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
경상남도 진양군 명석면 신기리에 전승되는 애정요. 1980년 8월 6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명석면 신기리 새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구연자는 이영상(여, 당시 61세)이다. 이 노래는 독창이나 제창으로 흔히 부르게 되는데, 가창하기보다 음영으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산밑에 남도...
-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총칭하는 말. 고개에는 전설과 그 지역의 지명과 관련된 명칭이 붙어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은 ‘고개’, ‘재’, ‘티’, ‘치’, ‘개’ 등이 있다. 『진주시사』와 『진양군사』를 중심으로 진주시의 고개를 살펴보면 대략 42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고개를 위치와 명칭 유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고개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리(南山里)라는 지명은 남산 밑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 동면 진성리의 남산촌(南山村), 대연(大淵), 원통(原通) 등에 해당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외진성면의 원통동, 사가동, 소야동, 시목동, 남산동, 관사동과 내진성면의 백암동, 두목동의 각 일부를 합쳐 남산리라 하였다. 남산리에는...
-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봉(熢: 횃불), 낮에는 수(燧: 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방법. 봉수는 전근대시대에 변경의 급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의 영진(營鎭)에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했던 통신제도로서 민간통신으로는 활용되지 못했고 단지 군사통신으로만 사용되었다. 봉수제의 유래는 오래된 듯하며,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에 이...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의 금선암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원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 남사들의 폐사지에 묻혀 있던 것이 1957년에 발견되어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산3에 있는 금선암에 봉안되어 있다. 1960년 12월 7일에 보물 제371호로 지정되었다.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춘 좌상으로 전체적으로 손상이 크다. 불상의 두부는 나발로 표현되었으며 육계는 비교적 크고 낮다...
-
수수료 및 계약에 의하여 이용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설비. 숙박시설이란 일반적으로 호텔·여관·여인숙 등을 가리키는 총체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잠을 자기 위한 기본 시설은 물론 세면과 휴식, 식사의 기능을 겸하여 장거리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시설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경제발전과 관광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말 그대로의 숙박 범위에 포함되는 시설만을 의미...
-
역은 전근대시대의 국가권력을 중앙정부와 지방에 효율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조직의 일종이고, 원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시설의 일종이다. 역(驛) 역은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제는 국가의 동맥으로서 군사·외교적 측면만이 아니라 교통·행정적 측면에서도 중앙집권국가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 등 여덟 곳의 비경. 진주는 예로부터 산과 들과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고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형승조(形勝條)」에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파한집(破閑潗)』의 내용을 인용하여 “진양의...
-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자는 복영(復榮), 호는 여인헌(與人軒).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성운(河聖運)이며 어머니는 재령이씨로 이인동(李麟東)의 딸이다. 부인은 광주노씨(光州盧氏)로 노이정(盧以挺)의 딸이다. 1860년(철종 11)에 출생하여 189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천품이 강직하고 효제충신을 생활의 신조로 삼았으며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