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
○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
○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
○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
진주 출신의 김서정이 작사 및 작곡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대중가요. 노래 「강남달」은 1929년 시에론 레코드에서 발표한 곡으로 우리나라 창작영화 1호인 「낙화유수」의 주제가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주제가이다. 영화 「낙화유수」의 각본을 썼던 진주 출신의 김서정(본명 김영환)이 레코드로 영화 해설판을 만들었는데 이때 강남달을 김서정이 작사·작곡하여 국내 영화계에서는 최초로 영화...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금호지(琴湖池)과 청곡사(靑谷寺)의 유래에 관한 전설. 금호지는 신라 때 축조된 못으로 둘레가 5㎞이고, 수심이 깊은 곳은 12m이고, 아랫동네 250㏊에 농삿물을 대주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준다. 사물이나 지명의 기원담은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데 그 기원은 대개 상서로운 동물로 인한 유래, 또는 천지 창조나 뛰어난 장수에서 유래된 기원담이 주종을...
-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남강을 소재로 한 노래. 노래 「남강은 말이 없네」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가로지르는 남강을 소재로 고향 진주에 대한 정을 노래한 음악작품이다. 「남강은 말이 없네」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이재호가 작곡 및 작사하였다. 유랑천리 돌아봐도 내 고향만은 못 하길래 달빛따라 별빛따라 마음을 조려가며 진주 남강 너를 찾...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을 소재로 한 노래 중 하나. 「남강은 살아있다」는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의 남강과 촉석루 등을 소재로 한 음악작품으로 작사자와 작곡가는 미상이며, 김재식이 노래하였다. 노래 남강은 살아있다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제작되었다. 넓어진 남강다리 유랑마차 달린다 똑딱똑딱 똑딱똑딱 들려오는 소리는 무너진 촉석루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을 배경으로 옛사랑을 그린 대중가요. 「남강의 추억」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이재호가 작사, 작곡하였으며, 고운봉이 노래하였다. (1절) 물소리 구슬프다 안개나린 남강에서 너를 안고 너를 안고 아 - 울려주던 그날 밤이 울려주던 그날 밤이 아- 파고드는 옛 노래여 (2절) 촉석루 옛 성터엔 가을달만 외로이 낙...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논개 순국담의 하나. 논개의 순국 사실은 구전되어오다가 1620년경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채록되면서부터 문자화되었다.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도 이 시기의 일로 전해진다. 이후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촉석루 논개사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마음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 노래 「논개의 노래」는 논개의 마음을 남강과 촉석루에 반영하여 그린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탁성록이 작사 및 작곡하였으며, 우판용이 노래하였다. (1절) 수양버들 피리에 봄도 늙는데 가야금 줄에 하소하던 논개의 죽은 넋이 칠백 리 남강 물결 속에 목메어...
-
논개와 진양성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 노래 「달빛어린 진양성」은 촉석성 혹은 진양성이라고도 불리는 진주성을 소재로 논개와 호국선열을 기리는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서병호가 작곡하였고 우판용이 작사하여 노래를 불렀다. (1절) 논개의 영을 실은 촉석루와 의암은 천추장강 물결위에 눈물겨운 서사시 은빛 잠긴 남강의 잔잔한...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승되는 비봉산(飛鳳山)과 대나무 열매에 얽힌 설화. 신라 말과 고려 초 쯤 풍수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영향으로 각 지역마다 풍수의 관점에서 복을 취하려는 설화가 많이 생겼다. 대나무열매 설화도 그런 유형 중 하나이다. 진주시에서 1983년에 발행한 『내 고장의 전설』에 처음 수록되었고, 그 후 진주문화원에서 1994년에 발행한 『진주문화』...
-
진주 소재의 가요로 살펴보는 진주의 역사. 진주는 도심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강(南江)이 빚은 천혜의 풍광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멋과 풍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교방문화(敎坊文化)가 꽃 피웠던 곳으로 예로부터“북 평양, 남 진주’라고 했다. 그 전통은 자연 현대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를 만드는 등 한...
-
경상남도 진주시 남쪽에 위치한 가호동(행정동)에 속한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조정 과정에서 개양동과 장좌동을 합쳐 ‘가좌리’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가좌동(加佐洞)·장좌동(莊佐洞), 내동면(奈洞面) 신촌동(新村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정촌면 ‘가좌리’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 진주목이 설치된 이후에는 가좌촌리 였는데 1895년에 가좌촌면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가좌촌면 하촌동(下村洞)의 일부로서 하촌리(下村里)라 하고 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93년 7월 1일자로 가진리(加津里, 嘉津里)라 개칭하였다. 가진리의 북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전의 나루터였던 가좌나루의 흔적이...
-
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하며 가좌동과 호탄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법정동인 가좌동과 호탄동을 통합하면서 두 동의 이름을 따서 행정동인 ‘가호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진주시 행정 구역 개편(대통령령 제 6542호)에 의하여 정촌면 가좌리와 호탄리를 진주시에 편입시켜 행정동인 가호동이 형성되었다. 가호동 자체로만 보면 중앙부는 낮고, 동쪽과 서쪽이 높으며 남쪽은 비교적...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서 사천시 곤양면·축동면을 흐르는 국가하천. 낙동강 권역의 낙동강 남해권 수계에 속하며, 유로연장(流路延長)이 12.52㎞, 하천 연장이 10.38㎞, 유역 면적이 29.08㎢이다. 댐의 방수로 역할을 하고 있는 하천으로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서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로 흘러 가산만으로 유입된다. 국가 하천으로 길이는 약 12.52㎞ 정도이다. 진주시 내동면(...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갈곡은 지형이 칡 형태로 생겼으며, 산에 칡이 유난히 많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진주군 갈곡면 외동, 상촌동의 두 마을을 1914년 갈촌리로 통합하였으며, 1995년 11월 갈촌리에서 갈곡리(葛谷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고도 100m 내외의 산지 사이로 계곡이 발달되어 있으며, 남강의 지류인 영천강으로 흐르는 소하천변을 따라 도로와 마을...
-
경상남도 진주시 남쪽에 위치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강남동’이라 하였다. 본래 진주군 섭천면(涉川面)과 천전동(川前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에는 내동면(奈洞面) 천전리(川前里)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에 진주면에 편입되었다. 1927년 6월 1일 진주역이 들어서면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
-
경상남도 진주지역 최초의 서양화가. 강신호는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서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최초로 입학하였으며, 경상남도 최초로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입선한 작가이자 진주 최초로 서양화 개인전을 개최한 화가이다. 진주의 부호였던 강재순의 아들이며, 형평운동(衡平運動)의 주역이었던 강상호(姜相鎬)와 아동문학가 강영호가 그의 형이다. 진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위치한 예술문화회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경상남도의 문화 창달을 위해 경상남도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 문화예술의 전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1988년 8월 29일에 건립되었다. 1981년 10월 설계공모에 김중업의 작품이 당선되었고, 1984년 12월 18일 공사에 착공하여, 1988년 8월 29일 개관하였다. 2000년 1월 1일부터 학교법인 일선학원에서 수...
-
조선시대 경상우도의 병무를 관할하던 관서. 조선 전기에는 경상도에 3명의 병마절도사(병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관찰사가 겸임했다. 그리고 낙동강을 기준삼아 경상도를 동서로 나눈 군사구역으로서 좌도와 우도를 설정해 좌병사의 병영은 울산에 두고 우병사의 병영은 창원의 합포(지금의 마산)에 두었다. 우병영이 있던 합포영이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분탕되면서 병영이 둘만한 자리가 못되기...
-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財貨)를 획득하고 이용하는 활동. 일반적으로 경제산업이란 인간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관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을 가리킨다. 보통, 농업·공업·수산업·임업·광업 등을 지칭하나, 넓게는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상업·금융업·서비스업 등도 포함시킨다. 진주시는 경상남도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산청군·의령군·함안군·고성군·...
-
경상남도 진주시·산청군·함양군에 걸쳐 있는 남강의 상류부에 해당하는 하천. 남강 상류부의 명칭이 경호강으로,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80여 리(약 32㎞)의 물길이다. 국가 하천인 남강의 상류부이며, 함양군 남덕유산[1,507m]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면서 지류인 덕천강(德川江)을 합하여 진양호를 이룬다. 진주 지역에서는 북동으로 유로를 바꾸어 함안군 대산면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도충(道冲), 호는 준봉(準峰).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의병장으로 유명한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이다. 1570년(선조 3) 진사가 되고, 1577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현령(縣令)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아버지 고경명(高敬命)을 따라 의병을 일으키고, 금산(錦山) 싸움에서 아버지와 동생 고인후(高因厚)를 잃었...
-
조선 중기의 문신 및 의병장인 고종후(高從厚)의 묘. 고종후[1554~1593]의 호는 준봉(準峯), 본관은 장흥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593년 진주성전투에서 활약하다가 진주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순절했을 당시 시신은 이미 유실되어 묘(墓)가 없었다. 지금 남아 있는 무덤은 1619년(광해군 11)에 윤허를 받아 6월...
-
공중의 휴양·놀이 등을 위해 마련한 정원·유원지·동산 등의 시설. 우리나라의 공원은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에 의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연풍경지(自然風景地)를 보호하고 국민이나 주민의 보건·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경영·관리하는 자연지(自然地)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造景地)로 정의하는데, 전자를 자연공원, 후자를 도시공원이라고 한다. 자...
-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이라는 어휘는 중국 주(周)나라 시대의 『역경(易經)』에 “관국지광(觀國之光), 리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 하여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말은 타국의 광화(光華)를 보기 위해 여러 나라를 순회 여행하는 ‘이동의 개념’과, 타국을 순방하여 그 나라의 토지·풍속·제...
-
경치가 빼어나 구경하기 좋은 명소. 진주는 자연환경적으로 남강이 굽이쳐 흐르고, 역사적으로 사천·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 등 경상남도 서부지방의 전통적 문화 중심지로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인 진주시는 남해고속국도, 통영~대전간 고속국도, 경전선 철도, 사천공항 등이 입지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경제·사회·문화·교육의 중심권을 형성하고 있다. 진주...
-
경상남도 진주의 인공호수인 진양호가 조성되기 이전의 광활한 평지.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과 귀곡동 일대에 조성된 진양호 지역의 옛 이름이며,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해당한다. 진양호가 조성되기 이전에는 광활한 평지였으며, 동학농민운동과도 관련된 역사의 현장으로 지금은 진양호 내에 수몰되어 있다. 진양호를 지칭하는 광탄진은 순우리말로 ‘너우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너우니...
-
강이나 개천, 또는 언덕과 언덕 사이에 건너다닐 수 있도록 걸쳐 놓은 시설. 2009년 12월 31일 현재 진주시의 교량은 전체 237개소이고, 총연장 22,077.15m이다. 이 중 고속국도 상에는 52개소 7,792m, 일반국도 상에는 72개소 5,480.80m, 지방도에는 52개소 5,813.20m, 시도 상에는 61개소 2,991.55m가 각각 있다. 이들 교량 중 가장 긴...
-
자동차·기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 오고 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 진주시는 동쪽으로 마산시 및 함안군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 및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및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
-
약 30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시기로 인류의 발달과정을 도구제작 기술의 발달로 구분할 때 가장 이른 시기. 구석기시대는 지질학적인 연구와 이 시기에 살았던 동·식물상의 연구를 배경으로, 각 시기마다 사용된 도구 즉, 석기를 중심으로 하여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나누어진다. 전기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처음 연모를 사용한 때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 이래로 이천(耳川)[귀내]이라 하다가 1995년에 구천(龜川)이라 개칭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지금도 귀내 또는 구내라 한다. 진주목 시대에는 내진성면(內晋城面)에 속했으나, 1914년에 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 도동(道洞), 구천(龜川) 2개 마을이 형성된 후 삭녕최씨(朔寧崔氏)가 입향하고, 다음 진양정씨가 입촌하였다. 문산읍과 접...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있는 산봉우리. 해발 228m의 봉우리로, 관지리 삭평마을 뒷산이다. 진주에서 손꼽히는 명산의 하나로 산꼭대기에는 널따란 암석이 있는데, 여기에 올라서면 주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봉화대가 있어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정상에서 불과 연기로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명석면을 굽이굽이 흘러 남강과 합류하는 나불천과 진주를 관통하는 남강과...
-
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의 유적이 중첩되어 있는 복합유적. 귀곡동 유적의 위치는 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 귀곡마을 산66-19 일대였다. 귀곡동 유적은 남강댐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으로 1992년 경상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처음 확인되었다. 1997년에 경상남도 남강댐건설사업소에서는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몰지역의 확대에 따른 문화유적의 훼손...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평의 이름을 따서 금곡리라 하였다. 금평은 평갱이 들이라고도 부르며, 곡식이 돈이라고 하여 금평이라 하였다 한다. 금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필동리, 뇌동리와 하봉면의 구사리 일부를 병합하고 진주군 지수면에 편입되었다. 금곡리는 서편으로 남강에 접해 있다. 남동쪽은 고도가 높고, 북서쪽은 고도가 낮다. 금곡리는 동쪽으로 사...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 월아산 중턱에 있는 옹달샘. 월아산 중턱에 위치한 산질 샘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공을 드리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한 이 옹달샘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동제를 지내는 장소였다. 월아산은 남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쪽 봉우리는 장군대, 북쪽 봉우리는 달임산이라 불린다. 월...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에 소재하는 남강 위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400.0m, 폭은 16.0m, 높이는 10.0m이다. 경간의 수는 8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50.0m이다.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도(13.0m)와 보도(3.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강상자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교각식이다. 설계하중은 DB-24이고, 통과하중은 43.2t...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속사리에 있는 금선봉(琴仙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대여촌리(代如村里), 월아미리(月牙彌里), 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여촌리과 월아미리는 금산리에 합하여 금산리(琴...
-
·갓배이 : 갓이라는 뜻으로, 예부터 이 마을에 갓을 쓴 사람들이 많이 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0~70대 사람들은 아직도 갓배이라 부른다. ·남성 : 본래 대여촌면의 지역이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의 통폐합으로 금산면 가방리에 통합된 마을이다. ·검당골[黔堂谷] : 남성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검당골못 : 검당골 마을 앞에 있는 못이다. ·기동(基洞) : 남성마을 북쪽...
-
조선 중기의 문신·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다. 1573년(선조 6) 은일지사(隱逸之士)로 천거 받아 군기시주부가 되고, 그 뒤 용안현감과 강원도, 경상도의 도사를 지냈다. 사헌부지평의 자격으로 정치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임실현감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담양부사, 한...
-
조선 후기 무신란(戊申亂) 때의 의병. 김해 출신이다. 같이 활동했던 김필락(金弼樂)은 사촌동생이고, 김여삼(金汝三)은 그의 조카이다. 영조 무신란에 김필락, 김여삼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반군을 진압하였다. 향군(鄕軍)을 모아 남강을 건너가 이석복(李碩福)과 인근의 여러 수령을 따라 길을 나누어 공격하다가 전투 중에 순절하였다. 양무원종훈(揚武原從勳)에 기록되었다. 1890년(고종...
-
경상남도 진주시 인사동을 흐르는 지방 하천. 주로 명석면의 남쪽 지역을 흘러가며 하천의 직강 공사가 이루어져 있다. 흙으로 조성된 제방으로 이루어져, 자연 상태의 유로를 유지하고 있다. 나불천으로 들어오는 하천으로는 덕곡천, 왕지천, 우수천, 용산천, 사촌천이 있다. 습생 식물은 다양하게 나타나는 편이나 수생 식물의 분포는 적은 편이다. 10년 전만 하여도 은어가 찾아왔지만 지금은...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과 칠암동 일대에 걸쳐 있는 문화 예술 거리. 역사·문화·예술의 도시인 진주의 전통과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지닌 도심 속의 문화·휴식 공간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화 예술 거리로 지정되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단계[문화예술의 거리, 진양교-진주교,(2.0㎞, 41,390㎡), 1992~1998]와 2단계[역사의 거리, 진주교-천수교,(0.9㎞,...
-
경상남도 진주시·함양군·산청군·의령군·함안군 일대를 흐르는 하천. 경상남도 거창군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진주시·함양군·산청군·의령군·함안군을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총 유로는 185.6㎞에 달한다. 남강은 산간 곡저를 흐르면서 함양군 유림면에서 위천을 합류하고, 산청군 생초면에서 임천을, 진주시 대평면에서 덕천강과 진주시 금산면에서 영천강을, 함안군 법수면에서 함안천을...
-
남강유역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청동기시대 남강 유역에는 최근 발굴 자료와 연구 성과로 통해 볼 때 고인돌, 돌덧널무덤,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묘제가 분포하며, 이들 분묘는 묘역을 가지면서 거주 공간과 공존하거나 혹은 독립적인 형태로도 존재하고 있다. 남강 유역에서 발굴된 고인돌유적은 대평리, 상촌리, 내촌리, 귀곡동, 강루리, 사월리 유적(1기)의 6개 지점...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지역에 있었던 선사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유적.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상촌리, 내촌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1967년 남강댐 제1차 공사과정에서 선사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그 후 1975년~1980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집터 4동과 고인돌 7기 및 돌널무덤 9기를 발굴·조사하여 유적의 대체적인 성격이 밝혀졌으며, 1992...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과 그에 새겨진 글씨. 남강 암각은 ‘일대장강 천추의열(一帶長江 千秋義烈)’이라는 논개(論介)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벽이다. ‘남강 암각(南江 巖刻)’이라는 명칭은 진주시에 있는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그냥 ‘암각’이라고도 불린다. 창렬사 경내 어제비문을 정비한 다음 처절했던 진...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2동에 위치한 남강 위의 다리. 남강교는 진주시 상대2동과 문산읍 소문리를 연결하는 교량이다. 교량의 길이는 420.0m, 폭은 30.0m, 높이는 13.8m이며, 경간수는 8개이고, 최대 경간거리는 60.0m이다. 총차선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3차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1일 통행차량은 2,120대 정도이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강상자형교(STB형), 하...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과 내동면 삼계리 사이의 남강에 구축된 다목적댐. 서부 경상남도 지역의 생·공·용수 및 관계용수의 안정적 공급, 남강 하류 및 사천만 연안의 홍수 피해 방지, 수력발전 등 수자원의 적극적인 활용을 목적으로 건설된 댐으로, 길이 1,126m, 높이 21 m이다. 남강댐의 구축으로 조성된 진양호(晋陽湖)는 진주시 판문동·귀곡동·대평면·내동면 및 사천시 곤명면에 걸...
-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설립된 남강댐 홍보관. 물문화관은 물을 테마로 한 남강댐의 홍보관으로, 지상 2층의 규모로 1997년 1월 30일 개관하였다. 1층은 전시관으로 ‘물과의 만남, 생명의 물, 남강의 물, 새천년의 물’이라는 주제로 전시되어 있다. ‘물과의 만남’ 공간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의 마스코트인 비버로봇이 방문객을 맞으며, ‘이미지 웰’을 통해 물에 대한 친근한 이미...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과 신안동 남강 둔치에 위치하는 꽃 단지. 진주시는 원래 남강의 하천부지였던 남강 둔치를 개발하여 체육시설·산책로·주차장·여가공간 등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꽃단지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꽃단지의 남강1로 건너편에는 신안·평거 녹지대를 중심으로 자전거놀이장·인라인스케이트장·건강체험장 등이 조성되어 있어 가족 단위의 다양한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천수...
-
2001년에 진주환경운동연합이 주체가 되어 만든 남강 도보 순례단. 남강사랑은 진주환경운동연합 주최로 2001년부터 매년 계속되고 있는 경상남도 진주 남강의 도보 순례단으로 강의 상류지역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하류지역의 오염실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경상남도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남강의 상류부터 하류까지, 이들 지역을 도보로 순례하여 강의...
-
남강 유적에서 출토된 표면에 단(丹: 산화철(酸化鐵))을 발라 굽거나 적색안료를 바른 청동기시대의 토기. 붉은간토기는 아주 고운 흙으로 만든 후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문질러 붉은 색의 광택이 나는 토기이다.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홍도(紅陶)·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등으로도 불린다. 동북지방의 무문토기시대 전기에 발생하여 공열문토기와 함께 중부와 남부지방으로 전래되었다....
-
곡물을 베어 수확하는데 사용하는 청동기시대의 농경구. 곡물을 베어 수확하는데 사용하는 농경구는 한반도 전역에서 반월형석도가 많이 발견된다. 형태는 삼각형, 장방형, 물고기, 배모양 등 다양하다. 삼각형의 형태는 청동기시대에서도 시기적으로 늦은 송국리 문화단계가 되면 벼농사의 확산에 따라 제작이 쉬우면서도 사용면적을 넓히는 것이 가능한 형태로 발달했다. 특히 삼각형석도는 한반도 남부...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일대에서 출토된 조기(早期) 청동기시대의 토기.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로 추정되는 미사리 유형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토기의 속성으로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전환되는 시기규명과 농경사회와 관련하여 일본까지의 전파 추정 등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진주지역의 경우 남강 일대에서 확인된다. 남강 다목적 댐 수몰예정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서 많은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고...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서 출토된 활의 부속품으로, 화살의 머리에 붙였던 첨두기(尖頭器). 구석기 후기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사용시기에도 일부 지속되지만 대부분 청동기시대에 제작·사용된다. 청동기시대 석촉에 대하여는 청동화살촉을 모방하였다는 설과 신석기시대의 화살촉이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설이 있다. 형태는 경부가 있고, 길이는 5~10㎝가량의 것이 대부분이지만 20㎝ 내외...
-
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 안쪽에 있다 하여 안성, 내성 또는 성내동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당시 진양군 성내면 2동·성내면 3동 각 일부와 성내면 5동 지역을 통합하여 진주면 성내동이라 하였다.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남산정(南山町)이라 하였고, 1949년 8월 15일 남성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
-
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후기의 축곡리와 내동리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내동리에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축곡리(杻谷里), 말동리(末洞里), 내평리(內坪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말동리와 내평리를 축곡리에 합하였다가 1832년(순조 32)에 축곡리와 내동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유곡면과 내동...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을 내촌리(內村里)라 하였다. 내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북쪽은 남강이 진양호로 이어지고, 남쪽은 덕천강이 진양호로 유입되어 남북방향이 진양호와 접하고 있고, 북쪽은 200m 이상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내촌...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에 있었던 구석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에 있었다. 덕천강의 지류인 당촌천의 제2단구상(段丘上)에 형성된 유적이었다. 1992년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구에 대한 지표조사 중 처음 발견되었으며, 1997년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가장 아래에 있는 자갈층과 모래층 및 상부...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에 있었던 구석기시대 및 원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내촌동 북동쪽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유적이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의 유물포함층과 원삼국시대의 집터가 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 유물은 상부 점토층을 중심으로 가장 깊은...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314-1번지에 있었으며, 남강 연안의 낮은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형성된 유적이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6년~1997년까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과 집터 및 원삼국시대의 집터가 확인되었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순절한 의기(義妓).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주달문이고, 어머니는 허씨이다. 전라북도 장수 출신이다. 1593년(선조 26)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중이었던 1593년 6월 김천일, 황진, 최경회, 고종후...
-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활동. 진주시는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교육은 물론 경제·사회의 중심지로서 도시·농촌의 균형개발을 위한 거점도시이자 자연자원이 풍족하고 산업기반시설이 완비된 도·농 복합도시이다. 농산물 집산지였으나 상평산업단지가 조성된 후 공업이 크게 발달하고 있다. 농업특산품으로는 전국 최고 품질의 진주 배와 단감을 비롯해 오이·딸기...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당촌동(堂村洞) 지역이었으며, 이에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 당촌동, 신풍면(新豊面) 중동(中洞), 곤양군 곤명면(昆明面) 본촌동(本村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당촌리라 하였다. 당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남쪽은 덕천강, 북쪽은 남강과 진양호에 접하고 있다. 서쪽...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골짜기의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大谷)이라 한 데서 유래된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 대동(大同)이었다. 임진왜란 후 오곡리를 합하여 대곡리라고 부르다가 조선 말기에 대곡면이라 하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시 대곡면의 대동(大同) 일부를 대곡리(大谷里)라 하여 대곡면 10개 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곡...
-
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면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이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대곡리(大谷里), 오곡리(吳谷里), 그리고 북면(北面) 사죽리(沙竹里), 설매곡리(雪梅谷里), 월배곡리(月背谷里), 잉옥리(芿玉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大谷里), 설매곡리(雪梅谷里)라 하였다가 1832년(...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 대곡천 하류 덕곡교 부근에는 강폭의 1/3을 개방 수면으로 유지하고, 2/3는 석축을 쌓아 둔치로 이용하고 있다. 하상은 인공화된 평탄지로서 개방 수면의 식생은 빈약한 편이다. 대곡천은 우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건천(乾川)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수는 대체로 탁하다. 대곡천의 퇴적물은 모래가 대부분이며, 하상...
-
음력으로 새해 첫 보름날. 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각 지역에서는 대보름날에 축제의식이 열리고 있고, 어느 정도 그때의 풍속이 남아 있다. 한때 대보름날의 하이라이트인 달집짓기가 산림을 훼손한다고 하여 중단되었으나 지금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부활되어 여러 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대보름날 풍속은 다양하다. 진주지역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대보름날에는 마을의 공동의식인 동제가 베풀어지...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과정에서 합쳐진 대무동과 혈암동의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서 대암리라고 하였다. 1914년 진주군 모태곡면(毛台谷面) 대무동(大舞洞), 평방동(坪方洞), 혈암동(穴岩洞)과 집현면 달리동(達理洞)의 각 일부를 대암리(大岩里)로 하였다. 대암리의 북쪽 지역은 해발 고도 100m 이상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강의 지...
-
대중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되는 문화. 초기 대중문화의 개념은 대중이 즐기는 문화라는 객관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엘리트계층이 아닌 대중, 즉 대중사회 내에서 익명성에 빠져 사는 불특정 다수가 즐기는 문화로 이해되었다. 이처럼 종전에는 대중문화의 개념이 고급문화·전통문화 등과 상반되는 문화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재해석되어 획일적인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집단...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위치한 진양호 위의 다리. 교량의 길이는 376.0m, 폭은 9.2m, 높이는 12.0m이며, 경간수는 8개, 최대 경간거리는 47.0m이다. 총 차선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1일 통행차량은 984대 정도이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SC상자형교(PSCH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 교각(ETC형식), 설계하중은 DB-24...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2지구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무덤. 남강에 의해 형성된 대평리 어은동과 옥방동 일대의 들판에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남강에서 조사된 무덤으로는 시신이 묻힌 장소 위에 커다란 바위를 덮개로 삼은 고인돌·돌로 시신을 넣을 관을 만든 돌널무덤·토기를 사용한 독무덤·나무관을 사용한 널무덤이 있다. 일부...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일대에 있었던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1336-2번지 일대에 분포해 있었다. 대평리 어은1지구 유적은 남강에 접한 자연제방 위의 집터와 그 배후사면의 경작지, 안쪽 자연제방의 주거 밀집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1999년...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어은마을 1303-6번지 일대에 있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1998년까지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지표에서 80~100㎝ 아래에서 생활유구인 집터 50여 동과 집터 주위에서 확인된 야외 화덕자리 33기,...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 751-1번지 일대에 있었다. 남강댐 제2차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9년 국립진주박물관과 경남고고학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환호 4열과 목책·경작지·집터·구덩이·고인돌·돌널무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중 유적의 북쪽에는 환...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마을에 있었다. 남강에 접한 자연제방과 배후사면에 넓게 형성된 유적이었다. 남강댐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7년~1998년까지 경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30여 동의 집터를 비롯하여 수십여 기의 구덩이 및 집석유구, 31기의 돌...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대평리 옥방6지구 유적이 위치하는 대평리 일대는 하천의 범람으로 강안이 확대되고 그 배후에 모래가 퇴적되어 현재 지층과 같은 충적대지가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신석기시대라고 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인간들의 생활공간이 이곳에서 시작된 것은 남강을 이용한 발달된 수로와 농경을 위한 넓고 평평한 대지, 풍부한 수자원 등에...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대평리 옥방9지구 유적이 위치하는 대평리 일대는 하천의 범람으로 강안이 확대되고 그 배후에 모래가 퇴적되어, 현재 지층과 같은 퇴적지대가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이 지역은 지형적으로 강변에 근접하는 곳으로 주로 자연제방과 대규모의 경작지 유구가 검출되었다. 대평리 옥방9지구 유적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801-1...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남강다목적댐 개량사업의 일환으로 이 지역 일대의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특히 대평리 일대에서는 고인돌과 돌널무덤을 비롯하여 집터, 가마터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대거 출토된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평면에서 정식발굴조사를 한 결과,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유물이 대거 출토되어 지역이름을 따서 대평리 유적이라고 명...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지. 대평리 유적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는데, 특히 집터유적이 대거 발견되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집터유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평리 유적지는 남강의 퇴적대지와 주변 평야지대에 위치한 청동시대 유적으로 옥방부락·어은부락·상촌부락에 걸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대평리 유적지가 위치한 대평면...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대평면은 예로부터 한들 또는 큰들이라고 불리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의 서신대리(西申大里), 침곡리(針谷里), 가을동리(加乙洞里), 대평리(大坪里)이던 것이 임진왜란 후에는 대평리로 통합되고 조선 후기에는 침곡면(針谷面)과 대평면(大坪面), 또 조선 말기에는 침곡면(針谷面), 신풍면(新豊面), 마동면(馬洞面), 대...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 덕곡동(德谷洞)이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에 합병되어 조선 후기까지 대곡면 하촌동과 덕곡동의 일부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촌동, 덕곡, 대여촌면 송곡동 일부를 합하여 덕곡리라 하고 대곡면의 10개 리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남쪽으로 남강을 접하고 있다. 북쪽은 가정리, 동쪽은 마...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과정에서 합쳐진 덕성동과 오동의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서 덕오리라고 하였다.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지방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사죽면(沙竹面) 오동(梧洞), 덕성동(德成洞), 월아동(月牙洞), 단동(丹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덕오리(德梧里)라 하고 집현면에 편입하였다. 1987년 일부 지역이 금산면으로...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덕오리 평촌마을 일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집현면 덕오리 평촌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야산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이다. 주로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편과 석기편들이 채집되고 있는데, 유적의 정확한 연대나 성격은 알 수 없다. 모두 4개소에서 집중적으로 유물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이 일대 구릉의 광범위한 지역에 위치하고...
-
경상남도 진주시와 산청군·사천시·하동군 일대를 흐르는 강. 『국역 진양지』에 “조흘산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상류암을 거쳐 장항동(獐項洞)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 삼장천이 되어 살천(薩川)과 더불어 양당촌(兩堂村) 앞에서 합하니 이를 덕천(德川)이라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서 발원한 물과 지리산 계곡에서 흐르는 하천이 진주시 수곡면과 하동군 옥종면, 사천시...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경산 북쪽 남강과 연해 있는 벼랑(덤). 덤밑은 벼랑을 나타내는 진주 지역 방언인 ‘덤’의 밑이란 뜻이다. 원래는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서 내동면 독산마을로 통하는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었으나, 국토 개발 계획에 의해 지금은 진주시와 경상남도 하동군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변이 되었다. 또한 이곳으로 진주시와 전라남도 순천시를 잇는 경전선 철로가 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의 진주군 내동면 독산동 지역으로 이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시 진주군 내동면 독산동과 영강동을 합하여 독산리(篤山里)라 하였다. 독산리는 북쪽에 남강과 접하고 있고, 남쪽에 있는 실봉산(185m)에서 시작되는 구릉성 산지가 이어지고, 서쪽으로도 고노골 등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면...
-
특정한 지역이나 수역(水域)에 사는 동물의 전(全) 종류. 특정 동물군에 대해서는 곤충상·연체동물상 등으로, 지역에 대해서는 한국의 동물상·남극의 동물상 등으로, 환경에 대해서는 삼림동물상·토양동물상·호소동물상 등으로 그리고 생활양식에 대해서는 부유동물상·유영동물상 등으로 구분한다. 지구상의 특징 있는 서로 다른 동물상을 가진 구역을 동물지리구로 구별한다. 동물 군집이 양(量)적인...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숙박시설. 진주시 남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 건너에 경남문화예술회관이 보인다. 동방관광호텔의 경영이념은 ‘깨끗한 시설, 정갈한 음식, 친절한 서비스’로서 진주를 찾는 내·외국 관광객들이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1985년 12월 18일에 (주)동방관광호텔이 설립되었다. 1985년 12월 26일에 (주)동방관광호텔 사업계획이 승인...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성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성내면(城內面) 3동과 4동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동성동이라 하였는데,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일출정(日出町)이라 하였다가 1949년 8월 15일 다시 동성동으로 환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두산리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란 뜻의 두메실이라고 부르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동물곡동(冬勿谷洞), 처음동(處音洞)과 이곡면(耳谷面) 어수동(魚數洞), 송곡면(松谷面) 정자동(亭子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동물리(冬勿里)라 하고 정촌면(井村面)에 속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뒤쪽에서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까지 남강 변에 걸쳐 있는 벼랑. 뒤벼리의 벼리는 벼랑 즉 낭떠러지를 말한다. 뒤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이다. 남강변의 또 다른 벼랑으로 새벼리와 대조적인 이름의 지명이다. 새벼리는 동쪽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이다. 남강변을 따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두고 도로가 나 있다. 진주성의 동쪽 기슭을 흘러가던 남강물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상사면 마사리와 시성리를 합하여 마성리라고 하였고 각각의 지명에서 집자하였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상사면 마사리와 시성리를 통합하여 마성리(馬城里)라고 하였다. 마성리는 그 형세가 마름모 형태와 비슷하다. 남서쪽은 반성천과 접하고 있고 반성천 유역에 충적 평야로 이루어진 넓은 경지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해발 고...
-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하며, 제의를 올리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 마을신앙은 일반적으로 고등종교와 달리 형식과 내용이 조직적이지 못하며, 지역마다 성격이 다르게 나타난다. 자연을 숭배하면서 자연을 신격화하고 신앙하면서 형성된 마을신앙의 대상은 산·물·바위·나무·동물 같은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며, 신앙의 목적도 단순히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극히 현...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농사가 잘되고 마을 앞에 강이 흐르고 나루가 있다 하여 마진(麻津)이라 이름하였다. 또한, 마(麻)가 재배되어 삼베옷 등이 지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의 일부로 대동(大同), 소동(小洞), 마진(麻津)이 있었다.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 마진동(麻津洞)이라 하였고, 1...
-
경상남도 진주시의 법정동이자 행정동. ‘망경(望京)’이란 명칭은 고려 때 어느 충신이 역적으로 몰려 귀향을 와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늘 산에 올라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바라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3월 1일 당시까지만 해도 진주군 섭천면(涉川面) 지역으로 남강(南江)의 앞쪽에 있다 하여 ‘내앞’ 또는 ‘천전(川前)’이라고 하였다. 1914년 천전리라 하여...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있는 도시가로명. 도시 가로가 행정 구역인 망경동을 지나고 있어 망경로라고 하였다. 1979년 3월 5일 22개 노선 및 7개의 광장명을 확정하고 1982년 1월 23일 가로명 설치 조례를 제정 공포하고 1983년 2월(조례 제989호), 1985년 7월(조례 제1184호) 개정하였다. 진주의 남강을 가로지르는 진주교의 남단에서 망경동의 육거리를 거쳐 내동...
-
경상남도 진주시 주약동에 위치한 남강의 지류 위를 지나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9.2m로 짧고, 폭은 25.0m, 높이는 4.5m이다. 경간의 수는 1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9.2m이다.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도(16.3m)와 보도(7.9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RC슬래브교이고, 설계하중은 DB-18이고, 통과하중은 32.4t이며, 난간재료는 알루미늄 합금...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과 주약동 일원에 있는 도시근린공원. 1986년 3월 6일 건설교통부 고시 제93호에 의거, 전체 면적 106만 3100㎡에 도시근린공원이 지정되었다. 망진공원의 중심인 망진산[172.4m]은 망경동 산 29-3번지[봉수대길 116]에 있고, 망경동의 뒷마루에 있기 때문에 보통 망경산(望京山)이라고도 부른다. 이 공원은 서쪽으로 남강과 만나 절벽을 이루고 있고...
-
큰 하천의 주변에 홍수로 인한 범람이나 낮은 곳에 물이 모여 만들어진 웅덩이. 하천의 범람 등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배후습지(背後濕地)에 물이 고여서 형성되거나 흐르는 물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만들어진 웅덩이를 말한다. ‘못’이라는 지명이 붙기도 하고 한자인 ‘지(池)’가 붙기도 한다. 대체로 저수지 등으로 이용된다. 진주 지역에는 가마못 등 주요 못들이 있는데, 이들 못에 대해...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와 일반성면 창촌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고분군. 일찍이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진양 무촌리 고분이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마을 남동방 약 500~600m지점의 구릉상에 있으며, 도굴되었다. 말무덤 또는 마을무덤이라고 전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고분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진양 무촌리는 행정구역상 경상남...
-
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읍(邑).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법륜리(法輪里), 굴곡리(屈谷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법륜리와 굴곡리는 조동리(槽洞里)에 합하여 조동리라 하였다. 1832년(순조 32) 이래로는 소촌리(召村里), 갈곡리(葛谷里), 조동리(일부)라 하였고, 1864년(고종 1) 이후 조선 말기까지는 소촌면(갑오개혁 이후 文山面으로 개칭),...
-
그림이나 조각처럼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며 눈으로 볼 수 있는 미를 표현하는 예술. 진주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아오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미술문화가 전개되었다. 이는 가야시대 토기류 같은 현존 유물이나 신라시대의 화성(畵聖) 솔거(率居)가 유마상(維摩像)을 그렸다는 문헌기록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말 왜구의 침략, 임진왜란 등의 거듭된 전화(戰禍)로 많은...
-
민간(民間)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앙(信仰). 일반민중의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 전종교적(前宗敎的)이며 주술적(呪術的)인 자연적 신앙을 통칭하는 말로, 민간신앙에는 일반민중의 생활 속에서 형성된 마을신앙의 대상이 되는 동신(洞神, 마을 신)을 위시하여 가신(家神, 집안 신), 무속, 독경, 자연물, 영웅, 사귀(邪鬼) 등에 대한 신앙과 풍수, 점복, 예조, 금기, 주술, 풍수...
-
민간인의 사고, 언어, 행동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유형·무형 민간문화 현상 또는 문명국가의 서민사회에 전승되는 기층문화. 민속은 민중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전승되어온 전통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원시·고대 문화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것이 민속이다. 우리나라의 민속은 그 지방 고유의 민속으로 자리를 잡기보다는 대개 어느 지방에서나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일반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
경상남도 진주지방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온 놀이. 민속놀이는 각 지방의 생활과 풍속을 잘 드러내는 전통놀이로서 강한 향토성과 더불어 민간신앙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즉, 농악이나 탈춤은 신을 즐겁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줄다리기나 고싸움 등은 신의 뜻을 파악하는 놀이였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민속놀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앙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구전 민요에 대한 개관(槪觀). 진주 지역은 남강을 낀 진주 분지의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농업이 발달하였고, 이런 지역적 배경으로 반촌(班村)이 많아서 농업 기능요는 물론이고 효친(孝親)을 비롯한 가족간의 정의를 노래한 민요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모심기노래는 모를 심을 때 앞소리꾼이 4음보 1행을 노래하면, 모심는 사람들이 뒷소리꾼으로 4음보 1...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진경(眞卿).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官民)이 흩어짐을 보고, 같은 고향의 뜻있는 선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합세하여 그를 대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지만 사양하고 자신은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군무를 정돈하며,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면서 군의 사기를 높였다. 1593년(선조 26)...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 반성현에 있다 하여 반성천이라 하였다.『국역 진양지』에 “반성천은 반성현에 있다. 그 물의 근원은 발산(鉢山)과 장안산(長安山)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의 동쪽에서 합해져서 서쪽으로 흘러 원통과 청원의 두 물과 합해지며 이것이 삼계가 되고 또 흘러서 목계가 되어 제월대 아래로 들어가니 곧 송월대의 하류다”라고 되어 있다. 반성천의 식생은...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미천면 반지동 지역으로 이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미천면 반지동, 세곡동, 삭성동 일부로서 반지리(班池里)라 하였다. 북쪽의 향양리에 있는 동향저수지에서 시작되는 향양천이 반지리의 중앙부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벌당리 인근에서 다른 소하천과 합류하여 집현면을 지나 남강으로 흐른다. 향양천의 동서 양안으로 하천...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과 함안군 군북면 경계 지점에 있는 산. 해발 고도 530.4m이며 경상남도 함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방어산의 남쪽에는 여항산과 백이산, 동쪽으로는 삼봉산이 둘러싸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 남해고속국도가 지나가며 정상에서 남강과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다. 과거 왜구가 침입했을 때 이를 물리치고 방어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현재도 방어산의 정상에는...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방어산에 있는 산성. 고려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의 테뫼식 산성이다. 명칭과 관련하여서는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방어산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1379년(고려 우왕 5) 봄에 왜적과 방어산성에서...
-
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의 한가운데에 있어 본성동 혹은 중성동(中城洞) 이라고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당시 진주군 성내면(城內面) 2동과 성내면 3동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중성동이라 하였다.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본정(本町)이라 하였는데, 해방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본성동(本城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
경상남도 진주시에 소재한 봉남서원의 기둥과 벽에 장식으로 붙여진 한시. 자연적 환경이 수려한 곳에서 학문에 정진한다면 학식과 덕망이 훌륭한 사람이 배출될 것이 분명하니, 『시경』과 『예경』의 중요함과 수덕(修德)의 필요성을 노래한 것이다. 한시는 중재(重齋) 김황(金榥)이 지었다. 8언 8행으로 된 한시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봉산 굽이굽이 서리고 솟아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
-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관련된 읍치 풍수, 취락 및 주택 풍수, 비보 풍수, 풍수설화 등의 풍수적 사실과 역사적 경관, 그리고 옛 진주 주민들의 비봉산에 대한 문화생태학적인 환경지각과 그 의미를 포함하는 말. 진주의 비봉산은 진주 도심의 북쪽에서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표고 162m의 나지막한 산으로서 동서로 크게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서쪽 날개는 두고개(137m...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원에 소재하는 도시근린공원. 비봉산공원은 건설부 고시 제93호에 의해 1976년 3월 27일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비봉산 당산나무, 비봉루, 비봉산 산책로, 비봉산 체육공원 등이 있고, 전체 면적은 2,048,000㎡다. 비봉산은 높이 138m이고,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가 발달하였고, 시가지의 남쪽으로 남강이 흐른다....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의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사면 우곡리(上寺面 隅谷里), 사령리(沙令里), 방촌리(芳村里), 일반성면 창촌동의 각 일부를 합쳐 사곡리라 하고 사봉면에 편입시켰다. 남강 하류 지역으로 강우시 농경지 침수가 잦은 편이다. 진주 시내에서 보면 동남 방향이며, 사봉면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사봉초등학교와 사봉우체국, 진양농협 사봉지소, 사봉보건...
-
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부다리(副多里), 상사리(上寺里)라 하였다. 1832년(순조 32) 이래로는 상사리라 하다가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상사면이라 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상봉면(上奉面), 하봉면(下奉面), 상사면(上寺面)이라 하다가 1906년(광무 10)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하여 함안군(咸安郡)에...
-
(1) 동제 북마성마을에는 오랜 전승을 가진 동제가 있었다. 동제 혹은 당산제, 산신제 등의 이름으로 부른 상당신(上堂神)을 모시는 제의(祭儀)와 마을 입구의 탑(塔)을 모시는 하당신(下堂神) 제의가 동시에 시행되었으나 지금은 마을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제사가 중단된 이유는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동제의 무용론을 내세워 지내지 말 것을 주장하던 중, 2003년의...
-
북마성마을은 마을 앞으로 사봉면과 지수면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고 있고, 지수면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주거지가, 왼쪽으로 금평뜰이 펼쳐져 있다. 마을 앞과 뒤는 산으로 막혀 있으며, 동네에서는 현재 당산나무가 있는 산을 안산(案山)으로 부르고 있다. 좌청룡으로는 어봉곡, 우백호는 계곡산이며, 진산은 돌구산이라 하는데, 돌구산은 북마성, 신당, 계곡, 필동 등 이웃하고...
-
승려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법을 수행하고 설하는 장소. 사찰은 순수 우리말로 ‘절’이라고 한다. 절은 불상과 당탑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쳐 펴는 기능을 가진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촌(沙村)의 유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촌 일대에 모래(沙)가 많이 있었다 해서 사촌(沙村)으로 불렸다는 설과 지역 내에 있는 구시봉 정상에서 보면 남강의 모래사장이 훤히 보였다 해서 사촌이라고 불렀다는 설이다. 조선시대까지는 사죽리(沙竹里)로 불렸으며, 1914년 진주군 동물곡면(冬勿谷面) 기동(基洞), 사촌동(沙村洞), 관동(冠洞)이...
-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주는 가야시대에 고령가야의 고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983년(성종 2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년)에는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진주는 경상남...
-
사회의 변혁·개량이나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집단적으로 전개하는 일체의 행동. 진주의 지역사회운동의 역사는 깊다. 1950년대 이전까지 사회운동의 발전에는 3·1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조건이 구조적으로 작용하였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지역에도 조선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대농 지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력한 상층계급과 소작이나 노동으로 생계를...
-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높이 솟은 부분. 산지의 고도는 일정한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수백m 이상의 것을 말하며, 그 이하의 것은 구릉(丘陵)이라 한다. 진주시 산지를 분류해 보면 동부 지역은 오봉산(524.7m)·방어산(530m)·깃대봉(520.6m) 등이 연결되어 산맥을 형성하고 있고, 서부 지역은 덕천강을 경계로 하동군과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경호강과 남강으로 이어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계마을에서 유래하였는데 약 200여 년 전에 태안박씨가 정착하면서 서쪽으로 덕천강, 북쪽으로 경호강, 남쪽으로 유수천이 흘러 세 강이 합친 곳이라 하여 삼계(三溪)라고 불렀다 한다. 또는 삼가래라고도 한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축곡면 산기동 일부와 마동을 합하여 삼계리(三溪里)라 하였다. 삼계리는 서쪽으로 진양호에 접...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통합에 의해 합쳐진 삼동과 제곡동에서 지명을 따서 삼곡리라고 하였다. 삼동은 문산에서 3번째로 주민이 정착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진주군 문산면 삼동(三洞)의 일부와 이곡면(耳谷面) 제곡동(提谷洞)을 합쳐 삼곡리(三谷里)라 하였다. 남강의 지류인 영천강 유역과 이에 합류되는 소하천에 의해 형성된 넓은 평...
-
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으며 상대동 일원을 관할하는 행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의 상대동(上大洞)과 하대동(下大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도동면 상대리라 하였는데,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면서 진주시 상대동이라 하였으며, 1982년...
-
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으며 상대동 일부와 하대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의 상대동(上大洞)과 하대동(下大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도동면 상대리라 하였는데,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면서 진주시 상대동이라 하였고,...
-
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는 상대1동(행정동)과 상대2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상대동(上大洞)과 하대동(下大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상대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상대동으로 개칭되었다. 198...
-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호에 있었던 지역 최후의 나루터. 1997년까지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와 대평리를 잇는 교통 수단이었다. 이 곳은 댐 건설 이전부터 교통의 요지였으며, 상인들의 거점지가 되었다. 특히 농산물 집산지의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물류 및 사람들을 수송하는 교통 수단이 필요했었다. 댐 건설 전부터 상촌나루터와 연결되는 대평리 어은의 밤밭나루터와 어은 북서쪽에 있는 한강나...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남강유역에 있는 선사·고대의 복합유적. 이 유적은 남강이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이르러 U자상으로 곡각을 이루며 굽이쳐 흐르는 강안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많은 토사가 퇴적되기 쉬운 지형적 특성을 가진 곳이며, 이로 인하여 강안의 동편과 서편에는 넓은 충적대지가 발달해 있다. 남강댐 보강공사 및 하도개량공사로 인해 수몰·훼손되는 유적에 대한 구제 발굴...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었던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및 원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었던 유물산포지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무덤과 생활유적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남강댐 수몰지역에 속하는 유적으로, 1996년~1998년까지 동의대학교 박물관·동아대학교 박물관·한양대학교 박물관·건국대학교 박물관·대전보건대학 박물관에 의해...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원래는 바닥이 뾰족하고 V자형의 몸체를 가진 포탄형의 토기로 몸체에 빗과 같은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그어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긴 토기를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덧무늬토기나 겹아가리토기처럼 다른 무늬 장식 기법을 가진 토기도 빗살무늬토기 범주에 포함된다. 빗살무...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한 법정리. 윗마을이라는 뜻에서 상촌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침곡(針谷)에 속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침곡면 상촌동과 중촌동을 합쳐 상촌리로 하였다. 1969년 남강댐이 완공되면서 상촌마을과 중촌마을에 거주하던 가구는 대평마을 513번지로 집단 이주하거나 주공아파트 등으로 이주하였고, 현재는 적은 수의 가구만이 남아 있다. 남강변에 위치한...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소재하는 남강 위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320.0m, 폭 25.0m, 높이 10.0m이다. 경간의 수는 8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40.0m이다.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3차도(20.0m)와 보도(5.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강상자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구주식 교각이다. 설계하중은 DB-24이고, 통과하중은 43.2t이며, 난...
-
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큰들의 위쪽에 있다 하여 ‘웃들’ 또는 ‘상평’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상평동(上平洞)·하평동(下平洞)·상대동(上大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상평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 남강변에 있는 고수부지. 진주시는 원래 남강의 하천부지였던 남강둔치를 남강댐 건설이후 점차적으로 개발하여 체육시설, 산책로, 주차장, 여가공간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상평동 고수부지는 시민들의 쾌적한 휴식공간이 비교적 적은 상평동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2002년경에 진주시에서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다양한 휴식과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되어...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일대에 있는 넓은 들. 진주 시내 진주성의 강 건너 맞은편에 발달한 들이다. 섭천은 진주시 천전지구에서 가장 먼저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북쪽은 죽림으로 강을 건너 진주성으로 넘나드는 길목이었기에 섭천(涉川)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섭천마을 동쪽 어귀에 위치한 자연 못인 섭천못은 시민들의 유원지였으나, 현재는 완전히 매립되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섭천마을...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남성동·인사동을 관할했던 행정동 1910년 토지 조사 사업 당시 진주면에 17개 정(町)을 두었는데, 이 때에 남성정, 인사정이라 하였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고 17개 정 12개 리가 29개 동으로 개편되었는데, 남성정과 인사정도 남성동, 인사동으로 바뀌었다. 1954년 10월 20일 진주시의회의 승인을 얻...
-
○ 진주성(晋州城) : 지금의 진주성은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흥산성이라 하다가 고려시대 이래로는 촉석성 또는 진양성이라 하였다. 1963년 1월에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성의 첫 축성 내력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초기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고려 우왕 5년(1379)에 석성으로 개축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조선 선조 24년(1591)에는...
-
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관습적으로 되풀이 하여 행하는 생활풍습과 의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오랫동안 살아가다보면 특정한 관습이 생기고 해마다 반복됨으로써 세시풍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시풍속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적인 조건, 역사적인 경험, 또 그 지역민이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인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세시풍속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특징...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문산면 일동(一洞), 이동(二洞)과 조동면(槽洞面) 갈전동(葛田洞), 속사동(束沙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소문리(蘇文里)가 되었다. 서쪽 경계를 따라 남강이 흐르고 있으며, 지류인 영천강이 남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하천 유역을 따라 평야 지역이 넓게 나타난다. 문산읍의 서쪽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진주...
-
진주지역의 대표적 민속놀이인 소싸움이 벌어진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둔치 일대. 진주지역에서는 전통시대부터 남강변의 발달된 백사장을 이용하여 소싸움경기를 하였다. 이러한 소싸움은 특정한 날에 하던 민속놀이의 하나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각종 대회 성격으로 치러지고 있다. 근대에는 진주시 장대동의 남강 백사장이나 서장대 밑의 남강둔치에서 행해졌는데, 그 중에서 서장대 밑의 남강 둔치(진...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강(南江)과 영천강(潁川江)이 합류되는 지점의 안쪽이므로 안새울, 속새울 또는 속사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금산면(金山面) 백동(栢洞), 조동면(槽洞面) 속사동(束沙洞) 각 일부를 통합하여 속사리(束沙里)라 하였다. 하나의 법정리가 하나의 행정리를 이룬다. 구름등, 마삼산, 금선봉 등의 산지와 갓골...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있는 산. 대곡리 산 34-2번지 일대에 분포하며, 해발 고도는 305m 정도이다. 산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조성 연대가 불분명하고 성벽은 허물어졌지만 붕괴된 석축의 내부에는 건물지(집터)로 추정되는 석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터에서는 기와편이 채집되고, 집터와 우물터, 망루터 등이 남아 있는 산성이 숲 속에 숨겨져 있다. 『국역 진양...
-
경상남도 진주시 서남쪽에 위치한 면(面). 수곡면 대천리에 큰 샘인 찬새미(한새미)가 있는데, 수곡면은 그 수계 지역으로서 물이 많은 곳이라는 뜻에서 수곡(무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 수곡리(水谷里)·원당리(元堂里)·이하리(蘺下里)·자매곡리(自梅谷里)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자매곡리(自梅谷里)가 이하리(蘺下里)에 합하여졌다. 1864...
-
원내리의 생업도 본래는 벼농사가 위주였으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농가가 딸기 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현재 수곡면 일대는 전국적인 딸기 생산지로 이름이 높으며, 그 이름에 걸맞은 질 좋은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 딸기 재배의 시작 : 1970년대 말 당시 수곡면에 살던 김병곤씨가 처음 딸기 종자를 가져와 심기 시작했다고 하며, 1980년부터 주민들의 소득증대사업의...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에 있는 마을. '수곡(水谷)'이란 지명은 “파도가 산꼭대기를 철철 넘쳐흐를 정도로 물이 많은 곳”이란 뜻이다. 수곡면의 중심에는 ‘한새미[大泉(대천)]’라는 우물이 있는데, 한새미에서 나온 물이 수곡면 일대의 원천(源泉)이 되었다 해서 지명을 무실[수곡(水谷)]이라 하였다. 현재 수곡면 원외리에는 신촌·광명·원외 마을이 있고, 원내리에는 원...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을 지나 덕천강으로 합류하는 하천. 주요 식생의 우점종은 달뿌리풀이고, 제방에는 달맞이꽃·돼지풀·망차·개망초·미국자리공 등의 귀화 식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수곡천과 남강의 합류 지점에는 굵은 모래가 퇴적된 퇴적지가 있는데, 여기에는 버드나무·선버들·키버들·밤나무·복분자딸기 등이 분포하고 있다. 수곡천의 남강 합류점에는 300m×300m의 넓은 퇴적지와 50...
-
어떤 특정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상. 식물상은 동물상에 대응하는 말이다. 식생(植生)은 어떤 지역을 차지하는 모든 식물적 생명체를 가리키는 데 반해, 식물상은 그 곳에 생육하는 모든 식물의 종명(種名)을 동정(同定)하여 표에 나타낸 것을 말한다. 식물상에는 넓이의 개념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식물상, 미국의 식물상과 같이 크게 사용되고, 한라산의 식물상과...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의 법정리 본래 사죽면(沙竹面) 지역으로 큰 못이 있어 신당(新塘)이라 하였다. 1914년 진주군 사죽면 신당동 일부와 죽산동을 합쳐 신당리라 하고 집현면에 편입시켰다. 진주시 초전동과 인접하여 있으며, 동쪽으로 남강을 접하고 있다. 33번 국도가 지나간다. 2002년 6월 30일 현재 148세대 454명이다. 벼농사 이외에도 수박, 고추 배추 등 시설 채소...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시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남강의 서편의 평야지대에 해당한다. 진주시와 집현면을 연결하는 장흥교를 지나서 14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1㎞ 정도 가면 길 좌측 편에 위치하는 독립구릉 상에 유적이 분포한다. 죽산 구릉에 목장을 만들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던 중 돌...
-
인류가 사용한 도구에 따라 구분한 석기시대의 최종 단계. 우리나라에서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바닷가, 섬, 강가 등에서 150개소 이상이 발견되었고 내륙에서도 가끔 발견되고 있는데 대부분 패총유적이 많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크게 4시기로 구분된다. 조기(早期)단계는 원시 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를 사용하던 시기로, 이 시기의 유물은 시베리아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열도에 걸쳐 동...
-
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아 산 곳이라 하여 ‘신안’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신안동(新安洞)·평촌동(坪村洞)·화동(禾洞), 성내면(城內面) 5동, 평거면(平居面) 평거동(平居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신안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평...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있는 초등학교. 2002년 3월 신진초등학교(35학급)로 개교하였다.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능력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첫째, 예절바르고 이웃을 사랑하는 어린이(애국인), 둘째, 스스로 공부하여 실력 있는 어린이(자주인), 셋째, 몸이 튼튼하고 조화로운 어린이(건강인)을 기른다. 교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은 “푸르른 남강 따라 기름진 들판,...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의 법정리. 1914년 진주군 신풍면(新豊面) 상동(上洞)·하동(下洞)과 중동(中洞) 일부를 통합하여 신풍리(新豊里)라 하였다. 남강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신풍, 중촌, 풍호 등 3개 부락이었다. 신풍 141호, 중촌 56호, 풍호 66호, 계 263호였다. 대평면 내에서 제일 부유한 마을로서 고등 교육도 많이 받아 정계 또는 군인, 공무원·변호사 등 고위직에...
-
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이용하여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고유의 운동.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생된 전통 민속놀이의 하나로, 우리나라 역사상 농경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각력(角力)·각저(角抵)·각희(角戱)·상박(相搏)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나 그 방법에...
-
진주목 관아의 기녀로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되던 계사년(1593) 6월 29일 촉석루 아래 우뚝한 바위(의암, 義巖)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죽은 순국의 여인. 논개의 사실을 맨 먼저 기록한 이는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그는 인조반정 후 양주 서산에 숨어 지내다 광해군 복위를 꾀한다는 무고에 얽혀서 아들과 함께 서인 정권의 손에 죽임을...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안전(安全)은 편안하게 사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을 통해 진주군 갈곡면(葛谷面) 외동(外洞), 동곡동(東谷洞), 송곡면(松谷面) 송곡동(松谷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안전리(安全里)라 하였다. 해발 고도 100~2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강의 지류인 영천강으로 합류하는 소하천이 안전리의 남...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함안군 상봉면 압현리와 구사리의 글자를 따서 압사리라 하였다. 예전에는 함안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압현리, 구사리를 병합하여 압사리라 하고 진주군 지수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대체로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은 청담리, 서쪽은 용봉리, 남쪽은 금곡리, 북쪽은 의령군 화정면과 각...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에 있는 삼국시대(가야)의 고분군. 남강의 동안에 있는 지수면 압사리에는 남강을 따라 형성된 반월상의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압사리고분군은 이 들 한 가운데에 섬처럼 솟아 있는 독립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1983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된 고분군으로 지금까지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지 않고 있다.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유구...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己卯名賢)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다. 1561(명종 16)에 태어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經書)에만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진주성전투에서 성...
-
임진왜란 중 잃은 관인(官印)을 다시 찾아 세운 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가 병마절도사 관인을 안고 남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이후 1747년(영조 23) 이 도장을 남강 물속에서 건져 당시의 병사 최진한(崔鎭漢)이 조정에 아뢰었다. 도장에는 ‘慶尙右道兵馬節度使印(경상우도병마절도사인)’이라 새겨져 있고, 1582년(선조...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정자리 엄정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 및 가야시대 고분군. 금곡면 정자리 엄정마을 북쪽에 위치한 야산 일대에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와 삼국시대 분묘군이 형성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작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채집된 점과 이 지역의 완만한 지형이나 토양을 고려할 때 신석기시대의 집터 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진주시의 역사. 진주시는 경상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농 복합형 통합시로, 동쪽은 함안군, 서쪽은 하동군, 남쪽은 고성군·사천시, 북쪽은 산청군·의령군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712.84㎢, 인구는 약 33만명이며, 1읍, 21동, 15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육도시이자 문화도시로, 현재는 첨단산업단지가 입지한 혁신도시로...
-
절개가 높은 여자. 열녀는 일반적으로 위난을 당하여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남편을 위해 헌신한 여인을 일컬으며, 열부(烈婦)나 절부(節婦)를 통칭한다. 열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과부가 되면 마땅히 수절을 하여야 하고, 위난을 당하면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서 정착된 것은...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부근을 지나는 하천. 고성군 영오면에서 발원된 영오천과 고성군 대가면에서 발원된 영천이 진주시 금곡면 두문교에서 만나 문산읍과 진주시를 거쳐 금산면 속사리 속사교 아래에서 남강에 합류한다. 현재 지방2급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목 영선현에 속하였을 때에는 영선천(永善川)이라 불렸다. 『국역 진양지』에는 “물의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고성 혼...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남강댐 발전소 바로 아래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100.0m, 폭은 11.0m, 높이는 8.0m이다. 경간의 수는 4개이며, 최대경간장은 25.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1차선(9.0m)와 보도(2.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RC 슬래브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교각식이다. 설계하중은 DB-24.0이고, 통과...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에 있는 생활유적. 오미리 시목 유적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건설예정 구간에 대한 구제발굴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전체유적 중에서 일부만 조사되었다. 조사결과 조선시대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하는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 묘 1기와 조선시대의 건물지, 기둥구멍군 등이 조사되었다. 오미리 시목 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지...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형보(瑩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사운(吳思雲)이다. 1547년(명종 2)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죽었다. 1590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홍문관 정자(正字)에 등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휘하의 의병으로 금산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593년...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옥방 2호 고인돌이 입지한 대평리 유적은 남강 유역에서 S자형으로 심하게 곡류하는 지점에서 퇴적사면인 강안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옥방 2호 고인돌이 속해 있는 대평리 유적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연차적으로 조사, 발굴되었다. 옥방 2호 고인돌이 속해 있는 대평리 유적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뉘...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도시근린공원. 공원이 위치한 동의 이름을 따서 옥봉공원이라 하였다. 또한 옥봉동에 소재하고 있는 금산(錦山)[92.3m]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어 ‘금산공원’이라고도 한다. 1986년 3월 6일 건설교통부 고시 제93호에 의거, 전체 면적 69,930㎡에 도시근린공원이 지정되었다. 진주시내 중심부의 동쪽에 구릉지를 가로지르는 사잇고개를 경계로 남봉(南...
-
경상남도 진주 시내 중심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옥봉산(玉峰山)의 이름을 따서 ‘옥봉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옥봉면(玉峯面) 교동(校洞)·탑동(塔洞)·비석촌(碑石村)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옥봉면 전역과 성내면(城內面) 4동, 대안동(大安洞) 1동·2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道洞面) 옥봉리라 하였다.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세(山勢)를 보면 유동에서 봉평으로 내려오는 지형(地形)이 용(龍)이 누워있는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에 속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대곡리(大谷里)에 병합되어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에 속하였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곡동(柳谷洞), 용동(龍洞), 가정동(佳亭洞)과 대여촌면...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역에 있는 용산과 봉산의 이름을 따서 용봉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아래골, 항복골, 우기미, 동모리, 뱃가, 안계를 병합하여 진주군 지수면에 편입되었다. 용봉리는 남강이 북쪽, 서쪽 그리고 남쪽의 3면을 에워싸고 흐르며, 해발 고도 200m 내외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압사리, 서쪽은 대곡면 와룡리, 남...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마을. 이 마을의 하천이 정리되기 전에는 남강물이 범람하면 용소촌 앞에 있는 샛강이 군데군데 깊이 파여져 강이 호수처럼 보이곤 하였다. 그래서 그 강물 속에 용이 살았다고 하여 용심못골이라 하기도 하고, 이 마을의 모양이 용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상대동 난민 부락과 호정촌 사이에 있다. 이름이 유래한 남강은 정리가 되어 그런 흔적이...
-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마음을 진주 남강에 빗대어 읊은 대중가요. 노래 「울어라 진주남강」은 논개의 한(恨)을 촉석루와 남강에 반영하여 그린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무명호가 작사하였고 김동택이 작곡하였으며, 박지연이 노래하였다. (1절) 촉석루 난간위에 달빛만이 고요한데 엄마 찾는 어린 물새 울음소리 애달...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을 갖는 원당(元堂)의 지형과 들을 중심으로 해서 내원당(內洞), 외원당(外洞)으로 나누고 외원당을 원외리(들원당)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진주군 원당면 내동(內洞), 외동(外洞), 곤양면 곤명면(昆明面) 본촌동(本村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원외리라 하였다. 원외, 신촌, 광명촌으로 나뉘어 있으며 진양 강씨, 진...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 원촌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4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해 알려졌다. 두 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으나 발굴은 시행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은 없다. 남강 남동쪽의 남해고속도로와 2번 국도 변 옥산리 원촌마을에 있다. 원촌 고인돌①은 마을의 동쪽 어귀의 경작지에, 원촌 고인돌②는 마을의 북쪽에 있는 구릉의 민묘 주변에...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북면 사죽리 월가동(月家洞)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진주군 사죽면 월아동(月牙洞)이었다가 1914년 지방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던날, 달갈, 외또리, 바람이, 감나무골, 뻣정지(보정지)를 병합하여 월아리(月牙里)라 하였고 대곡면에 편입되었다. 서남쪽은 주로 평지로서 논밭(애또지, 민두지, 창멀리, 등멀리 등)이 주를 이루...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와 진성면 중촌리·하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일명 달음산이라고도 한다. 월아산은 남강을 허리에 두르고 있으며, 달음산고개(질매재)를 연결 고리로 주봉인 남쪽의 장군대산(482m)과 북쪽의 국사봉(해발 471m)이 이어져 있다. 월아산은 구릉을 이루고 있지만 숲이 아름다운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족 단위의 주말 산행이나 한나절 산행으로 적합하며, 장...
-
경상남도 진주시의 웰빙 체험공원 추진 사업으로 조성된 6개의 시민체육공원. 2005년부터 경상남도 진주시에서는 인근의 가좌산, 숙호산, 선학산, 석갑산, 비봉산, 망진산에 진주시 시민들의 휴식과 건강 활동을 겸하는‘웰빙 체험공원 조성’을 추진하였다. 1. 가좌산 체육공원 가좌산 체육공원은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가좌산 내에 자리한 체육공원으로, 총 600㎡의 면적에 조성되어...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의 법정리 유동의 ‘유(柳)’자와 수거촌의 ‘수(樹)’자를 따서 유수리(柳樹里)라 하였다. 한자 표기가 ‘柳樹里’ 와 ‘柳水里’로 혼용되고 있으나, 문헌 조사에 따르면 유수리(柳樹里)가 맞는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축곡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축곡면 유동(杻谷面 柳洞)·수거촌(樹巨村)과 곤양군 가리면 가화동(加利面 加花...
-
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의 나불천 위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36.0m, 폭은 18.0m, 높이는 6.5m이다. 경간의 수는 3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2.0m이다. 총차선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2차선(15.0m)과 보도(3.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RCT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구주식 교각이다. 설계하중은 DB-18.0이고, 통과하중은 32.4t이...
-
은어를 얹어 지은 밥. 남강이나 남강 지류에서 잡은 은어는 회로 먹거나, 소금구이, 튀김을 하기도 하고 밥으로 먹기도 하였다. 7~8월 은어가 산란을 하려고 바다에서 하천으로 돌아올 때 잡아서 여름철 별미음식으로 먹었다. 먼저 은어는 비늘이 없으므로 내장만 제거하여 깨끗이 씻은 후에 밥이 끓어오르면 은어를 통째로 머리를 밥 속에 박아 넣는다. 이어 밥이 다 되면 꼬리를 잡고 살을...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의기사의 중건에 관한 기문. 진주성 내에 소재한 의기사는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論介)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義巖)으로 유인하여 함께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이러한 논개의 의로운 기개를...
-
의암(義巖) 논개(論介)를 기리는 의암별제에서 행해지는 노래와 춤. 의암별제는 매년 음력 6월에 길일(吉日)을 택하여 기생들만이 치른 대규모 의식으로, 악공을 제외하고 제관(祭官) 등 모든 의식을 여자(기생)들이 주관하는 점과 선비들의 음악인 정악(正樂)을 사용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는 행사이다. 조선시대 종묘(宗廟)에서 역대 임금을 제사지낸 종묘대제(宗廟大祭)나 문묘(文廟)에서...
-
지표상의 인문적 요소들을 분석 대상으로 하여 지역의 의의를 고찰·연구하는 학문 분야. 인문지리학의 연구 분야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의 다른 많은 학문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인문 현상 중에서 어떤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경제지리학, 교통지리학, 도시지리학, 취락지리학, 사회지리학, 인구지리학, 역사지리학, 문화지리학, 정치지리학 등 여...
-
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2동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진주면 중안동(中安洞)이 되었다. 그 후 1932년에는 일본 지명으로 개칭되어 길야정(吉野町)이라 하였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인사동(仁寺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
-
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위치한 면(面).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으로 불리웠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반성현으로 불렸다. 이후 고종 1년(1864)에 반성면이라 하였다가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반성현(班城縣)이라 하다가 동면(東面) 반성리(班城里), 비라동리(非羅洞里)라 하였고, 임진왜란...
-
1592년에서 1598년 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1587년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정치적 분란을 해소하고, 국제교역상의 불리를 타파하기 위해 중국 침입을 통한 체제 변혁전쟁을 구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하여 조선 침략을 시작하였다. 조선은 관군과...
-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큰 전투 조선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는 두 차례 있었다. 임진년(1592년, 선조 25년) 10월(이하 음력)의 전투를 제1차진주성전투라 하고, 이듬해 계사년(1593년) 6월의 전투를 제2차진주성전투라 부른다. 제1차진주성전투는 곧 진주대첩으로서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반면, 제2차진주성전투는 성이 함락됨과 동시...
-
지표 공간에서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위치·기후·식생·토양·지형·해양 등의 자연 현상. 인간 생활과 관계가 깊은 대기와 바다가 만나는 비교적 엷은 접촉대의 환경은 그 구성 요소가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장소마다 달리 나타난다. 환경의 구성 요소를 분류하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분포를 연구하는 것은 자연지리학의 본질적인 영역에 속한다. 진주의 위치는 수리적(數理的)으로 동경 127...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성내면(城內面) 4동, 대안면(大安面) 1·2동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진주면 동성동(東城洞)에 포함되었다가, 차츰 도시화되면서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앵정(櫻町)이라 하였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장대동(將臺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1...
-
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에서 진행되었던 주거지 재정비 사업. 토지구획사업은 일제강점기 때 농경지 정리사업 수단으로 시작된 것으로, 1911년 대사지(大寺池) 매립을 시작하여 1912년에 제1차 영정(대안동) 매립이 완료됐다. 이것이 시가지 정리사업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진주시는 남강의 하상 일부를 매축하여 제방을 쌓아 현재와 같은 시가지를 조성하고, 통행을 위해서 도로를 개설하였...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과 동성동 일부에 형성된 장어구이 전문업소 거리. 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에서 널리 알려진 거리 중의 하나로, 진주의 별미인 장어구이집이 늘어서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진주 남강가 식도락의 맛자랑 가운데 장어구이를 손꼽는 이들이 많은데, 장어구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한 영양만점의 진주 전통음식이다. 또한 진주야경을 바라보며 먹는 즐...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기와가마터.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의 장흥리에서 기와가마가 확인됨에 따라 ‘장흥리 와요지’라고 불린다. 장흥리 와요지의 조성시기와 기와 수급에 관한 문헌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발굴조사 당시 기와가마의 내부와 그 주변에서 출토된 기와 및 자기편을 통해 조선시대 초기에 조업이 행해졌던 유적으로 판단된다. 2001년 1월에 경남고...
-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 남강둔치에서 개최되는 민속행사. 연(鳶)은 종이에 가는 대가지(竹骨)를 붙여 만든 후 실을 꿰어 바람을 이용하여 공중에 날린다. 옛부터 전쟁의 도구로도 사용되어져 왔으며 액을 쫓고 복을 맞는(送厄迎福) 주술적인 기능을 내포하고 있었다. 후대에는 놀이로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더하느라 연(鳶)싸움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연을 이용한 전국연날리기대회는 전국문...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에 있는 성지. 정 안토니오는 본명이 정찬문(鄭燦文)이다. 진주지역의 천주교 선구자로서 안토니오는 그의 영세명이다. 조선 고종 3년(1866) 12월 20일 천주교박해 때 남강 백사장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백사장에 버려진 목 없는 시신만이 수습되어 고향인 사봉면에 몰래 묻혀 그의 묘는 ‘머리 없는 무덤’이라는 뜻에서 무두묘(無頭墓)라고 불렸다. 그동안...
-
조선 전기의 열녀. 강세승(姜世昇)의 딸로,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의 아내이다. 임진왜란 이듬해 적을 피해 진주성에 들어갔다가 성이 함락되자 적삼에 혈서를 써서 남편에게 죽음을 고하고,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정치이다.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역시 정당이 존재하며, 국민과 정치를 연결시키는 매개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거가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어 정당의 역할이 중시된다. 정당의 일차적인 목적은 선거에 후보자를 내세워 당선시킴으로써 정치권...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 출신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본관은 진양(晋陽). 1822년 10월 13일 아버지 정서곤과 어머니 울산 김씨(金氏)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안토니오이다. 1822년 진주 허유고개 중촌(현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의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정찬문은 강한 절개와 지조 있는 인품을 지닌 인물로 전해진다. 정찬문은 천주교 신자 집안...
-
임진왜란시 진주성을 중심으로 1592년에 싸운 이래 두 번째로 조선군과 왜군이 벌인 전투. 1592년 10월에 조선군과 왜군이 제1차로 전투를 벌인 결과 조선군이 왜군을 대패시킨 이래 왜군은 이를 만회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제2차 진주성전투로도 알려진 이 싸움에서 제1차 진주성전투와는 정반대로 조선군은 왜군에 대패하였다.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 이래 1년 동안 전쟁...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
진주성 촉석루 풍경화의 대표 화가. 조영제의 호는 효석(曉石)으로, 1912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서양화의 기법을 습득하였으며, 광복 전에는 진주의 대표적인 선전(鮮展) 수상작가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진주의 미술활동을 주도했다. 1984년 72세의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줄곧 진주에 살면서 촉석루와 함께 하는 진주인의 서정이 담긴 유화와 수묵담채화...
-
조선 중기의 무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았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 공격해오자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중심으로 왜적에 대항하였다. 이 때 조응도는 고성의 가장(假將)으로서 진주 복병장(伏兵將) 권유경(權惟敬)과 함께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쪽 문을 지켰다.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南江) 밖 재 위에 벌려...
-
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에 위치한 재래시장. 진주시청에서 서북 방향에 자리 잡은 중앙동은 이름 그대로 진주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중앙시장을 비롯하여 지하상가, 각종 금융기관, 의료시설 등이 있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구종로거리 등으로 수많은 유동인구를 지닌 진주의 경제·문화 중심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의 중앙동은 1997년 평안동·동성동·장대동·수정동의...
-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 있는 재래시장. 1988년 5월 28일에 개설되었다. 대지면적은 7,815㎡이며, 건물면적은 7,666㎡이다. 건물구조는 지하1층이며, 매장면적은 3,229㎡이다. 영업점포수는 자영점포수 75개, 임대점포수 150개를 합쳐 총 225개의 점포가 운영 중에 있다. 이들 점포 중, 특히 옷가게, 안경점 등이 성업 중에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 21번지[진...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마을 앞 건너편에 큰 내가 있어 중천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천리라 하였다. 본래 진주군 금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중천동과 개천동(介川洞), 말암동(末岩洞)의 각 일부가 통합하여 형성되었다. 구암(龜岩)은 면의 서쪽 끝 바위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말암(末岩)이라 하였고, 또는...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지내리를 흘러가는 하천. 집현면 응석저수지에서 시작되어 신당리 덕오교 아래에서 남강에 합류되는 하천이다. 유로의 길이는 15.8㎞, 유역 면적은 30.95㎢이다. 지내천은 흙으로 이루어진 제방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다른 하천에 비해 돌망으로 이루어진 제방의 비율도 높다. 현재는 지방2급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내천에는 마름, 자라풀, 노랑어리연꽃, 줄,...
-
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지수면 청원리에서 발원하는 지수천(智水川)에서 유래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용봉리(龍奉里), 청원리(淸源里), 승어산리(勝禦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청원리와 승어산리는 용봉리에 합해져 이후로는 용봉리라 하였다. 고종 1년(1864) 이래로는 용봉면(龍奉面)이라 하다가 갑오경장 이후는 하봉면(下奉面), 상...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일대를 흘러가는 하천. 지수면 청원리 지철소류지에서 발원하여 청담리에서 남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유로의 총 길이는 6.76㎞, 유역 면적은 14.35㎢이다. 지수천은 남강으로 유입된 후 낙동강으로 흘러가는데, 현재 지방2급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습생 및 관속 식물의 분포는 적으나 천연기념물 수달의 발자국이 발견된 적이 있어 수달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
지표면의 기복형태. 지형은 인간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지형 형성은 기후·토양·식생 등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들을 통하여 인간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진주시의 지형은 진주시 단독으로 분리하여 고찰할 것이 아니라 영남 지방의 지형을 통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영남의 지형은 동부의 태백산맥, 서부의 소백산맥, 중앙부의 낙동강 수계하곡 등, 세 가지 지형 구조로...
-
경상남도 진주시 남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진성리(晋城里), 가좌촌리(加佐村里), 반동산리(班東山里), 이천리(耳川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이천리는 진성리에, 반동산리는 가좌촌리에 합하여 각각 진성리, 가좌촌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이(里)가 면(面)으로 개칭되어 가좌촌면과 내진성면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일대를 흘러가는 하천. 진주시 일반성면에서 발원, 사봉면에서 반성천으로 합류한 후 남강으로 유입되는 지방2급 하천이다. 유로의 총길이는 9.1㎞ 정도이며, 유역 면적은 20.14㎢이다. 수생 식물로는 말즘, 나사말, 물수세미, 검정말 등이 있으며, 하천의 연안에는 고마리가 많다. 주변의 산지에는 소나무 군락과 소나무-물오리 군락이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남강 위에 놓인 다리. 교량의 길이는 260.0m, 폭은 18.5m, 높이는 8.0m이다. 경간의 수는 13개이며, 최대경간거리는 20.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선(14.0m)과 보도(4.5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CI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교각식이다. 설계하중은 DB-18, 통과하중은 32.4t이다....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일대 남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만들어진 인공 호수.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낙동강 치수 사업의 일환으로 남강댐 건설과 더불어 형성된 인공 호수로 유역 면적 2,285㎢, 저수량 1억 3600만 톤으로 7년 6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70년에 준공되었다. 그 후 1999년 10월 댐 보강 공사가 완공되어 현재는 저수량 3억...
-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는데 경호강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덕천강으로 부른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에 있는 중생대 화석지. 진주 가진리의 새발자국 및 공룡발자국 화석지는 경남과학교육원 신축 공사장 현장에서 발견된 화석지대로서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물떼새, 공룡, 익룡의 발자국이 혼재되어 있는 유적지이며, 1998년 12월 23일에 천연기념물 제395호로 지정되었다. 화석이 발견된 지역은 원래 해발 55m 정도의 구릉지...
-
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진주 귀곡동 대촌고인돌은 대촌마을의 해발 95m 야산에서 갈라진 저구릉상의 사면에 입지한다. 진주 귀곡동 대촌고인돌은 남강댐 보강공사로 인해 1993년도에 실시한 남강댐 수몰예정지역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고인돌 4기와 고인돌 주위에서 민무늬토기 및 삼국시대 토기편이 확인되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남강댐 수몰예정지역 종합 발굴...
-
진주지역에서만 쓰이는 비표준말. 진주 사투리는 변한어(弁韓語)에 뿌리를 두었고 지역이 신라에 통합되기 전에는 가야의 옛 땅이었으므로 가야와 신라어 및 백제어의 일부가 녹아 있을 것으로 본다.진주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시(市)로, 동쪽은 마산시와 함안군, 서쪽은 하동군과 산청군, 남쪽은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은 의령군과 접하고 있다. 시의 북부와 서부의 동남부 지역에는 백두대간인...
-
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
-
두 소를 마주 세워 싸우게 하고 이를 즐기는, 진주지역에 전래된 전통 민속놀이. 진주 소싸움에 관하여는 여러 곳에 그 기록이 전해지고 사진자료들도 많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12권 〈소싸움〉항목에서는 “경상남도 지방에서 주로 성행하였으며……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남강의 모랫벌에서 소싸움을 해왔으나…… ”라고 적고 있다. 같은 책 제21권의 〈진주시〉 항목의 민속에는...
-
진주지역에 전승되어오는 탈놀음. 진주 오광대 탈놀음에는 토박이 탈놀음, 솟대쟁이패 오광대, 도동오광대가 있다. 오광대(五廣大)는 그 어원상‘다섯 광대의 놀음’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여기서 ‘광대’란‘탈을 쓰고 노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다섯이란 수는 오행사상(五行思想)에 근거한 오방(五方) 개념에서 온 것이다. 이는 중앙과 동서남북의 다섯 방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방신장놀음,...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 있는 중생대 화석지. 진주 유수리의 백악기 화석산지는 진주 남강의 한 물줄기인 가화천 강바닥에서 발굴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495에 분포하고 있다. 유수리 지역은 진주 남강의 지류인 가화천의 하상이다. 하천의 직류를 위한 공사로 형성된 하상으로 가화천의 양안에는 2번 국도[북쪽 안]와 진주~사천간 지방도(남쪽 안)가 위치하고 있어 차...
-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의기 논개(論介)의 사당. 의기사는 1721년(경종 원년) 경상우병사로 부임한 최진한이 진주지역민 등의 요구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근거로 논개에 대한 포상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건립되었다. 1779년(정조 3)에 경상우병사 홍화보(洪和輔)가 낡고 부서...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에 있는, 의기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 1593년(선조 26) 6월 29일 임진왜란의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이 바위에서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하였다. 논개의 의열(義烈)을 상징하여 진주의 선비와 백성들이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고 명명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있는 산성. 송대산(일명 죽방산, 해발 311.5m) 정상부 및 송대산 북쪽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성이다. 2005년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행한 지표조사에 의하면, 전 송대산성은 석축의 테뫼식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긴 부정형이고, 산성의 총 둘레는 4㎞에 달한다. 또한 성 내부에서 건물...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 전승되는 진주 남강변 지랫대소(沼)의 유래에 관한 설화. 진주 지랫대소 설화는 진주 남강의 지재소, 일명 지랫대소에 얽힌 전설이다. 전승 장소에 따른 분류로는 지역적 전설에 해당하며, 발생 목적에 따른 분류로는 설명적 전설에 해당한다. 전설은 일반적으로 똑같은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이주적(移住的) 전설과 특정 지역에...
-
무학대사가 진주의 풍수를 읽어 지맥을 끊었다는 풍수 설화. 풍수 설화는 풍수설 또는 풍수 관념을 바탕으로 삶의 한 면을 이야기하는 설화이다. 풍수 설화는 민간 신앙적 차원의 변용된 의식을 드러내는 바, ‘명당, 절맥, 방진, 왕도 예언, 명풍수’ 이야기를 비롯하여 가짜 풍수가 나타나는 사기담까지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군이다. 조선을 새로 건국하고 조정에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
-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경상남도지방에서 차와 관련된 자연환경, 역사, 차인(茶人)들의 활동, 그리고 도구와 기물 등이 관련되어 이루어진 독특한 생활문화 풍토. 한자 ‘茶’는 ‘차’ 또는 ‘다’로 읽히나, 진주지방에서는 ‘차’로 많이 읽히므로 ‘차’로 쓰고자 한다. 차(茶, tea, cha)는 마시는 음료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과도 관련되고, 자연과도 연관되면서 차생활·차예술·차...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 박물관. 한국 수자원 공사의 남강 다목적댐 개량 사업 추진 과정에서 약 3.67㎢[111만 평] 수몰 예정 지역에 대한 매장 문화재 발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국립 문화재 연구소의 부분적인 조사를 통해 선사 유적이 밝혀졌다. 한국 수자원 공사에서 1989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남강 댐 보강 공사를 완료하고...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인물들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 순국한 인물들의 충정과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686년(숙종 12)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99-1번지 촉석(矗石)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비신의 높이는 1.43m이며 너비는 0.92m, 두께는 0.21m이다. 비신은 수성암(水成...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누각. 호정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矗石樓記)」에 의하면 남강 가에 뾰족뾰족한 돌들이 솟아 있는 까닭에 그 모습을 따서 누각의 이름을 촉석루라고 지었다고 하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촉석산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진주성의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고도 불린다. 전자의 남장대라는 이칭에서는 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야외무대에서 매년 열리는 전통 문화 축제. 진주 탈춤 한마당은 진주 지역의 전통 무형 문화유산인 진주 오광대 탈놀음의 원형을 재현하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국내외 여러 탈춤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전통 문화를 계승·보존·홍보하려는 데 목적을 둔 진주 지역의 전통 문화 축제이다. 1996년 진주 상호 저축 은행이 세운 삼광 문화 연구 재단에서 지난날 팔도를 누비며...
-
3·1운동 당시의 진주걸인·기생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역사문화 이벤트. 3·1운동 당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신분인 걸인과 기생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겁내지 않고 만세를 불렀던 고귀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진주문화사랑모임에 의해 1996년 2월 29일 처음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이 행사는 1996년 77년 만에 재현하여 숭고한 3·1운동의 독립...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위치한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272.7m, 폭은 18.0m, 높이는 11.0m이며, 경간의 수는 9개, 최대 경간 길이는 30.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선(18.0m)이며, 보도와 중앙분리대(7.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RC슬래브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아치식이다. 설계하중은 DB-24.0,...
-
일제강점기에 진주에 있었던 기생조합. 조선시대의 기생제도 하에서 기생은 관기(官妓)로서 궁중의 약방이나 상의원(尙衣院 : 왕의 의복이나 궁중의 일용품을 맡던 관부) 등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평소에는 약을 달이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연회가 있을 때는 불려가 노래나 춤을 추었다. 국권을 상실한 후 관기제도가 없어지면서 서울의 기생들이 처음으로 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이 한성권번(漢城券番...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행해지는 강의 용왕에게 벽사초복을 기원하는 민간신앙 의례. 진주남강 용왕제는 가정의 행운·장수복록·기자다남(祈子多男)·무병·풍작 등을 용왕에게 기원하는 풍속으로, 음력 4월 8일에 남강 강변에 모여 지낸다. 『동경잡기(東京雜記)』상원조(上元條)에는 용왕제를 하고 종이에 밥을 싸서 밤중에 우물에 던진다는 기록이 보인다. 제주(祭主)는 대부분 주부이고, 제물은 술과...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과 진주성에서 매년 10월 1일~12일에 열리는 등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시에서 매년 개최되는 개천예술제의 행사 중 남강변에서 유등띄우기를 진주성싸움과 연계하여 실시하는 하나의 독립된 행사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국의 각 지역에서 행해지는 천편일률적인 축제에서 벗어나 진주지역의 역사와 특색을 살린 축제로 자리...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위치한 공립 중학교 교훈은 ‘스스로 깨닫자, 알아내자, 실천하자’이며, ‘창의적이고 바른 인성을 가진 건강한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교육목표 아래 실력 있는 학생, 바른 인성을 갖춘 학생, 건강한 학생으로 교육하고 있다. 1910년 진주공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운영되다가 1946년 진주공립농림학교로, 1949년 진주농림중학교로 교명 변경하였다. 1951년 8월...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근대식 금융기관. 당시 진주지역에는 은행다운 은행이 없었던 관계로 고리대금업이 성행해 한 달에 보통 5~6푼의 높은 이자를 주지 않고는 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릴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근대식 금융기관인 진주농공은행의 출현은 다양한 금융시책과 신용성 확보로 진주 지역민들의 대출욕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공업의 개량·발달을 위해 1906...
-
일본인 가쓰타[勝田伊助]가 1940년 진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책. 가쓰다가 1913년 사천 선진항을 통하여 진주에 온 뒤 머물러 살면서 진주에 관한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진주대관』에는 1919년의 3·1만세운동과 중일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 남강 치수사업과 경남도청 이전 반대운동, 진주지역의 인구·행정직제·상공업·종교·교통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모두 20개의 장으로...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위치한 남강 위의 다리. 교량의 길이는 1,160.0m, 폭은 상·하행선 각각 12.5m, 높이는 17.0m, 경간 수는 24개이고, 최대 경간거리는 50.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선이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SC상자형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 교각, 설계하중은 DB-24, 통과하중은 설계하중 DB-24이다. 2000년 12...
-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 진주동명고등학교 내에 있는 유흥우와 심낙신의 송덕비. 진주동명고등학교 철비 2례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철제 송덕비들로서 원래 진양호로 통하는 강변도로 개설 때 지하에서 수습되어 진주동명고등학교로 옮겨진 것이다. 진주동명고등학교 철비 2례는 경상 우병영에서 1830년(순조 30)에 이임한 유흥우(柳興禹)와 심낙신(沈樂臣) 두 장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
-
진주지역의 전통산업인 견직양잠산업의 특산품. 진주지역에서는 삼한시대부터 견직물을 생산했으며, 이때부터 뽕밭을 조성하고 견직물을 생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근세에 들어서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견직공업의 선구는 1920년대에 진주에 설립된 동양염직소(東洋染織所)[현 대안동 우리은행 자리]이다. 당시 동양염직소는 일본에서 역직기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근대식 견직공장의 시작을 열었...
-
경상남도 진주의 전통 비빔밥을 시식하는 행사. 진주비빔밥축제는 진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5월의 진주논개제와 10월 개천예술제의 특별행사로 열린다. 진주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인 비빔밥을 널리 알리고 많은 시민의 참여와 화합을 위하여 시작되었다. 2002년 5월 27일 진주논개제 때부터 선을 보였으며 2006년 현재까지 계속 되어오고 있다. 가운데는 원형이고, 그 옆으로 사각형 모양이 연...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성. 진주성은 남강에 면한 단애상에 축조한 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삼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이며,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 시에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곳이다. 진주성은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居列城)이었...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여우의 폐해로 인해 진주성 동문을 막게 되었다는 설화. 진주성(晋州城) 동문 막은 유래 설화는 특정 지역에서 옛날에 일어났으리라고 믿어지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전설로 지역적 전설에 해당한다. 지역적 전설은 대부분 지방의 지리적 특징이나 명칭의 유래, 습관의 기원 등을 이야기한다. 또 전승 집단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이 어떻게 하여 생...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서 전승되는 임진왜란 때 왜장과 함께 의암(義岩)에서 뛰어내린 논개에 관한 설화. 진주성(晋州城) 싸움 설화는 진주라는 특정 지역에서 전승되는 지역적 전설이며, 논개라는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인물 전설이다. 역사적 전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 사건의 설명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것이 전승자의 기억이...
-
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 진주성(晋州城)은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하며, 촉석성(矗石城) 혹은 진양성(晋陽城)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진주성의 내성과 그 주변 지역 176,804㎡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남강 가 돌벼랑 위에 세워진 우뚝한 누각으로, 남강 가 뾰족뾰족한 돌의 모양을 따서‘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주성의 남장대...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진주성의 배치도. 현존하는 「진주성도」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이며, 나머지는 『여지도서』에 실린 「경상도우병영지지도(慶尙道右兵營之地圖)」이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에도 「진주성도」가 있다는 기록을 보았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진주대아고등학교에서...
-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진주시는 동쪽으로 창원시와 함안군,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으로 산청군·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부 경상남도의 거점 도시로, 2005년 10월 경상남도의 혁신 도시로 선정되었다. 경위도상으로 동경 127°53′ 52″~128°22′ 21″인 수곡면 원계리 동월마을에서 이반성면 발산리 내동마을까지이며, 북위 35°03′...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상하수도 관리사무소. 1911년 3월 11일에 일본인이 소유했던 수도시설을 통해 남성동 남강변에 200㎥/일 규모의 급수가 시작되었다. 이것을 1911년 12월에 경상남도에서 매수·관리하기 시작한 것이 상하수도사업의 시초였다. 이후 변천을 거듭하다 1986년 12월 24일에 취·정수시설 운영·관리를 전담할 진주시 상수도사업소가 신설되었다. 1999년...
-
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에 소재하는 시외버스터미널.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의 교통체계 혁신을 위하여 1974년 11월 준공하였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리모델링 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진주시 중심부의 장대동 96-1번지[남강로 712]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남강이 2차선도로를 사이로 접해 있고, 논개로를 통하여 마산·부산 방면, 남명로를 통하여 산청·...
-
1990년 이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발간되고 있는 일간지. 1989년에 권력과 지방 토호세력을 견제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고자 진주시민 1,000명이 주주로 참여하여 만든 시민주 신문이다. 1989년 6월 진주YMCA가 주최한 ‘지방자치와 지역 언론의 역할’이란 주제의 시민논단을 계기로 창간 작업이 시작되었다. 논단에 참가한 사람들 중심으로 7월에 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그...
-
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진주 경로당은 조선 후기 양로 시설로 창건되었다. 1934년 일제 강점기에 중건되었다. 2004년 10월 21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59호로 지정되었다. 남강의 좌안이자 진주 시내 동쪽의 독립 구릉 남사면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이름은 ‘보로당(保老堂)’이었다. 이후 ‘진주 옥봉 경로당’으로 개칭하였다가, 2015년...
-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가 있는 진주의 도시적 구역. 읍치(邑治)란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治所)가 있는 도시적 구역으로, 흔히‘읍(邑)’혹은‘읍내(邑內)’라고 부르는 곳이다. 『삼국사기』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양지(晋陽誌)』 등에 기록된 건치연혁을...
-
절개와 풍류를 지닌 진주 기생들의 생활 모습과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상. 진주의 논개(論介), 평양의 계월향(桂月香)으로 인해 ‘남 진주, 북 평양’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진주의 풍류와 멋은 그 명성이 높았다. 그리하여 조선 기녀하면 “일강계(一江界), 이평양(二平壤), 삼진주(三晋州)”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1910년 1월 7일자 『경남일보』에 위암 장지연(張志淵)...
-
진주에 대한 애향심을 담은 가창곡. 「진주의 노래1」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정수범이 작곡하고 조재업이 작사하였다. (1절) 우러러 비봉산에 정기를 받고 남강물 고운여울 마음에 새겨 임진의 조상핏줄 잇고 또 이어 줄기찬 전통 속에 꽃피운 문화 희망의 동이 튼다 일터로 가자 오- 이 땅의 자랑 내 고장 진주. (2절) 우렁찬 향토...
-
경상남도 진주시를 배경으로 한 대중가요. 「진주의 노래2」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월견초가 작사 및 작곡하였으며, 박지연이 노래하였다. (1절) 열두 줄 가야금에 실은 풍류도 열두 폭 치마폭에 맺은 사랑도 지금은 어디로 가고 어디로 가고 낯설은 사람만이 진주를 찾는 진양성 옛 모습도 변하였구나. (2절) 비봉산 활을 쏘던 진주기...
-
진주의 특산품으로서 삼한시대부터 시작된 진주지역의 전통산업인 견직양잠산업의 생산품. 진주지역의 견직공업은 이 지역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진주의 전통산업이다. 비단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비단에 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에서 찾아볼 수 있다.「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에 “마한은 그 민족이 토착하여...
-
진주지역에만 전래되거나 새로 생겨나고 있는 별미음식. 남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진주는 일반적으로 쌀과 보리를 섞어먹는 쌀보리밥을 주식으로 하고 있으며, 부식으로는 채소나 어육이 있는데, 특히 채소를 많이 먹는 편이다. 밥, 김치, 나물, 국, 묵, 떡, 생선회 등이 진주지역의 일반적인 음식인 반면 진주지역에만 전래되었거나 새로 생겨나고 있는 전통별미음식으로 진주비빔밥, 진주헛제사밥...
-
진주지역의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물을 공급하는 시설. 조선시대에는 덕천강 유역에서 수전농업(水田農業)이 크게 발달하였다. 적어도 덕천강 유역의 농업지대는 진주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역사적 사건과 활동을 해석하는 데 덕천강 유역의 수전농업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조선 초기에 남명 조식(曺植)이 덕천강 상류 덕산에...
-
진주지역에서 발견되는 선사시대부터 가야 등 고대시대까지의 무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죽음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인 존재로서 죽는 것이므로, 장송의례(葬送儀禮)는 개인적·가족적 차원을 넘어서 한 집단 전체 차원의 사회적인 제도가 된다. 따라서 죽음과 이에 부수된 의례의 결과로 생겨난 무덤에는 당연히 사회적 제도인 의례행위(儀禮行爲)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고인돌처럼 만...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
한국전쟁 당시 진주지구 내 북한군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7월 29일 미 제25사단 ‘칸’ 기동부대가 진주지구에 쳐들어온 북한군 제6사단과 제9사단 병력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1958년(단기 4291년) 7월 10일 육군 제1206 건설공병단에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지구 전승비에 기록된 비문의 내...
-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 등 여덟 곳의 비경. 진주는 예로부터 산과 들과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고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형승조(形勝條)」에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파한집(破閑潗)』의 내용을 인용하여 “진양의...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환경운동단체. 진주시민을 중심으로 남강의 오염문제 해결 및 환경보전을 위한 환경운동단체이다. 주로 남강 및 지리산 생태보존에 앞장서고 있으며, 각종 환경보전활동을 전개·지원하는 환경운동단체이다. 남강과 남강권역을 오염·파괴시키는 모든 행위를 근절하고 오염원을 방지·제거하여 자연과 공존하며 더불어 사는 참된 인간상을 정립하며, 남강 물을 먹고 자랄 후손...
-
경상남도 진주시 중북부에 위치한 면(面). 집현면(集賢面)은 지역 내에 있는 집현산(集賢山)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집현산(集賢山)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 『진양지(晋陽誌)』의 산천(山川)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북면(北面)에 속해 동물곡리(冬勿谷里), 모태곡리(毛台谷里), 정곡리(井谷里), 신당리(...
-
경상남도 진주에 전승되고 있는 ‘처자골’에 대한 지명 유래 설화. 지명 설화는 지명과 관련된 인물, 풍수, 자연 사물과 지명을 관련시켜 유래를 전하는 설화이다. 인물의 경우에는 인물의 기이한 행적이나 특별한 사건과 관련되는 경우가 보편적이고, 풍수의 경우에는 지리 형상을 밝히거나 지리 형상과 관련된 사건의 결과로 지명을 설명하고 있다. 풍수와 관련 없이 자연 사물이 관련되는 경우에...
-
1936년 병자년 8월 26일에서 8월 28일 사이에 진주 지역에 발생하였던 대홍수. 1936년 8월 26일부터 내린 호우는 27일 저녁 무렵부터 북동풍이 점점 강하게 불어 태풍 내습의 경보가 발령되었다. 오후 7시반경에는 전등이 꺼지고 곧 전신 전화도 불통이 되었다. 오후 8시 이후에는 상점가도 문을 닫았다. 밤 11시경에는 풍속이 40㎧ 정도의 폭풍우로 변하여 건물의 지붕, 간...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소재하는 남강 위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284.0m, 폭은 24.0m, 높이는 11.0m이며, 경간의 수는 6개, 최대 경간장은 60.0m이다.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도(18.0m)와 보도(6.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아치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아치식 교각이다. 설계하중은 DB-24, 통과하중은 43.2t이다. 1일 통행...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월아산에 있는 사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진주를 지나갈 때, 푸른 학이 남강변에서 월아산으로 날아와 앉았다. 도선국사가 둘러보니 월아산에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하여 이곳에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禁山面) 갈전리(葛田里)에 위치한다. 879년(헌강왕 5) 연기조사인 도선국사가 월아산에 청곡사를 창건하였다. 1380년(우왕 6)에...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담리(淸潭里)는 청담마을에 있는 큰 못인 청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청담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토지 구획 정리 후에 평촌으로 변경되었다가 1990년 주민들의 옛 이름 되찾기 운동에 의해 원래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 청담, 덕암, 무듬실, 마실, 들말, 토실, 염창 7개 자연마을을 행정 구역상 청담리라고 하였다....
-
주요한 이기(利器)의 재료에 따라 구분하는 고고학상의 3시기법(三時期法: 석기·청동기·철기)에 따른 시대의 제2단계.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 연대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계속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개시연대는 이론이 많은 실정이며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차후의 연구결과에 따라 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소급될...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004년에 진주시와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진주시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고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 청천마을에 있다. 남강의 동쪽에 있는 금산면 중천리 청천마을에서 윗덕의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한다. 유적에는 1기의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 크기는 길...
-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장재동·하촌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97년 7월에 초전동·장재동을 통합하여 초장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초장동에는 초전동·장재동·하촌동의 법정동이 속한다. 진주시 내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남강을 경계로 금산면과 이어지고, 남쪽은 옥봉동·하대동과 접해 있다. 북쪽은 집현면에 접해 있다. 동쪽에는 남강 강변을 따라 도로가 나 있다. 2011년 9...
-
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는 초장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새(풀)가 많이 있는 지역이라 하여 ‘새밭’ 또는 ‘초전’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초전동(草田洞), 사죽면(沙竹面) 장흥동(長興洞), 금산면(今山面) 말암동(末岩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초전리라 하였으며,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
-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과 하대동 일대에 형성된 넓은 들. 초전들은 남강이 진주를 관통하여 흘러나가는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남강 건너 맞은편에 영천강이 합류하여 들어온다. 남강과 영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홍수로 인한 퇴적 현상으로 형성된 자연 제방에 해당하는데, 배수가 잘되어 밭농사를 하기에 유리한 지역이나 남강 제방이 쌓여지기 전까지는 항상 홍수의 위험이 뒤따랐다....
-
진주성 내의 촉석루에 걸린 현판의 시. 현재 촉석루에는 현판에 새겨진 9편의 시가 걸려 있다.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에는 훌륭한 시영(詩詠)으로 면재 정을보, 우곡 정이오, 상헌 안진[?~1360], 경은 설장수[1341~1399], 급암 민사평[1295~1359], 이재 허선생(누구인지 불명) 등 여섯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정을보와 정이오의 시가 촉석루에 걸...
-
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촉석루의 변천과정을 기록한 글. 진주하씨인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이 촉석루가 지어진 연대를 고찰하고 또 중수한 동기와 과정을 상세하게 그렸으며 이 누대가 개수됨으로 미치는 영향을 순차적으로 기술하였다. 촉석루의 명칭 유래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및 촉석루에서 바라보이는 장관을 시작으로 촉석루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가를 시대...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의병장 최강의 공적을 기리는 비.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최강(崔堈)[1559~1614]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로 1975년 후손 최정온(崔正蘊)과 최진모(崔震模)가 건립기금을 모아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뒤벼리 입구에 선학산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남강과 촉석루를 바라보며 서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시멘트 기초 위에 화강암 장대석 기단을 쌓...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문신, 의병장.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일휴당(一休堂). 전라남도 능주(陵州)[화순] 출신. 고려 명신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최천부(崔天符)의 아들이다. 1532년(중종 27)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의병장으로 왜적과 싸우다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양응정(梁應鼎)·기대승(奇大升)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관인 발견 유래담. 1992년 진주시에서 편찬한 『내 고장의 전통』에 기록되어 있다. 1747년(영조 23) 남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가 철인 하나를 건졌는데, 앞면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慶尙右道 兵馬節度使印)’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만력십삼년월일조(萬曆十三年月日造)’라 새겨져 있었다. 당시 병사 최진한(崔鎭漢)은 이 사실을 조정에 장...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전주.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출생년은 미상이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발라 일찍이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봉사가 되었다. 이후 진주부관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살며, 젊은 유생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지휘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명숙당(明叔堂).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참봉 최수만(崔壽萬)이고,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이며, 부인은 진주강씨이다. 1554년(명종 9)경 당시 진주목 진성면 대사리에서 태어나 북면 사죽리 단지동으로 이사를 하여...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행하여지는 지역 축제에 대한 개관(槪觀). 축제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따르지만, 그로 인한 이윤 창출 역시 가능하다. 축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시공간에서 저절로 기쁨과 신명에 도취되는 흐뭇한 경험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축제의 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억압과 구속, 부족감, 상대적인 박탈감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축제...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남쪽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현재 경상대학교 의과대학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사이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바위들이 있던 곳을 ‘치리미’라고 부르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원래 진주군 섭천면(涉川面) 천전동(川前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내동면(奈洞面) 천전리라고 하였다.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932년 일본...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매년 10월 텔레비전 드라마를 대상으로 열리는 드라마 시상식.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은 TV 드라마를 대상으로 한 국내 단일 부문 최대의 드라마 시상식으로서 지방에서는 최초로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개최되었다. ‘한류(韓流)’가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드라마, 영화, 음반, 뮤지컬 등 문화 콘텐츠 수출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에 진주시에서는 특색 있...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 일대에 발달한 넓은 들. 남강 유역은 여름철의 집중 호우로 인한 홍수가 빈번한 지역이었으므로 하류 지역에는 자연 제방과 배후 습지가 발달해 있다. 큰들은 상평동 일대 범람원의 자연 제방에 발달한 들로, 남북 길이 2㎞, 동서 길이 3㎞의 넓이이다. 남강댐이 건설되면서 홍수의 위험이 없어져 큰들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곳은 옛날부터 채소의 생산이 주로 이루어...
-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기반암이 풍화된 풍화 물질에 각종 생물체의 유해부식 물질들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딱딱하게 굳지 않은 부드러운 물질. 경상남도의 토양 분류는 토양형으로 나누는데 토양형은 크게 논토양과 밭토양으로 나눈다. 논토양은 잔적토-지질계통형, 운적토-대하천형, 소하천형, 해성형, 산간지형, 천수답형으로 나눈다. 밭토양은 잔적토-지질계통형, 운적토-대하천형, 소하천형, 해성...
-
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옛날 진주로 통하는 관문의 자리에 위치한 지역이라 하여 ‘널문이’라고 일컬어왔으며, 지형이 널따란 널문[板門]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여 ‘판문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평거면(平居面) 판문촌(板門村), 오동촌(梧洞村)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판문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판문천 위에 놓인 다리. 교량의 길이는 18.0m, 폭은 11.0m, 높이는 4.15m이며, 경간의 수는 2개, 최대 경간장은 9.0m이다. 총차선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1차선(9.0m)과 보도(2.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RC슬래브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중력식이다. 설계하중은 DB-18.0, 통과하중은 32.4t이며, 난간 재료...
-
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조선시대에 역이 있었다 하여 ‘역촌’ 또는 ‘역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지만, 남강 주변 충적평야에 옥토가 쌓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 곳이라 하여 ‘평거’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평거면(平居面) 평거동(平居洞) 및 중안면(中安面) 평촌동(坪村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평거리라...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과 판문동 일대에 발달한 들. 남강 주변 충적 평야에 옥토가 쌓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 곳이라 하여 ‘평거’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평거들은 진양호 아래에 위치하며, 남강의 원류인경호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이다. 진양호가 생기기 전에는 강의 합류 지역이므로 빈번한 홍수가 있었고, 따라서 넓은 지역에 걸쳐 퇴적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평거들은 그러한 과정...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 및 신안동 지역에 있는 어린이공원. 평거동과 신안동 지역은 진주시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진주시의 대단위 택지개발로 유입인구가 매우 많다. 때문에 이 지역에는 신안초등학교, 배영초등학교, 신진초등학교 및 진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등 최근에 이전하거나 신설된 초등학교가 많다. 이와 함께 유치원이나 학원가가 집중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택지개발사업. 평거동(平居洞)은 석갑산의 동남쪽 일대 남강 퇴적지 가장자리에 취락이 형성되면서 이후 집성촌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락의 발달 형태로 보면 동으로 남강이 흐르고 강 주변으로 퇴적층 옥토가 쌓여 있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여 평거라는 이름의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200만호 주택건설에 필요한 택지를 안정...
-
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하대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거 진주군의 도동면 하평촌에 속하였다. 1992년 10월 12일 진주시 조례 제1598호(1992. 10. 2. 공포)에 의거, 상대2동이 상대2동과 하대동으로 분동되었다. 1997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 제256호(1997. 5. 12. 공포) 및 제274호(1997. 6. 30....
-
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있는 하대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거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하평촌(下坪村)에 속하였다. 1992년 10월 12일 진주시 조례 제1598호(1992. 10. 2. 공포)에 의거, 상대2동이 상대2동과 하대동으로 분동되었다. 1997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 제256호(1997. 5. 12. 공포) 및 제274호(1...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2동(행정동)·하대1동(행정동)·하대2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하대동(下大洞)과 초전동(草田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하대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하대동으로 개칭되었다. 1...
-
빗물과 그 밖의 지표수가 모여 물길을 따라 흐르는 시내와 강의 총칭. 하(河)는 큰 강, 천(川)은 작은 강을 뜻하고, 한국에서는 큰 강을 강(江), 작은 강을 천(川) 또는 수(水)로 나타내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 시내에는 국가 하천으로 남강 등 3개소, 지방2급 하천으로 미곡천 등 55개소, 소하천으로 소목천 등 182개소가 있다. 진주 지역에 국가 하...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
-
경상남도 진주시 가호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호탄동(虎灘洞), 원촌동(院村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정촌면 호탄리라 하였다. 1939년 10월 1일 진양군 정촌면 호탄리라 하였다가 1973년 7월 1일 진주시에 편입되면서 호탄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3년 7월 1일 진주시 호탄동과 가좌동...
-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대기·수질·토양 오염 등으로 자연 환경이나 생활 환경을 손상시키는 현상. 공장·사업장 등의 생산 활동, 자동차·기차·항공기·선박 등의 수송 활동, 냉난방·취사·여가 선용 등 일상 생활을 포함한 각종 인간의 활동에 의해 유발되는 인위적인 대기 오염·수질 오염·토양 오염·소음·진동·지반 침하·악취 등의 발생으로 자연 환경이나 생활 환경을 손상시키고 궁극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