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촌
-
○ 정씨(鄭氏) : 승지(承旨) 조지서(趙之瑞)의 아내니 포은(圃隱) 선생 정몽주(鄭夢周)의 증손이다. 연산군(燕山君) 을축년에 조지서가 해를 만나 죽고 재물과 집이 모두 몰수되고 못을 파게 되었다. 정씨는 그 곁에 여막을 짓고 남편의 입던 옷을 걸어놓고 제사를 올리면서 3년을 마쳤다. 중종(中宗) 2년에 정려(旌閭)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안씨(安...
-
○ 하연(河演) : 진사로 홍무(洪武) 병자년(태조 15년, 1396)의 식년시에서 병과로 합격했고 영의정(領議政)을 지냈다. 시호는 문효공(文孝公)이며 사월(沙月)에 살았다. ○ 하유(河游) : 판윤(判尹)을 지냈다. ○ 하결(河潔) : 영락(永樂) 신유년(태종 11년, 1411)의 식년시 동진과(同進科)에 합격하여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 강용리(姜用鯉) : 부사(府使)를...
-
○ 하연(河演) : 홍무(洪武) 병자년(태조 5년, 1396)에 진사가 되었다. ○ 강맹경(姜孟卿) : 병오년(세종 8년, 1426)에 진사가 되었다. ○ 최자경(崔子涇) : 진사에 올랐다. ○ 정이신(鄭以信) : 신(信)을 혹은 행(行)으로도 쓴다. 생원에 올랐다. ○ 정추(鄭樞) : 생원에 올랐고 설매곡(雪梅谷)에 살았다. ○ 모수천(牟秀阡) : 진사에 올랐고 상사리(上寺里)에...
-
○ 하거원(河巨源) : 전객령(典客令)과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으며 진강군(晉康君) 하식(河湜)의 아들이다. ○ 정신열(鄭臣烈) :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 정성지(鄭誠之) : 참찬(參贊)을 지냈고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정유(鄭愈) :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는데 정신열(鄭臣烈)의 후손이다. ○ 유혜생(柳惠生) : 군기정(軍器正)을 지냈다. ○ 최자경(崔自涇...
-
○ 최기변(崔琦抃) : 현감(縣監)을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최기준(崔琦準) : 부사(府使)를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하응구(河應龜) : 부장(部將)을 지냈고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훈에 기록되었다. ○ 하천오(河天鰲) :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기록되었다. ○ 황계량(黃桂亮) :...
-
○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
○ 모순(牟恂) : 세종(世宗) 때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이 좌사간(左司諫)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종기를 빨아서 낫게 했고 또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에 똥을 맛보았다. 일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군만(君萬) : 광대이다. 그의 아버지가 밤에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군만이 하늘을 부르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활과 활촉을 가지...
-
(1) 금산동약(琴山洞約)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후 조선사회는 모든 면에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특히 주전장이 되었던 경상도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피해가 막심했으며, 진주지역도 두 차례에 걸친 진주성전투로 그 피해가 매우 컸다. 특히 극심한 경제적인 혼란은 당시 조선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것은 종래의 양반지배제도에 변화가 발생한...
-
-마을의 인적 구성- 『세종실록 지리지』에 소개된, 진주 토성(土姓)의 하나인 진양하씨의 집성촌인 단목에 언제부터 하씨들이 모여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하공진의 13세손인 하기룡(河起龍) 때부터라고 알고 있다. 하기룡은 15세기 중엽의 인물이니 단목마을의 역사는 600여년 정도가 되는 셈이다. 현재 진양하씨는 3개의 파가 있는데, 단목에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