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
-
○ 하연(河演) : 홍무(洪武) 병자년(태조 5년, 1396)에 진사가 되었다. ○ 강맹경(姜孟卿) : 병오년(세종 8년, 1426)에 진사가 되었다. ○ 최자경(崔子涇) : 진사에 올랐다. ○ 정이신(鄭以信) : 신(信)을 혹은 행(行)으로도 쓴다. 생원에 올랐다. ○ 정추(鄭樞) : 생원에 올랐고 설매곡(雪梅谷)에 살았다. ○ 모수천(牟秀阡) : 진사에 올랐고 상사리(上寺里)에...
-
○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
○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
○ 하경휘(河鏡輝) : 자는 공곽(公廓)이요, 호는 매헌(梅軒)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만력(萬曆) 기축년(선조 22년, 1589)에 사마시에 올랐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어기지 않았다. 임진란 때 환성공(喚醒公)이 상주성(尙州城)으로 달려가는데 겨우 북문에 이르러 적병이 갑자기 닥쳤다. “여기가 나의 죽을 곳이다. 너는 빨리 나가...
-
○ 손경인(孫景仁) : 자는 사원(士元)이요,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문과에 올라 습독(習讀)을 지냈다. ○ 강희(姜僖) : 문과에 올라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본관이 진양(晉陽)이다. ○ 손형(孫炯) : 습독(習讀)을 지냈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하준해(河遵海) : 찰방(察訪)을 지냈다. ○ 손경례(孫景禮) : 자는 사형(士亨)이요,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직장(直長)을...
-
○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
○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
○ 하진(河溍) : 자는 진백(晉伯)이요 호는 태계(台溪)며 본관이 진양(晉陽)이니 태촌(台村) 하공효(河公孝)의 아들이다. 갑자년(인조 2년, 1624)에 진사에 합격하고 문과에 올라 여러 번 맑은 요직을 거쳐서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에 이르러 많은 녹봉에 뽑혔다. 병자호란 때 향병을 모아 달려가다가 상주(尙州)에 이르러 부친상을 만나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사간원(司諫院...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언술(彦述). 임진왜란 때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공을 세운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다음과 같이 강득윤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품성이 효성스러웠고,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다. 또한 청렴하고 근후하여 가훈(家訓) 3편을 지어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아버지의 상...
-
금곡면은 진주시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면(面)으로, 고성군, 사천읍 등과 경계를 하고 있다. 금곡면 소속의 검암리는 동쪽으로는 가봉리, 서쪽으로는 차현마을, 북쪽으로는 송골리, 남쪽으로는 음정마을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4개 마을의 가운데가 운문마을이다. 1911년 금동어면(金冬於面)[현재 검암, 가봉리]과 송곡면(松谷面)[현재 송곡리, 정자리]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김해허씨 문중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신. 1649년(인조 27) 평안병마절도사 안주목사에 재직 중이던 허동립(許東岦)[1601~1662]이 진주의 하진(河溍)[1597~1658]에게 보낸 서신이다. 한 통에서는 하진의 약재 요구에 대한 답장과 아울러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었고, 또 다른 한 통에서는 하진의 완쾌를 비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
언어를 표현매체로 한 예술 및 작품. 진주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진주 문학의 연원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욱면랑(郁面娘)의 성불 등천」이 있다. 이것은 진주를 배경으로 한 불교설화인데 수행과 정진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의 장엄한 종교 문학이 되기도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기록에서 진주를 문향(文鄕) 혹은 명시(名詩)의 고향이...
-
조선 후기의 문신 하진(河溍)[1597~1658]이 받은 교지첩. 하진의 호는 태계(台溪)이고, 본관은 진양이다. 『양조은함첩』은 1633년(인조 11)부터 1657년(효종 8)까지 25년에 걸쳐 받은 교지첩으로,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진주하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다. 총 45매이며, 표지에 ‘양조은함첩(兩朝恩銜帖)’라 씌어 있다. 당시의 인사관리제도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사원(士元), 호는 기옹(綺翁)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진사에 합격하고 호남으로부터 침곡(針谷)으로 옮겨와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태계(台溪) 하진(河溍), 학포(學圃) 정훤(鄭暄)와 더불어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문장을 서로 지어 주고받아 시문(詩文)이 제현(諸賢)의 문집 가운데서 가장...
-
조선 중기의 선비. 자는 자의(子義), 호는 추담(秋潭).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일찍부터 행실이 바르고 학식이 넉넉하였으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태계(台溪) 하진(河溍)과 더불어 도의의 사귐을 가졌다. 그의 아들 정례도 또한 하홍도를 스승으로 섬겨 재예가 뛰어났으며 진사에 합격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
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진주하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을 지내고 평장사(平章事)에 추증된 하공진(河拱辰)이다. 그런데 하연(河演)[문효공(文孝公)]이 1451년(문종 1) 처음으로 족보를 내면서 그 서문에 ‘세계가 전함이 없고 『고려사(高麗史)』에 홀로 하시랑 공진이 있어 듣기에 기쁘나 동원(同源)이면서 분파가 확실치 않다.’고 한 것과...
-
진주성 내의 촉석루에 걸린 현판의 시. 현재 촉석루에는 현판에 새겨진 9편의 시가 걸려 있다.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에는 훌륭한 시영(詩詠)으로 면재 정을보, 우곡 정이오, 상헌 안진[?~1360], 경은 설장수[1341~1399], 급암 민사평[1295~1359], 이재 허선생(누구인지 불명) 등 여섯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정을보와 정이오의 시가 촉석루에 걸...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청백(淸伯), 호는 초정(草亭). 태계(台溪) 하진(河溍)[1597~1658]의 계제(季弟)이다.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을 따라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그 재주가 일찍부터 뛰어나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망하자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두 형과 더불어 은거하면서 생을 보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있는 조선 중기 때 문신 하진(河溍)의 묘비. 하진(河溍)[1597~1658]은 본관이 진주, 호가 태계(台溪)이다. 1633년 문과에 올라 집의(執義)를 지냈다. 하진 묘비는 1675년에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위치한 하진의 묘 앞에 있다. 얕은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웠으며, 뚜껑돌은 생략하였다. 전면의 ‘집의태계하공지묘(執義...
-
조선 후기의 문신 하진(河溍)의 상소문. 하진은 호가 태계(台溪)이고, 본관은 진양이다. 이 상소문은 하진[1597~1658]이 나라에 올린 상소문으로 우국충정(憂國衷情)의 간절한 심정이 담긴 고문서이다. 하진 상소문에는 사회 상황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당시의 사회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
조선 후기의 문신인 하진(河晉)[1597~1658]의 시문과 그에 관한 글을 모은 것. 하진의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이다. 1624년(인조 2)에 진사가 되고 증광시(增廣試)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였다. 사재감군직장(司宰監軍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늙으신 부모를 봉양하느라 취임하지 않았으며,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사간원 정언(正言),...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한경(漢卿), 호는 일헌(一軒). 집의를 지낸 하진(河溍)의 아들이다. 1634년(인조 12)에 출생하여 나이 13세에 허목(許穆)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년이 되어서는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남명 조식(曺植)의 학문을 사숙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덕천서원(德川書院)을 중심으로 남인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