 연산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