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 왕해(王諧) : 부사리(副使吏)가 되어 백성들의 마음을 두려워하더니 동도유수(東都留守)로 옮아가게 되자 진주(晉州)의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더 머물기를 원하다가 드디어 조정에 간곡히 빌어 말하기를 “우리의 왕군(王君)을 일 년만 더 머물게 하소서.”라고 했다. 이로 인해 옛 관직으로 회복되었는데 성품이 굳세고 바르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계획하는 바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않는...
-
○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
○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
○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
○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
○ 손경인(孫景仁) : 자는 사원(士元)이요,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문과에 올라 습독(習讀)을 지냈다. ○ 강희(姜僖) : 문과에 올라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본관이 진양(晉陽)이다. ○ 손형(孫炯) : 습독(習讀)을 지냈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하준해(河遵海) : 찰방(察訪)을 지냈다. ○ 손경례(孫景禮) : 자는 사형(士亨)이요,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직장(直長)을...
-
○ 최기변(崔琦抃) : 현감(縣監)을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최기준(崔琦準) : 부사(府使)를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하응구(河應龜) : 부장(部將)을 지냈고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훈에 기록되었다. ○ 하천오(河天鰲) :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기록되었다. ○ 황계량(黃桂亮) :...
-
○ 하윤민(河潤民) : 진사다. ○ 손석윤(孫錫胤) : 자는 여선(汝善)이요, 계유년(인조 11년, 1633)에 진사에 올랐으니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손지순(孫之順) : 자는 덕이(德而)요, 갑술년(인조 12년, 1634)에 진사에 올랐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조진(曺𣉮) : 갑술년(인조 12년, 1634)에 생원에 올랐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다. ○ 성호정(成好正...
-
○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
○ 이윤현(李胤玄) : 자는 시로(時老)요,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니 매월당(梅月堂) 이하생(李賀生)의 증손이다. 18세 때에 부친을 모시고 산간 마을에서 천연두를 피하더니 갑자기 어느 날에 도적이 들어와 부친을 해치려고 했다. 윤현이 몸으로 날개처럼 덮어서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에 부상을 입고 이어 병을 얻어 의원을 찾아 약을 구하여 8년을 견디다 마침내 천수를 마쳤...
-
○ 하공진(河拱辰) : 성종(成宗) 때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가 목종(穆宗) 때에 중랑장(中郞將)에 제수되었다. 임금의 병이 매우 심하니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芳)과 중랑장 탁사정(卓思政)과 더불어 항상 근전문(近殿門)에서 지키다가 이어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郎中)으로 옮겼다. 현종(顯宗)이 거란(契丹, 글안)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하니 하공진이 따라가 길에서 배알...
-
○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짐승과 나눔을 실천하는 이야기에 관한 설화. 1995년에 진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주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딸만 여덟인 한 정승이 있었는데 매우 가난하였다. 부인과 딸들은 그 정승을 남편이나 아버지 대신 대감으로 불렀다. 어느 날 배가 너무 고파 하소연하니, 대감은 다음 날 아침에 들에 나가서 바깥 구경을 하고 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식구...
-
경상남도 진주시 지역에 전해오는 매맞아 죽음으로써 죄업을 벗은 가마못의 구렁이에 관한 설화. 우리나라 민간신앙 중에 용신신앙(龍神信仰)이 예로부터 전해온다. 그 중의 하나가 용과 못된 구렁이에 관한 전설이다. 대개 구렁이를 죽이면 화를 당하는 것이 설화의 일반적인 내용인데, 가마못 구렁이는 오히려 황천에 보내 주어서 고맙다고 현몽한 것이 특이한 설화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가족의 정을 노래한 민요. 하종갑의 『진양민속지』에 수록되어 있다. 소리는 혼자 또는 여럿이서 부른다. 가사는 여섯 소절로 이루어져 있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족간의 정이 나뭇가지만큼이나 많고, 그 정이 뿌리만큼이나 깊어지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대천지 한 바닥에 뿌리 없는 남이 나서 가지는 열두나 가지 잎은 피어서 삼백여섯 가지같이도 많은 정...
-
갈마정 우물과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관련 이야기.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속사리 속사마을[옛 사월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진양민속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성계가 남해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올라가는 길에 속사마을[옛 사월마을]을 지나다 목이 말라 마침 갈마정 우물에서 물을 긷는 처녀에게 물을 청했다.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뜨더니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을 훑어 물 위에 띄...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지역에 전해오는 갈봉이의 뛰어난 재주와 의적행위에 관한 설화. 예로부터 진주시 이반성면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는 아이들에게 “저 놈 갈뱅이 보따리 떨어 묵을 놈”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이는 ‘갈봉이보다 간이 더 큰 도둑’이란 뜻이다. 갈봉이는 마음이 어질었지만 잘못된 것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가 있어서 탐관오리나 나쁜 부자의 재산을 훔쳐서 가...
-
진주 출신의 김서정이 작사 및 작곡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대중가요. 노래 「강남달」은 1929년 시에론 레코드에서 발표한 곡으로 우리나라 창작영화 1호인 「낙화유수」의 주제가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주제가이다. 영화 「낙화유수」의 각본을 썼던 진주 출신의 김서정(본명 김영환)이 레코드로 영화 해설판을 만들었는데 이때 강남달을 김서정이 작사·작곡하여 국내 영화계에서는 최초로 영화...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전해오는 강씨(姜氏)들의 역장(逆葬) 유래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10일 류종목, 빈재황이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정촌면 화개리 모심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강선호[남, 66세]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뒤 제보자가 「엄모에 출효자」를 이야기하고 나서, 강씨 문중의...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개구리바위와 용설[龍穴]터에 얽힌 기원담. 진주에서 마동으로 가는 길에서 귀곡동(貴谷洞) 뒤편으로 가는 덕천강(德川江) 하류에 개구리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 ‘깨골바구’ 또는 ‘ 개구리 바위’라고 부른다. 그 바위 맞은편에는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의 산이 있는데 예로부터 용설터라고 부른다. 이러한 동물형상의 자연물을 통해 상상력과 기원을 담은 풍수설화의 일...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부녀자들이 유흥 시간에 모여 앉아 부른 노래. 「개떡노래」는 언제부터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주시 인근의 통영시나 의령군에서도 불리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모작으로 보리 농사를 하는 영남의 여러 지역에서 양식이 부족할 때 보릿겨로 만든 떡을 먹으면서 불렀던 노래로 보인다. 1980년 8월 3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전해오는 시어머니가 개로 환생하였다는 설화. 개로 환생한 시어머니 설화는 목련존자의 개가 된 어머니가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났다는 불교 설화의 모티브를 차용한 것으로, 개로 환생한 시어머니께 효도하여 하늘로부터 복을 받았다는 내용의 민간설화이다. 불교의 윤회사상과 유교의 효사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개로 환생한 시어머니 설화의 정식 채록은 『한국구비문학...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해오는 매방골과 배골의 지명 유래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3일 류종목, 빈재황이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미천면 오방리 상촌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황행덕(남, 42세)이다. 그 후 1994년 진양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양민속지』에 하종갑이 다시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예전...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하공진에 얽힌 공북당에 관한 설화. 「공북당」 설화는 진주시에서 1983년에 편찬한 『내 고장의 전설』에 처음 수록되었다. 그 후 1994년 진주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주문화』제16집에 다시 수록되었다. 진주성 안의 충의당(忠義堂)은 옛날 공북당 자리인데, 이곳은 고려 시랑(侍郞) 하공진(河拱辰)의 태실 자리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 관아를 세우려고 공역(公...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전해오는 광진교(廣津橋)에 얽힌 피리장수의 운명에 관한 설화. 「광진교와 피리장수」 설화는 『집현면지』에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는 남병선(남, 75세)이다. 집현면 장흥마을에 ‘광진교’라는 다리가 있었다. 제법 사람의 왕래가 많은 다리였는데, 광진교 아래 강은 매우 깊어 해마다 사람이나 가축이 빠져 죽거나 사고를 당했다. 마을 노인들은 대책을 세우기로 뜻은...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전해오는 구렁이가 된 꼼쟁이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8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일반성면 창촌리 구리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구또현(여, 75세)이다. 꼼쟁이(구두쇠의 사투리) 할머니는 무엇이든 모았다. 어디를 나갔다 오면서 무른 개똥이...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集賢面)에 전해오는 굴바위에 얽힌 전설. 옛날 굴바위에는 신령한 영험을 가진 영물이 살고 있었다. 영물은 구름과 비를 부르고 농사의 흉·풍년을 좌우할 만큼 재주를 부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해마다 풍년이 들면 사람들은 마을 처녀를 하나 굴 앞에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러면 이듬해에 또 풍년이 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는 수 없...
-
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효행 관련 고문서. 「권병천등상서」는 단성·거창·진주 등 경상우도 유생들이 하진태의 효자 정려를 위해 암행어사에게 올린 진정서이다. 매우 긴 글로 하진태의 효행상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진정서를 접수한 어사는 사림의 공의를 인정하고 효행을 적은 원장(原狀)을 등서(謄書)하여 들일 것을 지시하는 등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전해오는 한 뱃사공이 점괘 덕분에 귀신을 퇴치하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 1980년 8월 10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운문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이숙조(여, 62세)이다. 고기를 낚고 배질하며 사는 뱃사공이 있었다. 하지만 평생 살...
-
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도구유희요. 그네노래는 오월 단오 때 아녀자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그네를 뛰면서 부르는 기능요이다. 외그네뛰기를 할 때는 혼자서 부르게 되나 둘이서 쌍그네뛰기를 할 때는 같이 노래를 부른다. 진주시 자료에 채록된 노래는 외그네뛰기에서 부르는 노래로 되어있다. 경상북도의 고령이나 예천 그네뛰기 노래는 가사가 긴 데 비해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그네뛰...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금호지(琴湖池)과 청곡사(靑谷寺)의 유래에 관한 전설. 금호지는 신라 때 축조된 못으로 둘레가 5㎞이고, 수심이 깊은 곳은 12m이고, 아랫동네 250㏊에 농삿물을 대주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준다. 사물이나 지명의 기원담은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데 그 기원은 대개 상서로운 동물로 인한 유래, 또는 천지 창조나 뛰어난 장수에서 유래된 기원담이 주종을...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集賢面)의 오동마을에 전해오는 기러기혈에 얽힌 전설. 「기러기마을」 이야기는 『집현면지』에 처음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있는 오동마을은 풍수학적으로 보면 기러기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예로부터 오동마을은 상습 수몰 지역이었는데, 남강댐이 건설되고 나서는 옥토가 되어 시설채소 재배 등으로 부촌이 되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 간이 상수도...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전해오는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일심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이조이(여, 68세)이다. 이삼삼아서 옷해입고 무등산천 구경가자 무등산천에 괴사리는 이실맞고 사라졌네 에제오신 새선배는 시누방에 사라...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전해오는 김덕령 장군이 진주성싸움에 참가하게 된 사연에 관한 설화. 임진왜란 당시 김덕령의 활약상은 『선조실록』, 『연려실기술』 등에 전해 오고 있으며, 근래에는 신동흔의 『조선의 영웅 김덕령』과 안동준의 『진주 옛이야기』 등에 수록되어 있다. 전라도 광주 일대에서 효자로 소문난 김덕령(金德齡)이 스물두 살 때였다.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살아날 가망이 없었...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지역에 전해오는 까치의 보은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6일 류종목, 빈재황이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식실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박순악(여, 68세)이다. 그 뒤에 진양문화원에서 1994년에 발행한 『진양민속지』에 하종갑이 다시 정리하여 재수록 하였다. 옛...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전해오는 꾀 많은 노인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8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일반성면 창촌리 구리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김명칠(남, 84세)이다. 옛날에 자수성가하여 삼백 석 재산을 모았으나, 돈이 있어도 치장을 잘 하지 않아 행색이 초라...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에 전해오는 꾀 많은 총각 머슴과 부잣집 처녀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의 봉양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김성길(남, 70세)이다. 농사를 많이 짓는 부잣집의 처녀가 시집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이에 걱정이 태산 같은 처...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전승되는 모진 매를 맞다가 죽은 나막신장이에 관한 설화. 진주 지역에는 ‘나막신장이의 날’이 있는데, 이 날은 모질게 추운 섣달 스무 이튿날로서 소한(小寒)·대한(大寒)이 다 가고 난 뒤에도 추운 날이다. 설화 나막신쟁이날은 겨울이 다가는 어느 날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모진 매를 단돈 석 냥과 바꾸어 맞다가 죽은 나막신장이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이다. 1983년에...
-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남강을 소재로 한 노래. 노래 「남강은 말이 없네」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가로지르는 남강을 소재로 고향 진주에 대한 정을 노래한 음악작품이다. 「남강은 말이 없네」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이재호가 작곡 및 작사하였다. 유랑천리 돌아봐도 내 고향만은 못 하길래 달빛따라 별빛따라 마음을 조려가며 진주 남강 너를 찾...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을 소재로 한 노래 중 하나. 「남강은 살아있다」는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의 남강과 촉석루 등을 소재로 한 음악작품으로 작사자와 작곡가는 미상이며, 김재식이 노래하였다. 노래 남강은 살아있다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제작되었다. 넓어진 남강다리 유랑마차 달린다 똑딱똑딱 똑딱똑딱 들려오는 소리는 무너진 촉석루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을 배경으로 옛사랑을 그린 대중가요. 「남강의 추억」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이재호가 작사, 작곡하였으며, 고운봉이 노래하였다. (1절) 물소리 구슬프다 안개나린 남강에서 너를 안고 너를 안고 아 - 울려주던 그날 밤이 울려주던 그날 밤이 아- 파고드는 옛 노래여 (2절) 촉석루 옛 성터엔 가을달만 외로이 낙...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井村면)에 전해오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외도(外道) 이야기. 1980년 8월 11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정촌면 화개리 모심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강기중(남, 87세)이다. 진주 덕산(德山)에 살던 조식이 서울로 유람을 갔다. 한 오십 리를 걸어가니 해...
-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으로 인한 진주 지역 백성의 고통을 예고한 징조에 관한 설화. 진주시에서 1983년에 발행한 『내 고장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이어서 1994년 진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진주문화』16집에 수록되었다. 구술과 채록자는 알 수 없고, 사건을 나열하여 설명하는 방식의 설화 형태를 보인다. 신라 헌강왕(憲康王) 14년(822) 김헌창은 아버지 김주원(金周元)이 부당하게...
-
진주를 소재로 손석우가 작곡하고 반야월이 작사한 대중가요. 「내 고향 진주」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고향으로 그린 음악작품으로 총 2절로 구성되어 있다. 「내 고향 진주」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손석우가 작곡하고 반야월이 작사하였다. 진주시 출신의 대표적인 대중가수인 남인수가 불렀다. (1절) 삼천리 방방곡곡 아니 간 곳 없다마는...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전해오는 노총각과 구렁이에 관한 설화. 노총각과 구렁이 설화는 신이담 중에서도 변신담으로, 천년 묵은 구렁이가 노인으로 변하여 나타난다는 설화이다. 노총각이 사람으로 변신한 구렁이의 복수를 이용하여 뜻밖에 부자가 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3에 수록된 자료는「노총각과 뱀」으로 1980년 8월 6일에 류종목과 빈재...
-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노래 「논개」는 논개의 충절을 기리고 논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조선종이 작사 및 작곡하였다. 국민가수인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불렀다. (1절) 백사장도 슬퍼하고 물결도 울고 간다 논개흔적 새긴 바위 비바람 치네 누구위해 바쳤는가 꽃...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논개 순국담의 하나. 논개의 순국 사실은 구전되어오다가 1620년경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채록되면서부터 문자화되었다.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도 이 시기의 일로 전해진다. 이후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촉석루 논개사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마음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 노래 「논개의 노래」는 논개의 마음을 남강과 촉석루에 반영하여 그린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탁성록이 작사 및 작곡하였으며, 우판용이 노래하였다. (1절) 수양버들 피리에 봄도 늙는데 가야금 줄에 하소하던 논개의 죽은 넋이 칠백 리 남강 물결 속에 목메어...
-
경상남도 진주지방에서 논을 매면서 부르던 노래. 농사일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던 노래이지만, 굳이 모내기할 때만이 아니라 다른 때에도 이 노래를 불렀다. 진주 지방의 「논매기 노래」는 정촌면 화개리와 명석면 신기리에서 채록한 것이 전하고 있다. 「논매기 노래」 1은 1980년 8월 11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정촌면 화개리 모심마을...
-
전라도 지역의 남도소리가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파·전승된 민요. 농부가는 본래 농부들이 논매기를 하면서 소박하게 불렀던 소리이다. 이후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으로 소리꾼들에 의해 불리면서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져서 남도소리를 대표하는 한 가지가 되었다. 이후 농부가라 하면 전라도에서 남도소리로 불리는 농부가를 일컫는 것으로 일반화되었다. 논을 맬 때 부르던 소리가 독자적인 유행가...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저승사자와 사람의 수명 연장에 얽힌 전설. 1980년 8월 11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북동 천천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송남수(남, 75세)이다. 예전에 박부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동냥을 얻으러 왔는데, 날...
-
논개와 진양성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 노래 「달빛어린 진양성」은 촉석성 혹은 진양성이라고도 불리는 진주성을 소재로 논개와 호국선열을 기리는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서병호가 작곡하였고 우판용이 작사하여 노래를 불렀다. (1절) 논개의 영을 실은 촉석루와 의암은 천추장강 물결위에 눈물겨운 서사시 은빛 잠긴 남강의 잔잔한...
-
정월부터 12월까지 매달의 상황에 맞게 노래로 부르는 민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생활과 감정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은 변화를 1월부터 12월까지 새 달을 맞을 때마다 그에 따른 민속과 생활과 감정을 담아 표현한 것이 ‘달거리’ 또는 ‘달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져 온 민요들이다. ‘달거리’ 또는 ‘달풀이’ 민요는 노래 부르는 시기로 보면 세시요에 속하...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승되는 비봉산(飛鳳山)과 대나무 열매에 얽힌 설화. 신라 말과 고려 초 쯤 풍수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영향으로 각 지역마다 풍수의 관점에서 복을 취하려는 설화가 많이 생겼다. 대나무열매 설화도 그런 유형 중 하나이다. 진주시에서 1983년에 발행한 『내 고장의 전설』에 처음 수록되었고, 그 후 진주문화원에서 1994년에 발행한 『진주문화』...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고을 수령의 오만한 콧대를 대사지에서 꺾은 오일봉에 관한 설화. 진주 지역에서는 어떤 일을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일컬어 ‘산청(山淸) 오일봉이 제 말 타고 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런 말을 하게 된 유래에 관한 민담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4에 있는 자료는 1980년 8월 7일에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명석면 신기...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集賢面)에 전해오는 장대산(將臺山)의 지명 유래에 관한 설화. 장대산으로 불리는 잔대산(盞臺山)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집현면 사무소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남쪽으로 높게 솟은 산이다. 옛날에는 집현면 자체가 홍수로 해마다 수해를 겪어야만 했던 지역이어서 홍수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대홍수와 장대산 설화는 진주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진주시...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전해오는 슬기로운 사람과 연관된 도깨비 이야기. 진양문화원에서 1994년에 발간한 『진양민속지』에 수록되었다. 예전에 도깨비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었다. 도깨비는 그 사람에게 고기도 잡아주고 일도 거들어 주는 등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주었지만, 도깨비와 오래 사귀는 것이 별로 좋은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도깨비와 헤어질 궁리를 했다. 그 사람이...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전해오는 슬기로운 사람이 도깨비를 속이고 부자가 된 이야기. 1980년 8월 9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류재원(남, 65세)이다. 옛날에 도깨비와 친한 사람이 살았다. 그는 도깨비가 고기를 잡아 달라고...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전해오는 풍수설화. 1980년 8월 3일 류종목, 빈재황이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미천면 오방리 상촌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황행덕(남, 42세)이다. 이후 하종갑이 1994년에 편찬한 『진양민속지』에 수록되었다. 옛날 진양군 미천면 오방리에 박씨 문중이 살고 있었다. 마을...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전해오는 돌장석의 유래에 관한 전설.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冷井里)로 들어가는 입구에 ‘진주 북 20리’라고 새겨져 있는 돌장석이 있다. 이 돌장석은 조선시대 때 마귀할멈이 지팡이로 사용하던 것이라고 전해오는데, 돌장석 설화는 돌장석이 그 자리에 있게 된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돌장석 설화는 진주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진주시 읍면동 홈페이지 내에 있는 집...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조씨(趙氏)에 관한 설화. 신이담이라고 하면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없는 초인(超人)에 관한 신비한 일을 담은 이야기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돌팔매꾼 조씨 설화의 주인공인 돌팔매질을 잘하는 조씨는 초인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조씨의 돌팔매질이 포수의 총보다 정확하게 적군을 맞추었다는 점에서는 초인이라고 할 수 있어서 신이담 중에서도 초인...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잡귀 이야기. 1980년 8월 11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조초악(여, 67세)이다. 어떤 집에서 세 가지 비밀을 적은 종이를 궤 안에 넣어두었다. 그 집 새신랑이 장가를 가려고 하는데, 근신하...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망건 도둑 이야기. 1980년 8월 3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만주(남, 73세)이다. 옛날 돈도 없고 잡상스런 사람이 망건을 사러 갔다. 망건을 펴 놓고 파는 장바닥에 가서 망건을 하나 거꾸로 썼...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망경대의 유래와 강감찬이 벼락 꺾은 이야기. 1980년 8월 11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북동 천전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김서경(남, 72세), 김두상(남, 70세)이다. 망경동 골짜기에 샘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해 뇌성이 일며 불칼(벼락)...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전해오는 매구 변신담.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서문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코에 쥐가 들어서 매구가 된 여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추상세(남, 당시 78세)이다. 그 후 2003년 안동준이 지식산업사에서 발행한 『진주 옛 이야기』에 다...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인물 이충걸(李忠傑)에 관한 설화. 조선시대의 신분제 봉건제로 많은 폐단을 낳았다. 그로 인하여 신분과 재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생겨났는데, 매화나무에 오르는 용 설화도 그 중의 하나로서 미천한 신분으로 있다가 뛰어난 재능 때문에 신분이 바뀌었다는 이충걸의 출신담이다. 진주시에서 1983년에 발행한 『내 고장의 전설』에 처음 수록되었고, 그 후 진주문화...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의 지략담. 1980년 8월 5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석실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성근(남, 당시 70세)이다. 그 후 1994년 하종갑이 진양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양민속지』에 정리하여 수록...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전해지는 똑똑한 며느리에 얽힌 문자 재담. 1980년 8월 5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명석면 신기리 새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구술자는 강재성(남, 66세)이다. 조선시대 중엽 서울에 한 정승이 살았는데 가세(家勢)가 기울어 인망가폐(人亡家廢)가 되었다. 독자...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식견이 있는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 옛날 한 사람이 며느리를 세 명 보았는데, 어느 날 며느리들에게 꽃 중에서 무슨 꽃이 좋으냐고 물었다. 다른 며느리들은 접시꽃을 비롯하여 여러 꽃을 말하였지만 한 며느리가 목화꽃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그 이유를 물으니, 목화를 심어서 옷을 해 입을 수 있고, 이불도 목화로 만들기에 목화꽃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이에...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제2아파트 앞에 조성된 시민휴식 체육공원. 원래 이곳에는 가마못이 있었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현재의 비봉산 옛 이름은 대봉산이었다. 예로부터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배출되자 중앙에서 그 연유를 알아본 바 대봉산에 봉암이 있어 그런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에 봉암을 부수고 대봉산의 봉황을 끊기 위해 가마못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가마못이 있던 자리...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대에 있던 못[池] 터. 가마처럼 생겼다 하여 가마못이라 하였다 하는데, 원래의 이름은 서봉지로서 봉이 이 못에서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진주에 강(姜)·하(河)·정(鄭)씨들의 집안에 인물이 많이 나는 것은 비봉산이 정기를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무학대사로 하여금 비봉산의 맥을 끊게 한 후 서봉지를 가마못이라 바꾸었다. 가마솥처...
-
조선시대 진주목 사천군 장암리에 설치된 조창(漕倉). 경상도는 1403년(태종 3) 조운 영역에서 제외된 뒤로 경강선(京江船)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다. 그러나 항로가 험하여 해난사고가 많았고, 사선(私船) 선가(船價)의 지급도 막대하였다. 또 왕권을 확립하려고 여러 제도 개혁을 추구하던 영조는 세곡 운송제의 문제점을 조운 기능의 강화로 해결하려고 관선조운제(官船漕運制)를 복구하고자...
-
서기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들의 연맹체. 가야는 자체적인 역사기록을 남기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각종 문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기되고 있는데, 가야(伽倻·加耶·伽耶), 가라(加羅·伽羅·迦羅), 가락(駕洛·伽落), 구야(狗耶·拘耶), 임나(任那) 등이 그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한반도 남쪽에서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
진주 소재의 가요로 살펴보는 진주의 역사. 진주는 도심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강(南江)이 빚은 천혜의 풍광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멋과 풍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교방문화(敎坊文化)가 꽃 피웠던 곳으로 예로부터“북 평양, 남 진주’라고 했다. 그 전통은 자연 현대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를 만드는 등 한...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가정리에 있는 숲 조선 전기부터 숲이 아름답고 자연 절경이 뛰어나 여름이면 각처에서 휴식처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으로 유명한 동산이다. 가정숲은 가정리 마을 앞에 있으며 큰 숲이 아름답다고 하여 가정(佳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가정리 가정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한다. 진주에서 의령 쪽으로 가다가 대곡면사무소에서 대곡중학교, 대곡고등학교...
-
경상남도 진주시 남쪽에 위치한 가호동(행정동)에 속한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조정 과정에서 개양동과 장좌동을 합쳐 ‘가좌리’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가좌동(加佐洞)·장좌동(莊佐洞), 내동면(奈洞面) 신촌동(新村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정촌면 ‘가좌리’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야산의 정상부와 사면에 수많은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과 8기 이상의 대형 고총(高塚)이 분포하고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서 처음으로 파악된 이래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이나 「가야문화권유적정밀조사보고(伽倻文化圈遺蹟精密調査報告)」 등에 계속해서 채록되...
-
가죽나물의 잎과 줄기에 무채, 고춧가루, 홍고추, 풋고추, 찹쌀풀, 감초물 등을 넣고 버무린 김치. 가죽은 참죽이라고도 하며, 약간 붉은 빛을 띠는 어린 순을 먹는다. 연한 가죽 잎과 줄기를 깨끗이 씻어 소금으로 간을 한 뒤 6㎝ 길이로 썬다. 무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것으로 골라 채 썰고, 홍고추와 풋고추도 채 썬다. 찹쌀가루로 묽게 풀을 쑤고 생강은 곱게 다지며 감초를 우려 국물...
-
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하며 가좌동과 호탄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법정동인 가좌동과 호탄동을 통합하면서 두 동의 이름을 따서 행정동인 ‘가호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진주시 행정 구역 개편(대통령령 제 6542호)에 의하여 정촌면 가좌리와 호탄리를 진주시에 편입시켜 행정동인 가호동이 형성되었다. 가호동 자체로만 보면 중앙부는 낮고, 동쪽과 서쪽이 높으며 남쪽은 비교적...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서 사천시 곤양면·축동면을 흐르는 국가하천. 낙동강 권역의 낙동강 남해권 수계에 속하며, 유로연장(流路延長)이 12.52㎞, 하천 연장이 10.38㎞, 유역 면적이 29.08㎢이다. 댐의 방수로 역할을 하고 있는 하천으로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서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로 흘러 가산만으로 유입된다. 국가 하천으로 길이는 약 12.52㎞ 정도이다. 진주시 내동면(...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초등학교 구실을 하던 서당의 이름. 한국의 초등학교 역사는 초등수준의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보면 고구려의 경당(扃堂),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서당(書堂) 등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 근대적인 학교제도로 발달한 것은 갑오개혁 이후의 일로, 1883년 원산학당이 설립된 이후 1895년 서울의 수하동소학교(水下洞小學校)·장동소학교(壯洞小學校)·정동소학교(貞...
-
1924년 1월 진주노동공제회 등 삼남지역 60여개 단체의 대표자들이 진주에 모여서 남조선노농동맹(南朝鮮勞農同盟)을 조직하기로 결정한 모임. 간친회(懇親會)란 일반적인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다정하고 친밀하게 사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간친회란 특정 모임을 지칭하는 것으로, 1920년대 활발히 전개된 노동·농민운동과 관련된 모임을 뜻한다. 특히...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칡이 많아 치랏 혹은 갈전이라 이름한 데서 유래된다. 진주군 조동면의 지역으로서 고려 후기 우왕 12년(1386)경부터 있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조동면(槽洞面) 호암동(虎岩洞), 갈전동(葛田洞), 속사동(束沙洞)의 각 일부를 갈전리(葛田里)라 하였다. 갈전리의 동쪽은 월아산 두 봉우리 중의 하나인 장군대로 해...
-
조선 전기의 열녀. 유학(幼學) 강검(姜儉)의 아내이다. 『진양지』권3「열녀조(烈女條)」에 따르면 정씨(鄭氏)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에 왜적들에게 항거하여 정절을 지키려다가 죽었다고 한다. 진주 가좌촌에 살았다고 한다. 중종 때에 열행이 알려져 정려되었다. 진주는 예향(禮鄕)으로써 예로부터 선비가 많기로 이름난 고장으로 많은 선비들의 덕행과 절행을 찾아볼 수 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용휴(用休). 좌찬성을 지낸 강희맹(姜希孟)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에 태어나 1479년(성종 1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정, 좌통례를 거쳐 1485년 상주목사가 되었다. 이어서 판결사·부제학·도승지를 거쳐 1497(연산군 3)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김일손(金馹孫) 등을 벌주...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 통정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이며, 강희수(姜希秀)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 강희수와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고 부자가 함께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강희수와 함께 이름이 올랐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쪽에 위치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강남동’이라 하였다. 본래 진주군 섭천면(涉川面)과 천전동(川前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에는 내동면(奈洞面) 천전리(川前里)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에 진주면에 편입되었다. 1927년 6월 1일 진주역이 들어서면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위거(渭擧), 호는 지우당(至愚堂). 임진왜란 때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공을 세운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현손[5대손]이며, 아버지는 강여완(姜汝完)이다. 학문과 인품으로 이름을 날린 강세준(姜世儁)의 아버지이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땅을 치고 울부짖으며 슬퍼하는 모습이 이미 성인의 모습과 같았다. 집이 본...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우약(友若), 호는 묵촌(黙村). 조선 초기의 문신인 강숙경(姜叔卿)[1428~1481]의 후손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는 그 똥을 맛보았으며 부모의 치유를 위해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상복을 벗지 않고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3년 동안 하였다. 아우인 강달지(姜達之)...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매촌(梅村). 호조참의에 추증된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27)에 출생하여 1627년(인조 5)에 별세한 무인으로, 일찍이 무예를 익혀 같은 시대에 무인으로 활약한 정기룡(鄭起龍)·주몽룡(朱夢龍)과 함께 ‘3룡(三龍)’으로 불렸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언술(彦述). 임진왜란 때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공을 세운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다음과 같이 강득윤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품성이 효성스러웠고,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다. 또한 청렴하고 근후하여 가훈(家訓) 3편을 지어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아버지의 상...
-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밀양부사를 지낸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의 아들이다. 진주 진성면 지역에서 살았다. 품성이 효성스러웠고, 제사를 받들 때는 정성으로써 하였으며, 어버이를 섬길 때는 예로써 하였다. 가정을 이루어 분가한 곳이 3리쯤에 있었는데도 부모께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 올리는 일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비록 큰바람이나 큰...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위수(渭叟), 호는 만락재(晩樂齋).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증손이다. 성품이 고결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동약(洞約: 조선시대 마을 단위로 운영되던 향약(鄕約))을 수정하여 풍속을 교정하였다. 만년에는 월배(月拜)[현재의 대구 달서구, 월배(月背)라고도 함]의 도원동에 터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章). 아버지는 지창녕현사(知昌寧縣事) 강우덕(姜友德)이며, 어머니는 지보주사(知甫州事) 이혜(李惠)의 딸 재령이씨이다. 1410년(태종 10) 태어나 1429년(세종 1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벼슬을 두루 거치고 1448년 지승정원사, 1452년(문종 2)에 도승지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참판으로 있으면서 계유정...
-
조선 전기의 문신 강맹경의 신도비. 강맹경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이다. 1410년(태종 10)에 태어나 1429년(세종 11)에 중시문과에 급제한 후 우부승지·도승지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참판으로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왔고, 1455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 2등에 책정되고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
고려 전기의 장군. 본관은 진주(晋州). 목종(穆宗)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지기(志氣)가 있고 강하고 과감하여 주로 전공을 통하여 입신하였다. 1021년에 생을 마쳤다. 1012년(현종 3) 5월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와 함께 격퇴하였다. 1016년 내사사인(...
-
고려 전기의 장군 강민첨(姜民瞻)[963~1021]을 그린 초상화. 강민첨 장군은 본관이 진주이며,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지기(志氣)가 있는데다가 굳세고 결단력이 있어 주로 전공을 세워 입신하였다. 「강민첨 영정」은 조선 후기의 화가 박춘빈(朴春彬)이 18세기에 그린 반신상의 초상화이다. 「강민첨 초상」의 상단에 있는 찬문(贊文)과 그 옆의 기록에 의하면, 이 영정은 고려시...
-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본관은 진주. 호는 벽촌(僻村). 정3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한 강재순의 4남 1녀 중 장남이다. 1882년(고종 19)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넉넉한 경제적인 여건을 배경으로 신학문을 접한 후 일찍부터 사회운동에 눈을 돌렸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는 진주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29명 중 한 사람으로 대구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기도 하였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명(子明), 호는 완역재(玩易齋). 정당문학 강회백(姜淮伯)의 아들이며 강희안(姜希顔)과 강희맹(姜希孟)의 아버지이다. 1395년(태조 4) 태어나 태종 초에 음보(蔭補)로 계성전직(啓聖殿直)이 되었다. 1416년(태종 16) 공조좌랑으로 있을 때, 천추사(千秋使)가 중국에 가지고 간 무역품 가운데 공조에서 납품한 은이 가짜로 밝혀져 파직되...
-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내경(乃敬), 호는 일소헌(一笑軒).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1493~1552]의 후손이다. 강석무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극진히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매우 슬퍼하며 삼년상을 치렀다. 나라의 변고가 있은 뒤로는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원통해 하였다. 주변 사...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주려(周呂), 호는 매호(梅湖). 아버지는 설림(雪林) 강성조(姜聖祚)이다. 어려서부터 어버이께 효도하고 아우 강주행(姜珠杏)과 강우송(姜玗松)에게 우애가 있었다. 아버지가 병이 걸리자 아우인 강주행(姜珠杏)과 더불어 여러 달 동안 시중을 들었는데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매우 슬퍼하였다. 천성이 단아하고 고...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진(子眞), 호는 매고(梅皐). 아버지는 지우당(至愚堂) 강내운(姜來運)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6세손이다. 학문이 뛰어났고, 품성이 곱고 청결하였다. 재주가 있고 가슴에 뜻을 품었으나 벼슬은 하지 않고 은사(隱士)로 생을 마치니,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유집이 있다고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이자 평론가. 본관은 진주.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忝齋)·산향재(山響齋)·박암(樸菴)·의산자(宜山子)·견암(蠒菴)·노죽(露竹)·표암(豹菴)·표옹(豹翁)·해산정(海山亭)·무한경루(無限景樓)·홍엽상서(紅葉尙書). 시호는 헌정(憲靖). 아버지 강현(姜鋧)과 생모 광주이씨 사이의 3남6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집안은 대대로 학문과 장수를 누렸으며, 할아버지...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오(成五).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강성희(姜聖喜)이다. 아버지 강성희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형인 강영호(姜泳鎬)와 더불어 밤낮으로 병 수발을 하였다. 한 모금의 물과 한 번의 소변이라도 공손히 시중하여 아버지를 매우 편안하게 하였다고 한다. 상을 당해서는 몹시 슬퍼하며 삼년상을 마쳤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원회(源會), 호는 설악(雪嶽). 매오(梅塢) 강건(姜鍵)의 손자이고,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후손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조용하였다. 이만구(李晩求)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 한말의 유학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로 『주역연의(周易演義)』, 『중범가의(中範家儀)』가 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경장(景章), 호는 수헌(守軒). 강우덕(姜友德)의 아들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교훈을 받아 호사함을 버리고 글 읽기에 열중하니 이미 대의를 통달했다. 강숙경은 어린 나이에 밀양부사가 되었으나 고을을 다스림에 있어 위엄과 은혜로 보살피니 간악함과 교활함이 없어지고 한 고을이 평온하였다고 한다.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내외...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시호는 공목(恭穆).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강군보(姜君寶)이고, 어머니는 전객시령(典客寺令) 여진(呂珍)의 딸이다. 아들 강회계(姜淮季)는 공양왕의 부마가 되었다. 1357년(공민왕 6) 성균관시(成均館試)에 급제하고, 1362년 대관서승(大官署丞)이 되었다. 이후 전공좌랑(典工佐郞)·합문인진부사(閤門引進副使)를 거쳐, 전법(典法)·...
-
경상남도 진주지역 최초의 서양화가. 강신호는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서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최초로 입학하였으며, 경상남도 최초로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입선한 작가이자 진주 최초로 서양화 개인전을 개최한 화가이다. 진주의 부호였던 강재순의 아들이며, 형평운동(衡平運動)의 주역이었던 강상호(姜相鎬)와 아동문학가 강영호가 그의 형이다. 진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군평(君平). 호는 매계(梅溪). 임진왜란 때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공을 세운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이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아우 강여완(姜汝完)과 함께 외삼촌 묵재(黙齋) 조석규(趙錫圭)에게서 학문을 익혔는데, 동학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고 한다. 일찍이 벽 왼편에 조석규가 쓴 ‘敬義誠愼(경...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군기(軍器)다. 조선 중기 진주 출신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손자다. 조선 시대 진주 지역의 선비인 묵재(黙齋) 조석규(趙錫圭)에게 학문을 배웠다. 대의(大義)를 통달하고, 또 지략과 뜻이 커서 작은 일에는 구애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재상감이라고 기대하였으나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났다....
-
일제강점기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자산가이자 친일파. 본관은 진양. 1885년 출생하여 경상남도 진주군 가차례면 강주동에서 성장하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보냈다. 1913년 당시 재산이 40만원에 달할 정도로 대단한 자산가였으며, 일제의 식민정책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협력한 친일인사이다. 학력에 관한 사항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관리로 진출한 사실에서...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강관(姜琯)이며, 어머니는 곡부공씨(曲阜孔氏)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출생하여 1532년(중종 27) 37세의 나이로 늦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그 이듬해 예문관에 들어갔다. 1541년부터 성균관전적과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고, 1544년에는 지평으로 있으면서 경연(經筵)에서...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의숙(宜叔). 아버지는 생원(生員) 강호(姜灝)이고, 할아버지는 훈도(訓導) 강세련(姜世連)이다. 맑은 얼음과 같은 지조와 가을 하늘과도 같은 기상을 지녔다고 한다. 악한 것을 미워하여 악취처럼 여기고, 옳은 것이 아니면 겨자 한 알도 취하지 않았다. 일찍 세상을 떠나니 많은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찬지(贊智).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다음과 같이 강의회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워서 부모를 섬길 때 뜻을 받들고 몸을 편안하게 하였다. 부모가 병드니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고 똥을 맛보아 병세를 살폈으며, 허벅지를 잘라 피를 내어 약에 섞기도 하였다. 고종(高...
-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순(聖淳), 호는 약산(若山)·유당(留當). 1788년(정조 12)에 태어났으며 영조·정조 때 예단(藝壇)의 총수였던 강세황(姜世晃)의 손자이다. 무과에 등제하였으며 벼슬로는 군수를 지냈다.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문인화가로서 기량이 높았다. 매화와 산수(山水)에 능하여 김정희(金正喜)와 신위(申緯)의 칭송을 받았다. 「강안주유도(...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박사 강계용(姜啓庸)의 아들로, 감찰어사를 지낸 강사첨(姜師瞻)의 아버지이며, 문하시중을 지낸 강창귀(姜昌貴)의 할아버지이다. 『진양지(晋陽誌)』에 의하면, 아버지 강계용과 함께 유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일찍이 아버지 강계용이 서장관으로 일본에 갈 때 따라갔다 왔으며, 뒤에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때 또 서장관이 되어 다녀와서는 자손에게 경계하여...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준여(俊汝).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밀양부사를 지낸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의 후손이다. 진주 출신으로 평소에 효행을 실천하였다. 나이 겨우 7, 8세 때 아버지가 병환이 깊어지자 손가락을 찢어 피를 입에 대어 넣으니 병이 나았다. 향리에서 경탄하여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칭송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자 피눈물을 흘리...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사인(士人) 강민효(姜敏孝)의 아들이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실려 있다. 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바치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진주 수곡에 살았으며,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
경상남도 진주의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지방통치구역. 강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인데, 신라 문무왕 3년(663) 2월에 빼앗겨 신라 영토가 되었다. 이후 신문왕 5년(685)에 거열주를 뽑아내어 청주(菁州)를 설치하고 총관(摠管)을 두었다. 경덕왕 16년(757)에는 다시 전국의 지방조직을 9주, 5경으로 정비하고 명칭을 고쳤는데, 이때 청주를 강주(康州)로 개칭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강주마을에 있는 연못. 신라시대 진주를 강주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본래 강주의 진영터(營基)라고 전한다. 못 둑에는 수령 5~6백 년 정도의 고목이 우거져 있고, 그 곳의 이팝나무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이 전한다. 남해고속국도의 사천I.C와 진주I.C에서 3번 국도를 이용하면 5~10분 정도면 접근할 수 있다. 못 둑에는 오래된 고목이...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소재의 강주연못 일대에 조성된 생태공원. 경상남도 진주시는 2005년 7월 25일 시민들의 쉼터로 활용하기 위해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소재의 강주연못 일대에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였다. 강주연못은 연꽃이 만발하는 곳으로 유명하여 오래 전부터 시민들이 즐겨 찾던 곳이며, 각종 수생식물과 오래된 고목들로 이루어진 숲이 형성되어 있다. 1379년(고...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에 있는 군영 터. 진주는 통일신라 때 강주(康州)로 불리기 시작하여 수차례 변동을 거치면서 고려 초까지 강주로 불리었고, 이때 지리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군진을 두었다. 『진양지』 고적편에 “강주지(康州池) 위에 옛 군영의 터가 있으니, 세상에 전해 오기를 고려 때 절도사가 이곳에 와서 진을 쳤다.”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911-1...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참의(叅議: 조선시대의 정3품직)를 지낸 강우(姜佑)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한 자질이 있어서 지방 사람들이 유림의 재목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자라서는 글 솜씨와 행동거지로 널리 명성을 떨쳤다. 당대에 높은 학문적 식견으로 이름을 날리던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 영특하고 곧으며 빼어난 인재라고 하면서 경탄하였다고...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자유(子由).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1493~1552]의 현손(玄孫)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당암(戇菴) 강익문(姜翼文)[1568~1647]의 제자이다. 재주가 뛰어났으며, 장중하고 과묵하였다. 스스로 삼가고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죽오(竹塢) 하범운(河範運)에게서도 배웠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벼슬을 여러 번 옮겨서 한림원의 직한림까지 올랐다. 어려서부터 진주향교에서 글을 읽었는데 남달리 학문이 뛰어나 글을 잘 지으니 한강 이남의 학동 중에서는 제일이라 하였다. 1212년(강종 1) 봄에 과거에 응시하려 하였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관원에게 호소하여 방면해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관원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네가 만약...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조선 초기의 문신인 수헌(守軒) 강숙경(姜叔卿)[1428~1481]의 후손이다. 출사 관련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진양속지』에 임진왜란 시 예빈주부(禮賓注簿, 조선시대 정6품 관직)로 선조의 의주 몽진(蒙塵)에 함께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공으로 원종공신에 봉해졌다....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극명(極明), 호는 우재(愚齋).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관인인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후손이다.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바치고, 변을 맛보아 그 병든 정도를 헤아렸다. 어머니가 중풍을 앓아 수족을 쓸 수가 없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곁에서 숟가락을 들어 식사 시중을 들었다. 상...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미백(美伯).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강흥운(姜興雲)이다. 어머니는 인재(忍齋 )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순박하고 온후하였으며, 행실을 지극히 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저서『겸재집(謙齋集)』의 내용 중에 하홍도가 북인인 정인홍(鄭仁弘...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형지(詗之). 아버지는 승지와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강자평(姜子平)이다. 1490년(성종 2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그 해에 정언으로 등용되고 이듬해 지평이 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장령이 되고 그 뒤 승진을 계속하여 1504년에는 대사간에 올랐다. 그러나 같은 해 일어난 갑자사화 때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를 왕후로 복위시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동고(東皐). 강우덕(姜友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의(執議) 강숙경(姜叔卿)이고, 아버지는 정략장군(政略將軍) 강인범(姜仁範)이다. 어머니는 성주인(星州人) 여씨(呂氏)로 호군(護軍) 여인보(呂仁甫)의 딸이다. 부인은 삭령최씨로 예조참판(禮曹參判) 웅(雄)의 딸이다. 강혼(姜渾)은 연산군과 중종 대...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한림(翰林: 예문관 검열) 강흘(姜仡)의 5대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전투 때 도순성장(都巡城將)의 직책을 맡아 진주성을 지키던 황진(黃進)의 부장으로서 빛나는 공을 세우고 순절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올랐으며, 그 공으로 인해 자손들은 대대로 충순위(忠順衛)가 되었다....
-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부(伯父), 호는 통정(通亭). 할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강군보(姜君寶)이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강종덕(姜宗德), 강우덕(姜友德), 강석덕(姜碩德), 강순덕(姜順德)을 아들로 두었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좨주[成均祭酒]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문거(文擧), 호는 매은(梅隱).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의 5세손으로, 부인은 인재(忍齋)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평소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 명망이 높았으며, 고장 사람들이 모두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며, 조선 전기 문신 강희안(姜希顔)의 동생이다. 1424년(세종 6) 태어나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종부시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50년 예조좌랑에 이어 돈령부판관을 역임하였고,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
조선 중기의 충신. 본관은 진주(晋州).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아들인 강기원(姜起源)과 더불어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전공(戰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올랐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우경(愚景)·경덕(景德), 호는 인재(仁齋).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고 좌찬성을 지낸 강희맹(姜希孟)의 형이다. 1417년(태종 17)에 태어나 1441년(세종 23)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돈녕부주부(敦寧府主簿)가 되었다. 1443년(세종 25)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훈민정음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덧붙였으며, 14...
-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경운(景運), 호는 담졸(澹拙). 만호(萬戶)를 지낸 강태복(姜泰復)의 아들이며, 정내교(鄭來橋)의 외손자이다. 1710년(숙종 36)에 태어났으며, 1754년(영조 30)에 운과(雲科: 음양과)에 급제한 뒤 감목관(監牧官)을 지냈다. 서울 삼청동에서 진경산수화가인 정선(鄭敾)과 이웃하여 지내면서 그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강세황(姜世晃...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부사 강우복(姜遇福)이다. 전라도 순천 출신의 무사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강희복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고경명(高敬命)을 따라 금산전투에 참전하였으나 패배하였다. 잠시 고향인 순천으로 돌아가, 다시 의병 200여 명을 모집하여 군표(軍標)를 ‘비(飛)’자로 삼고, 남원을 공격하였다. 1593년...
-
조선 후기 무신란(戊申亂)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백(周伯). 수헌 강숙경(姜叔卿)의 후손이다. 용력이 뛰어났다. 1728년(영조 4)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곤양군수 우하형(禹夏亨)을 도와 적들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후에 양무공신에 오르고 절충장군이 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시에 설립되었던 인쇄소. 진주지방에서 가장 먼저 평판인쇄를 도입한 인쇄소로, 1936년 9월 15일자 『영남춘추』의 인쇄인으로 등록되면서 진주 인쇄계의 선두로 자리매김하였다. 평판인쇄는 일반적으로 오프셋인쇄라고 하는데, 잉크가 묻는 부분과 묻지 않는 부분이 같은 평면상에 있는 데서 나온 말이다. 비록 일본인이 창업한 인쇄소이나 선명한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을...
-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분파. 루터가 독일에서 일으킨 종교개혁은 1526년 이후 독일의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스위스에서도 츠빙글리와 칼뱅 등이 프로테스탄트적 종교개혁에 앞장섰다. 이 같은 일련의 교회개혁운동의 결과 유럽의 종교적 통일성은 무너져, 독일에서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이후 유럽에서는...
-
개신교의 이념과 정신에 따라 세워진 단체. 개신교는 교회를 기초로 한 종교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단체를 가지고 있다. 교회가 예배 중심의 신앙공동체라면 개신교 단체들은 보다 특화되고 전문적인 목표 아래 세워진 단체들로서 교회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조직이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기독교 이념의 실현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자 단체들이다. 진주의 개신교 단체들은 개...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개암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2003년도에 실시한 석탑 주위의 문화유적지표조사에서는 아무런 유구나 유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개암리 석탑이 발견된 개암리 주변에 절터는 남아있지 않으나 현재 위치하는 개암리의 이름을 따서 개암리 석탑이라 불리고 있다. 1977년에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의하면 진주시 일반성면...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위치한 기차역. 1925년 6월 1일 경전선 마산-진주간 구간이 개통되어,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3년 5월 25일 개양-사천간 선로가 개통됨으로써 비료 및 양회를 수송하였으며, 1965년 12월 7일 개양-삼천포간 진삼선이 개통되어 삼천포의 해산물을 수송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로의 발달로 인해 여객 및 화물이 감소하여, 198...
-
통일신라시대 지방제도인 9주의 하나. 신라 통일기의 지방제도를 9주 5소경제라 한다. 통일 이전에 신라는 전국을 5주로 나누어 지배하였으나, 삼국통일 이후에는 확대된 영토에 걸맞게 지방제도를 재편성했다. 종래의 상주, 하주, 한산주, 수략주, 하서주 가운데 하주의 영역을 문무왕 5년(665)에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동쪽 지역을 삽량주라고 하고 서쪽지역을 거열주라 하였다....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경상도 지방에서 낙동강 이서지역은 가야의 영역이었으며 이것은 서부 경상남도에서 거창, 산청, 진주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는 4세기경으로 편년되는 평면 타원형의 주거지의 분포 상황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가야의 영역이었던 낙동강 이서지역은 가야 후기에 이르러 영역의 변화를 겪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라 지방 통지조직 중 삼국통일...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서 건너 와서 참지정사를 지낸 신수(愼修)를 시조로 하는 단일본이다. 신승선이 임영대군의 사위가 되고 세조의 공신으로 거창군에 봉하여졌으며 벼슬은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신수근은 좌의정, 신수겸은 개성유수, 신수영은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중종반정으로 일문이 화를 당하게 되니 후손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숨어살게 되었다. 신수근...
-
인간의 다양한 생활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의 총칭. 건축의 범위와 종류는 매우 광범위하다. 역사적인 건축물에 속하는 궁궐건축이나 관아, 서원건축, 각종 정자 구조물을 비롯하여, 불교에 관련된 사찰이나 탑, 부도, 그리고 현대적인 건축물인 고층 구조물이나, 도로 및 교량까지도 포함된다. 또한 재료에 따라서도 나무나, 돌, 흙, 벽돌, 콘크리트 등을 이용한 구조물 등이 있다. 진주시에...
-
각종 섬유를 생산하거나, 실크 등의 섬유를 원료로 쓰는 가공품을 생산하는 산업. 진주지역의 견직공업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전통적인 기법의 견직생산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에 진주 인근의 산청지역에 그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근대식 견직공장이 설립된 것은 1910년대이다. 1920년대에 추겸호가 동양염직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30년대에는 일본인 오다나까가 오다나까...
-
진주지역에 있는 서원. 경상도 지역에 건립된 193개의 서원 중 경상남도 지역은 19개 군에 44개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진주지역에 해당되는 서원은 7개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다. 재실의 수에 있어서도 진주지역에 약 5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도 문중에 따라 새로 건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재(齋)’에...
-
경상남도 수필 문학의 장르적인 독자성을 추구하기 위해 1976년 경남수필문학회가 창간한 문예지. 1976년 창간호가 간행되었고, 2006년 1월 현재 32호가 간행되었다. 진주지역 수필을 발전시키기 위한 동인의 뜻을 모아 박민기·정목일 등의 발의로 창간하였다. 창간 동인은 김인호, 황소부, 최문석, 송준수, 정순영, 박민기, 배혜숙, 신일수, 정숙혜, 조재업, 정목일, 조종만, 변...
-
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에 있었던 지방은행인 경남은행의 진주지점.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8년 12월 24일 회사 설립을 발기하여 1970년 4월 15일 창립총회를 거쳐 설립되었다. 1970년 5월 22일에 자본금 3억 원으로 개업하고, 1973년 4월 1일에 외국환업무를 개시하였으며 1987년 10월 12일에 기업이미지 통일화(CI...
-
1909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창간된 전국 최초의 지방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은 1883년 박문국에서 발행된 『한성순보』이다. 그 이후 개화기를 거치면서 『독립신문』, 『경성신문』, 『황성신문』 등이 서울을 중심으로 발행되었다. 또한 외국인에 의해 서울을 비롯하여 대구, 인천 등 지방에서도 신문이 발행되었다. 대구와 평양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주축이 되어 신문을 발행하려는...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있는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병원. 경상남도 지역민에게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2년 10월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설립 인가 후 1984년 8월 10일 초대병원장으로 김시황 박사가 취임하였다. 1986년 6월 1일에 제2대 병원장으로 백상호 박사가 취임하였으며, 1986년 9월 11일에는 최진학 박사가 취임하였...
-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에 있는 진주 일원의 지방도에 대한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기관. 경상남도 창원시에 본부를 둔 경상남도 도로관리사업소의 진주 소재 지소이다. 도로건설을 관리하고, 기존 도로와 교량을 유지·관리하여, 쾌적한 도로상태를 유지하고 도로시설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산토목관구사무소가 설치된 후, 1917년에 진주토목관구사무소가 진...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위치한 예술문화회관.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은 경상남도의 문화 창달을 위해 경상남도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 문화예술의 전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1988년 8월 29일에 건립되었다. 1981년 10월 설계공모에 김중업의 작품이 당선되었고, 1984년 12월 18일 공사에 착공하여, 1988년 8월 29일 개관하였다. 2000년 1월 1일부터 학교법인 일선학원에서 수...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묘목조합의 진주지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조림계획의 주요정책의 일환으로 조림에 필요한 묘목의 재배와 원활한 묘목거래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당시 경상남도 묘포장에서는 묘목을 재배하여 각 군에 나누어 주었는데, 민간에서도 1912년경부터 소나무와 뽕나무 묘목을 재배하여 묘포장의 부족분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후 묘목 재배가 점점 활성화되자 19...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있는 경상남도 산림환경연구원 산하의 산림·임업 관련 전문 박물관. 산림과 임업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수집·전시하고, 산림에 대한 국민홍보 및 현장학습과 전시품 수장·전시 및 연구를 목적으로 1995년 8월부터 2001년 7월까지 5년 11개월 간 총150억 8백만 원의 공사비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산림환경연구원 산림박물관이 착공되던 당시에는 경상남도 임...
-
경상남도청 이전에 반대하여 일어났던 진주 시민들의 반대운동. 경상남도청 이전 반대운동은 크게 두 번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청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데에 따른 반대운동이었고, 두 번째는 부산에 있던 경상남도청을 진주로 이전하지 않고 창원으로 이전하는 데에 따른 반대운동이었다. 진주는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
조선시대 경상우도의 병무를 관할하던 관서. 조선 전기에는 경상도에 3명의 병마절도사(병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관찰사가 겸임했다. 그리고 낙동강을 기준삼아 경상도를 동서로 나눈 군사구역으로서 좌도와 우도를 설정해 좌병사의 병영은 울산에 두고 우병사의 병영은 창원의 합포(지금의 마산)에 두었다. 우병영이 있던 합포영이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분탕되면서 병영이 둘만한 자리가 못되기...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사우. 고려 초 거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절한 충신 하공진(河拱辰)[?~1011]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1804년(순조 4) 수곡면 사곡리 낙수암(落水菴)에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향사를 일시 중지하였으며, 1869년 부조묘(不祧廟)로 되어 다시 자손 봉사하게 되었다. 하공진 장군의 “정...
-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부 관련 부서와의 협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설립된 단체. 경제단체란 일반적으로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관련 기업들 간의 협력 및 정부부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가 많다. 대체로 기업활동에 필요한 법률제정과 규제에 대하여 경영인들의 목소리를 응집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각 단체의 중앙회는 회원들의 원활한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財貨)를 획득하고 이용하는 활동. 일반적으로 경제산업이란 인간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관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을 가리킨다. 보통, 농업·공업·수산업·임업·광업 등을 지칭하나, 넓게는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상업·금융업·서비스업 등도 포함시킨다. 진주시는 경상남도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산청군·의령군·함안군·고성군·...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경충당의 기둥과 벽에 장식으로 붙어 있는 한시. 6언 8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은이는 알려져 있지 않다. 景忠堂 柱聯(경충당 주련) 徃事龍蛇變亂(왕사용사변란) 玆州湖嶺要衝(자주호령요충) 將軍殞首全城(장군운수전성) 節士挺身赴水(절사정신부수) 輕重一於以義(경중일어이의) 敗成非所論人(패성비소논인) 至今氣壯山河(지금기장산하) 自昔醴尊香幣(자석예존향폐) 지난 옛...
-
경상남도 진주시·산청군·함양군에 걸쳐 있는 남강의 상류부에 해당하는 하천. 남강 상류부의 명칭이 경호강으로,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80여 리(약 32㎞)의 물길이다. 국가 하천인 남강의 상류부이며, 함양군 남덕유산[1,507m]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면서 지류인 덕천강(德川江)을 합하여 진양호를 이룬다. 진주 지역에서는 북동으로 유로를 바꾸어 함안군 대산면에...
-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총칭하는 말. 고개에는 전설과 그 지역의 지명과 관련된 명칭이 붙어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은 ‘고개’, ‘재’, ‘티’, ‘치’, ‘개’ 등이 있다. 『진주시사』와 『진양군사』를 중심으로 진주시의 고개를 살펴보면 대략 42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고개를 위치와 명칭 유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고개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
-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이와 동등한 학력을 가진 자가 진학하는 중등학교. 고등학교의 분류는 교육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며, 일반계와 실업계를 함께 운영하는 종합고등학교가 있다. 그 외에도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등의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는 특수목적고가 있으며, 수업연한은 3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고등학교 교육의 목적과 관련하여, 중견국민의 개...
-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 진주는 통일신라 말부터 후백제를 거치면서 강주(康州)로 불리다가 940년(태조 23)에 진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진주목이 되었다. 이에 앞서 광종 때에는 진주향교가 창설되어 진주의 학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고려...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변한(弁韓) 12개 소국 중 하나. 삼한 중 변한에 있었던 12개 소국은 지금의 경상남도 전역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산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중 고순시국의 위치를 진주 지역으로 비정했던 이병도의 견해와는 달리 정인보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 지역으로, 천관우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으로 각각 비정했다. 대체로 낙동강 본류를 중심으...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도충(道冲), 호는 준봉(準峰).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의병장으로 유명한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이다. 1570년(선조 3) 진사가 되고, 1577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현령(縣令)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아버지 고경명(高敬命)을 따라 의병을 일으키고, 금산(錦山) 싸움에서 아버지와 동생 고인후(高因厚)를 잃었...
-
정초에 곡식이나 돈을 남에게 빌려주거나 팔지 않는 풍습. 진주지역의 1월 세시풍속의 하나로, 정초부터 곡식이나 돈을 남에게 빌려주거나 팔게 되면 한 해 동안 재산이 나갈 일만 생기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초에는 곡식이나 돈을 남에게 빌려주거나 팔지 않았다. 그래서 정초에 쓸 돈은 섣달에 미리 준비하였고, 곡식도 미리 내어 두었다....
-
공적 이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 공공기관은 기관 및 단체 중 공공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공조직을 말하며, 사행정 도는 사조직과 구분된다. 또한 시민사회단체, 민간단체, 사설기관과도 구분되며 공공서비스와 공공재화를 생산하는 국가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 각급 학교, 정부투자기관, 특수법인 등이 공공기관에 속한다. 공공기관으로 헌법상 입법·사법·행정부와 정부조직법상 기관...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공북문 성벽에 새겨진 글귀. 공북문 성벽 석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의 북쪽문인 공북문(拱北門) 서쪽 성기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가로 80㎝, 세로 25㎝ 크기의 석재에 ‘康熙十九年山陰馬兵中哨泗川昆陽河東丹城咸陽六官一哨’라고 씌어져 있다. 이는 진주성의 수축을 담당하였던 구역의 표시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세...
-
공중의 휴양·놀이 등을 위해 마련한 정원·유원지·동산 등의 시설. 우리나라의 공원은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에 의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연풍경지(自然風景地)를 보호하고 국민이나 주민의 보건·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경영·관리하는 자연지(自然地)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造景地)로 정의하는데, 전자를 자연공원, 후자를 도시공원이라고 한다. 자...
-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의 아들이고, 남명 조식(曺植)의 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맞지 않는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황해도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경상남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경상남도 함안군을...
-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이라는 어휘는 중국 주(周)나라 시대의 『역경(易經)』에 “관국지광(觀國之光), 리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 하여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말은 타국의 광화(光華)를 보기 위해 여러 나라를 순회 여행하는 ‘이동의 개념’과, 타국을 순방하여 그 나라의 토지·풍속·제...
-
경치가 빼어나 구경하기 좋은 명소. 진주는 자연환경적으로 남강이 굽이쳐 흐르고, 역사적으로 사천·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 등 경상남도 서부지방의 전통적 문화 중심지로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인 진주시는 남해고속국도, 통영~대전간 고속국도, 경전선 철도, 사천공항 등이 입지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경제·사회·문화·교육의 중심권을 형성하고 있다. 진주...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행했던 남자들의 성인의식. 남자아이가 15세가 넘으면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의식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의식이 행해졌다. 관례는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와 더불어 4대 의례라 하는데, 이들 행사는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의 양반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 중 관례가 맨 첫 의례인데 이는 성년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삼국시대에...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지리는 예로부터 태동(台洞) 또는 관점(觀店)이라 하였는데, 이는 앞산과 뒷산 송림에 황새가 많이 모여 앉아 마을의 정취를 더해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진주군 성태동면의 관지동 및 신촌동 일부를 일컬어 관지리(觀旨里)라 하였다. 관지리의 중앙을 나불천이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고 있으며, 이를 사이에 두고 급격한 경사의 산지...
-
광물을 채굴·제련하는 산업과 원료에 인공을 가하여 새로운 물품을 만드는 산업을 통칭하는 용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재와 원료를 얻기 위해 지하자원을 캐내는 광업과 이를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공업을 통틀어 2차 산업이라고 한다. 광업은 역사가 오래된 기초산업으로서 인간의 문화발달의 역사는 광물의 채굴과 가공에 의한 금속, 비금속 및 광물성 연료의 사용기술의 진보와 함께 발달해왔다....
-
일제강점기 때 진주지역의 청소년 보호를 위하여 조직했던 소년운동단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단체생활을 통한 단결심 배양과 국가정신 앙양 등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진주에는 교육구국운동(敎育救國運動)의 일환으로 많은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그 중 안동학교(安東學校)[일명 광림학교]가 진주를 대표하는 학교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발기인은 선교사 거열휴(巨烈休)와 신자 박성애...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에 있었던 기독교계 사립학교. 1907년 4월 15일 기독교신자 자녀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거열휴, 박성애, 강주식, 안헌, 서윤보, 김경숙, 이영숙 등이 주축이 되어 진주군 성내면 4동[현 중앙동 중앙광장 부근]에 안동학교(安東學校)를 설립하였다. 개교 당시 교과목은 성경, 국어, 지리, 역사, 산술, 한문, 습자, 체조, 창가, 영어였다. 1909...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외율리·덕곡리·계원리·신기리에 걸쳐 있는 산. 진주시의 서북쪽에 있으며, 산청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진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광제산의 높이 420m의 산으로, 정상에는 산성터와 절터가 남아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종 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광제산봉수대의 화구(火口)와 석축 일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경상남도 기념물 제158...
-
경상남도 진주의 인공호수인 진양호가 조성되기 이전의 광활한 평지.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과 귀곡동 일대에 조성된 진양호 지역의 옛 이름이며,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해당한다. 진양호가 조성되기 이전에는 광활한 평지였으며, 동학농민운동과도 관련된 역사의 현장으로 지금은 진양호 내에 수몰되어 있다. 진양호를 지칭하는 광탄진은 순우리말로 ‘너우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너우니...
-
강이나 개천, 또는 언덕과 언덕 사이에 건너다닐 수 있도록 걸쳐 놓은 시설. 2009년 12월 31일 현재 진주시의 교량은 전체 237개소이고, 총연장 22,077.15m이다. 이 중 고속국도 상에는 52개소 7,792m, 일반국도 상에는 72개소 5,480.80m, 지방도에는 52개소 5,813.20m, 시도 상에는 61개소 2,991.55m가 각각 있다. 이들 교량 중 가장 긴...
-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인격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갖추어야 할 인간 형성의 과정이며 사회 개조의 수단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인격완성과 자아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과 동시에 가정, 사회, 국가 공동체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체의 발전을 꾀하는 작용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홍익인간(弘益人...
-
교육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단체. 진주는 교육과 문화의 도시이다. 진주시 인구에 비해 학생 수나 교육기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2009년말 기준 교육통계에 의하면 초등학교 학생 수는 23,657명, 중학교 15,318명, 고등학교 16,433명, 대학교 32,880명, 그리고 유치원 원아 수는 3,261명, 특수학교 및 직업전문학교 574명을 포함하여 전체학생 수는...
-
자동차·기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 오고 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 진주시는 동쪽으로 마산시 및 함안군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 및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및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
-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의 공동체. 교회는 크게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둘이 본래는 하나였으나 16세기 초 루터,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로 인하여 둘로 나뉘어졌다. 가톨릭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지금도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으나 개신교는 신학적 견해의 차이로 인하여 여러 개로 분파되었다. 진주의 교회는 1905년에 호주선교사 커...
-
약 30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시기로 인류의 발달과정을 도구제작 기술의 발달로 구분할 때 가장 이른 시기. 구석기시대는 지질학적인 연구와 이 시기에 살았던 동·식물상의 연구를 배경으로, 각 시기마다 사용된 도구 즉, 석기를 중심으로 하여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나누어진다. 전기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처음 연모를 사용한 때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
-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 위치한 거리. 길이는 432m, 폭은 8m, 전체면적은 3,800㎡이다. 2001년 6월 26일 경상남도지방 경찰청 고시 제2001-5호에 의거 진주시 대안동 중앙시장 앞 구종로 거리가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었다. 1996년 반대편 로데오거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차 없는 거리가 조성되면서 상권의 중심이 약화되고 있다. 진주시 중심을 관통하는 4차선 도로인 중...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위쪽에 있는 마을 이름. 진주 지역에서는 귀퉁이를 ‘귀티이’라고 한다. 구태마을은 대천리 위쪽 귀퉁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귀티이’라고 하다가 한자어로 변하여 ‘구태’가 되었다고 한다. 대천리 위쪽, 금동마을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2006년 현재 인구는 72명이고 가구 수는 29호이며, 성씨로는 진양하씨와 진양정씨가 많이 살고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국립박물관. 경상남도 지역의 출토 문화재의 수집·보존에 앞장서고, 문화재 조사·연구·전시와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문화의 특색을 조명하는 한편 지역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고자 설립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고고학적 연구·조사를 담당하는 국립 기관으로서, 경상남도 지역에 산재해 있던 각종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정리하고 가야의 문화를 소개하기...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있는 산봉우리. 해발 228m의 봉우리로, 관지리 삭평마을 뒷산이다. 진주에서 손꼽히는 명산의 하나로 산꼭대기에는 널따란 암석이 있는데, 여기에 올라서면 주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봉화대가 있어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정상에서 불과 연기로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명석면을 굽이굽이 흘러 남강과 합류하는 나불천과 진주를 관통하는 남강과...
-
1991년 진양문화원에서 『진양지』·『진양속지』·『진양속지 증보』 등을 국역한 책. 모두 10권으로, 『진양지』4권, 『진양속지』4권, 『진양속지 증보』2권이다. 이 중 『진양지』는 조선 광해군 14년(1622)부터 인조 10년(1632)에 걸쳐 성여신(成汝臣)이 편찬한 경상도 진주목 읍지로, 본래 2책으로 되었으나 목판본 인출 때 4권 3책으로 되었다. 그리고 『진양속지』는 19...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에 있는 문산성당의 초대신부. 권유량은 1905년 문산공소가 문산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부임한 진주 지역 최초의 신부이다. 다른 이름은 줄리엥 권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1905년부터 1908년까지 3년간 문산성당의 초대신부로 재임하였다. 1932년 7월 7일부터 1933년 4월 1일까지 가톨릭 신문의 3대 사장을 역임하였다. 권유량 신부는 문산면 삼곡...
-
진주에서 활동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교육가. 가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사재로 야학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동들을 교육시키는 데 일생을 바쳤다. 평생을 교육하다 60여세로 작고하였다. 권홍우(權烘宇)는 가난한 학생들이 돈이 없어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사재를 털어 1923년 제3야학교를 설립하였다. 권홍우는 야학을 통해 문맹률을 타파하는 것은 물론 일...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에 있는 사당. 공자(孔子)를 모시는 사당으로, ‘궐리’는 중국 산뚱성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가 태어나서 살던 궐리촌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진주 이외에 충청남도 논산시의 노성(魯城)[충남기념물 제20호], 경기도 오산시의 궐동[경기도 기념물 제147호] 등에 공자의 사당인 궐리사가 있다. 노성궐리사는 1716년(숙종 42)에 권상하·김만준·이건명 등...
-
1968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창립되었던 연극단체. 진주시민들의 신극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진주지역 연극인들의 자질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연극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여 진주지역 향토연극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1968년 이상훈(李相勳)을 중심으로 허남벽과 함께 연극의 정통주의(Academicism)를 표방하며 신진세력을 규합하여 창단하였다. 1968년 창단기념공연을 가진...
-
경상남도 진주시 하대동에 있는 여성극단. 극단 아낙은 경상남도 진주시의 어머니들이 직접 연극에 참여함으로써 연극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극단 아낙을 통해 자녀들을 비롯한 가족과 이웃들에게 연극을 가까이 함으로써 연극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0년 가을에 ‘어머니극회’라는 이름으로,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어머니로만 구성된 여성 극단으로 창립하였다. 1991년에 ‘...
-
조선 말기의 유학자 하헌진(河憲鎭)[1859~1921]의 유집(遺集). 하헌진의 호는 극재(克齋)이고 자(字)는 맹여(孟汝)이다. 동료(東寮) 하재문(河載文)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행동에 법도가 있고 말과 글이 편하면서도 매력이 있어 원근의 유학들이 존경하였다. 그는 ‘극복(克復: 克己復禮의 준말)’을 삶의 좌표로 삼아 매사에 극진히 임하였으며, 김황(金榥) 등과 함께 면우(俛宇)...
-
경상남도 진주시 남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송곡리(松谷里), 인담리(麟淡里), 금동어리(金冬於里), 성을산리(省乙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금동어리는 송곡리에 합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나누었다. 1832년(순조 32)에는 인담리를 성을산리에 합하여 송곡리, 금동어리, 성산리(省山里)라 하다가 1864년(고종 1) 이후...
-
금곡면은 진주시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면(面)으로, 고성군, 사천읍 등과 경계를 하고 있다. 금곡면 소속의 검암리는 동쪽으로는 가봉리, 서쪽으로는 차현마을, 북쪽으로는 송골리, 남쪽으로는 음정마을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4개 마을의 가운데가 운문마을이다. 1911년 금동어면(金冬於面)[현재 검암, 가봉리]과 송곡면(松谷面)[현재 송곡리, 정자리]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
·장재(長財) : ‘부자마을’이라는 뜻에서 장재실이라고 불린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장지(長智)라고도 불렀는데, 서기(瑞氣)로운 징조가 비친다, 선하고 신비함이 많다는 뜻이 있는 지초 지(芝)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마을 총의에 의하여 다시 옛날 이름인 장재실로 부르게 되었다. ·천금산(千金山) : 장재마을을 감싸...
-
조선 전기 진주에서 조직된 영남 사림들의 친목단체. 섭리에 순응하고 이상적인 도학(道學)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림파의 친목단체로 조직되었다. 지배층의 솔선수범과 근검절약을 신조로 삼았다. 1489년(성종 20), 진주목사 경임, 김해도호부사 이손(李蓀)[1439~1520], 창원도호부사 이영분(李永賁), 전 진주목 교수 김일손(金馹孫)[1464~1498], 조위(曺偉) 등을 비롯,...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 월아산 중턱에 있는 옹달샘. 예로부터 진주에서는 여름에 가뭄이 들면 월아산 중턱에 있는 옹달샘의 물을 길어다가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진주 지역에서는 무제라고 하므로, 무제를 지내는 샘이라는 뜻에서 무제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월아산은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며, 산세가 험하지 않고 완만하다. 월아산 정상은...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속사리에 있는 금선봉(琴仙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대여촌리(代如村里), 월아미리(月牙彌里), 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여촌리과 월아미리는 금산리에 합하여 금산리(琴...
-
(1) 금산동약(琴山洞約)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후 조선사회는 모든 면에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특히 주전장이 되었던 경상도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피해가 막심했으며, 진주지역도 두 차례에 걸친 진주성전투로 그 피해가 매우 컸다. 특히 극심한 경제적인 혼란은 당시 조선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것은 종래의 양반지배제도에 변화가 발생한...
-
영리를 목적으로 한 화폐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이란 자금, 즉 화폐의 융통을 말하는데, 현대 경제사회는 화폐의 순환, 즉 화폐의 흐름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화폐의 흐름은 산업적 유통과 금융적 유통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에 있어서는 교환수단을, 후자에 있어서는 가치저장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와 같이 화폐가 어떤 경제행위를 영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때 이를 ‘자...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에 있는 못[池]. 금산면 월아산 아래에 있는 못으로, 월아산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이 금호지에 비칠 때 그 모습이 아름다워 ‘진주 12경’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둘레가 약 5㎞로 굴곡이 많고 W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눈에 못의 전부를 볼 수 없다. 금호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시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진주지역에서 가뭄이 심할 때 비오기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례로 행해졌던 줄다리기 놀이. 줄다리기는 대개 풍농을 기원하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대동놀이이다. 하지만 진주지역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비오기를 기원하며 부정기적으로 행해왔다. 본래 줄다리기의 주술적 의미는 줄을 용이라 부름으로써 용신(龍神)을 상징하고, 용신은 곧 수신(水神)으로 농사의 풍흉과 직결된다. 따라서 청룡과...
-
아기를 갖지 못하는 집안에서 잉태를 위해 신령한 힘을 가진 대상물에 치성을 드리던 풍속. 아이를 얻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는 일은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 시간, 장소, 기간, 그리고 치성의 대상과 방법이 매우 다양하였고, 잉태를 한 뒤에도 딸을 아들로 바꾸는 전녀위남(轉女爲男) 등 다양한 주술이 행해져 왔다. 진주지역의 경우, 치성을 드리는 사람은 아기를 갖고자...
-
기온, 비, 눈, 바람 따위의 대기(大氣) 상태. 진주시를 비롯한 서부 경상남도의 내륙 지방은 분지 지형으로 한서의 차가 크며, 기온의 연교차는 47.2℃이고, 다우 지역에 위치하며 집중 호우 다발 지역으로 연간 강수량은 1,382㎜이다. 봄, 가을에 안개가 많이 발생한다. 진주 지역은 겨울철에 시베리아와 몽고 지방에서 발생하는 대륙성 한대 기단의 영향으로 비교적 춥고, 대륙성 고...
-
일제강점기 진주지역의 친일파. 1887년 8월 5일 경상남도 진주군 내동면 독산리에서 태어나 대부호인 정부인 김씨의 손자로 입양, 성장하였다. 일제강점기에 380만원에 달하는 자산을 소유한 대지주로서 서울 이부자[李鳳來], 경주 최부자[崔浚]와 더불어 진주 김부자[김기태]로 일컬어지는 남한의 3대 갑부 중 한사람이었다. 진양군 문산면 삼곡리에서 사업을 하다가 지병 악화로 1941년...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에 있는 진양하씨의 열행비. 진주의 유생 김동철(金東喆)에게 시집간 진양하씨는 문충공 하륜(河崙)의 후손으로, 남편이 병에 걸려 위독한 상황에 처하자 자신의 무릎 살을 베어 먹여 소생시키는 등 정성껏 간병했다. 이 일이 알려져 진양하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의 양들 공군교육사령부 후문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한다...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5년 5월 26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다. 산청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진주고등학교)에서 근대교육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진주에서 살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휴교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진하(李鎭河) 등 동료들과 식민교육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1978년 11월 2...
-
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의 의병. 본관은 상산(商山). 고려 두문동 은사 단구재 김후의 후손이며 임진왜란 의병대장 거제현령 김준민(金俊民)의 둘째 아들이다. 1593년 진주성싸움에서 아버지 김준민이 전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힘을 기르다가 정유재란(丁酉再亂)이 터지자 다시 왜적이 진주를 향해 진군할 것으로 예측하고, 발치(鉢峙)에다 토석성을 쌓고 수...
-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신파배우. 신극 초창기의 배우로 본명은 김현(金顯)이다. 궁중나인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배우로 알려진 마호정(馬豪政)과 결혼하였다. 1911년 초겨울에 임성구(林聖九)가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했을 때, 창립단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신극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뒤, 혁신단의 여러 작품에 출연하다가 1918년 2월 혁신단으로부터 독립하여 취성좌...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목천(木川) 출생으로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으며, 1581년에는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구황(救荒)에 전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의 난 때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막하 장수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 뒤 훈련원판관이...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김시민(金時敏)의 공적을 기리는 비. 김시민[1554~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는 1619년(광해군 11)에 진주 지역 백성들의 열망에 의해 세워졌다. 성여신의 문집인 『부사집(浮査集)』에는 ‘진주목사김공전성각적비명(晋州牧使金公...
-
통일신라의 무관·병법가·천문가. 금관가야(金官加耶) 왕족의 후손, 김유신(金庾信)의 적손(嫡孫)인 김윤중(金允中)의 서손(庶孫)이다. 김암은 본래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술법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천문학과 병법에 밝았으며, 지방관으로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역을 맡아 잘 다스렸다. 또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김암이 젊은 시절에 중국 당나라에...
-
근현대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활동한 기독교인. 1878년(고종 15) 진주에서 출생하여 1899년부터 1907년까지 진주군 지방관리를 지냈다. 1908년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며, 1910년 커렐(Hugh Currell, 거열휴)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아 입교한 후 평생 기독교인으로 헌신하였다. 1885년에서 1890년까지 한문사숙에서 수학하였다. 1913년 4월부터 1919년 9월까...
-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사진작가. 김종태는 1915년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서 출생한 사진작가로서 1951년 진주에서 치러진 영남예술제의 사진부를 창설하였고 진주를 중심으로 사진예술의 보급을 위해 진주사진클럽을 창설하고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으며, 각종 대회 심사 및 지도위원으로 활동한 사진예술가이다. 진주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동경 제등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진주영남예술제(...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상주. 자는 성인(成仁). 고려 때 직제학을 지낸 김후(金後)의 후손으로 군수 김녹돈(金祿敦)의 손자이다. 아들 김봉승(金鳳承)은 정유재란 때 진주 발재[鉢峴]에서 전사하였다. 출생년은 미상으로 산청의 단성에서 살았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후 1583년(선조 16) 북평사 이제신(李濟臣)과 함께 군관으로 출정하여 북쪽 야인을 격퇴하였으며,...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김해허씨 문중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신. 1649년(인조 27) 평안병마절도사 안주목사에 재직 중이던 허동립(許東岦)[1601~1662]이 진주의 하진(河溍)[1597~1658]에게 보낸 서신이다. 한 통에서는 하진의 약재 요구에 대한 답장과 아울러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었고, 또 다른 한 통에서는 하진의 완쾌를 비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
신라 하대의 재상·장군. 자는 태(泰). 태종무열왕의 9세손으로 증조부는 상재를 지낸 이찬(李湌) 김주원(金周元)이고, 할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소판(蘇判)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파진찬(波珍湌) 김장여(金璋如)이다. 822년(헌덕왕 14) 당나라에 건너가 숙위(宿衛)하고 1년 뒤에 귀국하였는데, 귀국 즉시 남원태수를 제수받고, 여러 번 승진하여 강주(지금의 진주)의...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오월 단오 때 과일 수확이 많기를 빌어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풍속. 흔히 가수(嫁樹)라고 이르며, 설날이나 정월대보름날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행하던 풍습이다. 대보름에 감나무를 시집보내거나, 단오에 대추나무를 시집보냈다. 단오의 경우 대추나무만 시집보내므로 별도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고도 하였다. 진주의 경우, 주로 오월 단오 때 행해졌다. 대추...
-
경상남도 진주시 인사동을 흐르는 지방 하천. 주로 명석면의 남쪽 지역을 흘러가며 하천의 직강 공사가 이루어져 있다. 흙으로 조성된 제방으로 이루어져, 자연 상태의 유로를 유지하고 있다. 나불천으로 들어오는 하천으로는 덕곡천, 왕지천, 우수천, 용산천, 사촌천이 있다. 습생 식물은 다양하게 나타나는 편이나 수생 식물의 분포는 적은 편이다. 10년 전만 하여도 은어가 찾아왔지만 지금은...
-
1896년 진주시 중안동에 설치되었던 근대교육기관인 낙육재(樂育齋)의 터. 낙육재는 1721년 경상도 대구의 경상감영 내에 설치된 것이 시초로, 유능한 유생을 선발해 독서와 학술연구 등을 담당한 향교(鄕校)였다. 진주(晋州)의 선비들은 조선의 영조(英祖) 시기부터 낙육재를 자신들의 지역에도 유치할 것을 청원했다. 1896년 경상도가 남도와 북도로 나뉘고, 경상남도 감영이 진주에 들...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과 칠암동 일대에 걸쳐 있는 문화 예술 거리. 역사·문화·예술의 도시인 진주의 전통과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지닌 도심 속의 문화·휴식 공간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화 예술 거리로 지정되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단계[문화예술의 거리, 진양교-진주교,(2.0㎞, 41,390㎡), 1992~1998]와 2단계[역사의 거리, 진주교-천수교,(0.9㎞,...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과 그에 새겨진 글씨. 남강 암각은 ‘일대장강 천추의열(一帶長江 千秋義烈)’이라는 논개(論介)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벽이다. ‘남강 암각(南江 巖刻)’이라는 명칭은 진주시에 있는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그냥 ‘암각’이라고도 불린다. 창렬사 경내 어제비문을 정비한 다음 처절했던 진...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2동에 위치한 남강 위의 다리. 남강교는 진주시 상대2동과 문산읍 소문리를 연결하는 교량이다. 교량의 길이는 420.0m, 폭은 30.0m, 높이는 13.8m이며, 경간수는 8개이고, 최대 경간거리는 60.0m이다. 총차선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3차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1일 통행차량은 2,120대 정도이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강상자형교(STB형), 하...
-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설립된 남강댐 홍보관. 물문화관은 물을 테마로 한 남강댐의 홍보관으로, 지상 2층의 규모로 1997년 1월 30일 개관하였다. 1층은 전시관으로 ‘물과의 만남, 생명의 물, 남강의 물, 새천년의 물’이라는 주제로 전시되어 있다. ‘물과의 만남’ 공간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의 마스코트인 비버로봇이 방문객을 맞으며, ‘이미지 웰’을 통해 물에 대한 친근한 이미...
-
2001년에 진주환경운동연합이 주체가 되어 만든 남강 도보 순례단. 남강사랑은 진주환경운동연합 주최로 2001년부터 매년 계속되고 있는 경상남도 진주 남강의 도보 순례단으로 강의 상류지역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하류지역의 오염실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경상남도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남강의 상류부터 하류까지, 이들 지역을 도보로 순례하여 강의...
-
곡물을 베어 수확하는데 사용하는 청동기시대의 농경구. 곡물을 베어 수확하는데 사용하는 농경구는 한반도 전역에서 반월형석도가 많이 발견된다. 형태는 삼각형, 장방형, 물고기, 배모양 등 다양하다. 삼각형의 형태는 청동기시대에서도 시기적으로 늦은 송국리 문화단계가 되면 벼농사의 확산에 따라 제작이 쉬우면서도 사용면적을 넓히는 것이 가능한 형태로 발달했다. 특히 삼각형석도는 한반도 남부...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일대에서 출토된 조기(早期) 청동기시대의 토기.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로 추정되는 미사리 유형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토기의 속성으로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전환되는 시기규명과 농경사회와 관련하여 일본까지의 전파 추정 등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진주지역의 경우 남강 일대에서 확인된다. 남강 다목적 댐 수몰예정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서 많은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고...
-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남쪽의 통일신라[676~935]와 북쪽의 발해[698~926]가 양립하던 시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이후 935년까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영토를 다스리게 된다. 한편, 통일신라 북방에는 698년 고구려의 장수 출신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중국 길림성 돈화시 동모산을...
-
1935년 1월 1일 진주에서 창간되었던 월간지. 창간사에 ‘부(富)에 굴하지 아니하고, 세(勢) 위력에 동(動)하지 않고, 3군(軍)의 용(勇)에도 뺏기지 않으며 비록 요순에게 악이 있다면 악 그대로, 걸주(桀紂)에게 선이 있다면 선 그대로 추호의 편협 없이 공정하고 엄격히 판단하겠다’ 라는 굳건한 좌표를 명시하며 창건하였다. 8단의 타블로이드 4면이며, 본문 활자는 5호, 구독...
-
대중가수 남인수를 기리기 위해 개최되는 가요제. 남인수 가요제는 한국 가요사의 거목인 진주 출신의 대중가요 가수인 남인수를 기리고, 공개 경연을 통하여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하여 매년 개천예술제의 세부행사 중 하나로 열리는 가요제이다. 한국 대중가요사의 거목인 진주 출신 가수 남인수를 기리기 위해 남인수 가요제라 하였다. 「애수의 소야곡」, 「가거라 삼팔선」, 「내고향 진주...
-
진주 출신의 대중가요 가수 남인수(南仁樹)[1921~1962]의 동상.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귀곡동 진양호(晋陽湖) 내 구 선착장 위에 위치한 남인수 동상은, 2001년 5월에 남인수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애수의 소야곡」, 「가거라 삼팔선」, 「내 고향 진주」 등 수많은 곡을 불러 진주시민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독특한 가창력으로 지금까지도 가...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운수업체. 일제강점기인 1917년 11월 마산~진주간 자동차 경영에 착수하였다. 1925년에는 진주에서 문산까지의 노선 영업 허가를 얻었으며, 1937년 11월에는 진주자동차조합을 사들여 영업을 개시함과 동시에 하동읍에서 옥종면을 경유, 진주까지 운행하는 하동~진주선도 양도받아 경영하였다. 1939년 2월에는 진교에서 노량에 이르는 11.7㎞의 노선도 연...
-
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후기의 축곡리와 내동리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내동리에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축곡리(杻谷里), 말동리(末洞里), 내평리(內坪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말동리와 내평리를 축곡리에 합하였다가 1832년(순조 32)에 축곡리와 내동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유곡면과 내동...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경산에 있는 골짜기. 계곡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암반 위를 맑은 물이 항상 흘러내리고 있다 하여 내리수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맑은 물이 많이 흘러내려 빨래터와 여름철 목욕터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겨울철에는 많은 고드름과 얼음이 아주 두껍게 얼어 옛날 진주 시내의 돈 많은 부자들이 이 곳의 얼음을 저장하여 여름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망경...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집현산 중턱에 위치한 절터. 임진왜란 후 응석사가 복원되기 전에 진묵대사(震黙大師)[1562~1633]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소재한 응석사의 왼쪽으로 집현산에 오르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집현산 중턱 해발 400m 정도 올라가면 내원암 사지가 있다. 1960년대까지 한국불교의 고승들이 수행하던 도량으로 알려져 왔으나 19...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을 내촌리(內村里)라 하였다. 내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북쪽은 남강이 진양호로 이어지고, 남쪽은 덕천강이 진양호로 유입되어 남북방향이 진양호와 접하고 있고, 북쪽은 200m 이상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내촌...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에 있었던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 641-10번지 일대에 있었던 유적으로, 진양호의 서편 안말과 마당재를 잇는 농로 좌우의 낮은 야산과 구릉상의 대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강댐 2차 보강공사에 따라 유적의 일부가 수몰됨에 따라 1997년~1998년까지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1기의 유구가 발굴·조사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냉정리에 속하는 참새미마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우물이 있는데, 이 때문에 차갑고 맑은 샘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냉정리(冷井里)라고 하였다. 원래 진주군 집현동면(集賢洞面)의 냉정동(冷井洞)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집현면의 광정동(廣亭洞), 냉정동(冷井洞), 미천면의 원당동(元塘洞)이 합해져 냉정리(冷井里)가...
-
조선 중기의 효자.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진주 어느 절의 노비로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어버이에게 바치는 효성만은 누구 못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어머니를 업고 떠돌아다니면서 걸식하여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힘을 다해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고, 담제(禫祭: 대상을 치른 다음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를 지낸 뒤 비로소 고기를 입에 넣은, 하...
-
근현대 학자 이용(李鎔)[1868~1940]의 문집. 『노계유고』는 이용이 생전에 서술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문집이다. 이용의 사망으로부터 수년 뒤 그 아들인 이윤직(李允直)이 아버지의 남은 글들을 수합 정리했고, 그로부터 10년 뒤 비로소 원고들을 출간했다. 1964년 진주의 일신인쇄소(日新印刷所)에서 발행되었다. 총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본은 연활자본(鉛活字本)이며,...
-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근로조건의 유지 및 개선과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노동운동은 노동조합 연대조직을 중심으로 크게 두 시기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제1기(1987~1992년)는 진주지역 민주노조연합의 결성과 활동이 중심이 되었던 시기이며, 제2기(1993~2000년)는 민주노총 진주지역협의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지역노...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에 있었던 지명. 이 곳을 노루목(또는 노루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산자락을 넘어가는 고개가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노루 장(獐)’자와 목 항(項)‘자를 써서 한자어로 장항(獐項)이라고 했다. 노루목은 우수리 우수마을회관에 가까워 우수리 노루목이라고도 부르지만 용산리 노루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옛 지...
-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오(聖五)·경오(景五), 호는 신암(愼菴). 아버지는 노이선(盧以善)이며, 어머니는 팔계정씨이다. 1861년(철종 12) 거창에서 노이선의 차남으로 태어나 안의에서 성장하였다. 기호(畿湖) 유림의 거장 성재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송근수(宋近洙) 등을 사사하였다. 1895년(고종 32) 명...
-
근현대 진주의 인물인 심규섭의 문집. 심규섭(沈圭燮)[1916~1950]의 자는 문재(文哉), 또는 녹우(鹿友)이다. 신안(新安) 출신으로 어렸을 때는 권송산(權松山), 이과재(李果齋)에게 학문을 배웠고, 청년기 때 서울로 올라가 윤해관(尹海觀), 김동강(金東江) 등에게 교습을 받았다. 심규섭은 현명하고 통찰력이 깊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0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순절한 의기(義妓).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주달문이고, 어머니는 허씨이다. 전라북도 장수 출신이다. 1593년(선조 26)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중이었던 1593년 6월 김천일, 황진, 최경회, 고종후...
-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활동. 진주시는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교육은 물론 경제·사회의 중심지로서 도시·농촌의 균형개발을 위한 거점도시이자 자연자원이 풍족하고 산업기반시설이 완비된 도·농 복합도시이다. 농산물 집산지였으나 상평산업단지가 조성된 후 공업이 크게 발달하고 있다. 농업특산품으로는 전국 최고 품질의 진주 배와 단감을 비롯해 오이·딸기...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 화봉산(花峯山)의 고개. 높은한질이라는 고개 이름은 ‘높다’에서 온 ‘높은’과 ‘한길’의 이 곳 방언인 ‘한질’이 결합된 말이다. ‘한길’이란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넓은 길이란 뜻이다. 이곳은 조선 말기 서울에서 수령이 내려오면 쉬어가는 숙소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개리 모심(慕心)마을과 목과(木果)마을 사이에 위치한 화봉산의 고개이다...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에 합격한 이 마을 선조가 깃발을 앞세우고 마걸둥천 연못가에 내리니, 저녁 노을 햇빛의 그림자가 연못물 위에 붉게 비치고 말은 물을 먹었다 한다. 이로 인하여 붉은 단(丹) 자와 먹일 목(牧) 자를 따서 단목(丹牧)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단지동(丹池洞)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단목리라 하여 대곡면에...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숲. 다리목과 단목마을 입구에 있어서 단목숲이라 불리고 있다. 과거에는 수천 평 이상의 넓이로 아름다운 숲이었으나, 1921년 진주-의령간 지방도가 개통되면서 단목숲이 내외로 나뉘어 분할되었다. 안쪽은 안숲으로 변했다가 1952년에 단목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사라지고, 바깥숲은 1969년 경지 정리로 인해 농지로 조성되어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
-
1895년(고종 32) 11월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성년남자의 상투를 자르게 한 명령.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는 국제적 범죄를 자행한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이 고조되고 있을 때 일본의 지원으로 들어선 김홍집 내각이 11월 15일 고종의 조칙으로 단발령을 실시한다고 선포하였다. 당시 내세운 단발의 이유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
살쾡이로부터 닭을 보호하는 것을 형상화한 아이들의 민속놀이. 진주지방에서는 이 놀이를 ‘씩 잡기’라고도 한다. ‘씩’은 이 지방의 사투리로 살쾡이를 말한다. 원래부터 살쾡이는 닭의 천적이라 할 정도로 농가에 많은 피해를 입혀왔는데, 이 놀이도 살쾡이로부터 닭을 보호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여 닭과 살쾡이를 1명씩 정하고 나머지는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손에 손을...
-
(1)고문서류 단목마을에는 동산문화재로서 진양하씨 가문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중요한 고문서들이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 단목리와 금곡면 운문리에 대대로 살고 있는 진양하씨 소장의 고문서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고문서집성』에 수록되었다. 2000년 대곡면 단목리 창주 후손가 소장 고문서를 『고문서집성』47~48권으로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금곡면 운문리 진...
-
조선시대 진주의 읍지인 『진양지(晋陽誌)』에서 단목마을에 대해 “토지가 척박하고 가뭄이 자주 든다. 사족들이 많이 거주하여 관직자가 끊이지 아니하였고, 마을의 풍습은 시서(詩書)를 숭상하고 효우(孝友)를 돈독히 한다”고 평가할 정도의 전형적인 반촌(班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토지가 척박하고 가뭄이 자주 들었다고 하였는데, 이 문제는 단지공 하협이 지내에 천방사업을 통해...
-
·다리목 : 옛날 진주~의령 간을 연결하는 길의 큰 다리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숲 : 단목마을 입구에 수백 년 된 물버들나무가 있었는데, 1921년 진주~의령 간 지방도가 개통되면서 숲이 나뉘어 안숲과 바깥숲으로 부르고 있다. 안숲은 1952년에 단목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학교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고목이 된 물버들 10여 그루가 보존되고 있다. 바깥숲은...
-
-마을의 인적 구성- 『세종실록 지리지』에 소개된, 진주 토성(土姓)의 하나인 진양하씨의 집성촌인 단목에 언제부터 하씨들이 모여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하공진의 13세손인 하기룡(河起龍) 때부터라고 알고 있다. 하기룡은 15세기 중엽의 인물이니 단목마을의 역사는 600여년 정도가 되는 셈이다. 현재 진양하씨는 3개의 파가 있는데, 단목에 사는...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97-1번지에 있었던 우리나라 농업 기계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던 기업.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97-1번지에서 창업하여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농기계 생산의 외길을 걸어온 대동공업주식회사는 창립 당시 농기구를 생산하는 철공소에 불과했으나 발동기 생산을 계기로 점차 ‘철우시대’를 열고 종합농기계 메이커로 발돋움하여 현재 세계 초일류 농기계회사로...
-
음력으로 새해 첫 보름날. 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각 지역에서는 대보름날에 축제의식이 열리고 있고, 어느 정도 그때의 풍속이 남아 있다. 한때 대보름날의 하이라이트인 달집짓기가 산림을 훼손한다고 하여 중단되었으나 지금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부활되어 여러 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대보름날 풍속은 다양하다. 진주지역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대보름날에는 마을의 공동의식인 동제가 베풀어지...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이전의 진주 행정 구역 명칭인 진주군 대안면의 이름을 따 ‘대안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대안면(大安面) 1동, 중안면(中安面) 3동, 성내면(城內面) 4동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대안동이라 하다가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영정(榮町)이라 하였고, 1949년...
-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 위치한 차 없는 거리. 1996년 6월 1일 조성된 이 거리는 길이 310.0m, 폭 8.0m, 전체 면적 2480.0㎡의 규모로, 총 사업비 4억 9천만 원을 투자하였으며, 현재 진주를 비롯한 서부경상남도의 패션 명소로 등장하고 있다. 진주시 대안동을 지나는 중앙로는 4차선 도로를 경계로 구(舊)종로와 로데오거리가 각각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있다. 구...
-
대중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되는 문화. 초기 대중문화의 개념은 대중이 즐기는 문화라는 객관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엘리트계층이 아닌 대중, 즉 대중사회 내에서 익명성에 빠져 사는 불특정 다수가 즐기는 문화로 이해되었다. 이처럼 종전에는 대중문화의 개념이 고급문화·전통문화 등과 상반되는 문화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재해석되어 획일적인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집단...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의 법정리. 대천리 내에 있는 자연마을인 대동(大洞)과 대천리를 흐르는 답천(沓川)을 합하여 대천리로 이름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의 반성현에 속했다가 동면 가수개리와 정수개리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이반성면과 가수개면으로 되었다. 1914년에 진주군 가수개면 대동·가산동, 외진성면 답천동 각 일부로써 대천리라 하였는데, 현재 대동·오...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법정리. 해마다 천우로 물난리를 겪는 피해도 있지만, 수곡(무실)이라는 이름은 물이 많은 곳을 뜻하여 산꼭대기에 우물을 파도 물이 철철 흘러내린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는 바, 본 면의 중심지에는 ‘대천’이라는 한샘이 있다. 한샘의 ‘한’의 뜻은 큰[大] 또는 으뜸(元)을 나타내는 것이고, ‘샘’은 ‘옳은 마음’으로 해석된다. 한샘에서 나온 물이 수곡 하...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위치한 진양호 위의 다리. 교량의 길이는 376.0m, 폭은 9.2m, 높이는 12.0m이며, 경간수는 8개, 최대 경간거리는 47.0m이다. 총 차선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1일 통행차량은 984대 정도이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SC상자형교(PSCH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 교각(ETC형식), 설계하중은 DB-24...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있는 법정리. 대평리는 예부터 깊은 골짜기 안에 맑은 물과 넓은 들이 있어 곡식과 채소들이 풍부하였으므로 ‘한들’, 혹은 ‘큰들’이라 불리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 서면(西面)의 서신대리(西申大里), 침곡리(針谷里), 가을동리(加乙洞里), 대평리(大坪里)였던 것이 임진왜란 후에 대평리로 통합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면서 대평면(大坪面)으로 바뀌었다. 19...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대평면은 예로부터 한들 또는 큰들이라고 불리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의 서신대리(西申大里), 침곡리(針谷里), 가을동리(加乙洞里), 대평리(大坪里)이던 것이 임진왜란 후에는 대평리로 통합되고 조선 후기에는 침곡면(針谷面)과 대평면(大坪面), 또 조선 말기에는 침곡면(針谷面), 신풍면(新豊面), 마동면(馬洞面), 대...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에 있는 한국전쟁 때 죽은 우익인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대평반공유적비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때 진주지역에 있었던 좌우익의 투쟁사례 중 대평면에서 벌어졌던 빨치산과 우익세력 간의 무장투쟁을 말해주는 역사적인 기념비이다. 대평반공유적비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기간 동안 극한적인 이데올로기 투쟁 끝에 희생된 우익인사를 위해 1961년 8월에 세운 유적비...
-
경상남도 진주시에 소재한 고등교육기관. 진주시의 2009년말 기준 인구수는 약 33만명이며, 이 가운데 학생 인구는 전체의 31%가량 된다. 그리고 대학생 수는 3만 5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를 넘고 있다. 이처럼 학생 수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타 도시에 비해서 높은 것은 진주가 서부경상남도의 중심도시로서, 특히 예로부터 교육·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지녀왔음을 나타낸다...
-
경상남도 진주시와 산청군·사천시·하동군 일대를 흐르는 강. 『국역 진양지』에 “조흘산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상류암을 거쳐 장항동(獐項洞)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 삼장천이 되어 살천(薩川)과 더불어 양당촌(兩堂村) 앞에서 합하니 이를 덕천(德川)이라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서 발원한 물과 지리산 계곡에서 흐르는 하천이 진주시 수곡면과 하동군 옥종면, 사천시...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경산 북쪽 남강과 연해 있는 벼랑(덤). 덤밑은 벼랑을 나타내는 진주 지역 방언인 ‘덤’의 밑이란 뜻이다. 원래는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서 내동면 독산마을로 통하는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었으나, 국토 개발 계획에 의해 지금은 진주시와 경상남도 하동군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변이 되었다. 또한 이곳으로 진주시와 전라남도 순천시를 잇는 경전선 철로가 지...
-
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진주는 역사적으로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도로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국도와 남북을 연결하는 통영~대전 간 고속국도가 교차하고 있고, 2번 일반국도·3번 일반국도·33번 일반국도가 통과하는 영남과 호남 간 그리고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 간의 교통 요충...
-
도서(圖書)와 회화(繪畵) 및 기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보관하여,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기관. 도서관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도서를 모아둔 건물’이 된다. 도서란 원래 ‘하도낙서(河圖洛書)’를 줄인 말로서 『역경(易經)』「계사전(繫辭傳)」에 있는 “하출도낙출서 성인측지(河出圖洛出書 聖人則之)”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동양에서 도서...
-
도수조합은 1910년 형평사가 형성되기 전 일종의 백정들의 협동조합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백정은 천민이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신분제가 철폐되었으나, 여전히 백정들은 신분차별을 받았다. 게다가 일제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도축장의 경영이 일본인에게 넘어감으로써 생존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할 형편이었다. 신분차별과 생존의 위협에 위기감을 느낀 백정들이 1910년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
-
조선시대 진주성 동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로 사방...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재. 동면서재는 1566년(명종 21)에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동서남북 각 면에 서재(書齋)를 설치하였는데, 그중에서 문산면 서지골에 세운 것을 말한다. 박승임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여...
-
특정한 지역이나 수역(水域)에 사는 동물의 전(全) 종류. 특정 동물군에 대해서는 곤충상·연체동물상 등으로, 지역에 대해서는 한국의 동물상·남극의 동물상 등으로, 환경에 대해서는 삼림동물상·토양동물상·호소동물상 등으로 그리고 생활양식에 대해서는 부유동물상·유영동물상 등으로 구분한다. 지구상의 특징 있는 서로 다른 동물상을 가진 구역을 동물지리구로 구별한다. 동물 군집이 양(量)적인...
-
진주성 바깥 성벽에 위치했던 동쪽 누각. 동장대는 조선시대 진주성에 설치됐던 4개의 장대 중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동쪽 누각을 말한다. 지금의 중앙사거리와 중소기업은행 진주지점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장대는 진주성 외성벽의 신북문과 동문 사이에 위치해 있던 관계로 가장 치열한 접전 장소가 되었다. 임진왜란 중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왜군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하는 제의. 동제는 마을 단위의 공동 제의로써 마을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상부상조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당산제, 동신제, 당제 등으로 불린다. 동제는 전통적인 연례행사로서 마을 집단의 사회적 의미와 의례라는 종교적 기능이 복합된 토속신앙으로 볼 수 있다. 동제를 지내는 목적은 주로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고 액을 쫒아내...
-
1894년(고종 31)에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하여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운동. 동학운동 당시 동학군과 일본군과의 대규모 격전이 있었던 곳은 진주 고승당산(高僧堂山)이었다. 고승당산은 해발 185m로, 일명 고시랑산 또는 고성산(高城山)이라 한다. 고승당산은 지표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동남쪽 들판은 덕천강을 경계로 하여 진주시 수곡면...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전통사찰. 878년(헌강왕 4)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으며, 1603년(선조 36)에 계형대사가 중건하였다. 1946년 창담 스님이 수도장의 조건을 구비하고, 시설을 개수하여 1962년에 청곡사 암자에서 해인사 말사로 등록하였으며, 1963년에 철웅 스님이 대웅전을, 1970년에는 법령 스님이 요사채를 각각 보수하...
-
경상남도 진주시의 장석제작 기능장.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까지 진주지역은 사족이나 부농이 많았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 때문에 전통가구 등이 많아 장석의 수요가 많았으며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통가구 제작업체가 있는 것도 이러한 전통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주는 소목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였던 정돈산이 운영했던 고전 공방이 있어 이 지역의 소목공예는 전국적...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뒤쪽에서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까지 남강 변에 걸쳐 있는 벼랑. 뒤벼리의 벼리는 벼랑 즉 낭떠러지를 말한다. 뒤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이다. 남강변의 또 다른 벼랑으로 새벼리와 대조적인 이름의 지명이다. 새벼리는 동쪽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이다. 남강변을 따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두고 도로가 나 있다. 진주성의 동쪽 기슭을 흘러가던 남강물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하며, 제의를 올리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 마을신앙은 일반적으로 고등종교와 달리 형식과 내용이 조직적이지 못하며, 지역마다 성격이 다르게 나타난다. 자연을 숭배하면서 자연을 신격화하고 신앙하면서 형성된 마을신앙의 대상은 산·물·바위·나무·동물 같은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며, 신앙의 목적도 단순히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극히 현...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있는 도시가로명. 도시 가로가 행정 구역인 망경동을 지나고 있어 망경로라고 하였다. 1979년 3월 5일 22개 노선 및 7개의 광장명을 확정하고 1982년 1월 23일 가로명 설치 조례를 제정 공포하고 1983년 2월(조례 제989호), 1985년 7월(조례 제1184호) 개정하였다. 진주의 남강을 가로지르는 진주교의 남단에서 망경동의 육거리를 거쳐 내동...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있는 산. 망경산(望京山)이라고도 한다.『진양지』에는 “망진산은 주(州)의 남쪽 강변을 넘어 6리에 있다. 『동국지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망진(望晉)은 곧 망진(網鎭)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망경’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 어느 충신이 역적으로 몰려 귀양살이를 와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늘 이산에 올라와 북쪽(서울)을 바라보았다는 전설이 있어...
-
곡식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거나 물에 불린 곡식 등을 갈 때에 쓰이는 도구. 곡식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거나 물에 불린 곡식 등을 갈 때에 쓰이는 도구로, 표면이 거칠거칠한 돌을 납작한 원통 모양으로 다듬고, 이렇게 다듬어진 돌 2개를 위아래로 맞추어놓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멍을 판 윗돌에 갈 것을 넣고, 윗돌 옆에 수직으로 달려 있는 손잡이을 잡아 오른쪽으로 돌린다. 이...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농번기에 앞서 머슴들의 힘을 북돋워주기 위해서 음식을 대접하며 즐기도록 한 날. 2월이 되면 그동안의 농한기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농사철이 되므로 바빠진다. 가을 추수가 끝난 뒤로 계속 쉬다가 농번기가 눈앞에 다가오게 되면 고된 농사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머슴들의 힘을 북돋워주기 위해 2월 1일을 ‘머슴날’이라고 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하루를 푹 쉬게...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고분군.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산 187-2 일대에 있다. 1995년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구간 중 유적이 발견되자 문화재 보호 및 연구 차원에서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 일대를 중심으로 발굴작업을 하였다. 2개 지구로 나누어 오미리 산 187-2번지 외 약 4,300평...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지역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진주시 평거동에서 명석면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우수골 북쪽 야산 정상부와 사면에 위치하고 동쪽 맞은편 야산에도 분포하고 있다. 2004년 진주시·경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진주시-』에 5개 지점에 분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1곳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359-29번지는 진...
-
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위치한 면(面). 명석면 신기리에 있는 자운석 또는 운돌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신기리에 자웅(雌雄)을 상징하는 한 쌍의 암석이 있는데 이 돌을 운돌 혹은 울돌이라고 한다. 본 자웅석은 고려 23대 고종18년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집현산의 암석이 석성 축조공사로 힘든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가던 중 승려로부터 축성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신에 눈...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일대에서 일어났던 민간인 학살사건. 1950년 7월을 전후하여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일대에서는 육군 특무대 부대원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다. 민간인 학살의 발단 경위와 경과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조사가 미흡하여,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몇몇 증언들에 의해 사건의 참상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소재 지역별 보도연맹원들을 중심...
-
한국전쟁 당시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에서 일어났던 미군 전투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전쟁 당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의 사망도 많았다. 이 중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군이 아닌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도 미군 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제기되고 있다.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 기총소사사건은 당시 현장 목격자였던...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풍수사상(風水思想)과 관련된 설화.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1980년 8월 7일 일반성면(一班城面) 시정부락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허억수[남, 당시 71세]이다. 두필이라는 머슴이 대곡면(大谷面)에 살았다. 재령이씨 집의 하인으로 생활했는데, 대문을 넘을 때마다 살짝...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 호는 절강(折江). 함평 출신으로 1417년(태종 17)에 과거에 급제하여 사간원 좌사간(左司諫)을 지냈다. 세조 때 모친을 모시고 진주로 와 살았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높았다. 마침내 모친상을 당하여 상여가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물살이 세어 못 건너가자 하늘을 향해 통곡하니, 흐르는 물이 중단되어 강을 건너 장례를 치렀다....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소재하는 건축물. 1740년(영조 16) 이래로 의기 논개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의기사(義妓祠)를 지켜온 진주 기생들의 모임 장소로 건립되었다. 원래는 논개 사당 아래 있었는데, 진주성 정화사업을 추진하면서 1969년 지금의 촉석광장 서북쪽,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북쪽으로 옮겼다. 목조기와의 익공형식 건물이다. 대문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이...
-
조선 전기의 문인 이정(李瀞)[1541~1613]의 시문집.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호는 모촌(茅村). 그의 증조부는 부제학을 지낸 이중현(李仲賢)이고,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경성(李景成)이다. 그의 아버지는 남명 조식과 자주 왕래하였으며, 만년에는 모두 진양 원당(元塘)으로 이사하였다. 모촌 이정은 모은(茅隱) 이오(李午)의 5대손인데, 모은 이...
-
큰 하천의 주변에 홍수로 인한 범람이나 낮은 곳에 물이 모여 만들어진 웅덩이. 하천의 범람 등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배후습지(背後濕地)에 물이 고여서 형성되거나 흐르는 물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만들어진 웅덩이를 말한다. ‘못’이라는 지명이 붙기도 하고 한자인 ‘지(池)’가 붙기도 한다. 대체로 저수지 등으로 이용된다. 진주 지역에는 가마못 등 주요 못들이 있는데, 이들 못에 대해...
-
무당(巫堂)을 중심으로 하여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풍속이나 신앙. 민간의 신앙은 미신타파라는 계몽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국 각처에 두루 분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 무속이다. 무속은 살아있는 종교로서 민간에 깊숙하게 뿌리박고 있으며, 우리의 종교, 사상, 역사, 문화, 음악, 연극 등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잡귀를 쫓음에 있어서 무당은 신과 인간의 매개...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寺奉面)에 전해오는 무식한 신부 이야기. 1980년 8월 9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사봉면 북마성리 매껄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구술자는 심을순(여, 66세)이다. 옛날 한 사람이 딸을 혼례 시키는데, 행례청(行禮廳)에서 신부가 삼강오륜을 알아야만 예식을 마치지, 모르면...
-
국민경제 간의 상품교환을 통해 재화의 효용 및 경제가치를 증가시키는 활동. 초창기의 무역은 ‘서로의 산물을 교환하는 것’에 국한되었으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넓은 뜻의 무역은 단순한 상품의 교환과 같이 ‘보이는 무역(visible trade)’뿐만 아니라 기술 및 용역과 같이 ‘보이지 않는 무역(invisible trade) 및 자본의 이동’까지도 포함한다. 따라서 현재의 무...
-
인간의 육체를 표현매체로 삼아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 무용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시와 음악은 시간과, 회화와 조각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고 할 때 그 차이를 보다 확실히 할 수 있다. 발레처럼 공간의 패턴이 중심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탭댄스처럼 시간적 리듬이 중시되는 것도 있다. 따라서 여러 예술 분야 중에서도 무용이 갖고...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에 있는 샘. 정평리 응석사 입구에 있는 샘물로, 바위 벽에서 스며나온 물이 바가지만한 샘에 고이면서 흘러넘친다. 물빛이 젖 색깔처럼 뽀얗고 질감이 부드러우며 뒷맛이 달콤하다. 예로부터 이 샘터에서 하늘을 향해 무지개가 아름답게 그려져 ‘무지개샘’이라고 불러왔다. 정평리 산 9번지 응석사(凝石寺) 일주문 옆에 있어 응석사행 차편을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와 일반성면 창촌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고분군. 일찍이 『문화유적총람중권 -경상남도-』에 진양 무촌리 고분이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마을 남동방 약 500~600m지점의 구릉상에 있으며, 도굴되었다. 말무덤 또는 마을무덤이라고 전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고분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진양 무촌리는 행정구역상 경상남...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삼곡리 문산천 위에 놓인 다리. 교량의 길이는 31.0m, 폭은 3.0m, 높이는 4.7m이다. 경간의 수는 3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0.0m이다. 총 차선수는 왕복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RC슬래브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벽식이다. 설계하중은 DB-13.5, 통과하중은 24.3t이며, 난간 재료는 콘크리트와 철재로 되어 있다....
-
예부터 진주지방에서는 기우제 행사의 하나로 줄다리기를 많이 행하였는데, 문산읍 소속 8개 이의 어느 마을 할 것 없이 소속 전 마을이 참가하여 실시한 줄다리기가 있었다. 이 줄다리기는 승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기우제라는 의식이 더 중요하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행하는 날짜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날을 정하여 실시하는 행사이다. 지금은 행하여지지 않지만 한...
-
(1)소문리와 소촌역 문산읍의 소문리는 조선시대에 소촌역(召村驛)이 있었던 곳이다. 『여지도서』의 경상도 진주목 역원조(驛院條)에 의하면, 역의 책임자로 본래 역승(驛丞)이 있었으나 나중에 찰방(察訪)을 두었다고 한다. 찰방은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에 소속되어 도로의 역참(驛站)을 관할하던 종6품의 관직자로, 일정한 구간의 간선도로를 단위로 찰방 또는 역승을 두어 이를...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에 있는 마을. 문산읍은 조선시대에 진주목 동면(東面)이라 하였으며, 법륜리(法輪里)·굴곡리(屈谷里)가 소속되어 있다가, 조선 후기에 이를 합하여 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다시 갑오경장 때 문산면(文山面)이 되고, 1914년 4월 1일 진주군 문산면·갈곡면(葛谷面)과 조동면(槽洞面)·이곡면(耳谷面)·송곡면 (松谷面) 각 일부 등을...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섬겨온 집 문간의 출입을 단속하는 가신(家神). 일명 수문신(守門神)이라고 한다. 진주지역에서는, 대문을 통해 모든 것이 드나들기 때문에, 잡귀나 부정도 대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생각하여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진주지역에서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액(厄)을 막아주는 문신을 모시기 위해 주로 뚜껑 있는 바구니에 오색 헝겊을 담아 두었다. 때로는 무당의 쾌자를 넣기도 한...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문익점(文益漸)과 정천익에 관한 전설.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면의 종자를 가지고 왔다는 첫 번째 기록은 권근(權近)의 상소문에 보인다.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주안동 촉석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이일해(남, 76세)이다...
-
1920년 경 도동오광대의 말뚝이 역을 맡았던 연예인. 1920년 경 진주 시내에 살았던 인물이다. 판소리를 잘해 권번의 선생 노릇을 할 정도로 가무에 능하였다고 전해지며, 특히 오광대 말뚝이 역을 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주오광대의 연희자 조사에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와는 계통을 달리하는 전문적인 연예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재영은 도동오광대의 연희자 한보...
-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하륜(河崙)[1347~1416]이 태어난 곳. 하륜의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이다. 이방원(李芳遠)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이후 영의정부사·좌정승·좌의정을 역임하였다. 사후 태종의 묘정(廟庭)에 봉안되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에 있는 사당. 진주정씨의 사우로서, 정예(鄭藝)·정시양(鄭時陽)·정유(鄭裕)·정수균(鄭守均)·정홍차(鄭洪且)·정안사(鄭安社)·정수(鄭需)·정을보(鄭乙輔)·정이오(鄭以吾)·정황(鄭璜)·정분(鄭苯) 등 11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이들 11위 중 진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이오, 정분 부자로, 정이오[1354~1434]는 고려 공민왕대에 나서 세종대까지 활약...
-
언어를 표현매체로 한 예술 및 작품. 진주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진주 문학의 연원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욱면랑(郁面娘)의 성불 등천」이 있다. 이것은 진주를 배경으로 한 불교설화인데 수행과 정진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의 장엄한 종교 문학이 되기도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기록에서 진주를 문향(文鄕) 혹은 명시(名詩)의 고향이...
-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문학활동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 1949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설립되고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인준을 받은 진주특별지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 제전인 영남예술제(1959년 개천예술제로 변경)를 개최하였다. 진주의 문학인들은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에 속해 활동을 했는데 그 주역은 설창수(薛昌洙)[1916~1998]이다. 설창수는 1949년부터 1...
-
진주지역의 민족 예술인들이 광복을 맞이하여 1945년에 설립하였던 향토문화단체. 문화건설대는 1945년 광복을 맞아 설창수, 박세재, 박생광 등이 발기하여 조직되었고, 민중의 계몽과 진주지역의 향토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한 단체이다. 문화활동을 통해 민중을 위무하고, 올바른 민족사관의 수립에 기여하여 민족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
문화를 누리고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시설 일체를 일컫는 말. 현대 문화시설에는 도서관, 박물관, 각종 예술 공연장 등이 포함된다. 1.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성지 내에 대지면적 17,930.66㎡, 건축면적 2,727.29㎡, 연면적 4,948.78㎡, 지하 1층 및 지상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980년 12월에 착공하여 1984년 11월 2일 개관하였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초창기에 가...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창립된 사물놀이 공연 및 큰북 공연단체. 문화예술그룹온터는 2006년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정우열을 대표로 하여 창립된 사물놀이 전문 공연단체로 문화마을 들소리에서 독립하였다. 외래예술 공연을 지양하고 전통 민족문화를 확산시켜 건전한 지역문화를 조성함은 물론 한국 민속예술 인구의 저변확대와 한국 민속음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 국내외 동포들의 민족정서함양에 이바지...
-
예술 문화 발전과 대중화에 힘쓰기 위해 만들어진 예술인들의 모임. 문화예술단체는 각 분야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으며, 한국문화예술단체연합회가 이를 총괄하고 있다. 진주시에는 한국문화예술단체연합회 진주지부를 중심으로 여러 문화예술단체가 있다. 이들 문화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각 분야의 문화를 대중화하고, 계승·발전시키는 것이다. 진주시의 대표적인 국악단체로는 한국국악협회 진...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 문화재는 그것이 구현하는 정신적 가치와 시각적·음향적으로 표현하는 심미적 가치가 매우 독특하고 주체성을 보존하는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해당 문화재를 창조해 낸 집단이나 민족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중요하다. 문화재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보이는 물질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구전, 음악, 인종학적인 유산, 민속·...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물레질을 소재로 한 노동요. 길쌈노동요는 삼을 삼거나, 물레질을 하거나, 베를 짜면서 부르는 모든 노래를 총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길쌈노동요에는 삼삼기 노래, 물레질 노래, 베짜기 노래가 있다. 물레질 노래는 실을 자아내기 위해 물레를 돌리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물레질은 일정한 동작을 되풀이하는 일이지만, 일의 속도는 일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
-
그림이나 조각처럼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며 눈으로 볼 수 있는 미를 표현하는 예술. 진주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아오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미술문화가 전개되었다. 이는 가야시대 토기류 같은 현존 유물이나 신라시대의 화성(畵聖) 솔거(率居)가 유마상(維摩像)을 그렸다는 문헌기록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말 왜구의 침략, 임진왜란 등의 거듭된 전화(戰禍)로 많은...
-
민간(民間)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앙(信仰). 일반민중의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 전종교적(前宗敎的)이며 주술적(呪術的)인 자연적 신앙을 통칭하는 말로, 민간신앙에는 일반민중의 생활 속에서 형성된 마을신앙의 대상이 되는 동신(洞神, 마을 신)을 위시하여 가신(家神, 집안 신), 무속, 독경, 자연물, 영웅, 사귀(邪鬼) 등에 대한 신앙과 풍수, 점복, 예조, 금기, 주술, 풍수...
-
민간인의 사고, 언어, 행동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유형·무형 민간문화 현상 또는 문명국가의 서민사회에 전승되는 기층문화. 민속은 민중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전승되어온 전통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원시·고대 문화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것이 민속이다. 우리나라의 민속은 그 지방 고유의 민속으로 자리를 잡기보다는 대개 어느 지방에서나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일반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
각 지역마다 전승되어 온 전통적 기법과 그 고장 산물을 이용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조형예술. 민속공예를 통해서 만들어진 물건을 민속공예품 또는 민예품(民藝品)이라 한다. 가장 오래 된 형태는 원시공예(原始工藝)이다. 유적에서 출토되는 구석기는 공구적(工具的) 성격이 짙어 이것을 공예라 부르기는 어려우며, 참다운 공예는 신석기시대에 토기가 등장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
-
경상남도 진주지방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온 놀이. 민속놀이는 각 지방의 생활과 풍속을 잘 드러내는 전통놀이로서 강한 향토성과 더불어 민간신앙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즉, 농악이나 탈춤은 신을 즐겁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줄다리기나 고싸움 등은 신의 뜻을 파악하는 놀이였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민속놀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앙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구전 민요에 대한 개관(槪觀). 진주 지역은 남강을 낀 진주 분지의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농업이 발달하였고, 이런 지역적 배경으로 반촌(班村)이 많아서 농업 기능요는 물론이고 효친(孝親)을 비롯한 가족간의 정의를 노래한 민요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모심기노래는 모를 심을 때 앞소리꾼이 4음보 1행을 노래하면, 모심는 사람들이 뒷소리꾼으로 4음보 1...
-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하여 힘쓰는 애국운동. 진주사람들은 “진주에는 진주정신(晋州精神)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김시민(金時敏) 장군과 진주지역의 주민들이 보여준 애국 및 외세저항의 진주성전투, 1862년(철종 13) 농민들이 주체가 되어 봉건사회의 모순에 대해 저항하였던 농민운동,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진주동학군의 치열한 전투, 일제침략...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있는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산하의 지부. 미조직 사업장에 대한 조직화 사업을 강화하여 지역 노동운동의 구심점이 되고, 민주노총 합법화 투쟁과 노동악법 철폐·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 확보와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8년 진주지역 민주노조연합이 결성되어 민주노조의 조직적 결집체로서 활동해 오다가, 1992년 활동이 정지되었다가...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손순(孫順)의 선계는 신라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이다. BC 57년 구례마가 다른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에 올랐고, 그 후 32년(유리왕 9)에 사성을 받아 손씨가 창성되었다. 그러나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흥덕왕 때 월성군에 봉해진 손순을 시조로 하였으며 손순의...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 전승되는 바깥사돈과 안사돈과 동침을 소재로 한 설화. 민담 가운데서도 소화(笑話)는 ‘웃음을 주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소화의 특징은 단편성을 들 수 있는데, 다른 설화보다 이야기 자체의 길이가 짧으며 간결한 표현이 특징이다. 소화는 그 형식적 특성상 이야기의 최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말에서의 재치와 임기응변의 반전이...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행해진, 농사와 관련이 있는 바람을 잠재우기 위하여 신을 달래는 풍속. 영등할머니는 바람과 비를 일으키는 신으로, 진주지역에서는 ‘영등할만네’ 또는 ‘영등할멈’이라고 부른다. 영등할머니는 2월 초하룻날 땅에 내려왔다가 20일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데, 풍재(風災)를 안고 다니기 때문에 이를 달래기 위해 바람을 올리는 것이다. 영등할머니가 땅에 내려올 때는 며느리...
-
진주의 향토 시인인 박노정[1950~현재]의 첫 번째 시집. 시인이 1980년 『호서문학』에 등단한 이후에 발표한 62편을 묶은 시집이다. 1991년 9월 25일, 자유사상사에서 가로쓰기 형태의 시집으로 초판이 간행되었다. 시인은 특별한 의미 없이 선별하고 차례를 정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진주와 관련된 소재들이 눈에 띈다. 「우리 누님, 논개(論介)」, 「비봉루」, 「진농(晋農)...
-
자식에게 옷 대신 자루를 입힌 바보 마누라의 이야기로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새마을에서 구연된 설화. 「바보 마누라」는 소화(笑話)이다. 민담 가운데서도 소화는 ‘웃음을 주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소화의 특징은 무엇보다 단편성에 있다. 설화의 다른 종류들이 다수의 등장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소화는 단일한 사건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일반적인 설화...
-
바보 신랑과 신부의 어리석은 대화를 다룬 이야기로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북마성리 매껄마을에서 구연된 설화. 신화나 전설 같은 여타 설화와 달리 민담은 재미와 흥미만을 목적으로 구연된다. 따라서 그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특히 소화(笑話)는 순간적인 심심파적을 위해서 제시되는 짤막한 이야기이다. 소화의 구연이 쓸데없이 길어진다면 빨리 결말을 듣고 싶어 하는 청자는...
-
고고학 자료와 예술품, 역사학적 유물, 그 밖의 학술적 자료를 수집·보존·진열하여 교육이나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일반에게 전시하는 시설. 국제박물관회의헌장(ICOM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예술, 역사, 미술, 과학, 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 동물원, 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 및 표본 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존·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해 공개 전시함...
-
조선 중기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행원(行遠), 호는 능허(凌虛). 1566년(명종 21)에 태어나 정구(鄭逑)에게서 『대학(大學)』과 『심경(心經)』을 배웠다. 당시의 권세가였던 정인홍(鄭仁弘)을 만나보고 스승인 정구에게 정인홍을 멀리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모두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를 못마땅히 여기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원익(李元翼...
-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화가. 내고 박생광은 말년 팔순의 나이에 채색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진주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한국 화가이다. 박생광은 190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나왔다. 1920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교토[京都]에서 다치가와미술학원[입천산운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學院)]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23년에는 교토시립회화전문학...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에 있는 광산김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광산김씨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박종래(朴宗來)가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로 들어가는 효자교 부근 진주~합천간 지방도 옆에 남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53㎝, 폭 55㎝, 두께 37㎝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의 제목은 “효부광산김씨지려(孝婦光山...
-
작곡가. 박중후는 1932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원 학장을 역임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아시아 작곡가 연맹 이사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왕성한 작곡활동을 펼쳤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미국 이스트만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하였...
-
밀양사람 박효근의 효행을 정려(旌閭)하고자 임금께 올린 조선시대의 상서문(上書文). 이 문서는 밀양 사람 박효근의 효행이 뛰어나 어머니의 병환을 낳게 하여 진주를 비롯한 인근지역의 유생들이 정려해 줄 것을 요청한 상서문이다.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상서문과 완문, 입안, 교지는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호구단자는 그냥 접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 배접이나 보관용 상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치암 박충좌(朴忠佐)의 후손이다. 1585년(선조 18)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합포성(지금의 마산)까지 진격해 적과 싸웠다. 진주지역에서 활약하던 충용장군(忠勇將軍) 김덕령(金德齡)이 모함을 당하여 구속되자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에게 글을 올려서 김덕령 장군의 억울하고 원통함을 밝혔다. 이후 의병을 일...
-
경상남도 진주시 반성면 일대에서 일어났던 민간인 대량 학살사건. 한국전쟁 중에 전국적으로 각 형무소에 수감 중이었던 공산주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으며, 진주지역에서도 민간인들이 학살된 사건이 여러 발생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반성면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이 계속 남쪽으로 남하하자 그들에게 합세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에 위치한 기차역. 1924년 6월 15일 마산-진주 간 총연장 70㎞가 개통되면서, 1925년 6월 10일 역사를 신축 준공하고 보통역으로 영업개시 하였다. 1997년 6월 1일 평촌역이 간이역으로 격하되면서, 반성역에서 신호취급 및 영업관리를 하고 있다. 2002년 7월 28일 새 역사를 준공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 653-2[동부...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형평운동에 반대하여 일어났던 운동. 1923년 백정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형평운동은 백정에 대한 신분차별을 사회적 관습으로 여겨오던 반대 세력들과의 충돌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과 관습으로 인해 진주에서 형평사 발기(發起) 직후 열린 축하연에 기생(妓生)도 나가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노동자·빈민까지도 형평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 한다. 인위적으로 대단위 호수를 만들어 외침을 막아야 한다는 전설에 따라 발산이라 하였다.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可樹介面) 둔두동(屯頭洞), 계룡동(溪龍洞) 각 일부와 마산부 양전면(良田面) 발산리(鉢山里)를 합쳐 발산리라 하였다. 북쪽의 영봉산(395m)과 남쪽의 깃대봉(520m...
-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널리 듣고 볼 수 있도록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방송법」 2조 1항에 의하면, 방송은 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제작하고, 이를 공중(시청자)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을 말한다. 방송을 목적으로 지상의 무선국을 이용하여 행하는 지상파방송, 전송·선로 설비를 이용하여 행하는 다채널방송인 종합유선방송, 인공위성의 무선국을...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동요. 「방아노래」는 많은 지역에 널리 유포되어 있으나, 지역에 따라 노랫말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 「방아노래」에는 절구방아 노래, 디딜방아 노래, 물방아 노래, 연자방아 노래 등이 있다. 진주 지역에 전해 오는 「방아노래」는 2종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콩달콩’이란 의성어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절구방아 노래가 아닌가 한다. 1...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방어산에 있는 산성. 고려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의 테뫼식 산성이다. 명칭과 관련하여서는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방어산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1379년(고려 우왕 5) 봄에 왜적과 방어산성에서...
-
진주지역 최초의 서양식 민간병원. 배돈병원은 호주선교회가 진주지역의 환자를 중심으로 기독교 전도 사업을 하기위해 1913년 11월 4일에 세워졌다. 배돈병원의 건립은 호주선교회가 진주에 들어왔던 구한말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는데, 1910년 호주의 건축가 켐프가 병원설계도를 작성하면서 활성화되었다. 당시의 공사업자는 일본인 토목기술자였으며 호주선교회가 세웠던 당시 옥봉리교회 옆에 근...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민요. 남녀간의 수작으로 구현된 대화체 민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통 사회의 암묵적인 도덕 관념인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으로부터의 일탈 현상을 보여주는 민요이다. 배경이 제시된 후 남녀간의 대화 내용으로 이루어진 4·4조 민요이다. 진주 큰 들 돌아진 새미 배추 씻는 저 큰아가 겉에 겉잎은 나를 주오 당신 어제 날 왔다고 속에 속잎을 도라하...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해오는 민요.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구비문학론’ 강좌의 1999년 현장 조사에 의해 채록된 바 있다. 국어국문학과 박은진 외 31명이 진주 시내의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산아산아 백두산아 눈비맞는 백두산아 눈비맞는것도 원통한데 이름조창 백두든가 백두산 중허리 허리안개 돌고돌아 종종구름이 되었구나 저기가는 저구름아 눈실었나 비실었나 눈도비도 아니실고 소...
-
출생 후 100일이 되는 날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행하는 의례. 출산과 관련되어 행하는 삼칠일은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는 의례라 할 수 있지만 백일은 아이를 위한 축하행사라 하겠다. 백일을 지정하여 의례를 행하는 것은 우리 계절이 사시(四時)의 변화가 뚜렷하여 100일 정도를 지나야 환절기도 경험하게 되어 기후의 변화에 어느 정도 적응하여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
음력 7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백중은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에 절에서 백가지의 나물과 꽃, 과일을 갖추어 제를 지내고 불공을 드린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백종(百種)·백중(百衆)·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이 날 각 가정에서도 나물을 여러 가지 시절음식으로 만들어 먹으며, 진주시 진성면 등지에서는 농심제(農心祭)를 지내기도 한다. 진주지역의 풍속 중 재미있는 것은 백(白)가지,...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과 관련된 설화. 버릇없이 자란 아들의 개과천선 설화는 본격담으로서 동물을 소재로 한 동물담, 웃음의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소화(笑話) 등과 달리 인간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흥미 위주의 이야기인 민담에 속하면서도 그 내용이 교훈적이거나 윤리적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교훈적 의...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부동마을 입구의 이름. 상문리 부동마을 입구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서 있는데, 진주 지역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한다. 따라서 장승이 서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벅수골이라 지칭하는 것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서 진성면과 마산시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잡귀가 마을에 침범하지 못하고 농사도 풍년이 되며 평온한 마을...
-
경상남도 진주에 전해 내려오는 베를 짤 때 부르는 노래.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베를 짜면서 부르는 노래로, 집에서 베틀을 이용하여 베를 짜던 여자들이 주로 불렀다. 진주 지방에 전해오는 「베틀노래」는 4개가 조사되어 전하고 있다. 「베틀노래」 1은 1980년 8월 3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
-
의술로써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 보건의료는 사전적인 의미와 협의의 의미로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아플 경우 그 병을 낫게 하여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리는 의료행위만을 의미하지만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면 의술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술을 시행하는 병원, 의원, 약국도 모두 보건의료기관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현대 의학이 도입된 것은 불과 100년에 지나지 않는다. 구한말 의...
-
진주의 시조시인이며 교수인 이명길의 문집. 정치학 박사 이명길이 타계한 4년 후인 1998년에, 진주 지역의 문인 및 유지 등이 모여 그의 인간됨을 추모하고 문학, 향토사연구 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간행한 선집(選集) 성격의 문집이다. 간행처는 금호인쇄·금호출판사이며, 간행일은 1998년 11월12일이다. 기리 이명길 박사 문집 간행위원회가 구성되고 여기에서 기획, 편집, 교정,...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승되는 도리깨로 보리타작하면서 부르는 민요. 보리타작 노래는 보리타작의 기능적 성격에 잘 부합하는 노래이다.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하는 일은 행동을 통일하여 빠르게 진행되는데, 노래도 그에 맞추어 사설을 짧게 메기면 짧은 여음으로 일정하게 받는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행동 통일이 요구되는 일의 성격상 짧은 사설과 빠른 변화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이 노래는 대...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의 교회. 1927년 8월 당시 호주 선교사가 설립한 시원여학교에 다니던 정남경에 의해 설립되었다. 정남경은 집안에 미신이 성행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용산리 조비마을의 야학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다가 아버지 소유의 밭을 얻어 예배당을 건립한 뒤 빅실교회라고 이름지었다. 빅실교회가 설립되어 예배를 올리자...
-
현대의 한학자 최인찬의 문집. 최인찬(崔寅巑)의 문집으로서 판본은 석인본(石印本)이며, 장정은 선장(線裝)으로 되어 있다. 모두 21권 8책으로 구성된 방대한 양의 문집이다. 발행처는 진주의 봉산서실(鳳山書室)이며, 2001년에서 2006년까지 총 5년에 걸쳐 발행되었다. 책의 표지에는 ‘시서복응당고(詩書服膺堂稿)’라는 서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속지에는 저자의 흑백사진이 첨부되어...
-
한해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설날 새벽이나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난 후에 사서 벽에 걸어두는 조리 복조리 장수는 섣달 그믐날 밤 복조리를 한 짐씩 지고 다니면서 팔았다. 조리는 물량에 비해 무게가 그다지 많이 나가지 않아 멀리서 보면 ‘산더미처럼 많다.’는 표현을 할 만큼 많이 지고 다니면서 팔았다. 복조리는 산죽(山竹)으로 만드는 만큼 지리산 주변에서 많이 생산되는 재료로...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행해진, 정월 대보름 전날 부잣집의 흙을 훔쳐오는 풍속. 복토 훔치기는 진주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대보름 세시풍속의 하나로, 조선시대의 풍속을 기록한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등에도 나오고 있다. 정월 대보름 전 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잣집의 부엌이나 뜰의 흙을 훔쳐와 자기의 부엌 부뚜막에 펴놓았다. 부잣집의 흙을 가져오면 복도 함께 묻어온다는 속...
-
경상남도 진주시 봉곡동에 위치한 성당. 봉곡성당은 천주교 마산교구 진주지구 소속의 성당으로, 관할구역은 진주시의 상봉서동 일부와 화인APT·상봉1,2APT·상봉한주APT·상봉동동·봉곡동 일부와 인사동 일부·남성동·유곡동, 그리고 명석면 전역이다. 주보성인은 로사리오의 성모이며, 지원수도회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이다. 1977년 옥봉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신설되었으며, 초대주...
-
진주시 봉곡동에 있는 초등학교. 21세기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는 자율적·창조적·도덕적인 인간 육성 1969월 10월 6일 진주 봉곡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70년 3월 1일 21학급으로 편성하여 개교하였고 70년 4월 1일 초대교장으로 이도용이 부임했다. 1985년 2월 18일 병설 유치원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2000년 2월 18일에 남자 농구부를 창단하였고,...
-
경상남도 진주시 주약동에 있는 골짜기. 진주 시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망진산의 남쪽으로 뻗은 골짜기로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등산객들이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봉화를 올리던 골짜기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봉화골이라고 하다가 이를 줄여서 봉골이라고 하였다. 망진산 남쪽 아래에 있다. 옛날 망진산의 봉수대가 있었던 곳으로 1995년에 복원하였다. 이 봉수대는 진주8경 중의...
-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봉(熢: 횃불), 낮에는 수(燧: 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방법. 봉수는 전근대시대에 변경의 급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의 영진(營鎭)에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했던 통신제도로서 민간통신으로는 활용되지 못했고 단지 군사통신으로만 사용되었다. 봉수제의 유래는 오래된 듯하며,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에 이...
-
경상남도 진주시 봉래동과 수정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봉수동에 해당하는 법정동인 봉래동과 수정동의 앞 글자를 합하여 봉수동이 되었다. 본래 진주군 진주면 대안동이었다가 1939년 10월 1일 진주부제 실시에 따라 옥산정으로 되었다. 해방 후 1949년 일본식 지명의 변경에 따라 봉래동과 수정동으로 고쳤다. 이후 수정동은 1973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에 의하여 수정남동과 수정...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계동·봉곡동을 관할했던 행정동. 법정동인 봉곡동과 중안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봉안동이라 하였다. 1949년 진주읍이 시(市)로 됨에 따라 리(里)가 동(洞)이 되었다. 1997년 7월에 중안동과 봉곡동을 통합하여 봉안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봉안동은 법정동인 중안동, 봉곡동으로 이루어졌으나 2013년 5월 1일 행정동 성지동과 함께 통합되면서 성북동으로...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대표적인 근대식 사립 초등교육기관.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을 위한 사업에 힘을 기울인 학교로, 현 진주시 봉래초등학교의 전신이다. 겉으로는 실용적인 교육을 강조하였으나 민족교육(民族敎育)을 위한 성격이 컸다. 1909년 순종(純宗)이 각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라는 칙령을 내리자 진주지역의 민족교육과 구국의 뜻을 함께한 김기수, 강재순 등이 모여 19...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대봉산 아래 위치한 4개의 알돌이 모여 있는 곳. 예로부터 진주강씨의 집안에는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고 진주 대봉산 아래 웅거하여 권세를 부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대봉산 위에 봉암(鳳巖)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이자겸(李資謙)의 아들 이지원이 척준경(拓俊京)과 모의하여 강씨 가문의 세를 꺾기 위해 밀사를 보내 봉암을 깨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후에 강씨...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集賢面)에 전해오는 봉강(鳳降)에 얽힌 전설. 집현면사무소 소재지인 봉강은 예로부터 집현면의 3대 명당 자리로 불린다. 봉황(鳳凰)이 내려와 앉았다 해서 지어진 ‘봉강’에는 안타까운 사연 하나가 전해온다. 봉황과 심술궂은 할머니 설화는 『집현면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봉강마을에 큰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봉황이...
-
조선시대 진주목 진주성의 북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서재. 북면서재는 1566년(명종 21)에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동서남북 각 면에 서재(書齋)를 설치하였는데, 이중에서 집현면에 세운 것이 북면서재이다.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 반남(潘南), 자 중포(重圃), 호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
-
현실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을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 종교. (1) 삼국시대의 불교 : 삼국 중 불교를 제일 먼저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72년(소수림왕 2) 6월에 전진(前秦)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이때 도입한 고구려불교의 특징은...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풀무질을 할 때 불렀던 노래. 이 노래는 본래 풀무질을 할 때 불렀던 것인데, 애기 어르는 노래로 그 기능이 변화된 것이다. 조심하고 정성을 들여서 해야 하는 풀무질과 마찬가지로 애기를 어르고 키우는 일 역시 조심해서 애기를 다루고 정성을 쏟아야 하기에 그 기능이 쉽게 전이될 수 있는 것이다. 애기를 어르면서 부르는 노래는 다양하다. “금자동아 옥자동...
-
석가모니의 모습을 회화나 조각으로 만든 상. 불상이란 불전 안에 봉안된 부처의 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불상들은 각기 다른 교리적 배경을 갖고 있는데, 크게 불상·보살상·조사상·신장상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진주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불상은 보물로 지정된 단성석조여래좌상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암사지석불, 평거석조여래좌상, 고산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 진주성전암목조여래좌...
-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관련된 읍치 풍수, 취락 및 주택 풍수, 비보 풍수, 풍수설화 등의 풍수적 사실과 역사적 경관, 그리고 옛 진주 주민들의 비봉산에 대한 문화생태학적인 환경지각과 그 의미를 포함하는 말. 진주의 비봉산은 진주 도심의 북쪽에서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표고 162m의 나지막한 산으로서 동서로 크게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서쪽 날개는 두고개(137m...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원에 소재하는 도시근린공원. 비봉산공원은 건설부 고시 제93호에 의해 1976년 3월 27일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비봉산 당산나무, 비봉루, 비봉산 산책로, 비봉산 체육공원 등이 있고, 전체 면적은 2,048,000㎡다. 비봉산은 높이 138m이고,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가 발달하였고, 시가지의 남쪽으로 남강이 흐른다....
-
경상남도 진주시내에 침입한 빨치산 유격대원들에 의한 진주군청 습격·방화사건. 1949년 9월 지리산 유격대가 진양군 수곡면 사곡마을을 습격하여 지서와 연결되어 있던 참호 방어업무를 하던 마을 주민 5명을 살해하였다. 또 진주시 판문북동 농민위원회 위원장 최팔십(崔八十)은 9월 초순경 진주시 남로당의 지시에 의하여 지리산 유격대원에 보급할 의류 20점, 신발 20컬레를 갹출하여 제공...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의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사면 우곡리(上寺面 隅谷里), 사령리(沙令里), 방촌리(芳村里), 일반성면 창촌동의 각 일부를 합쳐 사곡리라 하고 사봉면에 편입시켰다. 남강 하류 지역으로 강우시 농경지 침수가 잦은 편이다. 진주 시내에서 보면 동남 방향이며, 사봉면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사봉초등학교와 사봉우체국, 진양농협 사봉지소, 사봉보건...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진주향교에 속한 건축물. 9동으로 구성된 진주향교의 건축물 중 하나로 1986년 중건되었다. 진주향교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987년(고려 성종 6)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鄕學堂)으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011년(현종 2) 중수 및 서재를 중건하고 수학원(修學院)·학사(學舍)·서재(書齋)·사교학당(四敎學堂) 등으로 개칭하였다. 1398년(태...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한 애정요. 사랑 노래로 채록된 자료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구체적인 사설의 내용은 다르다. “비오소서 비오소서”로 시작되는 사랑 노래는 사랑하는 임이 가지 못하도록 비가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고, 이어지는 노래는 누추한 초가집이라고 임에게 오지 말기를 부탁하지만 우산과 갈모를...
-
시인 강희근(姜熙根)[1943~현재]의 네 번째 신작 시집이자 두 번째 시선집(詩選集). 『사랑제』는 시인 강희근이 『연기 및 일기』(1971), 『풍경초』(1972), 『풍경보』(1975)다음에 간행한 신작 시집이며, 시선집으로는 『산에 가서』(1977) 이후에 편찬한 것이다. 즉 이것은 신작 시집과 시선집의 성격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학문사에서 1980년 12월20...
-
강원도 지역 논매기 노래인 「사리랑」의 변이형으로서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민요. 강릉 민요의 논매기 소리에는 「오독떼기」, 「꺾음오독떼기」, 「잡가」, 「사리랑」, 「담성가」, 「싸대소리」 등 6종이 있다. 그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오독떼기」이며, 나머지 「잡가」, 「사리랑」, 「담성가」 등은 「오독떼기」를 부르다 힘이 들거나 지루해지면 부르는 부속적 노래라 할...
-
어떤 문제에 대하여 법을 적용하여 그 적법성이나 위법성, 권리관계 따위를 확정하여 선언하는 일. 진주의 사법제도는 고려 성종의 지방관 파견, 조선 성종의 『경국대전(經國大典)』반포, 대한제국의 진주재판소 설치, 일제강점기의 부산지방법원 진주지부 설치 등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는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진주목에...
-
북마성마을은 마을 앞으로 사봉면과 지수면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고 있고, 지수면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주거지가, 왼쪽으로 금평뜰이 펼쳐져 있다. 마을 앞과 뒤는 산으로 막혀 있으며, 동네에서는 현재 당산나무가 있는 산을 안산(案山)으로 부르고 있다. 좌청룡으로는 어봉곡, 우백호는 계곡산이며, 진산은 돌구산이라 하는데, 돌구산은 북마성, 신당, 계곡, 필동 등 이웃하고...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북마성리 매껄마을에서 전승되는 사위에게 술을 권하면서 딸을 부탁하는 권주가. 권주가(勸酒歌)는 제재면에서 가족관계요에 속한다. 가족관계요는 말 그대로 가족 관계를 주 제재로 한 노래, 예컨대 ‘달거리’, ‘사친가’, ‘사모곡’, ‘시집살이 노래’, ‘권주가’, ‘환갑노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권주가’는 술을 권하는 상대를 찬양·고무하여 술자리를 즐겁게 하...
-
가시광선·자외선·적외선·팽(膨)선·전자선 등의 작용에 의해서 감광층(感光層:건판이나 필름) 위에 물체의 반영구적인 영상(影像)을 만들어내는 것. 사진술은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과학인 동시에 또한 예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반된 복합성은 사진의 예술성을 논할 때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지금은 사진이 다만 예술의 복제가 아니라 복제예술(複製藝術)이라는 장르를 형성...
-
승려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법을 수행하고 설하는 장소. 사찰은 순수 우리말로 ‘절’이라고 한다. 절은 불상과 당탑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쳐 펴는 기능을 가진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주는 가야시대에 고령가야의 고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983년(성종 2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년)에는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진주는 경상남...
-
국민의 생활 안정 및 교육·직업·의료 등의 보장을 포함하는 복지를 추구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 공적부조의 가장 핵심이 되는 법률로 1961년 12월 30일 생활보호법이 제정·공포되었으며, 1978년에는 의료보호법이 제정·실시되었다. 1997년에는 IMF라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생활보호법의 기능상의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2000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의료보장의...
-
사회복지사업을 행할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 사회복지사업이란 법률에 의한 보호·선도 또는 복지에 관한 사업과 사회복지상담, 부랑인 및 노숙자 보호, 직업보도, 무료숙박, 지역사회복지, 의료복지, 재가복지, 사회복지관 운영, 정신질환자 및 한센병력자 사회복귀에 관한 사업 등을 운영·지원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사회복지시설의 종류는 42종으로 다양한데, 크게 유·아동복지시설, 장애인...
-
사회의 변혁·개량이나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집단적으로 전개하는 일체의 행동. 진주의 지역사회운동의 역사는 깊다. 1950년대 이전까지 사회운동의 발전에는 3·1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조건이 구조적으로 작용하였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지역에도 조선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대농 지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력한 상층계급과 소작이나 노동으로 생계를...
-
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사간 복린을 입향조로 하는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임. 가암 최제묵, 매산 홍직필의 문인으로 예학에 밝았으며 문집을 남겼고, 아들 삼수헌 효숙은 고산 임헌회를 사사하였으며, 아들 긍재 최동민은 연재 송병선의 문인이고, 그의 아들 운암 최인희도 진사로 간재 전우의 문인이다. 고려 때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낸 최천로가 시조이지만 중간이 실전되었고 후손 최복린이...
-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높이 솟은 부분. 산지의 고도는 일정한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수백m 이상의 것을 말하며, 그 이하의 것은 구릉(丘陵)이라 한다. 진주시 산지를 분류해 보면 동부 지역은 오봉산(524.7m)·방어산(530m)·깃대봉(520.6m) 등이 연결되어 산맥을 형성하고 있고, 서부 지역은 덕천강을 경계로 하동군과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경호강과 남강으로 이어지...
-
마을의 수호신으로 산신을 모셔놓은 신당. 우리민족 최초의 산신은 단군이다. 왜냐하면 『삼국유사』「고조선조」에 따르면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사달은 한문으로 조산(朝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산신은 일반적으로 남성이면서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듯이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어머니인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상촌마을에서 전승되는 산신령을 주제로 한 설화. 이야기에 나타나는 신선, 즉 산신령은 기본적으로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극복의 의지 또한 강하게 작용하였는데, 이렇게 형성된 불사의 관념이 특히 천제의 자손이라 생각했던 우리 민족에게 불사의 세계인 하늘과 그 세계로 가는 통로로 인식되는 산을...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강민첨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산앙사(山仰祠)에 봉안된 강민첨(姜民瞻)[?~1021]은 진주(晋州)가 본관으로 목종 때 문과에 급제, 1012년(현종 3)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하였다. 1018년 거란[契丹]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강감찬(姜邯贊)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
-
조선 말기의 기녀. 기녀 산홍은 진주 교방 소속의 기녀이다.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한사람인 이지용(李址鎔)이 1906년(광무 10)에 진주에 왔다. 진주에 온 이지용이 산홍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천금을 내놓고 첩이 되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산홍이 큰소리로 “세상사람 역적의 첩이 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지용이 노하여 산홍을 때렸다고도 하고 죽였다고도 하는데 자세...
-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 삼국시대는 신라의 건국(서기전 57년), 고구려의 건국(서기전 37년), 백제의 건국(서기전 18년)에서 시작하여 백제의 멸망(660년), 고구려의 멸망(668년)까지의 약 700여년을 말한다. 이 시기 진주는 처음 백제의 영토에 편입되어 거열성(居列城)이라 불렸다. 백제는 475년(개로왕 21) 9월에 고구려의 침공으로 수...
-
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삼을 삼으면서 부르는 노래. 삼베일은 전국적으로 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고성, 진주,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등지는 지금도 삼베 일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만큼 부녀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삼베일 소리를 전승시켜 오늘날도 불리어지고 있다. 거창 지역에서는 삼베일 소리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섬겨온 산육(産育)을 관장하는 신. 경상남도 진주지방에서는 산육을 관장하는 신을 여신으로 보아서 삼신할미라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삼신신앙이 있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삼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먼저, 삼신할아버지가 있다.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으로서 때로는 천신·용신·산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음으로 삼신할미가 있다. 풍백·우사·운사를 가리키는...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비. 1971년 7월 1일 3·1운동 52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열들의 의거를 기리기 위하여 진주시민들의 뜻을 모아 세운 기념비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에 의하여 독립선언이 있은 후, 거족적인 민족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이에 진주에서는 3월 18일부터 5월까지 대소 20여 회의 시위에...
-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지도로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으로, 1919년 5월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확산·전개되었다. 연 집회횟수 1542회, 집회 참여인원 200여 만명을 기록하며 평화적 시위를 전국적으로 전개하였으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사망 7,500여 명, 부상 1,600명, 피검...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진주 최초의 백화점. 삼중정백화점(三中井百貨店) 진주지점은 진주 최초의 백화점일 뿐만 아니라 조선·일본·중국을 석권한 삼중정백화점의 모태이기도 하다. 1905년 당시 니시무라(서촌구차랑)는 대구에서 잡화상을 하던 중강승차랑(中江勝次郞)과 동업하여 1906년 지금의 대안동 거리에다 삼중정오복점을 개업했다. 이후 삼중정상점을 개설하여 조선직물업계의 원조로서...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고분군의 분묘 옆에 세워져 있는 재실. 영모재는 단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1454]을 기리고 있다. 정분은 본관이 진주(晋州)로 자는 자외(子畏),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며,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1856년 가을에 진양정씨 종중의 논의를 거쳐 재실을 짓기로 합의하여 정분의 묘소 동편 옆에 중건하였다. 재실을 짓게 된 간략한...
-
사람이 죽은 후 장사를 지내는 일과 관련된 의례. 사람이 죽음으로써 관련하여 발생하는 일에 대한 모든 의식절차를 상례(喪禮)라고 한다. ‘상(喪)’이라는 것은 ‘죽음’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상례는 다른 통과의례와는 달리 최근까지도 굴건제복(屈巾祭服)을 입고, 곡(哭)을 하는 등의 전통형식으로 치러졌지만, 요즘은 서양의 방식과 다양한 종교의례를 따르는 경...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부를 관할했던 행정동. 원래 이곳이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옛날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상봉리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인 봉...
-
진주지역사회 주민들(개인 및 단체)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 물품 등을 회원들 간에 서로 주고받는 지역교환 제도. 현대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중앙은행에서 찍어낸 화폐만이 유일한 교환수단으로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어 온갖 생계형 범죄 등이 발생하는 현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해내기 위해서 지역화폐운동이 등장했다. 1983년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된 지역화폐운동은 1990년대를...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강응룡(姜應龍)의 상소에 얽힌 설화. 이 설화는 1983년 진주시에서 편찬한 『내 고장 전설』에 처음 수록되었다. 그 후 1994년 진주문화원에서 편찬한 『진주문화』16집에 다시 수록되었다. 조선시대 진주에 강응룡이라는 상소(上疏)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비록 글 솜씨는 뛰어나지 않으나 성품이 괴팍스러워 상소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강응룡은...
-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입하여 ‘최종 소비자 또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자’에게 재화를 판매하는 사업. 경제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상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개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업은 경제발전단계에 조응하여 변화·발전하여 온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개념에 대한 완전한 정립은 명확하지...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승되는 장례식 때 상여를 메고 가는 상두꾼들이 부르는 소리. 「상여소리」가 언제부터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채록 당시 후렴이 수록되지 않았으나 거창(居昌) 지역이나 의령(宜寧) 지역처럼 풍악소리, 풍물소리의 음률적 후렴 형태를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나가면서 상두꾼이 만가(輓歌)로 메기면 다른 상두꾼이 받아서 후렴을 반복하여 부른다...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었던 바위에 얽힌 전설. 옛날 어느 승려가 진주를 지나 마동 쪽을 돌면서 시주를 얻다가 한 동네 제일 부잣집의 대문 앞에서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였다. 때마침 혼자서 집을 보던 부인이 나왔는데 박절히 거절을 하였다. 스님이 시주를 간청하자, 부인은 쇠똥을 한바가지 떠서 동냥 그릇에 부어줬다. 승님이 쇠똥을 얻어 막 돌아설 무렵 남편이 돌아오며 이...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 보습은 땅파는 도구[굴지구(堀地具)]의 한 종류로써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보습의 출현과 농경의 시작을 유사하게 보아도 좋을 만큼 보습은 농경시작의 표식적인 유물이다. 보습은 굴지구로서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괭이와 구별이 용이하지 않는데, 땅을 파는 작업 형태에서 그 특성을 구분할 수 있다. 괭이...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원래는 바닥이 뾰족하고 V자형의 몸체를 가진 포탄형의 토기로 몸체에 빗과 같은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그어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긴 토기를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덧무늬토기나 겹아가리토기처럼 다른 무늬 장식 기법을 가진 토기도 빗살무늬토기 범주에 포함된다. 빗살무...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한 법정리. 윗마을이라는 뜻에서 상촌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침곡(針谷)에 속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침곡면 상촌동과 중촌동을 합쳐 상촌리로 하였다. 1969년 남강댐이 완공되면서 상촌마을과 중촌마을에 거주하던 가구는 대평마을 513번지로 집단 이주하거나 주공아파트 등으로 이주하였고, 현재는 적은 수의 가구만이 남아 있다. 남강변에 위치한...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상촌리 선사유적은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287번지와 395번지 일대의 밭 약 7,000평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다. 진주 남강댐 수몰지역 고고학 발굴조사를 위해 1996년 12월 23일부터 1998년 6월 30일까지 3차에 걸쳐 건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상촌리 일대는 A지구, B지구, 어성초밭, C지...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있는 생활체육관. 1990년 12월에 건립된 생활체육관으로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다. 배드민턴, 농구, 핸드볼, 배구, 탁구 등의 경기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진주시민을 위한 생활체육관으로서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위치하여 상평동생활체육관으로 불리는데, ‘진주시생활체육관’ 혹은 ‘진주시민생활체육관’으로도 불린다. 진주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보다...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소재하는 어린이공원. 상평어린이공원은 1991년 11월 1일 경상남도 고시로 지정된 도심 속 어린이 공원이다. 주변에 상평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어린이들의 휴식공간 확보를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진주시청에서 700m 정도 거리에 있고, 진주의 대표적 공업단지인 상평공단과 가람초등학교가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공원 주변으로 남강3로, 대신로, 동진로 등과 연결되...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서 진행되었던 도시구획 정비사업. 토지구획사업은 일제강점기 때 농경지 정리사업의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1911년 대사지(大寺池) 매립을 시작하여 1912년에 제1차 영정(대안동) 매립이 완료된 것을 시가지 정리사업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토지구획사업은 한국전쟁 때 잿더미가 된 대안지구 250,000평 정리사업으로, 1958년에 시설공사가...
-
새마을금고법에 의거하여 설립·운영되는 주민협동조합.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계와 향약, 두레와 같은 마을생활의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삶의 형태가 지배적이었다. 이는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여서, 공동체 정신의 계승과 지역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는데, 새마을금고는 이와 같은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1979년부터 1997년...
-
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 9-9번지[진양호로 532]에 있는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국 1997년 개국 이래, 지역공동체의 여론수렴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많은 문화산업을 벌이고 있으며, 홈페이지 개설 등을 통해 지역민들의 목소리와 지역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지역문화 발전과 계승에 힘쓰며, 지역 사회단체,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언로(言路)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
조선시대 진주의 행정구역 중 하나. 조선시대 진주성 서쪽지역으로, 현재 평거동, 대평면, 수곡면 지역과 하동군 화개면, 악양면, 적량면, 옥종면, 청암면, 횡천면 일부와 사천시 축동면, 산청군 시천면, 삼장면, 단성면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23년(940) 3월에 강주(康州)를 진주(晋州)로 개칭하면서 처음으로 지금의 진주라는 지명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 성종 2년(98...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서재.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조좌랑 등을 거쳐 정언(正言)을 지내고, 소윤(小尹)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154...
-
근대 개항기의 효부 및 열녀. 달성서씨(達成徐氏) 서상재(徐相載)의 아내이며, 김해김씨 후손인 김응현(金應炫)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곧고 따뜻하며 부모에게 매우 효성스러웠다. 서상재에게 출가해서는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남편을 대할 때는 예를 어김이 없었다. 또한 자녀들을 기를 때에는 자녀들이 반듯한 길로 나아가는 데 모범이 되었다. 1909년 남편 서상재(徐相載)...
-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 서원의 기능과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공부하는 곳, 선현을 모신 곳, 향촌사회의 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종교행사와 관련된 서원의 역할은 선현을 받들어 모시는 곳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교육의 기능보다 사묘(祠廟)의 기능이 더...
-
국민 중에서 주권자를 대신해서 국가의 일, 국회의 일, 자치단체의 일을 수행할 공직자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된 원칙 하에서 선출하는 민주적 방법. 선거는 정치권력의 정통성 부여, 국민의 이익 표출 및 집약, 정치적 충원 등의 기능을 갖는다. 정치권력의 정통성 부여 기능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지도자에게 합법적인 정통성을 부여하여 권위를 가지게 하는 기능을 말하며, 국민의 이익 표출...
-
경상남도 진주시 도동 뒤벼리 쪽에 있는 산. 진주시의 중심부 구시가지와 도동의 신시가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6~7부 능선까지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고 묘지도 다수 분포하고 있다. 주 등산로가 뒤벼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뒤벼리의 경치를 감상하려면 선학산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선학산은 특히 봄에는 복사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좋다. 식생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소나무가 주를...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관청 건물. 원래 관찰사는 각도에 1명씩 임명했던 조선시대의 지방장관(종 2품)을 말하는데 관찰사를 다른 말로 ‘감사’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관찰사가 있는 관청을 ‘감영’이라고 했다. 경상도관찰사는 조선시대 내내 대구(달성) 등 경상북도에만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상남도에는 없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눠진 후 관찰사가...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강씨가 이주해 살았는데 강심(姜深)이라는 사람이 눈이 내릴 때 매화꽃이 피는 것을 보고 설매(雪梅)라는 이름을 지은 데서 유래되었다. 용짓골, 덕구, 행정(杏亭), 삿골[沙谷], 임계정(臨溪亭)을 통틀어 설매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 진주목 속방의 북면 설매곡리(雪梅谷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말기까지는 설매곡면(雪梅谷面)이...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언론인·문화예술인. 1916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출생하였다. 1931년 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TK단에 가담, 활동하다가 체포당하였다. 1939년 도일하여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재학 중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선동한 혐의를 받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송환되어 2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광복 이후 『경남일보』 주필·사장을 역임하는 가운데 개천예술제를 개최...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설화에 대한 개관(槪觀). 진주지역에는 명석전설[鳴石傳說]과 같은 지명전설과 정온전설·강목발전설 등의 인물전설이 다수 전승되고 있다. 운돌전설의 내용은 고려 말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는데, 그 역사에 가담했던 스님이 명석면(鳴石面) 동전리를 지나다가 암수 두 개의 큰 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일대에 있는 넓은 들. 진주 시내 진주성의 강 건너 맞은편에 발달한 들이다. 섭천은 진주시 천전지구에서 가장 먼저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북쪽은 죽림으로 강을 건너 진주성으로 넘나드는 길목이었기에 섭천(涉川)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섭천마을 동쪽 어귀에 위치한 자연 못인 섭천못은 시민들의 유원지였으나, 현재는 완전히 매립되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섭천마을...
-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의 공동목적으로 석재나 흙 등을 이용하여 축조한 전통건조물. 성은 흔히 성곽이라는 말과 혼용되고 있는데 성곽은 내성과 외성을 전부 일컫는 말이며 목책류의 결구로 해로운 동물이나 척을 방어하려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 아군에게 유리한 지리를 얻고 적군을 불리한 조건하에 접근시키려는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다. 그러나 성의 축조는 군사적인 목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
신라시대의 승려이자 효자. 호는 거사(居士). 진주 출신으로 일리현(一利縣)[지금의 성주군] 법정사(法定寺)에서 수도하였다. 성주 법정사에서 수도 중 고향의 어머니가 병환이 위중함을 알고는 번민을 하자 큰스님이 이 사실을 알고, 가서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라고 허락하였다. 성각은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지성으로 보살피고, 고기가 떨어지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끓여 드렸다....
-
천주교의 종교전례를 위한 건물. 1784년에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신교의 자유가 획득된 1882년까지는 박해시기로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성당은 건립되지 못하고 교인들의 사가나 서당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종교의 자유가 획득되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은 박해시대 때 교회와 인연이 깊었던 곳이나 그 인근지역을 구입하여 성당을 건축하였다. 이 때 건축된 성당의 특이한 점은...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산성. 『진주목읍지』에 ‘성산성: 하나는 주 동쪽 44리에 있고, 토축이며 둘레는 2,814척이다. 하나는 주 서쪽 48리에 있고, 석축이며 둘레는 977척이다. 지금은 모두 무너졌다(城山城: 其一在州東四十四里土築周圍二千八白十四尺其一在州西四十八里石築周圍九白七十七尺今皆頹圯)’고 기록된 내용이 있으나, 성산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주시...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직제학을 지낸 성사재(成思齋)의 6대손이며, 성흔(成忻)의 아들이다. 출생연도는 미상이며 음서로 진주판관에 임명되었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진주판관으로 발탁되어 군무를 맡아 성벽을 개수하고 무기를 수선하는 등 전비를 갖춘 후 격문을 붙여 충의지사를...
-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浮査, 桴楂)·야로(野老). 우윤을 지낸 성두년(成斗年)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충절을 지킨 성여충(成汝忠)과 성여효(成汝孝)가 그의 형이다. 1546년(명종 1) 출생하여 1632년(인조 10) 86세로 별세하였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문명을 떨치다가 1609년(광해군 1) 63세로 사...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남성동·인사동을 관할했던 행정동 1910년 토지 조사 사업 당시 진주면에 17개 정(町)을 두었는데, 이 때에 남성정, 인사정이라 하였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고 17개 정 12개 리가 29개 동으로 개편되었는데, 남성정과 인사정도 남성동, 인사동으로 바뀌었다. 1954년 10월 20일 진주시의회의 승인을 얻...
-
(1) 인사동 골동품거리 ○ 역사 : 골동품거리는 광진당에서 보건소까지의 골목을 말한다. 본래는 사람이 살던 평범한 마을이었으나 골동품가게들이 많이 생기면서 골동품거리가 되어, 진주의 볼거리를 만들고 관광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진주시에서 골동품거리로 지정하고 운영하고 있다. 골동품거리가 생긴 것은 1970년대 후반경 지금의 봉선당 주인과 진보당 주인이 인사동에 골동품가게...
-
○ 진주성(晋州城) : 지금의 진주성은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흥산성이라 하다가 고려시대 이래로는 촉석성 또는 진양성이라 하였다. 1963년 1월에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성의 첫 축성 내력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초기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고려 우왕 5년(1379)에 석성으로 개축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조선 선조 24년(1591)에는...
-
산홍이라는 진주 기생을 그리며 부른 노래. 노래 「세세년년」은 박영효가 작사하고 진주 출신 작곡가 이재호가 무적인이라는 필명으로 작곡한 곡으로 1940년에 등장하여 작사자의 월북으로 한 때 금지되었던 대중가요이다. 산홍아 너만 가고 나는 혼자 버리기냐 너 없는 내 가슴은 눈 오는 벌판이다 달 없는 사막이다, 불 꺼진 항구다 순정의 이합사로 청실홍실 한데 묶어 백년 암 깊은 밤에 맹...
-
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관습적으로 되풀이 하여 행하는 생활풍습과 의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오랫동안 살아가다보면 특정한 관습이 생기고 해마다 반복됨으로써 세시풍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시풍속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적인 조건, 역사적인 경험, 또 그 지역민이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인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세시풍속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특징...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진주군 지공면 소곡동 지역으로서 이에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1914년 진주군 지공면 소곡동, 상동 일부와 사천군 북면 관율동을 합하여 소곡리(所谷里)라 하였다. 소곡리는 형세가 남북 방향으로 길며, 동서 방향으로 좁다. 남쪽은 사천시와의 경계가 되는 두량저수지가 있고, 전반적으로 해발 고도 100m 이내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
-
화재를 예방, 경계하고 진압시키는 작용. 조선시대의 소방제도는 대체로 세종 무렵에 정비되었으나, 법제상으로는 세조 때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해 이미 확립되었다. 소방을 뜻하는 용어로는 금화·구화·멸화·비화(禁火·救火·滅火·備火)등이 사용되었는데, 금화는 화재의 예방·단속·소화등 포괄적인 뜻으로 사용되었고, 구화는 인명·재산의 구제, 멸화는 진화, 비화는 사전 예방을 뜻하였다...
-
허구적인 이야기와 서술적인 산문으로 인생을 표현하는 창작문학의 한 장르. 역사적으로 진주에는 기록문학적 복합성을 가미하면 소설이 되는 설화문학으로서 경덕왕 때 강주(康州)[지금의 진주] 경계에 위치하였다는 미타사(彌陀寺)에서 욱면낭(郁面娘)이 성불등천(成佛登天)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1960년대부터 지역적인 특색을 지닌 문학작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
진주지역의 대표적 민속놀이인 소싸움이 벌어진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둔치 일대. 진주지역에서는 전통시대부터 남강변의 발달된 백사장을 이용하여 소싸움경기를 하였다. 이러한 소싸움은 특정한 날에 하던 민속놀이의 하나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각종 대회 성격으로 치러지고 있다. 근대에는 진주시 장대동의 남강 백사장이나 서장대 밑의 남강둔치에서 행해졌는데, 그 중에서 서장대 밑의 남강 둔치(진...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일어났던 소작 농민운동. 소작노동자대회는 1922년 9월 4일에 발생한 전국 최초의 소작 농민운동으로서 조선 농민운동단체 조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3·1 운동 이후에는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배출되고 있던 노동자층의 민족적·계급적 자각이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동시에 새로 생긴 교육기관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인적자원을...
-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대중가요 작곡가. 1913년 4월 23일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일본에 건너가 작곡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평생 작곡생활과 출판 업무에 종사한 진주 출신의 대중가요 작곡가로서 본명은 손득렬이다. 1999년 1월 9일에 8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경신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35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였다. 1932년...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학봉 김성일의 명으로 김시민을 도와 진주성을 지켰다.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주부(主簿)에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
조선 말 진주의 유학자인 성률(成凓)[1856~1924]의 시문을 모아서 간행한 유고집. 성률은 자가 국빈(國彬)이며, 호는 손암(損庵)이다. 시부(詩賦)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선현의 도를 밝히는 데 그 정성을 다했다. 성률 사후, 그의 증손 성재정이 집안에 남아있던 손암의 시문을 모아 유고집으로 편찬하였다. 1권에는 삭녕(朔寧) 최인찬(崔寅巑)의 1...
-
경상남도 진주시 서남쪽에 위치한 면(面). 수곡면 대천리에 큰 샘인 찬새미(한새미)가 있는데, 수곡면은 그 수계 지역으로서 물이 많은 곳이라는 뜻에서 수곡(무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 수곡리(水谷里)·원당리(元堂里)·이하리(蘺下里)·자매곡리(自梅谷里)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자매곡리(自梅谷里)가 이하리(蘺下里)에 합하여졌다. 1864...
-
원내리의 생업도 본래는 벼농사가 위주였으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농가가 딸기 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현재 수곡면 일대는 전국적인 딸기 생산지로 이름이 높으며, 그 이름에 걸맞은 질 좋은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 딸기 재배의 시작 : 1970년대 말 당시 수곡면에 살던 김병곤씨가 처음 딸기 종자를 가져와 심기 시작했다고 하며, 1980년부터 주민들의 소득증대사업의...
-
조선 중기의 학자 최영경(崔永慶)[1529~1590]에 관한 사실을 모아 편찬한 실기(實記). 1700년(숙종 26)에 양천익(梁天翼)이 수우당 최영경에 관한 사실을 모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인 최영경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무고(誣告)되어 옥사한 이후 100여년이 지난 후 선생의 증손 최정석(崔廷奭)이 수우당 선생의 글들이 참화와 병란에...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위치한 초등학교 나라를 사랑하는 예절바른 어린이[애국인·예절인], 슬기롭고 자율적인 어린이[실력인·민주시민], 새로운 생각을 갖고 실천하는 어린이[창의인·성실인], 몸과 마음이 건전한 어린이[건강인·정서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1969년 10월 16일 진주 수정국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70년 3월 2일 16학급으로 개교하여 옥봉동...
-
수수료 및 계약에 의하여 이용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설비. 숙박시설이란 일반적으로 호텔·여관·여인숙 등을 가리키는 총체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잠을 자기 위한 기본 시설은 물론 세면과 휴식, 식사의 기능을 겸하여 장거리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시설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경제발전과 관광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말 그대로의 숙박 범위에 포함되는 시설만을 의미...
-
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 일대에 있는 산. 숙호산의 식생은 주로 소나무와 오리나무·상수리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붉나무·개옻나무·조록싸리·진달래·밤나무·국수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는데, 소나무가 주된 우점종으로 파악된다. 진주시 이현동·신안동·평거동·판문동·명석면에 걸쳐 있는 해발 137.5m의 산으로, 고도가 비교적 낮아 휴양과 산책하기에 좋은 산이다. 대아중고등학교 정문에서 출발하여...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대암리에 있는 고개. 집현면 대암리와 냉정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옛날 서울에서 내려오던 정승들이 잠시 쉬어 갔고, 조선의 명지라 해서 임진왜란 때 이곳에 왔던 중국의 이여송(李如松)이 맥을 끊어 놓았다는 고개이다. 이 고개 사이에 정수천(亭水川)이란 개울이 하나 있었는데, 나무다리를 세워 놓으면 유난히 빨리 썩어 건널 수가 없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큰 나무...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승산동이라 불렸으며, 한양에서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고 할 만큼 천석군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구전이 있으며, 승산교, 승산도랑, 승산연정 등의 관련 지명들이 남아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승어산리(상승어산), 하승어산, 무등촌, 허곡, 임내리를 병합하여 승내리라 하였다. 1995년 11월 1일에는 진주시...
-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 기록상으로 볼 때 1926년 진주에서 고두동(高斗東)[1903~1994], 홍우원이 주재한 『시단』이 처음 발간되었다. 그러나 진주 지역의 현대시는 1928년에 발간된 시 동인지 『신시단』으로부터 시작한다. 『신시단』은 국판 54면에 신명균(申明均)[1889~1941] 발행으로 표지를 보면 제1권 제2호로 밝히고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가 영화업자와 함께 운영해 왔던 유료 영화관. 원래 시공관은 진주시의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기에 글자 그대로 시공관이라 하였다. 6·25 전쟁 때 진주시청 등이 불타고 없어 마땅한 행정공관 장소가 없었다. 따라서 당시 진주시는 진주시의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대규모 강당용 공관으로 1958년에 시공관을 건립하였다. 1958년에 진주시의 공관으로 사용되기...
-
춘하추동의 길일이나 절일에 받드는 제사. 시제(時祭), 사시제(四時祭), 시사(時祀), 시향(時享), 절사(節祀), 묘제(墓祭)라고도 하는데, 크게 보아 사시제와 묘제로 나눌 수 있다. 사시제는 사중시제(四仲時祭)라고도 하는데 춘하추동의 중월(仲月)인 음력 2, 5, 8, 11월에 길일을 골라서 부모부터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모든 제사 중에서 가장 중한 정제(正祭)이며...
-
경상남도 진주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때의 기독교계 여학교. 1905년 서양인으로는 진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호주 선교사 커넬(Dr. Hugh Currell) 부부가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교 설립에 노력해오던 중 1907년 9월 3일 당시 진주군 대안면 2동에 있던 예수교예배당(현 진주시 봉래동 진주교회)에서 개교하였다. 1907년 9월 3일 진주군 대안면 2동 예배당에 사립정숙여학...
-
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시장의 개념은 학술적으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 또는 메커니즘이라 정의된다. 시장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며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종류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구체적인 특정한 장소에 있는 중앙도매시장, 증권거래소, 상품거래소 등은 구체적 시장이라 한다. 소매시장이나 공설시장도 포함되지만 이 경우는 보통 시장이라 한다. 그리고 경제가 발...
-
경상남도 진주지방에 전해오는 결혼한 여자의 애달픈 삶을 노래한 민요. 남존여비의 유교적·봉건적 도덕률 속에서 각종 사회적 구속에 얽매여 시집살이를 하던 부녀자들의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그들의 슬픔과 고난을 감동적으로 노래한 것이 많아 부요(婦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진주에는 8개의 시집살이 노래가 전래, 기록되어 있다. 「시집살이노래」의 특징은 그 문체나 수사...
-
어떤 특정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상. 식물상은 동물상에 대응하는 말이다. 식생(植生)은 어떤 지역을 차지하는 모든 식물적 생명체를 가리키는 데 반해, 식물상은 그 곳에 생육하는 모든 식물의 종명(種名)을 동정(同定)하여 표에 나타낸 것을 말한다. 식물상에는 넓이의 개념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식물상, 미국의 식물상과 같이 크게 사용되고, 한라산의 식물상과...
-
1927년 서울에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의 진주지역 산하 조직.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공통의 적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었으므로, 두 진영이 협력하여 1927년 신간회(新幹會)를 조직하게 되었다. 1926년 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에 자극되어 민족유일당운동으로서 조직되었는데, 1927년 1월 19일 발기인대회에서 발표한 강령과 창립대회...
-
경상남도 진주시에 신관용(申寬龍)[1911~1957]으로부터 강순영에게 전승되어오는 가야금 산조. 가야금 산조는 가야금으로 연주하도록 짜여 진 산조로, 5~6개의 장단 구성에 의한 악장으로 구분되며,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보다 먼저 발생하였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연주하는 명인에 따라 각기 나름대로 가락을 지어서 보유자(保有者)의 이름을 붙여 ‘제(制)’ 혹은 ‘류(流)’...
-
경상남도 진주시 신당리 죽산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군. 진주시의 북동쪽에 위치한 장흥리와 신당리에 형성되어 있는 들판 가운데 섬처럼 솟아 있는 독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2003년도에 경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는 이루어졌으나,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고분으로 볼 만한 뚜렷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나, 토기편 등이 산포되어 있어 수혈식 석곽묘 등의 고분이...
-
조선 중기의 학자 하용표(河龍杓)의 문집. 하용표는 진주 출신의 학자로, 호는 신당(新塘)이었다. 평생 벼슬자리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임진왜란 당시 진양성(晋陽城)에서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분투하다 순절했다. 이후 300년 뒤 그의 11대 손인 하용표(河龍杓)와 하용운(河龍雲) 등이 고인의 뜻을 추모하기 위해 원고를 모아 정리하여 출간했다. 저자가 직접 쓴 글 외에 하용표를 추모...
-
첫날밤을 치룬 신랑을 처가의 식구들이 골탕 먹이고 장난치는 풍속.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전통 혼례에서 행해진 풍속이다. 첫날밤을 치룬 신랑은 아직 처가 식구들이나 친척,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랑다루기라는 의례를 통해 빠른 기간 안에 가족 간의 정을 쌓고 서로의 성격을 확인하여 친근감 있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처가의 식구들뿐만 아니라 처가의 친...
-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서 신문지라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나 정보를 제공하는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 10월 31일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 신문은 중앙정부기관에서 발행한 신문으로 국민들에게 외국의 사정과 개화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은 1909년 10월 15일에 진주에서...
-
전통 혼례식에서 첫날밤을 치루는 신랑·신부의 방을 동네 아낙들이나 일가친척들이 몰래 훔쳐보는 행위. 신방지키기는 ‘신방훔쳐보기’라고도 하는 것으로 혼례식 날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를 다 마친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치루기 위해 방에 있을 때 동네의 여자들이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 문을 뚫고 방안을 몰래 훔쳐보는 풍습을 말한다. 진주지역에서는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치룰 신방은 신...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가난한 총각의 결혼담. 1980년 8월 4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조초악[여, 67세]이다. 예전에 한 가난한 총각이 있었다. 집안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격 또한 숙맥이라 서당의 다른 학동들에게 항상 따돌...
-
인류가 사용한 도구에 따라 구분한 석기시대의 최종 단계. 우리나라에서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바닷가, 섬, 강가 등에서 150개소 이상이 발견되었고 내륙에서도 가끔 발견되고 있는데 대부분 패총유적이 많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크게 4시기로 구분된다. 조기(早期)단계는 원시 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를 사용하던 시기로, 이 시기의 유물은 시베리아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열도에 걸쳐 동...
-
상호 유대 관계를 가진 개인이나 단체가 협동 조직을 기초로 자금의 조성과 이용을 도모하는 비영리 금융기관. 신용협동조합의 경영 조직은 조합 조직이다. 신용협동조합(또는 신용조합)은 독일에서 처음 조직되었다. 1850년 F. H. 슐체델리치에 의해 도시신용조합이, F. W. 라이파이젠에 의해 농촌신용조합이 창설되었고, 이후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파급되었다. 한국에는 1960...
-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도종교에 비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 되지 않은 종교. 신종교는 흔히 신흥종교라고도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이 용어는 신종교가 교리·의례·조직의 측면에서 기성종교에 비해 정교화 되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결핍된 종교라는 부정적인 함축을 띠고 있다. 그래서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로 신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진주의 신종교로는 천도교, 원불교, 증산도 등을...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의 법정리. 1914년 진주군 신풍면(新豊面) 상동(上洞)·하동(下洞)과 중동(中洞) 일부를 통합하여 신풍리(新豊里)라 하였다. 남강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신풍, 중촌, 풍호 등 3개 부락이었다. 신풍 141호, 중촌 56호, 풍호 66호, 계 263호였다. 대평면 내에서 제일 부유한 마을로서 고등 교육도 많이 받아 정계 또는 군인, 공무원·변호사 등 고위직에...
-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1893년 진주에서 태어나 망경동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신영균, 어머니는 여산송씨이다. 사회운동으로 평생을 보냈으며, 1961년 68세로 사망하였다. 1911년 진주제1보통학교(현 진주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일본에 있는 중학교를 수료하였다. 1920년 전후 토지조사국에서 조선일보 진주지국장으로 옮겼으며, 이후 다양한 조직에서 사회운동을 하였다. 1...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실크의 전시·판매 시설. 진주의 실크산업 부흥을 위해 중소기업청과 경상남도와의 협의 끝에 진주시 소재의 실크 제조업체들이 공동 브랜드인 (주)실키안을 만들고, 1999년 6월에 진주성 앞에 있는 문화관광센터 1층에 실크전시장을 설립하여 실크로 만든 제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실크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진주 특산품들과 더불어 실크로 된 상품들을 상설 전...
-
경상남도 진주시의 특산물인 실크의 공동브랜드 명칭. 명주, 비단을 뜻하는 Silk와 시민을 뜻하는 Civilion의 합성어로 미래지향적인 면을 강조하고 세계화 개념에서 ‘실크시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진주의 견직은 1929년 대구에서 진주로 내려와 대안동에 설립된 동양염직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역직기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근대적 견직공장이 시작되었는데...
-
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흥요. 이 노래는 부녀자들이 심심하거나 유흥의 분위기가 있을 때 부르는 노래로서 일명 ‘쌍금 쌍금 쌍가락지’라고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대개 여흥을 즐기는 때에 이 노래를 부른다. 정확하게 언제 이 노래가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 세월 동안 부녀자들의 입을 통하여 구비 전승하였으며, 진주를 중심으로...
-
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이용하여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고유의 운동.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생된 전통 민속놀이의 하나로, 우리나라 역사상 농경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각력(角力)·각저(角抵)·각희(角戱)·상박(相搏)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나 그 방법에...
-
진주목 관아의 기녀로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되던 계사년(1593) 6월 29일 촉석루 아래 우뚝한 바위(의암, 義巖)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죽은 순국의 여인. 논개의 사실을 맨 먼저 기록한 이는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그는 인조반정 후 양주 서산에 숨어 지내다 광해군 복위를 꾀한다는 무고에 얽혀서 아들과 함께 서인 정권의 손에 죽임을...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있는 아이에스동서산업의 진주 소재 공장. 현대건설의 토목사업부로 출발한 아이에스동서산업은 초기에는 콘크리트 제품 위주의 생산을 하였으나 진주에 타일공장을 준공하면서 건축자재 전문기업으로 발전하였다. 아이에스동서산업은 1975년 9월 1일 벽제콘크리트(주)를 설립하고, 1976년 4월 9일에 동서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종합 건축자재 전문기업으로 성장하...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었던 인쇄용지 가공공장. 아트원제지 주식회사는 1982년 11월 진주에 설립된 동신제지 주식회사를 합병한 그룹으로서 현재 진주지역에 공장 2곳을 운영 중이다. 신호제지 주식회사는 1974년 6월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으며, 1977년 4월에 온양펄프(주)를 현 아산공장에 설립하였다. 1979년 1월에는 국내 최초로 해외에 골판지를 수출하였으며,...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동에 전해오는 이반성면(二班城面)에 관련된 은혜담(恩惠談). 1980년 8월 13일 정상박, 류종목이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동 비봉루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박무세[남, 73세]이다. 옛날 한씨 성을 가진 형제가 서울에서 벼슬을 하며 살았는데, 언젠가 동생 되는 사람이 행방불명이...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己卯名賢)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다. 1561(명종 16)에 태어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經書)에만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진주성전투에서 성...
-
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 사운(士雲)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양응룡(梁應龍)은 그 천성이 속되지 않고 뛰어나 사람들과 함부로 교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익혔다. 진주 운곡(雲谷)에 살았다고 전한다. 진주에는 남명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 선비들이 많은데, 양응룡도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조선시대 진주의 학...
-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노동조합. 당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고, 산업구조가 급변함에 따라, 진주노동공제회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양화직공노동조합은 1923년 4월 1일에 만들어진 진주노동공제회의 산하기구였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였다. 1923년 4월 1...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자(字)는 자유(子游), 호는 관포(灌圃)·혼돈산인(渾沌山人). 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어문손(魚文孫)이다. 할아버지는 별장(別將) 어효원(魚孝源), 증조할아버지는 교도(敎導) 어변질(魚變質)이다. 처는 진주강씨 강인범(姜仁範)의 딸과, 나빈(羅彬)의 딸인 나주나씨가 있다. 1470년(성종 1)에 태어났다. 149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
-
각종 민물고기에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끓인 탕. 예로부터 강을 끼고 있는 고장에서는 어탕을 많이 먹었는데, 어탕은 각종 민물고기를 푹 고아서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한 다음, 걸러낸 구수한 국물에 여러 가지 야채를 넣어 끓인 음식이다. 어탕은 마늘과 다진 고추를 듬뿍 넣고, 제피잎이나 열매를 넣은 뒤 먹어야 비리지 않고 제 맛이 난다. 기호에 따라 국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먼저 깨...
-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근대적 의미의 진주지역 언론은 1909년 10월 15일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지인 『경남일보』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남일보』가 1914년 강제 폐간된 후 진주의 언론은 『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경성일보』·『매일신보』·『 조선민보』·『남조선시보』의 진주지국과 『...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大谷面)에 전해오는 엄마를 위해 다리를 놓아 준 삼형제의 효도에 관한 설화.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丹牧里)에 가면 ‘엄마다리’라는 다리가 있다. 지금은 경지가 정리되어 다리가 땅에 묻혀서 형체가 없어졌는데, 엄마다리 설화는 그 다리에 얽힌 이야기이다. 엄마다리 설화와 같은 유형의 설화는 전국적으로 ‘효불효 다리’ 또는 ‘오모다리와 삼형제’ 등 다양한...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여양진씨는 고려 인종 때의 장군인 진총후(陳寵厚)를 시조로 한다.「여양진씨대동보」에 의하면 진총후는 고려 예종조에 호분위 대장군을 지내고,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신호위 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오르고 여양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여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450년 전후 진식(陳寔)[1519~1...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진주시의 역사. 진주시는 경상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농 복합형 통합시로, 동쪽은 함안군, 서쪽은 하동군, 남쪽은 고성군·사천시, 북쪽은 산청군·의령군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712.84㎢, 인구는 약 33만명이며, 1읍, 21동, 15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육도시이자 문화도시로, 현재는 첨단산업단지가 입지한 혁신도시로...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연을 띄울 때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 현대처럼 오락 문화가 없던 시절에 아이들은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타고 연을 날리며 겨울을 보냈다. 특히 연은 바람이 많이 불 때 하는 겨울 놀이로서 아이들의 인기 놀이였으며, 이 노래는 겨울철에 연을 날리며 자라던 아이들이 부르던 도구유희요라 할 수 있다. 연 띄우는 아이 노래는 하종갑이 1994년에 진양문화원에서 편...
-
배우가 특정한 연희(演戱)의 장소에서 관객을 앞에 두고 극본 속의 인물로 분장하여 몸짓·동작·말로써 창출해 내는 종합예술.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연극의 원류를 민속극인 가면극(假面劇, 탈놀이), 인형극(人形劇, 꼭두각시놀이)과 판소리[唱]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가면극의 문헌상 첫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최치원(崔致遠)의 절구시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에서 읊은 오...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정습명(鄭襲明)은 고려 의종 때의 중신으로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냈으며, 선대에 정의경(鄭宜卿)이 연일 호장을 지냈고, 연일현백(延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연일로 하였다. 원래 연일정씨의 비조는 신라 6부시대의 지백호(智伯虎)로서 32년(유리왕 9)에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졌으며,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
경상남도 진주시 연지사에서 주조된 통일신라시대의 동종.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된 종으로 추정되며 현재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츠루가시[敦賀市] 조구신사[常官神社]에 소장되어 있다. 종에 새겨진 “태화 7년 3월일 청주연지사(太和七年三月日菁州蓮沚寺)”라는 명문(銘文)으로 미루어 833년(흥덕왕 8)에 주조되었고, 청주(菁州)가 지금의 진주시 지역이므로 진주지역에 있던 연지사에 바쳐...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위치한 사찰. 연화사는 원래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연화산 기슭에 자리한 옥천사의 포교당이었다. 옥천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신도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더 필요해졌다. 그래서 이종천 스님에 의해 1923년 1월 대지 720평 규모로 고성 옥천사 포교당인 진주 연화사가 창건되었다. 1949년에는 옥천사에서 통도사 말사로 이속되어 통도사 포교당으로 이름...
-
절개가 높은 여자. 열녀는 일반적으로 위난을 당하여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남편을 위해 헌신한 여인을 일컬으며, 열부(烈婦)나 절부(節婦)를 통칭한다. 열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과부가 되면 마땅히 수절을 하여야 하고, 위난을 당하면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서 정착된 것은...
-
진주지역에 내려오는 엿을 가지고 하는 놀이. 이 놀이는 대개 겨울에 하는 것이 보통이며 진 사람이 엿 값을 물고 이긴 사람의 잘라진 엿 토막은 개평이라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두 명 이상이 모여서 엿장수가 늘어놓은 엿판의 많은 엿가락 중에서 엿 속의 구명이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고른다. 각자가 고른 엿에서 제일 구멍이 큰 사람이 이기고 작은 사람이 엿 값을...
-
1934년 9월 1일 진주에서 창간된 월간지.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폐간된 지 20여 년 만에 편집인 겸 발행인 신현수(申鉉壽), 인쇄인 강주수(姜周秀)에 의해 창간되었다. 매월 1일 8면씩 발행하였으나 1936년 1월1일자인 신년특집호가 10면 발행되었고, 지령 9호인 1936년 5월부터는 매월 1일에서 15일로 변경되어 발간되었다. 당시 구독료는 10전(錢)이고, 광...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 있는 산. 진주의 시계를 이루는 대표적인 산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동제를 지내던 산이다. 신라 헌강왕 5년(87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는 삼암사(三岩寺)의 하나인 용암사가 있는 산이다. 삼암사란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 조계산의 선암사를 말한다. 자연 경관이 좋고 사계절 빛깔을 달리한다. 또한 삼림욕과...
-
연속촬영으로 기록한 필름상의 화상(畵像)을 스크린에 투영하여 움직임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장치 및 그 작품. 일제강점기인 1939년 최인규 감독의 「수험료」에 출연한 정팔룡이 진주지역 출신의 영화인 제1호라고 할 수 있지만 단 한 작품에만 출연하였고, 1944년에 개봉된 히나쯔 에이타로[日夏英太郞] 감독의 「기미토 보쿠(君と僕);그대와 나」에서 남인수(南仁樹)가 영화 주제가를 최초...
-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창작,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예술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심미적 대상과 환경, 경험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활동과 그 성과를 가리킨다. 또 예술이라는 용어는 사용된 매개물이나 제작물의 형태에 의해서 전통적으로 범주화된 몇 가지 표현양식 중의 하나를 지칭하기도 한다....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가차례면 하동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차례면과 하동에서 집자하였다고 하나 그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1914년 구한말 때의 진주군 가차례면(加次禮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을 통폐합하여 예하리(禮下里)라 하였다. 여기에 소속된 강주(康州)는 신라 경덕왕 16년(557년) 이후 전해져 온 진주의 고호(古號)이다....
-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현대식 직물공장. 1910년대에 들어와 근대식 견직공장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경상남도 진주 지역은 토질과 기후가 좋아 양잠의 적지로 꼽혀 일본사람들까지 견직공장을 설립하였으며, 오다나까 직물공장도 1930년대 후반에 일본인인 오다나까에 의해 현재의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동명유치원 자리에 세워졌다. 진주지역의 견직산업을 주도하였으...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에 있는 생활유적. 오미리 시목 유적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건설예정 구간에 대한 구제발굴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전체유적 중에서 일부만 조사되었다. 조사결과 조선시대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하는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 묘 1기와 조선시대의 건물지, 기둥구멍군 등이 조사되었다. 오미리 시목 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지...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형보(瑩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사운(吳思雲)이다. 1547년(명종 2)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죽었다. 1590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홍문관 정자(正字)에 등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휘하의 의병으로 금산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593년...
-
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오응운등상서」는 효자 하진태의 포증을 건의하는 경상우도 유생들의 건의서이다. 하진태의 노모를 향한 지극한 효행을 기리고 정려를 받기 위한 상서문은 하진태의 생존시부터 시작하여 사후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오응운, 최상갑, 정운현 등 진주 일원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정서를 올린 일종의 등...
-
조선시대의 효자.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따르면 오인(吳仁)은 아버지가 등에 커다한 부스럼이 나서 매우 심해져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직접 입으로 농즙(膿汁)을 빨아서 낫게 하였다고 한다. 진주 수곡리(水谷里)에 살았다. 진주는 유교적 덕목이 뿌리 깊게 이어지는 예향(禮鄕)으로 오인을 비롯한 많은 효자를 배출하였다....
-
일제강점기의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서예가. 오제봉은 1908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다. 일찍이 일생무상을 느껴 출가하여 승문에 입문한 이래 서예에 정진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415번지에 있는 의곡사의 주지로서 시인·묵객·화가·서예인 등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수식을 제공하는 등 향토예술인 양성과 후원에 남다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오제봉은 향토문...
-
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의령. 진주 출신으로 부인은 함안조씨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지성으로 섬겼다. 아버지가 병으로 눕게 되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맛있는 음식을 구해 병구완을 했다. 어느 날 의령까지 가서 약을 구해 진주로 돌아오는데 밤이 되고 비가 와서 길을 걷기가 힘들었다. 이때 마침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호위하여 인도하였으며, 스님이 나타나 사연을 듣고는...
-
통일신라시대의 호족. 처음 강양군(江陽郡) 의상현(宜桑縣)[泉州縣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의 宜寧]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세력을 떨쳤으며, 뒤에 강주(康州)[지금의 경상남도 진주] 지역도 석권하였다. 924년(경명왕 8)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고 중국 후당(後唐)에 사신을 보냈다. 927년에는 후당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를 회화장군(懷化將軍)으로 봉하자, 사신을 보내...
-
고려 전기의 문신. 예빈경을 지낸 왕유(王惟)의 아들이다.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승진하여 감찰어사가 되어 원칙대로 법을 집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뒤에 진주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동경유수(東京留守)가 되어 경주로 전임하게 되었으나 진주 백성들의 청으로 1년을 더 유임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백하였을 뿐 아니라 절도가 있었으므로 모든 일을 백성에게 이롭게 하였다....
-
고려 말에 일본인 해적집단인 왜구가 남해안에 출몰하여 인명 살상과 재물을 약탈한 사건. 고려 말에 이르러 진주가 위치하였던 남해안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왜구의 출몰이었다. 기록에는 고려시대를 통하여 약 500회의 왜구 침략이 있었고, 진주의 인근 해역에만도 31회나 침입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진주에서는 이와 같은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1379년(우왕 5...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 내려오는 용다리 근처에서 미쳐서 죽은 어느 머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 옛날 동성동에서 진주성의 동문으로 들어가는 곳에 우시장이 있었고, 그 길목에 용다리가 있었다. 지금 그 위치는 시내에서 남강교를 건너자면 왼쪽 아래 동방호텔에서 올라오는 둑길이 끊어진 자리쯤이 되는데, 용다리에 얽힌 이야기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결과 용다리 근처에서 일어난 신이한...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용두산에 얽힌 이야기. 진주시 문산읍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경남전설을 찾아서』·『진양민속지』 등에 수록되어 있다. 아주 옛날 문산에 한 신선이 살았다. 신선은 문산 사람들을 어떻게 잘 살게 할까 궁리하다가 용을 타고 용궁의 용을 만나러 나섰다. 신선이 용의 머리에 올라앉아 막 하늘을 오르려 하는데, 아침 일찍 빨래하러 나온 한 아낙네...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集賢面)에 전해오는 지명 용디미의 유래에 관한 설화. 지명 기원담은 그 생긴 형태로 발생한 것도 있으나 용디미와 빈대 설화는 사건을 중심으로 유래된 지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수리(亭水里) 검정골 안쪽에 높은 산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용디미[덤]라고 부른다. 용디미와 빈대 설화는 진주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진주시 읍면동 홈페이지...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 있는 사찰. 처음 이름은 용화사(龍華寺)라 하였는데, 용산리의 지명을 본떠 용산사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유명한 스님과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아왔으며, 의곡사 주지였던 오제봉 스님이 이곳에 와서 글씨를 남기기도 했다. 1921년 진주의 박헌경이 사재를 희사하여 창건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의 산 중턱에 위치한다. 사찰 앞에 작은 연못을...
-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개울이나 강가, 바닷가에서 제수를 차리고 그 해 소원을 비는 세시풍속. 용왕 먹이기에 있어 용은 수신으로 호법신 또는 호국신의 역할을 한다. 민간 신앙에서는 비를 가져오는 우사이고, 물을 관장하는 수신이며, 사귀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착한 신이다.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물은 생명처럼 소중하므로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지내고 어로를 생업으로 삼는...
-
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성내1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방신문.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신문으로『황성신문(皇城新聞)』·『뎨국신문』·『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서울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한 중앙지였다. 나라의 기운이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지면서 직접 총칼을...
-
우편과 체신, 금융 등의 업무를 맡아보는 정부기관. 우체국이란 우편·체신 업무, 즉 편지나 전보·소포 등을 모아 배달하는 일을 하는 곳으로, 전국의 시·군·읍·면·동 단위까지 분포되어 있다. 한국 우체국의 기원은 1884년(고종 21)에 설치된 우정총국(郵政總局)이다. 우정총국의 설립으로 기존의 역참제에 의해 이루어지던 전근대적인 통신업무가 사라지고 근대우편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
집안에 환자가 있을 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굿. 일반 가정에서 행하는 굿은 대부분 우환을 제거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우환은 대개 귀신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믿어왔는데, ‘섬겨야 될 신을 잘못 섬겨 노여움을 산다거나, 잡신이 와서 붙은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우환이 있을 때 굿을 하여 신을 섬기고 잡귀를 몰아내면 우환은 당연히 제거될 거라는 믿음이 굿의 근거가 된다. 우...
-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마음을 진주 남강에 빗대어 읊은 대중가요. 노래 「울어라 진주남강」은 논개의 한(恨)을 촉석루와 남강에 반영하여 그린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무명호가 작사하였고 김동택이 작곡하였으며, 박지연이 노래하였다. (1절) 촉석루 난간위에 달빛만이 고요한데 엄마 찾는 어린 물새 울음소리 애달...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서재.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조좌랑 등을 거쳐 정언(正言)을 지내고, 소윤(小尹)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1...
-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운수업체. 설립자 하라다(原田)는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 출신으로 사업 기반을 확보하고 금전적으로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노동자를 착취하는 등 악덕기업주로서 노사 간의 충돌을 일으키는 등 불합리한 경영을 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진주지역을 기반으로 조선인들의 경제력을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일본에서 운전기술을...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와 진성면 중촌리·하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일명 달음산이라고도 한다. 월아산은 남강을 허리에 두르고 있으며, 달음산고개(질매재)를 연결 고리로 주봉인 남쪽의 장군대산(482m)과 북쪽의 국사봉(해발 471m)이 이어져 있다. 월아산은 구릉을 이루고 있지만 숲이 아름다운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족 단위의 주말 산행이나 한나절 산행으로 적합하며, 장...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琴山面)에 전해오는 월아산(月牙山)의 금호못[琴湖池] 생성에 관한 설화.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심마을에는 앞으로 금호못이 있고, 뒤로는 월아산이 있다. 월아산은 남북으로 솟은 두 봉우리가 달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본래 이름은 달엄산인데, ‘엄’은 어금니를 말한다. 일설에는 큰 홍수가 나서 천지개벽할 때 초생달처럼 그 끝만 남았다고 해...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유구 및 조선시대 기와 가마터. 진주-집현간 4차선도로 건설로 인하여 2000년에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시굴조사를 하였고, 동년에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160여기의 삼국시대 구덩유구와 조선시대 기와 가마터 7기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의 구덩은 중심연대가 4세기인 요지와 관련된 시설이며, 유물은 요지시설과 관련된...
-
조선 후기의 진주농민항쟁을 이끈 유계춘(柳繼春)[?~1862]의 묘. 유계춘은 경상남도 진주시 원당면(元堂面) 원당촌(元堂村) 출생이다. 그는 환곡(還穀), 포흠(逋欠) 등 각종 폐단을 지적하며, 1862년 대대적인 농민항쟁을 일으켰다. 유계춘이 이끈 농민군은 수만 명으로 불어났고, 농민을 수탈하던 향리 4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하고, 아전이나 부호의 집이 불탄 것이 126호,...
-
경상남도 진주시 서쪽에 있는 이현동에 속하는 법정동. 유곡동은 버드골로 불리던 곳인데, 이곳은 돌깨나모티와 못밑 사이에 산재하고 있는 골짜기로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의 버드나무는 모두 베어 버리고 도시화되었다. 유곡동은 나불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발전하였으며, 도시의 편리함과 농촌의 순수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동이다. 본래...
-
공자(孔子)를 개조(開祖)로 하는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사상. 유교의 교리는 곧 인의(仁義)와 도(道)와 수기(修己), 치인(治人)에 귀결된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오경(五經)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四書)는 유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공자 이후 유교가 천하에 행하여져 여러 학파와 함께 일어났으나 증자(曾子), 자사(子思)를...
-
경상남도 진주시에 소재하는 유교적 신념을 공동체적으로 구현하는 단체. 조선조는 유교를 국교로 삼아 숭상하였다. 그리하여 유교의 가르침과 덕목이 일상생활 속에 파고 들어와서 생활화 되었다. 인간의 삶을 규율하는 온갖 형식과 규범치고 유교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유교단체란 유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각종 단체로 볼 수 있으며,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
조선 후기의 문신, 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고(子固)·성유(聖攸), 호는 수운(峀雲)·가산(茄山). 『진양지』에 따르면 묵죽을 잘그렸다는 유진동(柳辰仝)의 6대손이며, 유혁연(柳赫然)의 종손이자 사간(司諫)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벼슬은 종2품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묵화(墨畵)로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 조선 후기의 신위...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중옥(仲玉). 아버지는 효력부위 유수창(兪壽昌)이다. 1492년(성종 23)에 태어났으며 졸년은 모른다. 진주 정촌(鼎村)에 살았다. 집이 가난하였으나 글 읽기를 좋아하였다. 중종 때 진사에 급제하였다. 진사에 급제한 뒤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에 뜻을 깊이 두어 후학들을 일깨우는 것으로 자기의 소임을 삼았다. 그와 함께 사귄...
-
라디오 방송이나 레코드음악을 유선으로 각 가정에 송신하던 것이 텔레비전 또는 케이블 텔레비전으로 발전한 방송 형태. 유성방송은 처음 농촌에서 상호 연락을 취하거나, 도시의 일부 지역에서 가정이나 다방 등을 연결하는 레코드 방송(음악방송)을 하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961년 8월 24일 유선방송수신관리법(有線放送受信管理法)이 제정되었는데, 라디오 방송을 공동 수신하기 위한 스피...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판소리 교육에 힘쓴 판소리의 명창. 유성준은 1874년 전라남도 구례(求禮)에서 태어났는데, 전라북도 남원(南原)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진주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에 세상을 떠났다. 젊어서 송우룡(宋雨龍)의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고, 한때 정춘풍(鄭春風)과 김세종(金世宗)에게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판소리 이론으로 첫손을 꼽던 명창 김세종에게...
-
근대 개항기의 문신, 의병. 조선 1860년(철종 11) 서울에서 태어나 1889년(고종 26)부터 3년간 선전관 벼슬을 지냈다. 이 무렵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자 벼슬을 버리고 국권 회복을 꾀하던 중 1906년 고종으로부터 밀지를 받고 의병에 투신, 의병장이 되어 육남소모장(六南召募將) 칭호를 받았다. 이후 진주에 거주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다. 1907년 김동신(...
-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하기 전까지의 유아를 교육하는 기관. 「교육법」에 의해 설치, 운영되는 교육부 관할의 교육기관으로 재정형태에 따라 공립과 사립으로 구분된다. 공립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주를 이루며, 사립은 개인, 법인, 종교단체 등 설립주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 세계 최초의 유치원은 1840년 독일의 프뢰벨(Friedrich Wilhelm August Fröbel...
-
재화 및 서비스가 생산자에서부터 최종소비자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서 전통적으로 서부 경상남도의 상업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현재 동서로 남해고속국도, 열차 및 국도가 연결되어 있고, 남북으로는 대전~진주 간 고속국도가 개통되어 하나의 결절지로서 서부 경상남도의 인적, 물적 흐름의 중심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기계(杞溪). 진사 유백온(兪伯溫)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병을 불러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계사년(1593년) 진주성이 떨어질 때 장렬히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주부(主簿)에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의 나불천 위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36.0m, 폭은 18.0m, 높이는 6.5m이다. 경간의 수는 3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2.0m이다. 총차선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2차선(15.0m)과 보도(3.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RCT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구주식 교각이다. 설계하중은 DB-18.0이고, 통과하중은 32.4t이...
-
고려의 문신 유홍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유홍림은 본관이 진주로서, 고려 말 충렬왕[재위 1274~1308] 때 호부상서를 지냈다고 전한다. 유홍림이 태어나고 또 벼슬을 그만둔 후 내려와 살던 터에 유홍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 원당마을에 위치한다. 비에는 ‘高麗尙書柳公(고려상서류공)’이라는 글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본래 이곳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윤사복(尹思復)은 첨정 벼슬에 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입성하였다가 계사년(1593년) 진주성 함락 때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현재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
조선 말기의 의병. 진주 출신으로, 승지 벼슬을 지내 윤승지(尹承旨)로 일컬어지던 인물이다. 일제의 기록에 전직 대관, 승지 출신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벼슬을 버리고 항일 의병투쟁으로 일생을 보냈다. 윤자승이 이끈 의병의 규모는 200명 정도였으며, 최대일 때는 60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로 진주 인근의 덕산·삼가·산청 등지에서 활약했다....
-
진주지역에서 섣달 그믐날 밤이나 설날에 윷을 이용하여 그해의 길흉(吉凶)을 점쳐보는 풍속. 사점(柶占)이라고도 하며, 윷가락을 세 번 던져서 나오는 결과를 가지고 길흉을 판단한다. 윷점은 여러 명이 편을 짜서 집단으로 놀아 마을의 운수나 한 해의 풍흉(豊凶)을 점치는 것과, 한명이 윷을 놀아 나타난 숫자로 자신의 운수를 점치는 것의 두 종류가 있다. 마을의 운수를 점칠 때에는 남녀...
-
은어를 얹어 지은 밥. 남강이나 남강 지류에서 잡은 은어는 회로 먹거나, 소금구이, 튀김을 하기도 하고 밥으로 먹기도 하였다. 7~8월 은어가 산란을 하려고 바다에서 하천으로 돌아올 때 잡아서 여름철 별미음식으로 먹었다. 먼저 은어는 비늘이 없으므로 내장만 제거하여 깨끗이 씻은 후에 밥이 끓어오르면 은어를 통째로 머리를 밥 속에 박아 넣는다. 이어 밥이 다 되면 꼬리를 잡고 살을...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장군 강민첨(姜民瞻)의 사당.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옥봉동의 강민첨 탄생지는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는데,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1980년대에 사당과 정문, 그리고 재실을 신축, 정화하였다. 은열사는 강민첨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으며, 부속...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위치한 은열사(殷烈祠) 내의 암벽에 새겨진 글씨. 은열사 석각은 강민첨(姜民瞻)[?~1021] 장군의 사당인 은열사의 뒤편 화강암벽에 새겨진 ‘강은열공유지 (姜殷烈公遺址)’라는 글씨로서 1974년 12월 28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자연 암벽으로 이루어진 석각 바위의 전체 크기는 가로 5m 세로 1.4m이다. 암벽의 오른쪽에 남아...
-
영화 「진주라 천리길」의 주제곡. 「은주의 노래」는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영화의 삽입곡 중의 하나로서 『진주시사』에 소개된 ‘진주의 노래’ 중 하나이다. 은주의 노래는 영화 「진주라 천리길」의 주제곡으로 1980년대에 천봉이 작사하였고 한복남이 작곡하였으며, 황금심이 노래하였다. (1절) 반겨줄 님이라서 찾아왔건만 발길을 돌려야 할 사랑이었네 상처진 가슴안고 울고 갈길을 어이해...
-
대출·어음·증권 등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 은행은 개인과 단체의 자금을 보관·관리하며, 여기에서 파생된 사회의 각 부문에 존재하는 유휴자금을 모아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곳에 공급함으로써 경제를 원활히 순환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기관 및 조직을 의미한다. 한편, 은행이라는 말은 특정 시기를 대비하여 대체로 부족한 것이나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 따위를 모아서 보관·등록해...
-
소리의 높낮이, 장단, 강약 등의 특성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하여 음으로 나타내는 예술.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10년 즈음으로, 경상남도 진주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서양음악이 전통 예술분야에 흡입되어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國樂)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이 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진주 음악은 광복 전까지는 취주악 중...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번지[응석로 435]에 위치한 사찰. 응석사는 554년(신라 진흥왕 15)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할 뿐 자세한 건립경위는 전하지 않는다. 단지 응석사의 상량문에 1736년(영조 12, 건융 원년)에 상량했고, 1899년(광무 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진주 방면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합천 방향으로 가다가 우회전하...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의기사의 중건에 관한 기문. 진주성 내에 소재한 의기사는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論介)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義巖)으로 유인하여 함께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이러한 논개의 의로운 기개를...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김충은 원래 당(唐)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경덕왕으로부터 여남(汝南)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남민의 7대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
-
나라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조직하는 자위군.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아 고려·조선 시대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의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
-
입는 옷이나 입는 일에 관한 생활. 한국 고유복식의 기본형으로는 저고리, 바지, 치마, 관모, 대, 신발이 첨가된 북방식이다. 상류층은 중국복제물을 수용하였고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든 고유의 옷을 착용하였다. 이후 역사가 흐르면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려 말 목화씨가 들어오고 조선으로 넘어와서는 베 짜는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의생활에 많은 발전이...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논개에 관한 유흥요. 이 노래는 본래 진주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세월이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전승되고 있다. 전파 범위가 확장된 만큼 노랫말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진주 기생 의암이가···’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가장 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노래의 정확한 발생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랫말에 ‘진주 기생 의암’이라는 호...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서 전승되는 조선시대 의적(義賊)인 갈봉이에 관한 설화.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3에 정식으로 채록 사항이 밝혀져 있다. 1980년 8월 10일에 조사자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류재원은 65세의 남성이다. 옛날 진주에 의적으로 불리는 갈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서 채록하였으나 진주시 전역으로 전승된 의적(義賊) 강목발이에 관한 설화.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3에 ‘의적 강목발이 (1)’이란 제목으로 처음 수록되었다. 1980년 8월 12일에 조사자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이일해는 76세의 남성이다. 그 후 2003년 안...
-
진주지역에 내려오는 다리를 세어가면서 노는 아이들의 민속놀이. 주로 겨울철이나 명절에 여자아이들이 방에 앉아서 많이 하는데, 마주 보고 서로 앉아 다리를 엇갈리게 뻗고서 오른쪽 다리부터 노래에 따라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세어간다. 일반적으로는 ‘다리세기’ 혹은 ‘다리셈하기’, ‘발헤기’ 등으로 부른다. ‘이거리저거리각거리’란 이 다리세기를 할 때 부르는 노래에서 나온 명칭이다. 노래...
-
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이경상등상서」는 하진태의 효자 정려를 위해 암행어사에게 올린 경상우도 유생들의 진정서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진주목·감영에 수십 장의 진정서를 올렸지만 포증사업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자 암행어사에게 특별 건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암행어사 역시 공의를 빙자하여 번거롭게 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진정서를 올린 유생...
-
광복 이후 진주지역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을 주도한 교육자이자 시인. 1905년 11월 11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하였으나 1926년 중퇴하였다. 이어 교호쿠[京北]치과의학전문학교에 입학·졸업한 후 귀국하였다. 1946년 진주지역 문인들과 동인지 『등불』 발간을 주도하는 한편,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19...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부락에 있는 이기의(李琦儀)의 선정비(善政碑).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 이기의(李琦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선정비(善政碑)로 1847년 12월 안간역(安磵驛) 주민들이 건립하였다. 1980년 진주-합천간 도로를 확포장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자리(미상)에서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부락 북서쪽 어귀 진주-합천 간 도로변으로 옮겨졌다. 사...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중(汝重), 호는 월암(月菴). 성재(誠齋) 이예훈(李禮勛)의 후예이다. 이갈암(李葛庵)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699년(숙종 25) 기묘년에 문과에 올라 사헌부 등에서 관직생활을 하며 명성을 얻었다. 만년에 진주 월아산 아래에 있는 동산에 정사를 세우고 편액을 ‘월암(月菴)’이라 하였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백(致伯), 호는 안호(安湖). 정종의 열째아들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이집(李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기항(李基恒)이고, 아버지는 이완길(李完吉)이며, 어머니는 박세현(朴世炫)의 딸이다. 경상도 진주 출생으로, 1838년(헌종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무원 부정자가 된 이후 휘릉(徽陵) 별검,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 신촌마을에서 전승되는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에 있는 선돌에 관한 설화.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4의 채록 자료는 1980년 8월 7일에 조사자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일반성면 창촌리 신촌마을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손영권은 56세의 남성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들 가운데에는 암수 짝을 지은 큰 선돌이...
-
색소폰연주자·가요작곡가. 1931년 5월 1일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하였고, 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진주중학교 재학시절 가요작곡가 이재호(李在鎬)의 문하생이 되었다. 1952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였으며, 테너색소폰 연주자 엄토미(嚴吐美)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인 연주법을 사사받았다. 1987년 8월 31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1958년 한양대학교 졸업 후,...
-
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은 함안인(咸安人) 이상립(李相立)이고, 아버지는 강태관(姜泰館)이다. 진주강씨는 어려서부터 품행이 정숙하고 총명하였다.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이상립이 우연히 병에 걸려 위독한 상황에 이르자 백방으로 조치하고 정성을 다해 간병하였으나 마침내 세상을 하직했다. 강씨는 곧바로 약을 먹고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는데, 25세의 젊은 나이였다. 이 일이 알려...
-
조선 중기 진주 목사인 이상일(李尙逸)[1600~1674]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상일은 1650~1654년에 걸쳐 진주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보덕(輔德)으로 전임되어 진주를 떠나자, 1654년(효종 5)에 이상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973년에 옮겨와서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 가운데 있다. 비의 제목은 ‘牧使 李尙逸 去思碑(목사 이상일...
-
경상남도 진주 출신의 판소리 명창. 1872년(고종 9)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10살 때부터 판소리 공부를 시작하여 15살에 송우룡(宋雨龍)의 문하에서 3년간 공부하였다. 그 뒤로는 독학을 하다가 30살에 김세종(金世宗) 문하에 들어 간 뒤 판소리 명창이 되었다. 만년에는 진주지역에서 은거하며 후배를 양성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선유는 비록 성량은 풍부하지 못하였으나 동편(東...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이중광, 할아버지는 이현재, 아버지는 이명규이다. 1681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영조 병오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좌랑에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향리인 진주에서 뜻있는 학우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특히 향약을 수립하는 등 미풍양속을 선양하는데 심혈을...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주부(主簿) 이오(李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자침(李自琛)이다. 아버지는 증 영의정 이난(李鸞)이며, 어머니는 참봉 우담령(禹聃齡)의 딸이다. 아들은 우의정 이완(李浣)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1586년 소농보권관(小農堡權管)이 되었다가 남병사 신각(...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수일(李守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수일[1554~1632]의 본관은 경주, 호는 은암(隱庵), 시호는 충무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왜군 격퇴에 공을 세우고 1603년 진주성을 증축하는 등 1605년 길주목사로 갈 때까지 진주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수일이 진주병사 재임 중 병사를 사랑...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산골 노부부가 이야기로 우연히 도둑을 쫓았다는 소화(笑話). 경상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안동준 교수가 진주에서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설화들을 묶어 간행한 『진주 옛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자식을 두지 못한 노부부가 인적 드문 산골에 살았다. 밤이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무명 한 필을 꺼내어 시장에 이것을 내다팔아서...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옥오(玉吾), 호는 운당(雲塘). 기국이 웅위(雄威)하고 용모가 수려하였다. 어릴 때부터 도량이 커서 『소학(小學)』과 사서(四書)를 힘써 공부하여 유학에 정통하였다. 특히『대학(大學)』의 「성의(誠意)」편을 몸소 실천하여 체득하려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부모를 섬김과 형제를 사랑하는 데 도(道)를 다하였다. 부모...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 자는 공부(公夫),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대사성을 지낸 이미(李美)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강비호(姜匪虎)의 딸이다. 1436년(세종 18) 태어나 15세부터 문명이 널리 알려졌으며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배웠다. 1455년(세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젊은 나이에 출사하는 것은 교만한 성품을 기른다고 하면서 집에서 문을 닫고 독서하...
-
조선 중기의 무신.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鄭澈)의 막료로 있었는데, 적개의병장(敵愾義兵將) 변사정(邊士貞)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청하자 부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부하들이 잘 따르지 않았으나,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강화하고 사졸과 고락을 함께 하니 사람들이 점차 이에 복종하였다. 1593년 진주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자...
-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대중가요 작곡가. 1914년에 진주에서 출생하여 어릴 적에 형에게서 트럼펫을 배운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고등음악학교 본과 2년을 수료하였다.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고향인 진주에서 휴양 중 레코드사에 관계하는 친구의 소개로 대중가요 작곡을 하게 되었다. 1956년에 지병이 재발하여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요양하던 중 4·19혁명 직후 미발표곡들을 남긴 채...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이경성(李景成)의 아들이다.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의령현감으로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와 함께 의령에 침입한 나베시마 휘하의 왜군을 격파하였으며, 1602년 상주목사 뒤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함안군수 유숭인(柳崇仁)의 휘하에서 소모관(召...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인언(仁彦)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호협하여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83년(선조 16) 북도병마사 휘하의 군관이 되어 이제신(李濟臣)의 반란을 평정했고, 야인정벌에 공을 세웠다. 1593년 4월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하자, 경상우병사 김성일(金誠一)의 아장(牙將)이 되어 선봉에서 적장을 사살하여 적을 퇴각시...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경현(景顯), 호는 행정(杏亭). 할아버지는 이간, 아버지는 이유성이다. 어머니 이씨부인은 현모양처로 그 행실이 『진양지(晋陽誌)』에 잘 나타나 있다. 6세와 9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이대기 아래에서 품행이 단정하고 영리한 소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하였다. 꾸준한 수행의 과정을 거쳤으며, 향시에 합격한 후에 향리인 진주에 머물면서 지인...
-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숙(性叔), 호는 후은(後隱). 경상북도 영천 출신. 고려삼중대광 개국원훈 이총언을 시조로 한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후손이며, 이정봉(李禎鳳)의 아들이다. 1907년 조선 군대의 강제해산 이후 전국 각지의 의병봉기가 확대될 무렵, 경상남도 산청에서 의병을 일으켜 박동의(朴東儀)를 의병장으로 하고 이학로는 부장(副將)이 되어 의병활동...
-
일제강점기 백정의 신분해방을 주도한 사회운동가. 백정들은 일반인과 격리된 관계로 사실상 공교육을 받을 기회조차도 없었다. 다만 재산을 상당히 축적한 부호로서 사숙·의숙에서 수학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전문(傳聞)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도수업·수육판매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부호로서 잘 알려져 있다. 진주에서 형평운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 중 하나로, 이학찬의 자제의 공립보통...
-
지표상의 인문적 요소들을 분석 대상으로 하여 지역의 의의를 고찰·연구하는 학문 분야. 인문지리학의 연구 분야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의 다른 많은 학문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인문 현상 중에서 어떤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경제지리학, 교통지리학, 도시지리학, 취락지리학, 사회지리학, 인구지리학, 역사지리학, 문화지리학, 정치지리학 등 여...
-
문자나 그림을 기계적·화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종이나 천, 기타 물체의 표면에 복제하는 일. 인쇄란 일반적으로 문자나 그림 등을 여려 방법을 통하여 종이나 천 등의 물체 표면에 복사하는 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인쇄란 인쇄물을 만들기 위한 복제 기술 및 그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쇄물은 시각적 전달매체이므로 의사소통 수단의 하나에 해당하며, 최근에는 감각과 정서의 반응을 야기...
-
일제강점기에 민족사학재단에 의해 설립된 진주 지역의 여자중등교육기관. 1919년 3·1운동 이후 진주군 지수면의 재력가 허준(許駿)이 교육만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라고 생각하여 진주지역에 남자 중등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유지들의 뜻을 모아 진주일신고등보통학교(晋州一新高等普通學校)의 인가를 받았다.(현재 진주고등학교 자리, 상봉동 987번지) 그러나 일제가 민족자본으로 만들어지는 남자...
-
1910년 국권강탈 이후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민족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하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교통·통신시설은 비록 그것이 근대적인 시설이었다 하더라도 설치목적과 그 기능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그리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에만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정책에...
-
산림을 유지·조성하고 임목을 보육하여 이를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생산업. 임업에 대한 정의는 시대의 변천과 함께 계속해서 변해왔다. 초기 사회단계에서의 임업이란 단순히 산림자원을 획득하는 것이었지만, 점차 이에 대한 관리와 조성이 요구되면서 지금의 임업 개념이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현대의 임업이란 ‘산림의 합리적인 취급에 의하여 국민의 사회적·경제적 복리증진에 기여하는 활동’이라고...
-
1592년에서 1598년 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1587년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정치적 분란을 해소하고, 국제교역상의 불리를 타파하기 위해 중국 침입을 통한 체제 변혁전쟁을 구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하여 조선 침략을 시작하였다. 조선은 관군과...
-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큰 전투 조선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는 두 차례 있었다. 임진년(1592년, 선조 25년) 10월(이하 음력)의 전투를 제1차진주성전투라 하고, 이듬해 계사년(1593년) 6월의 전투를 제2차진주성전투라 부른다. 제1차진주성전투는 곧 진주대첩으로서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반면, 제2차진주성전투는 성이 함락됨과 동시...
-
기상 현상과 자연 현상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재해. 자연 재해의 대부분은 기상 이변과 관련하여 발생하며 태풍·장마·가뭄·우박·산불 등이 이러한 재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진주 지역의 재해는 대부분 풍수해에 의한 것으로 거의 여름철에 집중되고 있다. 인명과 재산상의 막대한 피해를 주는 재해의 유형을 살펴보면, 피해 규모나 발생 빈도에서 호우로 인한 피해가 가장 많고 다음은 해상...
-
지표 공간에서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위치·기후·식생·토양·지형·해양 등의 자연 현상. 인간 생활과 관계가 깊은 대기와 바다가 만나는 비교적 엷은 접촉대의 환경은 그 구성 요소가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장소마다 달리 나타난다. 환경의 구성 요소를 분류하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분포를 연구하는 것은 자연지리학의 본질적인 영역에 속한다. 진주의 위치는 수리적(數理的)으로 동경 127...
-
1951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창립되었던 신극 공연단체. 사실주의 연출의 창시자인 프랑스 안트완느(Andre Antoine)가 창설한 ‘자유극장(theatre Libre)’과 일본 근대극의 산실인 ‘축지소극장(築地小劇場)’처럼 ‘내 고장에 참다운 신극의 뿌리를 내린다’는 뜻으로, 이들 극장이름의 앞과 뒤를 따서 ‘자유소극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참다운 의미의 신극을 알리고자 노력...
-
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에 있는 어린이공원. 장대동에 위치하고 있어 장대어린이공원이라 한다. 1971년 5월 27일 지정된 도심 속 공원으로, 진주에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어린이공원이다. 전체 면적은 904.5㎡로 규모가 비교적 작지만, 진주의 유명한 어린이공원이다. 진주시내 중심부에 있는 공원으로, 공원 남쪽으로 지나는 본성로에 인접한 곳에 진주시외버스터미널과 반도병원이 있고,...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과 동성동 일부에 형성된 장어구이 전문업소 거리. 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에서 널리 알려진 거리 중의 하나로, 진주의 별미인 장어구이집이 늘어서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진주 남강가 식도락의 맛자랑 가운데 장어구이를 손꼽는 이들이 많은데, 장어구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한 영양만점의 진주 전통음식이다. 또한 진주야경을 바라보며 먹는 즐...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명보(明甫). 아버지는 선전관 장응익(張應翼)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키는 팔 척이며, 특히 힘이 뛰어났다. 평소 유학에 뜻을 두어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였다. 여러 번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자 활쏘기와 말 타기에 전념,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북도 변장을 제수받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간...
-
경상남도 진주시 장재동에 있는 도시근린공원. 장재동에 위치하는 도시근린공원이어서 장재공원이라 한다. 1976년 3월 27일 건설교통부 고시 제37호에 의거, 장재동 일원에 전체 면적 164,000㎡의 도시근린공원이 지정되었다. 장재동 일대는 전반적으로 농촌지역으로 되어 있으며, 지형적으로 대부분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장재공원은 진주시 초장동의 법정동인 장재동의 중심부에서 가까운...
-
경상남도 진주시 장재동 드무실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고분군.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에 ‘장재동 고분군’으로 실려 있으나 그 위치와 내용을 잘 알지 못하였는데, 2003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그 위치와 내용이 분명해지고 명칭도 ‘장재동 고분군①’로 정정되었다. 장재동 장재소류지 쪽으로 가는 길의 서쪽 야산 기슭에 있는 강학우 씨 집에서 약...
-
경상남도 진주시 장재동 드무실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장재산 고분군’으로 기록된 고분군으로, 2003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그 위치와 내용이 분명해지고 ‘장재동 고분군②’로 정정되었다. 장재동 고분군①의 북쪽 야산사면에 위치한다.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이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 가야고분군이다. 돌방무덤은 1기가 확인되는데, 오래 전에 도굴되어 봉분은 훼손되고 돌...
-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1882년 경상남도 의령의 백정 집안에서 태어나서 백정의 신분해방운동에 평생을 보냈다. 해방 후에는 우유업에 종사하다가 1970년대 중반 사망하였다. 백정 신분 때문에 정식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독학으로 글을 익히며 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20살을 전후해 진주에 살던 일본인 지주 겐지로의 도움으로 일본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법학을 전공한 장지필은 조선...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는 고려의 중신 이우칭(李禹偁)이다. 이우칭은 경주이씨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7세손으로 고려 초·중기에 보조공신(輔祚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후 재령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재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원래 경주이씨였으나 이때 분관하였다. 모촌 이정(李瀞)은 임진왜란 후, 덕천서원의 원장을 맡아 원우를 중건하였고...
-
집안에 우환이 자주 생길 때, 우환을 막고 재수가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하는 굿. 재수(財數)란 재물의 운수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말을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즉 사람의 운수 전반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수를 믿는다. 그래서 늘 재수가 있도록 하기 위해 굿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굿이 재수굿이다. 재수굿은 재수가 없어서 하...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개최되는 전국 규모의 소싸움대회.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소싸움대회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행사로, 역사를 대개 100년쯤으로 본다. 물론 진주 소싸움의 역사는 까마득하지만 체계적인 규칙과 시상품을 걸어 놓고 대회를 열게 된 것은 근대의 일이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정기적인 대회가 아니라 한가위를 전후해 열린 행사였다. 해...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이도의 초명은 치(齒)이며 시호는 성절(聖節)이다. 본래 공주에 세거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고자 남하하여 금강에 도착했을 때, 강물이 범람하자 태조를 도와 무사히 강을 건너게 했다. 그래서 태조로부터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통합삼한개국익찬(統合三韓...
-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인 형평사의 운동노선 전환의 계기가 된 회의.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는 창립 10개월만에 12개 지사와 67개 분사가 설립되는 등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강상호·신현수·하석금 등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과 전라·충청·경기·강원도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장지필·조귀용·오성환 등이 운동노선과 주도권 장...
-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 위치한 광장. 1996년 6월 1일 조성된 이 광장은 로데오거리의 중심부에 있어 젊은층의 유동인구가 많다. 특히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패션상가 골목과 먹자골목 등이 발달하여 있다. 진주시 대안동을 통과하는 4차선 도로인 중앙로를 경계로 ‘구(舊)종로’와 ‘로데오거리’ 두 개의 차 없는 거리가 있다. 진주 최대 재래시장인 중앙...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에 있는 성지. 정 안토니오는 본명이 정찬문(鄭燦文)이다. 진주지역의 천주교 선구자로서 안토니오는 그의 영세명이다. 조선 고종 3년(1866) 12월 20일 천주교박해 때 남강 백사장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백사장에 버려진 목 없는 시신만이 수습되어 고향인 사봉면에 몰래 묻혀 그의 묘는 ‘머리 없는 무덤’이라는 뜻에서 무두묘(無頭墓)라고 불렸다. 그동안...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에 있는 비. 1694년(숙종 20)에 진주 유림들의 공의로 창건되었던 정강서원의 옛터에 세운 비이다. 정강서원은 창건 후 거유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유생들을 가르쳤고, 1720년에 이르러서는 9인의 학자를 배향 봉사하면서 구현사(九賢祠)라 하였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배향된 학자는 우곡 정온(鄭溫), 수헌 강숙경(姜...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군일(君一). 군수 정만생(鄭晩生)의 아들이다. 정계남(鄭癸男)은 일찍이 무과에 올라 벼슬은 사과(司果)에 올랐다. 인조반정(1623)에 참여하였고 이듬해 이괄의 난에서 무훈을 떨쳤다. 인조반정 때의 공으로 정사공신이 되었으며 이괄의 난 때 세운 무공으로 다시 진무공신이 되고 은결(恩結)을 지급받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기선(鄭基善)의 선정을 기리는 비. 정기선(鄭基善)[1784~1839]은 조선 순조 때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인물이다. 약 2년간의 임기(1827.8.20.~1829.5.7.)를 마치고 떠난 지 2년 후인 1831년(순조 31)에 정기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마을 북서쪽 어귀 도로...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정치이다.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역시 정당이 존재하며, 국민과 정치를 연결시키는 매개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거가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어 정당의 역할이 중시된다. 정당의 일차적인 목적은 선거에 후보자를 내세워 당선시킴으로써 정치권...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1886년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원동에서 출생하여 초년에 한문을 수학하고 신문학을 독학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국내의 서예가 및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고 일본, 대만 등지를 순유하였다. 1953년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별세하였다. 정대기는 동양화 전반에 걸쳐 능하였으나 특히 사군자에...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경(汝慶). 호는 봉곡(鳳谷).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 정문부(鄭文浮)의 장자이다. 평소 품성이 곧고 도량이 넓었으며, 젊어서부터 재상의 자질이 있었다.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높은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아버지 정문부가 말년에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별세하자 세상과 인연을 끊...
-
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여길(汝吉), 호는 여우재(如愚齋). 생원(生員) 정문익(鄭文益)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문장이 넉넉하고 넓으며 지조가 높고 고상하였고, 가정의 교훈을 잘 지키고 따르며 자취를 거두고 숨겨서 기르니 주변의 선비들이 그 풍채와 용모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정대형(鄭大亨)은 장수(長壽)하여 후에 품계가 가선(嘉善)이 되...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했던 소목장(小木匠). 정돈산은 1939년 7월 13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열세 살 되던 해 진주에 있는 박우희 농방에 들어가 소목장 일을 시작하였고, 그 뒤 여러 가구점을 거쳐 1972년에는 김동진 가구점에서 고가구를 배웠다. 1979년부터 공방을 자영하였으며, 전국민예품경진대회 및 공모전에서 많은 수상을 하면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하...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서예가. 1909년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아버지 정상진과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나 부친이 건립한 비봉루의 현판을 쓰기 위해 서예에 입문하여 서예가의 길에 들어섰다. 평생을 서예에 매진하면서 진주시를 벗어나지 않고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만 진력하였으며, 부친이 건립한 비봉루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에 별세하였다. 부친인 정상진이 건립한 비봉루의 현판...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학여(鶴如). 군일 정계남(鄭癸男)의 아들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선전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때 선전관으로서 임금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의 동문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용강(龍岡).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정신(鄭愼)의 아들이다. 1589년(선조 22)에 생원(生員)에 합격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중형 충의공(忠毅公)이 화를 당함에 이르러 두 조카를 이끌고 남쪽으로 오다가 겸재(謙齋) 하홍도를 만나 진주에서 살게 되었다. 뜻을 고상(高尙)하게...
-
1200년(신종 3)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발생했던 사건. 1200년에 진주의 아전 정방의가 그의 동생 정창대와 함께 폭동을 일으켜 사람들을 마구 죽이자, 진주 사람들이 의거(義擧)하여 정방의를 죽이고 난을 1년 만에 평정한 사건이다. 고려 중기인 12~13세기에 일어난 무신의 난 이후, 민란이 집중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 원인은 귀족 사회의 상층구조가 붕괴되고 중앙 집권력이 이완...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산 3-2 정분 묘 앞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정분은 본관이 진주로, 단종 때 우의정에 올라 왕을 보위하다가 수양대군 일파에게 유배당하였다가 처형된 문신이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1396~1454] 묘를 위하여 이곳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으로 인근 주민들이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산 3-...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이다. 부사 정광보(鄭光輔)의 아들이며,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가 되고, 1509년(중종 4)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1516년 황해도도사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였으며 사간을 거쳐 1523년 부제학이 되었다. 1534년 동지사(冬...
-
경상남도 진주 정강서원(鼎岡書院)에서 봉축(奉祝)하는 9현에 대한 기록과 9현의 저술, 서원에 관계된 기록을 모은 책. 『정산지』는 진주 유생인 박지서가 1747년(영조 23)에 편찬했으나 그 뒤 속록(續錄)을 덧붙여 1753년에 완성하였으며, 정조 말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계속 추가되었다. 체제는 서(序), 목록(目錄), 구선생행록(九先生行錄), 정강서원저술(鼎岡書院著述), 발(跋...
-
일제강점기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자산가이자 친일파. 본관은 연일. 초명은 우용, 자는 상진. 1878년 출생하여 경상남도 진주군 봉정동에서 성장하였다. 1880년대 후반부터 상업에 종사하여 3천석에 달하는 부를 축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주로 수산물·미곡·소금 등을 거래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빈민구휼과 육영사업을 지원하는 등 주민들로부터 중망을 받았다. 19...
-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에 있는 송덕비. 정상진이 이웃의 농민 소작인에게 구제를 행한 행적과 은덕을 기념하기 위해 1918년 진주의 농민이 새운 송덕비이다. 귀부를 받침돌로 삼고 있으며, 그 위에 높이 178㎝, 폭 67㎝, 두께 24㎝의 몸돌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귀부는 풍화로 인하여 마멸상태가 심하나, 앞발 및 이목구비는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다. 몸돌에 새겨진 글자는...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이신(而信). 대제학을 지낸 정척(鄭陟)의 아들이다. 출생년은 미상이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1475년(성종 6)에는 홍문관부응교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폈다. 1479년 수찬으로 경연관(經筵官)을 겸하였다. 그 뒤 해주목사와 경기도경차관, 우부승지를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렀는데, 이때 해주목...
-
고려 후기의 문신. 진주 출신. 호는 우곡(偶谷). 정승을 지낸 정석(鄭碩)의 아들이다.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청맹(靑盲 : 겉은 멀쩡하나 실제는 눈이 안 보임)을 앓는다고 핑계대고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말년에는 진주 사봉면 사곡리에 우곡정(隅谷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신하를 보내...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윤원(允元), 호는 모재(慕齋).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성품이 침중하였으며,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겼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학질을 앓았다. 새벽마다 어머니가 쾌차하시기를 빌었더니 홀연히 새매가 메추리를 떨어뜨렸다. 이를 세 번에 걸쳐 드리니 어머니의 병이 드디어 나았다. 나이 34세에 병사하자 그 아우 정낙균이 형의 죽음을 슬...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하서(夏瑞). 호는 동호(桐湖) 또는 초객(樵客). 석정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동곡(桐谷)에 살면서 학문과 문학에 힘썼다. 모든 일에 있어 유학을 지키는 일에 힘썼으며, 조선 중기 진주 지역의 대학자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문집인 『겸재집(謙齋集)』 간행에 참여하였다....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형중(亨重), 호는 황계(篁溪). 용모가 수려하고 예의를 잘 지켰으며, 성재(性齋) 허전(許傳)에게 사사(師事)하였다. 1891년(고종 28)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이르렀으며, 시랑 한기동(韓耆東)과 함께 좋은 친구로 사귀었다. 1894년 갑오개혁 후 단발령이 내려지자 낙향하여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생을 마쳤다. 『진양속...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면재(勉齋). 평장사를 지낸 정연(鄭椽)의 아들이다. 1320년(충숙왕 7) 국자시에 합격하여 1345년(충목왕 1) 정당문학이 된 후 국정에 참여하였으며, 이어 청천군(菁川君)에 봉해졌다. 1352년(공민왕 1) 당시의 권세가 조일신(趙日新) 세력의 배경으로 찬성사가 되었으나 곧 조일신이 주살되자 그 일파가 함께 투옥되었다가 광양군수로 좌천...
-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우곡(愚谷). 찬성사 정신중(鄭臣重)의 아들이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1376년(우왕 2) 예문관검열이 된 뒤, 삼사도사, 공조·예조의 정랑, 전교부령(典校副令) 등을 역임하였다. 1394년(태조 3) 지선주사(知善州事)가 되었고, 1398년 봉상시소경(奉常寺少卿)이...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인백(仁伯), 호는 구암(龜岩)이다. 진사 정기(鄭起)의 아들이다. 성품이 온순하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약관의 나이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취학하였다. 조식이 훈계하여 이르기를 "몸을 사랑하기를 옥과 같이 하고 마음을 가지기를 물과 같이하며 병 때문에 스스로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는데,...
-
조선 전기의 문신·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제옹(濟翁).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정척(鄭陟)의 손자이고, 조선 전기 진주 출신의 문신인 정성근(鄭誠謹)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에 태어나 1501년(연산군 7) 문과급제한 후 승문원 부정자·박사를 지냈다. 일찍이 그 아버지의 성품이 강직하여 연산군의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께 물러날 것을 진언하였다. 1...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 출신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본관은 진양(晋陽). 1822년 10월 13일 아버지 정서곤과 어머니 울산 김씨(金氏)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안토니오이다. 1822년 진주 허유고개 중촌(현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의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정찬문은 강한 절개와 지조 있는 인품을 지닌 인물로 전해진다. 정찬문은 천주교 신자 집안...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응현(應賢), 호는 옥초(玉樵). 포은(圃隱) 정몽주의 후손이다. 임술민란(壬戌民亂: 진주민란)을 겪은 뒤로부터 진주 병영(兵營)의 창고가 비게 되자 정철기가 쌀 천 석을 바쳤다. 진주 병영에서는「연일정씨의창(延日鄭氏義倉)」이라는 6글자를 고문(庫門) 밖에 써서 달았고 또 조정에 전보하니 선공감가감역(鐥工監假監役)을 제수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정촌면의 전신인 정촌면(鼎村面)의 정(鼎)자에서 目을 지우고 정촌면(井村面)이라고 하고, 원 정촌면(鼎村面)은 정동(鼎洞)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정촌리(鼎村里), 지공리(枝貢里), 가차례리(加次禮里), 두모곡리(豆毛谷里), 진수개리(陳樹介里)였고, 임진왜란 이후에 두모곡리는 정촌리에 합했다. 18...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일대에서 일어났던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전쟁 중에 전국적으로 각 형무소에 수감 중이었던 공산주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 진주지역에서도 민간인들이 학살된 사건이 여러 발생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정촌면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이 계속 남쪽으로 밀려오자 그들에게 합세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정치의 목적은 국가 권력의 획득을 통해 국민의 행복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체계 내 구성원들 간, 정치참여집단 간 그리고 참여자들 간의 상호관계를 중시한다. 따라서 정치는 참여자 간의 상호작용이나 조정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전통시대의 정치와 근대 이후의 정치로 구분하여 고찰할...
-
일제강점기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지주·금융가이자 친일파. 경상남도 진주군 중안동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다. 1909년 중안3동에서 전당포를 경영하는 부호이자 금융업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빈민구휼과 육영사업을 지원하는 등 주민들로부터 중망을 받았다. 본격적인 사회활동은 1920년을 전후로 이루어졌다. 1920년 사립 일신고등보통학교 발기인과 경남도청 이전방지 동맹회 상경진...
-
임진왜란 때 활약한 군관이자 비거(飛車) 발명가. 정평구는 전라북도 김제군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논어』와 『맹자』를 줄줄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이 되어 문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여 다시 무과에 응시하였고, 이후 무관 말단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라 우수사로 부임해온 당시의 명장 이억기(李億祺)가 정평구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중용함으로써 비로소 능력을 발...
-
조선 말기의 의병. 본관은 연일. 진주 출신으로 아버지가 내금위장을 지내는 등 유력한 가문의 후손이다. 일찍이 등과한 후 1896년 진주 의병장을 맡아 노응규의 진주성 점령에 큰 공을 세웠다. 의병투쟁이 끝난 후 의병이 해산되자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였다. 의병해산과정에서 함께 진주의병을 이끌었던 의병장 노응규를 투옥한 일로 인해, 당시 유림들에게 관군과 결탁했다는 비난을 받...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서예가. 1905년 당시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출생하여 유년기에 친척인 노백헌 정재규로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고, 일찍이 진주로 이주하여 서예가로서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통하여 서예가로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행서에 능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여 말술로 이름이 났고 북을 잘 다루어 한량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1973년 69세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보여(保汝), 호는 박원(璞園). 정기화(鄭琦和)의 아들로 1817년에 태어났다. 1867년 진주목사(晋州牧使)로 부임하여 1870년까지 활동하였다. 의기사를 중건하였으며, 교방기구(敎坊機具)를 재설치하고, 의암별제(義巖別祭)를 신설하였다. 1870년에 김해부사로 전임되어 갔다. 문장명필(文章名筆)을 겸비한 선비로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용인(勇仁)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용(司勇)에 올랐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 서궁(西宮) 유폐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때 임금 앞에서 폐서인을 지지하는 회의가 있었다. 정호신은 태연히 그 회의의 참석을 기피하였는데 부도덕한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던 충의가 인정되어 정청불참자록(廷請不參者錄)에 이름이 실렸다. 『진양속지(晋陽續誌...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연일. 자는 성원(聲遠)이고, 호는 삼비재(三非齋).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고,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법도가 있게 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조선 중기 진주 지역의 유학자였던 월촌(月村) 하홍달(河弘達)이 재명(齋銘)을 찬하였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판결사 정유성(鄭惟誠)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웠다. 후에 선무원종공신이 되었고 주부에 제수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도 이름이 올랐다....
-
조선 전기의 열녀. 생원 정변소(鄭卞韶)의 딸이며, 정희성(鄭希聖)의 처이다. 진주 주내에 살았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진주성이 함락될 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적을 꾸짖으며 의연히 죽어 정절을 지켰다. 정려문이 세워졌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랐다....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전승되는 제 복에 사는 딸에 관한 우행담(偶幸譚)적 설화.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4에 정식으로 채록되어 있다. 1980년 8월 3일에 조사자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성경선은 61세의 여성이다. 그 후 하종갑이 수록된...
-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진주에서 진주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군과 왜군이 벌인 제1차 전투. 1592년 4월 왜군이 조선에 침입한 이래 조선 전 지역에서는 관군의 유명무실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한성까지 함락되었다. 그러나 전국에 의병이 일어나면서 왜군과의 전투에서 차츰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조선과 일본의 전쟁과정에서 특히 진주에서 벌어진 제1차 진주성전투는...
-
임진왜란시 진주성을 중심으로 1592년에 싸운 이래 두 번째로 조선군과 왜군이 벌인 전투. 1592년 10월에 조선군과 왜군이 제1차로 전투를 벌인 결과 조선군이 왜군을 대패시킨 이래 왜군은 이를 만회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제2차 진주성전투로도 알려진 이 싸움에서 제1차 진주성전투와는 정반대로 조선군은 왜군에 대패하였다.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 이래 1년 동안 전쟁...
-
각종 원료를 가공·제조하는 공업. 제조업은 제1차 산업에서 생산된 원료를 가공하는 제2차적 생산을 수행하는 산업으로서, 광업·건설업과 함께 제2차 산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진주의 제조업은 한일합방 당시까지만 해도 농산물 등의 단순 가공에 머무는 수공업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1906년과 1914년 두 차례에 걸친 행정구역개편으로 인한 종래의 관할지역의 축소와 전통적인...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병현(趙秉鉉)의 선정을 기리는 비. 경상도관찰사 조병현이 임기(1834~1836)를 마치고 떠난 뒤 3년 후인 1839년(헌종 5)에 조병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마을 북서쪽 어귀 도로변에 남향으로 있다. 1980년 진주~합천간 도로를 확·포장할 때 원래 있던 자리에서 현재 위치로...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조상의 혼령이 담긴 것으로 여기고 집 안에서 모시는 단지. 세존(世尊)단지 또는 시조단지라고도 한다. 조상단지는 주로 종가(宗家)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지금은 잘 찾아볼 수 없으며, 조상단지에 대한 신앙의 의도가 분명하지는 않다. 진주 지역에서는 쌀농사와 보리농사가 끝나면 햇곡을 갈아 넣는데, 이 곡식으로 제사 때 놓을 메(제사 때 신위 앞에 놓는 밥)를 짓...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금융기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할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은행이다. 실제적으로는 일제의 조선식민지화 산업을 지원하여 조선인에 대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였고,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정책기관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한국산업은행에 흡수되었다. 진주지역에 있던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해 주기 위한 목적...
-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가는 삼가판현(三嘉板峴)[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지역]에 있었고, 토동(兎洞)은 외가이다. 아버지는 조언형(曺彦亨)으로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냈으며 강직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충순위(忠順衛) 이국(李菊)의 딸이자 좌의정(左議政) 최윤덕(崔潤德)의 외손녀였다. 조식은 이...
-
진주성 촉석루 풍경화의 대표 화가. 조영제의 호는 효석(曉石)으로, 1912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서양화의 기법을 습득하였으며, 광복 전에는 진주의 대표적인 선전(鮮展) 수상작가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진주의 미술활동을 주도했다. 1984년 72세의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줄곧 진주에 살면서 촉석루와 함께 하는 진주인의 서정이 담긴 유화와 수묵담채화...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섬겨온 부엌을 관장하는 가신(家神). 조왕신은 조왕각시 또는 조왕할망이라고도 부르는 여성신이자, 재산신이다. 조왕신은 화신(火神)으로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계한다. 신앙의 목적은 가족들의 질병과 액운을 막기 위해서인데, 조왕신은 삼신처럼 아이를 점지시키는 능력도 있어서 태어난 아기의 건강을 빌기도 한다. 부녀자들에게는 삼신과 더불어 성주신(城主神)...
-
조선 중기의 유학자 한몽삼의 사승관계(師承關係) 및 교우관계를 기록한 고문헌. 한몽삼(韓夢參)[1589~1662]은 자(字)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으로 1589년 경상남도 진주시 정수(현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정수)에서 태어났다. 20세 되던 1608년 황암(篁巖) 박제인(朴齊仁)의 문하에서 배우다가 24세에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생원시(生員試)에...
-
조선 중기의 무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았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 공격해오자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중심으로 왜적에 대항하였다. 이 때 조응도는 고성의 가장(假將)으로서 진주 복병장(伏兵將) 권유경(權惟敬)과 함께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쪽 문을 지켰다.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南江) 밖 재 위에 벌려...
-
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
주민의 복리증진과 진정한 자치실현을 위한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주민자치센터는 교통·통신의 발달 등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읍·면·동사무소의 쇠퇴된 기능과 인력을 축소하여 민원·복지기능 중심으로 재편하고, 이로 인해 남는 유시설을 문화·복지·자치공간으로 조성, 주민의 복리증진과 진정한 자치실현의 장으로 활용하여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공공단체이다. 진주시의 행...
-
사는 곳이나 사는 지역에서의 생활 모습. 진주지방의 주거 흔적은 진주시 대평면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대평리 집터유적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변의 평야지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대평리 집터유적은 진주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집터의 흔적인데, 기원전 1000년~300년 사이의 청동기시대 유물로 기록되어 있다. 대평리 집터는 동서로 18.6m, 남북이 4.6m에 깊이는 30㎝인 대규모...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행정동)과 칠암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을 많이 심었다 하여 ‘약골’ 혹은 ‘약동’이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3월 1일 진주군 섭천면(涉川面) 약동(藥洞)을 내동면(奈洞面) 주약리(株藥里)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8월 15일 주약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 자체로만 보면 남쪽으로 비교...
-
한국전쟁 당시 경상남도 진주시 주약동에서 일어났던 미군 전투기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전쟁 당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의 사망도 많았다. 이 중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군이 아닌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도 미군 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제기되고 있다. 진주지역에서도 1950년 8월 3일(음력 6월 20일)에 진주시 주약동 약골에서...
-
경상남도 진주시 주약동에 소재하고 있는 초등학교 창의력과 특기를 가진 똑똑한 어린이 창의인, 기본 생활 습관이 바로 된 착한 어린이 예절인,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건강인을 육성한다. 2003년 1월 4일 진주주약초등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고, 2003년 3월 1일 진주 망경초등학교와 천전초등학교에서 22학급을 분리하여 개교하였다. 2003년 3월 10일 3학급을 증설하여 25학급...
-
1905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간행한 『주자어류』 50권의 책판. 『주자어류(朱子語類)』는 본래 송나라 때 여정덕(黎靖德)이 주자와 그 문인들과의 문답을 집성하여 편집한 50책이나 되는 거질(巨秩)이며 성리학 연구의 필독 도서이다. 1575년(선조 8)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간행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인조 때 영남감영(嶺南監營)에서 다시 간행했으나 또 소실되었다. 177...
-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진주 최초의 전문건설업체. 죽본조(竹本組)는 일제시대에 설립되어 주로 건축·토목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경상남도 진주 최초의 전문건설업체로 진주는 물론 서부 경상남도 전역의 주요 공사를 독점하였으며, 죽본조의 중심인물인 죽원웅차(竹元熊次)는 정미업과 운수업에도 손을 댔다. 합자회사인 죽본조는 죽원웅차를 중심으로 하여 좌등금장(佐藤金藏)과 함께...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신당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의 교회. 진주 배돈병원을 세운 호주 선교사들에 의해 1933년 3월 16일에 예배·교육·전도·봉사를 통해 구원사업을 펴기위해 설립되었다. 죽산교회는 농촌지역 교회의 어려운 여건 때문에 발전이 더디었다. 1990년 정상문 목사를 당회장으로 모시고 1997년 새 성전을 신축하고 헌당예배를 드린 이후, 제도적인 교회의 면...
-
조선 후기 진주 유학자 하성의 시문집. 『죽헌선생문집(竹軒先生文集)』의 저자 하성의 자는 자경, 호는 죽헌이다. 본관은 진주로, 사간 하진보에 입양되어 최영경(崔永慶)에게 수업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郭再祐)를 좇아 화왕산성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에 대한 그릇된 처사에 대해 정온(鄭蘊)과 함께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죽헌 하성[1571~1...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 있었던 가야시대의 고분군. 『조선고적도보』에는 진주지역 출토품이 사진과 함께 간단한 설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출토고분의 위치나 성격을 잘 알지 못하다가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계기로 2000년 중안동 고분군 출토품으로 확인된 유물이 실측도와 함께 소개되었다. 고분의 위치와 유구의 성격은 알 길이 없다. 항아리 5점, 재갈 1점, 금동제 말띠드리개 1...
-
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대안동·평안동·장대동과 수정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진주시의 정 중앙에 위치하여 중앙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1997년 7월 1일 동 통폐합으로 법정동인 평안동, 대안동, 동성동, 장대동 전역과 수정동 일부를 편입하여 행정동인 중앙동이 되었다. 진주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외버스 터미널이 근처에 있어 교통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2011년 9월 30...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에 위치한 재래시장. 진주시청에서 서북 방향에 자리 잡은 중앙동은 이름 그대로 진주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중앙시장을 비롯하여 지하상가, 각종 금융기관, 의료시설 등이 있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구종로거리 등으로 수많은 유동인구를 지닌 진주의 경제·문화 중심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의 중앙동은 1997년 평안동·동성동·장대동·수정동의...
-
우리나라의 장시는 15세기 후반 전라도지방에서 처음 성립된 후 16세기에 전국적인 개설을 보게 되었고, 17세기 중엽 이후 수적인 면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당시 대동법의 실시와 동전 유통의 확대, 농업의 상품작물 재배 증가 등과 함께 장시의 개설지역도 교통의 요지나 물화집산지가 아닌 외진 곳까지도 확대되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장시가 5일장화 되면서 각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농업생...
-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 위치한 사설시장 중앙시장은 진주시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시장을 비롯하여 각종 지하상가, 금융기관, 의료시설 등과 젊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리 등으로 수많은 유동인구를 지닌 진주의 물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현재의 진주 중앙시장은 조선시대(1884년)에 형성된 지방장시가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는 시장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진주는 경상도 서부의...
-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 있는 재래시장. 1988년 5월 28일에 개설되었다. 대지면적은 7,815㎡이며, 건물면적은 7,666㎡이다. 건물구조는 지하1층이며, 매장면적은 3,229㎡이다. 영업점포수는 자영점포수 75개, 임대점포수 150개를 합쳐 총 225개의 점포가 운영 중에 있다. 이들 점포 중, 특히 옷가게, 안경점 등이 성업 중에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 21번지[진...
-
당나라 승려 현각(玄覺)[665~713]의 오도송을 인쇄한 책. 이 책은 보물 제758호로 지정된 『증도가』와 영광 불갑사에 소장되어 있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44호 및 제245호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모두 주석이 있는데 비해 이 책은 반곽에 32자의 원문만 크게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증도가』는 그 예가 많지 않고 어미의 형태나 지질로 보아 연대가 상당히...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식실마을에서 전승되는 닭이 지네로 변하여 과부를 해코지 한다는 내용의 설화.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3에 정식으로 채록되었다. 1980년 8월 6일에 조사자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식실마을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박순악은 68세의 여성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청상과부가 살...
-
어떤 지역의 주민들이 법률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하여 중앙정부로부터 일정한 독립성을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정치제도.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한 제도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며, 최상의 학교이자, 성공의 보증서”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방자치의 필수 요소로서 지역·주민·자치권을 들고 있다. 따라서 진주시의 지방자...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丹牧)리의 진양하씨 문중에서 편찬한 문집.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진주를 중심으로 남명학을 계승하는 선비들이 배출되었고, 진주 단목의 진양하씨 문중도 그 중 하나이다. 단목 진양하씨의 가학으로 정착한 남명학은 그 후손들에 의해 맥을 이어갔는데 인재(忍齋) 하윤관(河潤寬)이 대표적 인물이다. 인재의 학문은 그의 아들인 하응회(河應會)와 손자인 죽와(竹窩...
-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과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지각을 구성하는 것은 화성암·퇴적암·변성암 등 암석이지만, 그 중에는 굳지 않은 부드러운 물질도 있다. 이들을 통틀어서 지질이라 한다. 지표 가까이의 토양·화산재(火山災) 같은 풍성층(風成層) 등을 특히 표층지질(表層地質)이라고도 한다. 진주시 일대의 지질은 중생대 경상계의 퇴적암류와 후기에 이를 관입한 화강섬록암, 염기성암맥 및 산...
-
지표면의 기복형태. 지형은 인간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지형 형성은 기후·토양·식생 등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들을 통하여 인간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진주시의 지형은 진주시 단독으로 분리하여 고찰할 것이 아니라 영남 지방의 지형을 통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영남의 지형은 동부의 태백산맥, 서부의 소백산맥, 중앙부의 낙동강 수계하곡 등, 세 가지 지형 구조로...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경직(敬直), 호는 백곡(栢谷). 청백리 진유(陳猷)의 증손이다. 아버지 부제학 진식(陳寔)이 간신 김안로(金安老)의 죄를 극언하고 화를 피하여 진주로 내려왔다. 원래 진식은 진극경의 당숙이며, 생부는 생원 진정(陳定)이다. 효자로 이름을 남긴 진인(陳寅)의 아버지이다. 1546년(명종 1) 진주 백곡촌에서 태어나 마동에서 살았다. 약...
-
진주지역에 내려오는 남자아이들의 민속놀이. 진놀이는 진(陣)을 이용하여 편을 나눈 후 겨루기를 하는 놀이인데,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군영의 진(陣) 만들기 훈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겨루기 놀이의 대표적인 놀이로 이 놀이를 중심으로 진치기, 나이 먹기, 왔다리 갔다리(와리가리) 등의 진을 이용한 놀이가 파생되었다고 보여 진다. 이 진놀이는 양쪽 진을 중심으로 각 진으...
-
경상남도 진주시 하대동에 위치한 공립 여자중학교. 교육목표는 미래 사회를 창조할 올바르고 능력 있는 민주시민 육성이며, 교훈은 슬기롭고 예의바르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1980년 1월 24일 진주서여자중학교로 6학급 설립인가를 받고, 1980년 3월 5일 개교하였다. 1993년 2월 18일 지금의 위치로 교사(校舍)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999년 3월 1일 진명여자중학교로 교명을...
-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금융조합. 1928년 10월 당시의 진양금융조합 업무구역 중 진주지역의 도동·대곡·집현·미천의 4개 면을 업무구역으로 하는 금융조합 신설의 필요성이 일어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1928년 11월 설립준비위원으로 진주군수 우에노[上野竹逸] 이하 관계자 14명이 선임되어 설립을 추진하였다. 조합 이름은 진주의 옛 이름을 따서 진산금융조합이라 정하...
-
경상남도 진주와 삼천포 사이에 건설되었던 철도 노선. 진삼선 철도 건설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부터 계획되었으나 태평양전쟁과 해방으로 공사가 지연되다가 한국전쟁 후 1953년 5월 진주 개양역[현재 진주시 가좌동 소재]과 사천역 간 10.5㎞가 개통되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1965년 12월 27일 삼천포까지 29.1㎞의 진삼선이 개통되었다. 진삼선의 개통으로 삼천포 방...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위치한 진양호 위의 다리. 교량의 길이는 830.0m, 폭은 10.4m, 높이는 17.0m이고, 경간 수는 17개, 최대경간거리는 50.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1차선이고,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SCH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ETC형식이고, 통과하중은 24.0t이다. 남강댐 건설에 의하여 인공호수인 진양호가 형성되자 내동면 내평리...
-
조선 전기의 문신 하윤린(河允潾)의 신도비. 하윤린의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소개(所開)이다. 고려 문정공(文貞公) 하시원(河恃源)의 아들로, 문충공(文忠公) 하륜(河崙)의 아버지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는 오방재(梧坊齋)의 동쪽에 있다. 비의 형태는 비대(碑臺), 비신(碑身), 그리고 이수(螭首)를 갖추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305㎝, 비의 높이는 200㎝, 너...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2월 월내(月內)에 행했던 마을 단위의 잔치. 예전에는 들풀의 싹이 나와도 시름을 놓았다고 한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나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월부터는 본격적인 농번기를 맞는 시기여서 각 마을 단위로 잔치를 벌이는 일이 많았는데, 이를 진주 지역에서는‘해치’라고 했다. ‘회치’, ‘회취’라고도 하는데, 진주 지역의 방언으로 모여서 취하도록...
-
김계원이 작곡한 고향 진주를 소재로 한 가창곡. 노래 「진양강산」은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가 더없이 좋다는 마음을 담은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김계원이 작사 및 작곡하였다. (1절) 비봉산 허리에 아지랑이 끼이고 의곡사 골짜기에 뻐꾸기가 울면은 이 언덕 저 언덕에 삼삼오오 짝지어 나물 캐는 처녀들의 노래 소리 고와라...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남강 위에 놓인 다리. 교량의 길이는 260.0m, 폭은 18.5m, 높이는 8.0m이다. 경간의 수는 13개이며, 최대경간거리는 20.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선(14.0m)과 보도(4.5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CI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교각식이다. 설계하중은 DB-18, 통과하중은 32.4t이다....
-
경상남도 서남부에 1994년까지 존속했던 행정 구역. 1895년 지방 제도 개정에 의해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면서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입지하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의해 진주군의 44개 면이 17개 면으로 통합되고, 함안군의 3개 면이 2개 면으로 폐합되어 진주에 편입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
1392년에서 1402년까지 진주에 설치된 행정 관서. 대도호부(大都護府)는 그 읍격(邑格)이 부윤(府尹)이 파견되는 부(府)와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파견되는 도호부(都護府)의 중간에 위치하며 목사(牧使)가 파견되는 목(牧)과 같다. 1392년(태조 1)에 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내향이라고 하여 진주목(晋州牧)을 높여 진양대도호부(晋陽大都護府)라고 하고 진양대도호부사(晋陽大都護府使)...
-
『소문쇄록』에 수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진주시에 관련된 이야기. 『소문쇄록』에는 ‘진양은 옛 제왕의 도읍이라 한다.’는 『파한집』의 기록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한집』에 ‘진양은 옛 제왕의 도읍이라 한다.’ 이인로가 어디에 근거하여 말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삼한시대에 진주에 세운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단지 얼마 안 되는 고을일...
-
성여신(成汝臣)이 편찬한 경상도 진주목 읍지. 1622년(광해군 14)부터 1632년(인조 10)에 걸쳐 편찬하였는데, 정구(鄭逑)가 1587년(선조 20) 편찬한 『함주지(咸州誌)』(경상도 함안군 읍지)의 영향을 받아 그 체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필사본이다. 1730년(영조 6) 반포되었으며, 현재 규장각도서에 있다. 2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채색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제1책은...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일대 남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만들어진 인공 호수.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낙동강 치수 사업의 일환으로 남강댐 건설과 더불어 형성된 인공 호수로 유역 면적 2,285㎢, 저수량 1억 3600만 톤으로 7년 6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70년에 준공되었다. 그 후 1999년 10월 댐 보강 공사가 완공되어 현재는 저수량 3억...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일원에 있는 호반공원. 진양호를 둘러싸고 조성된 공원이어서 진양호공원이라 하였다. 진양호공원은 건설부 고시 제293호로 1981년 8월 6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면적은 26,392,621㎡이며, 관리청은 수자원공사와 진주시 진양호공원 관리사업소이다.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유역면적 2,285㎢, 저수량 1억 3...
-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는데 경호강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덕천강으로 부른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전기 때의 장군 강민첨의 탄생유적지.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 장군을 도와 부원수로서 귀주전투에서 적을 격파, 전승을 거둔 바 있다. 그 공으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이 되고, 곧 이어 우산기상시에...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진주 담산 고택은 19세기 중엽 단파(丹坡) 하계룡(河啓龍)[1851~1932]이 건립한 주택이다. 당호(堂號)는 담산(澹山) 하우식(河祐植)[1875~1943]의 호를 따서 담산 고택으로 하였다. 단목리는 창주(滄洲) 하증(河憎)[1563~1624]이 입향하여 번성한 집성촌이다. 이 가문은 후손들인 습정재공, 생원공,...
-
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는 호구단자, 준호구, 분재기류, 유명 인물의 편지도 섞여 있는 등 다양한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문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호구단자 및 준호구 호구단자 24건과 준호구 1건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중 하명(河洺)의 준호구는 17세기...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책판. 이 책판의 저자 창주(滄洲) 하징(河澄)[1563~1624]은 정인홍의 문인으로 남명 조식의 제자들에게 인정을 받아 1606년에는 덕천서원의 원장으로 역임하였으며 남명의 작품을 간행하는 것을 주도하였으며 1620년에는 『진양지』를 최초로 편찬하였다. 창주집 책판은 1897년 12월에 진주의 오방제에서 목활자로 간행되었던『창주선생유사서』를...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현판. 진주 지방 함양 박씨(咸陽朴氏) 집안의 노비 최의남(崔義男)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기려 1686년(숙종 12)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진주 동산리 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정려각 안에 있다. 정려각은 바닥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맞배지붕에 공포는 없...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재령 이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일대는 조선 전기 재령 이씨(載寧李氏) 모촌 이정(李瀞)이 입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진주 마진리 이영 소장 고문서 일괄은 이덕관(李德寬)의 집안인 마호당(磨湖堂)에서 전해 오는 고문서들 가운데 195건으로, 2012년 7월 26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22호로...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효자인 모순(牟恂)의 정려비. 모순은 진주모씨로 호는 절강이다. 조선 1417년(태종 17)의 식년친시(式年親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사간원의 사간을 지냈다. 세조 때 진주로 와 살았다. 일찍이 효행이 지극하였는데, 모친상을 당하여 상여가 강을 건너지 못하자 하늘에 통곡하니 흐르는 물이 중단되었다. 마침내 강을 건너 장례를 치렀고, 이 때문에 호를 절강이라...
-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에 있는 성당. 1899년 진주에 최초의 성당인 진주본당이 세워졌을 당시 진주에는 24개의 공소가 있었다. 그 중에서 신자들이 가장 많았던 곳이 소촌공소였다. 소촌공소는 1905년 5월 소촌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뒤에 지금의 진주 문산성당이 되었다. 초대 주임신부였던 줄리앙 신부가 1907년 조선시대 감찰방이 있던 부지 2,400여 평을 매입했는데, 이...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건물. 진주시는 1896년(고종 33)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해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로 기능했는데, 1925년 4월 1일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현재의 진주성 안에 경상남도 관찰부 청사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구 진주 배영 초등학교는 진주성 북측에 대사지(大寺池)가 있어 일정 거리를 두고 건축되었다. 진주...
-
조선시대 진주의 향사당 내에 존재하고 있던 벽오당(碧梧堂) 건물의 현판. 벽오당은 원래 조선 태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호정 하륜(河崙)[1347~1416]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자 태종(太宗) 임금이 직접 내린 교서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임금은 특별한 예우로 잔치를 베풀고 친필인 벽오당(碧梧堂) 현판을 하사하였다. 진주 향사당(鄕射堂) 뒤에 벽오당을 지어...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加芳里)에 있는 조선 중기의 누각(누정) 건물.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慶尙右道)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닦던 장소였다. 부사정(浮査亭)의 ‘부사(浮査)’는 부사 또는 야로(野老)로 불려지던 성여신(成汝信)[1546~1632]의 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성여신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야로로 남명 조식(曺植) 선생의 문...
-
경상남도 진주시의 비봉산에 있는 누각. 비봉산 아래에 위치하여 비봉루라는 명칭이 붙여졌을 것이라는 추측 뿐 별 다른 명칭유래는 없다. 비봉루는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장구지소(杖求之所: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여서 정몽주의 후손인 정상진이 1939년에 누각을 지은 것이다. 비봉루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7-1[창렬로 205-...
-
진주지역에서만 쓰이는 비표준말. 진주 사투리는 변한어(弁韓語)에 뿌리를 두었고 지역이 신라에 통합되기 전에는 가야의 옛 땅이었으므로 가야와 신라어 및 백제어의 일부가 녹아 있을 것으로 본다.진주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시(市)로, 동쪽은 마산시와 함안군, 서쪽은 하동군과 산청군, 남쪽은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은 의령군과 접하고 있다. 시의 북부와 서부의 동남부 지역에는 백두대간인...
-
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
-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의 교회. 진주와 서부경상남도를 일깨우고 복음화 하는 일에 앞장서는 교회, 주변의 불우한 이웃과 장애우들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바로 세우고 작은 천국으로 만드는 교회, 남북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한 교회, 교회의 사명인 세계복음화를 위해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교회, 회개운동으로 사람을...
-
두 소를 마주 세워 싸우게 하고 이를 즐기는, 진주지역에 전래된 전통 민속놀이. 진주 소싸움에 관하여는 여러 곳에 그 기록이 전해지고 사진자료들도 많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12권 〈소싸움〉항목에서는 “경상남도 지방에서 주로 성행하였으며……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남강의 모랫벌에서 소싸움을 해왔으나…… ”라고 적고 있다. 같은 책 제21권의 〈진주시〉 항목의 민속에는...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위치한 송정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진양하씨 송정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들로서 분재기(分財記), 소송입안(訴訟立案), 호구단자(戶口單子), 토지매매문서(土地賣買文書), 소지(所志), 등장(等狀), 품목류(稟目類), 완문(完文), 절목(節目), 전령(傳令), 제음(題音), 초사(초사), 수기(手記), 위장(慰狀), 만장(輓狀), 제...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소재한 진양하씨송정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책판. 모두 4종의 책판 판목으로, 현재 보관중인 목판은 총 112매이다. 이 가운데 『송정집(松亭集)』 목판이 62매, 『각재집(覺齋集)』 목판이 30매, 『백암일고(白巖逸稿)』 목판이 8매, 『대각서원칠선생실기(大覺書院七先生實記)』 목판이 12매이다. 원래 하공진(河拱辰)의 사당인 경절사(擎節祠) 아래에 있...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소속의 교회. 1984년 8월 21일 하대동 346-6번지[도동로224번길 6-3]에서 권우석 전도사가 개척하였다. 1985년 10월 상평동으로 이전한 뒤, 진주 순복음교회로 이전 등기하였다. 1988년 11월 류기서 담임목사가 부임하였고, 1992년 12월 3층 건물을 매입하여 입당하였다. 2006년 4월 30일 상대동의...
-
통합진주시 출범과 진주성대첩 승전일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대첩 승전일(10월 10일)을 기리고 계사년 전투에서 순국한 선열들의 충절과 호국정신을 계승하여 진주인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시민 모두가 하나 되어 축제의 장으로 승화 발전시키기 위해 1995년 제정되었다. 2001년 6회 시민의 날부터는 노래자랑과 연예인 쇼 등의 비중을 줄이고 전통예술행사를 중심...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향안과 연계안. 연계재에는 향안 7책과 연계안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사족들은 향촌사회에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유향소(留鄕所)와 향회(鄕會)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수령의 자문에 응하거나 견제하고 향리들을 통제했다. 향안은 이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인물들의 명단이다. 그리고 연계안이란 소과인 사마시에 합격한 인물뿐만 아니라 대과인 문과에...
-
진주지역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조선 초기에 진주에는 강씨·하씨·정씨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성계는 진주 사정을 잘 아는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시켜 이곳의 지리를 살피게 하였다. 무학대사가 내려와 진주성에서 대봉산(大鳳山) 쪽을 바라보니 천하의 명당 자리였다. 대봉산은 “큰 봉황새가 사는 뫼”란 뜻인데, 무학대사는 이 산이 있기 때문에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
진주지역에 전승되어오는 탈놀음. 진주 오광대 탈놀음에는 토박이 탈놀음, 솟대쟁이패 오광대, 도동오광대가 있다. 오광대(五廣大)는 그 어원상‘다섯 광대의 놀음’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여기서 ‘광대’란‘탈을 쓰고 노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다섯이란 수는 오행사상(五行思想)에 근거한 오방(五方) 개념에서 온 것이다. 이는 중앙과 동서남북의 다섯 방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방신장놀음,...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북동에 위치한 성당. 1911년 진주 문산성당의 옥봉공소로 시작하여 진주지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러 차례 증축을 하여 창건 당시에 비해 규모는 커졌으나, 초기 건물의 간략한 로마네스크 양식이 잘 남아 있다. 1923년에 새 성당을 축성하였고, 1926년 옥봉공소가 문산본당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사제들의 후생에도 힘을 기울여 1943년 사제관을...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산 31에 위치한 용암사지 내에 있는 사리탑. 용암사지부도. 부도의 명칭은 명문, 문헌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주인공, 건립연대 등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용암사지 내에 보존되어 있어 용암사지 부도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반성면 우체국에서 용암리로 들어서다 제실 앞쪽에 형성된 곡부를 따라 오르면 용암사지가 보이는데 정씨 제실의 출입문인 삼문을 들어서면...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전통정원.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세조 때 단종 복위를 꾀하다 자결한 충정공(忠貞公) 박심문(朴審問)의 18세손 박헌경(朴憲慶)이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 해마다 거듭되는 재해로 굶주림이 심하자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현재의 취로사업 형식을 취해 토지와 현금을 주어 이 정원을 조성케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에 있는 서재. 우곡정은 고려 말의 문신 우곡 정온(鄭溫)이 은거하였던 곳이다. 정온은 진주정씨로 대사헌을 지냈으며,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두문동과 지리산 청학동에 은거하다가 조선 태조 2년(1393) 이곳 진주에 서재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우곡정이라 하였다. 정온은 앞뜰에 못을 파고 백일홍나무 여섯 그루를 심고 불사이군(不事二君)...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 있는 중생대 화석지. 진주 유수리의 백악기 화석산지는 진주 남강의 한 물줄기인 가화천 강바닥에서 발굴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495에 분포하고 있다. 유수리 지역은 진주 남강의 지류인 가화천의 하상이다. 하천의 직류를 위한 공사로 형성된 하상으로 가화천의 양안에는 2번 국도[북쪽 안]와 진주~사천간 지방도(남쪽 안)가 위치하고 있어 차...
-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의기 논개(論介)의 사당. 의기사는 1721년(경종 원년) 경상우병사로 부임한 최진한이 진주지역민 등의 요구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근거로 논개에 대한 포상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건립되었다. 1779년(정조 3)에 경상우병사 홍화보(洪和輔)가 낡고 부서...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에 있는, 의기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 1593년(선조 26) 6월 29일 임진왜란의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이 바위에서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하였다. 논개의 의열(義烈)을 상징하여 진주의 선비와 백성들이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고 명명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
-
일제(日帝)가 진주에 설치한 통감부(統監府)의 지방 기관. 일본은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의 조인에 따라 12월 21일자로 일본 왕의 칙령으로 ‘통감부급이사청관제(統監府及理事廳官制)’를 공포, 중앙에 통감부와 그에 부수된 기구를 설치하였다. 각지의 영사관 자리에 이사청을 두어 이듬해 2월 통감부와 함께 개청(開廳), 서울과 지방에서 본격적인 한국 침탈(侵奪) 작업에 들어갔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진주 이세후 종가는 1836년(헌종 2) 건립된 주택이다. 안채는 상량문에 ‘숭정 기원후 이백삼십년 태세재 병신 삼월 십삼일 병신 신시 입주 동일 신시 상량(崇禎紀元後二百三十年太歲在丙申三月十三日丙申申時入住同日申時上樑)’으로 되어 있어 1836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상량문에 “계축 구월 이십삼일 신시 입주...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전승되는 지독한 구두쇠에 관한 이야기. 지독한 구두쇠에 관한 이야기는 충북 음성군의 ‘조륵’ 선생을 비롯하여 기사와 전설은 물론이고 민담에서도 수없이 많이 나타난다. 실제 인물에 관한 것은 기인담의 성격으로 전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전설과 민담에서는 기인담이라기보다는 풍자와 해학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한편 구두쇠와 관련된 이야기는 중국에서도 같은 유형으로 나타...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있는 산성. 송대산(일명 죽방산, 해발 311.5m) 정상부 및 송대산 북쪽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성이다. 2005년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행한 지표조사에 의하면, 전 송대산성은 석축의 테뫼식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긴 부정형이고, 산성의 총 둘레는 4㎞에 달한다. 또한 성 내부에서 건물...
-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고려 말~조선 전기의 무신인 정설(鄭舌) 부부의 묘소. 진주시 서쪽 석갑산(石岬山) 북사면에 축조되어 있는 조선시대 방형분(方形墳)으로 둘레돌에 고분의 축조시기와 피장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진주정씨(晋州鄭氏) 공대공파(恭戴公派)의 파조(派祖)인 정척(鄭陟)의 아버지 정설(鄭舌)과 부인 강씨(姜氏)를 합장한 무덤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 산5번...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응석사 경내 뒤편에 있는 무환자나무. 신라 말엽 9세기경 도선 국사가 무환자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전염병을 예방하고 불로장수하며, 가정의 환난을 쫓아준다 하여 심었다고 한다. 지금도 무환자나무의 열매는 불가에서 흔히 염주를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더러운 것을 정화해주는 나무로 인식되어 왔다. 한방에서는 열매껍질을 연명피(延命皮)라...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하였던 야학회. 교육의 기회가 없던 가난한 어린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여 진주 지역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한 야학회이다. 경제적 여건으로 초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문맹퇴치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던 서상필(徐相弼)에 의하여 1920년에 진주 제1...
-
일제 강점기, 민족교육을 위하여 경상남도 진주에 설립되었던 야학교. 지역민의 문맹퇴치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등 민족교육에 그 목적을 두었으며, 일제강점기에 20여 년 동안 민족교육의 역할을 담당한 야학교이다. 1923년 권홍우(權烘宇)가 어린이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재를 털어 야학교(당시 제3야학회)를 세우게 되었다. 20년 동안 교육에 전념해 오던 진주 제3야학교는...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 전승되는 진주 남강변 지랫대소(沼)의 유래에 관한 설화. 진주 지랫대소 설화는 진주 남강의 지재소, 일명 지랫대소에 얽힌 전설이다. 전승 장소에 따른 분류로는 지역적 전설에 해당하며, 발생 목적에 따른 분류로는 설명적 전설에 해당한다. 전설은 일반적으로 똑같은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이주적(移住的) 전설과 특정 지역에...
-
무학대사가 진주의 풍수를 읽어 지맥을 끊었다는 풍수 설화. 풍수 설화는 풍수설 또는 풍수 관념을 바탕으로 삶의 한 면을 이야기하는 설화이다. 풍수 설화는 민간 신앙적 차원의 변용된 의식을 드러내는 바, ‘명당, 절맥, 방진, 왕도 예언, 명풍수’ 이야기를 비롯하여 가짜 풍수가 나타나는 사기담까지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군이다. 조선을 새로 건국하고 조정에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
-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경상남도지방에서 차와 관련된 자연환경, 역사, 차인(茶人)들의 활동, 그리고 도구와 기물 등이 관련되어 이루어진 독특한 생활문화 풍토. 한자 ‘茶’는 ‘차’ 또는 ‘다’로 읽히나, 진주지방에서는 ‘차’로 많이 읽히므로 ‘차’로 쓰고자 한다. 차(茶, tea, cha)는 마시는 음료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과도 관련되고, 자연과도 연관되면서 차생활·차예술·차...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인물들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 순국한 인물들의 충정과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686년(숙종 12)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99-1번지 촉석(矗石)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비신의 높이는 1.43m이며 너비는 0.92m, 두께는 0.21m이다. 비신은 수성암(水成...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누각. 호정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矗石樓記)」에 의하면 남강 가에 뾰족뾰족한 돌들이 솟아 있는 까닭에 그 모습을 따서 누각의 이름을 촉석루라고 지었다고 하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촉석산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진주성의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고도 불린다. 전자의 남장대라는 이칭에서는 지...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117[용암길 59-2]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본래 귀곡동에 있었는데, 1995년 남강댐 공사로 인하여 현재의 장소로 이건하였다. 정문부는 호가 농포(農圃)로, 함경도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길주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그 전공으로 길주목사가 되었다. 왜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야외무대에서 매년 열리는 전통 문화 축제. 진주 탈춤 한마당은 진주 지역의 전통 무형 문화유산인 진주 오광대 탈놀음의 원형을 재현하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국내외 여러 탈춤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전통 문화를 계승·보존·홍보하려는 데 목적을 둔 진주 지역의 전통 문화 축제이다. 1996년 진주 상호 저축 은행이 세운 삼광 문화 연구 재단에서 지난날 팔도를 누비며...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평거동 석갑산(石岬山) 남사면에 축조되어 있는 총 6기의 고려시대 방형분으로, 둘레돌에 고분의 축조시기와 피장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6기 모두 나주정씨(羅州丁氏) 집안의 무덤으로 고려시대 1079년(1호분)부터 1229년(6호분)까지 150년간에 걸쳐 축조되었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내부시설은 알 수 없으나, 거창...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하경복의 묘. 하경복(河敬復)[1377~1438]은 본관이 진주로, 1402년(태종 2)에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시부정(司僕侍副正)을 지냈고, 1410년 다시 무과중시에 급제한 후 함경도 경성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국경 수비에 힘썼다. 이후 함경도절제사 등을 지내며 15년간 변경지역 수비에 만전을 기하였으며, 만년에 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냈다. 성품...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 구리마을에서 전승되는 진주 부자와 의령 부자가 경주 최부자 집에 놀러갔다가 망신을 당했다는 설화. 진주, 의령 부자와 경주 최부자 살림 설화는 ‘경주 최부자’ 이야기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널리 알려진 설화로 전설적 요소를 가진 민담에 해당한다. 설화에서는 진주나 의령 등 실제 지명을 언급하고, 널리 알려진 최부자라는 인물을 지목하고 있지만 특정 시간대...
-
1885년 이후 경상남도 진주 출신 작곡가들의 주요 가곡과 진주와 관련된 음악작품을 모아 엮은 악보집. 『진주가곡집(晋州歌曲集)』은 1885년 이후 경상남도 진주 출신 작곡가들의 주요 가곡과 진주지역 관련 곡들을 모아 엮은 악보집이다. 총 203곡의 작품을 수록하였으며, 지역민들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음악사적 자료를 정리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2005년 6월 10일 경상남도 진...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강씨(姜氏)는 하씨(河氏)·정씨(鄭氏)씨와 더불어 진주·진양의 3대 성으로, 진주 지방의 토성(土姓)이다. 강씨의 본관은 문헌상으로 100여 본이 전하나, 확실한 것은 진주·금천·안동·배천·해미·동복·광주 등 7본이다. 모두 진주의 지파로 오늘날 모든 강씨가 진주의 유일본을 내세우고 있어, 진주강씨의 도시조(都始祖) 강이식(姜以式)이 모든 강...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강태중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강태중 소장 고문서는 조선 후기 진주 지역에 세거한 진주 강씨(晉州姜氏)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이다. 2002년 2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09호로 지정되었다. 호적 자료는 강익(姜瀷) 등이 관아에 제출한 호구 단자, 관아에서 발급해 준 준호구 등이고, 관직 임명 문서는 강승(姜昇)과...
-
고려 및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진주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묵게 하던 숙소. 진주객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조선 전기 문신 하륜(河崙)의 「봉명루기」에 당대 이전에 두 번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보아 진주객사는 고려 말경부터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는 진주시 평안동 47번지 일대이다. 객사는 궐패(闕牌: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시고...
-
3·1운동 당시의 진주걸인·기생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역사문화 이벤트. 3·1운동 당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신분인 걸인과 기생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겁내지 않고 만세를 불렀던 고귀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진주문화사랑모임에 의해 1996년 2월 29일 처음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이 행사는 1996년 77년 만에 재현하여 숭고한 3·1운동의 독립...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여성검무. 황창무에서 비롯된 검무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무용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인데, 진주검무를 진주검기무 또는 진주칼춤이라고도 하며 대궐 안에서 열렸던 잔치 때 행하던 춤의 하나이다. 진주검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은 소년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춤을 추었다는 설과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진주기생들이...
-
진주지방에 전하여 내려오는 칼춤으로서 중요무형문화제 제12호(1967년 1월 16일 지정)인 진주검무는 검기무(劍器舞)라고도 하는데, 교방춤의 하나로서 우아하고 화려한 장단과 춤사위를 잘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궁중계열의 무용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춤. 검무는 서기 660년경 신라시대에 발생된 춤으로, 고려 말까지 가면을 쓰고 연출되었는데,...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 있는 일선 치안업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 관내 치안유지 및 국민의 생명·재산보호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1945년 12월 21일 국립경찰이 창설됨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치안을 담당할 기관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진주지역에도 진주경찰서가 1945년 12월 21일에 개청하였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진주경찰서가 소실됨에 따라 1954년 5월에 현재의...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있는 종합병원. 진주시민 및 경상남도 도민에게 보다 만족스럽고 보다 편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4년에 민영옥, 문병욱, 이양, 문성열과 부산시에서 전입한 김취열 등 의사 5인이 중심이 되어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진주고려병원을 신축, 개원하였다. 주요사업으로는 진료과별로 지역주민의 진료사업 및 건강 상담을 하고 있으며, 그 외 6...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소재하는 고속버스터미널. 고속버스가 운행되기 전에는 진주에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여행할 때는 대부분 기차를 이용했는데, 당시 진주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는 경전선을 이용하여 시간과 비용이 많이 걸리고 불편했다. 1973년 11월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의 교통체계 혁신을 위하여 고속버스터미널이 준공되었고, 이로 인해 진주로의 관광객이나 방문객들이 증...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공립학교로서 현 진주고등학교의 전신. 1919년 경상남도 진주의 유지들이 모여 설립운동이 시작되었다. 1925년 4월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가 설립되었고, 1951년 진주북중학교와 진주고등학교로 분리·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의 교육열이 높아가던 1919년 11월 지역의 유지들이 남자중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고, 1920년 사립 일...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실업학교.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진주시에 처음으로 설립된 실업학교로, 1910년 개교한 이래 1993년 진주산업대학교로 승격·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99년 처음으로 실업교육에 대한 조서(詔書)가 발표된 뒤 1907년 실업학교령이 발표되자 관찰부 주관으로 설립되었다. 1910년 4월 30일 개교한 이래, 1911년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최초의 일본인 학교 1908년 1월 29일 현 마래제백화점 자리에 을사조약으로 설치된 통감부의 보조를 받아 진주의 일본인 학교로 개교하였다. 1908년 1월 29일 진주공립심상소학교(晋州公立尋常小學校)로 개교하였다. 1909년 4월 1일 교명을 진주심상고등소학교로 바꾸고, 심상과는 6년제로 6학급이 있었으며 고등과는 2년제로 2학급이 있었다. 1...
-
경상남도 진주시 계동 38번지[진주대로 1110] 일대에 남아 있는 관아터. 관아의 건립경위나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다. 경상남도 진주시 계동 38번지[진주대로 1110] 일대에 남아 있다. 지금의 한국통신 진주전화국이 있는 일대이다. 이곳은 원래 진주목, 진주군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에 칙령 제98호에 의거 1413년(태종 13) 이래로 482...
-
경상남도청의 모태가 된 조선 말기 경상남도 도정의 최고 행정기관. 진주관찰부는 1년 2개월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한 행정기관으로서 경상남도청의 모태가 되었던 조선 말기 경남도정의 최고 행정기관이었다. 진주관찰부는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되는 관찰사가 최초로 부임해 집무를 본 곳이라는 점에서 경상남도의 역사는 진주관찰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주관찰부는 1894년 갑오...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위치한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272.7m, 폭은 18.0m, 높이는 11.0m이며, 경간의 수는 9개, 최대 경간 길이는 30.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선(18.0m)이며, 보도와 중앙분리대(7.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RC슬래브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아치식이다. 설계하중은 DB-24.0,...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에 있는 법무부 소속의 교정기관. 한국의 교도소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였던 감옥이나 형무소에서처럼 엄격한 규율, 24시간에 걸친 감시체제, 일과표에 따른 형무관(지금의 교도관)의 지시 등 타율적 생활을 기본으로 하였던 종래의 격리·응보·위협인 제도를 지양하고 교정주의 이념을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1961년에 행형법을 개정하고 종래의 형무소라는 명칭 대신 교도...
-
진주 지방의 교방에서 추어지던 춤. 진주교방굿거리춤은 ‘기방굿거리’, ‘굿거리춤’, ‘수건춤’, ‘입춤’으로도 불리는 춤으로 주로 3분박 4박자에 맞추어 춘다. 고려 문종 때 들어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1900년대 이후 진주교방굿거리춤은 승무와 더불어 여기(女妓)들에 의해 교방에서 예술적으로 다듬어졌다. 고종 황제 때 여기(女妓)로 활동했던 최완자가 1940년대부터 당대 명...
-
진주교방청의 연회음식에서 비롯된 한정식(韓定食). 조선시대에는 관찰사 등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오면 그들을 접대하기 위해 연회가 베풀어졌다. 진주교방음식은 중앙의 관리들을 접대하기 위한 연회에서 기생들의 가무와 술이 곁들여지는 진주교방청의 연회음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 중기에 음식문화의 꽃을 피웠다. 진주는 서부경상남도의 교통 중심지로 지리산의 청정 농산물과 남해바다의 신선한 수...
-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소속의 교회. 1905년 10월 22일 호주장로회 소속의 의료선교사 커렐(Dr. Hugh Currell, 한국명 거열휴)과 부인 에델(Mrs. Ethel Currell), 두 딸, 그리고 한국인 동역자 박성애·박순복 부부 등 가족 5명과 진주 주민 2명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진주교회의 전신인 옥봉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설립...
-
1909년 경상남도 진주시 봉래동 소재의 진주교회에서 일어났던 신분차별 철폐와 관련된 사건. 진주지역을 포함한 경상남도 지역에서의 기독교 시원은 직접적으로 호주장로교 선교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902년 커렐(Dr. H. Currell) 의사 부부는 의료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한 경상남도지방에서 의료활동의 시급성을 느끼고 진주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커렐 의사 부부는 두...
-
1950년대에 경상남도 진주시에 조직되었던 국악 연주 단체.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국악이 본격적으로 공연될 수 있었던 것은 지방예술제의 효시인 경상남도 진주 개천예술제의 공이 크다. 개천예술제는 1949년 10월 3일 ‘영남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매년 개최되고 있는 역사가 깊은 문화예술제의 하나이다. 1951년에 제2회 영남예술제 행사를 개최하였는데, 당시 국악공연을 위해...
-
1895년(고종 32)에 진주목이 진주군으로 된 후 1939년 진양군으로 개칭될 때까지 진주의 행정구역 명칭. 1894년에 실시된 갑오경장의 일환으로 이듬해 5월 혁신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 어져 국초부터 시행해오던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구분하고 그 아래 337군을 두었다. 이때 진주에는 진주부가 설치되어 21군을 관할했고, 진주목은 진주군으로 개칭되어 군수를 두었다...
-
일제강점기에 진주에 있었던 기생조합. 조선시대의 기생제도 하에서 기생은 관기(官妓)로서 궁중의 약방이나 상의원(尙衣院 : 왕의 의복이나 궁중의 일용품을 맡던 관부) 등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평소에는 약을 달이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연회가 있을 때는 불려가 노래나 춤을 추었다. 국권을 상실한 후 관기제도가 없어지면서 서울의 기생들이 처음으로 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이 한성권번(漢城券番...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 있었던 신용금융기관. 1918년 지방금융조합령 개정에 따라 조합원의 자격을 확대하여 상공업자도 포용할 수 있게 할 목적으로 진주금융조합이 설립되었다. 1918년 10월 20일자로 설립허가를 받고, 12월 10일 창립총회를 열었으며, 이듬해인 1919년 2월 10일 중안동 진양조합사무소에서 업무를 개시하였다. 1925년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자 경제...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전해오는 민요. 임동권이 쓴 『한국민요집』IV에 채록되어 있으며, 1996년에 박이정이라는 출판사에서 간행한 『시집살이 노래연구』에도 약간 다른 가사로 정리되어 있다. 「진주난봉가」는 「진주낭군가」라고도 불린다. 진주난봉가는 ‘① 남편에게 외면당함, ② 남편의 외도를 목격함, ③ 남편이 아내의 죽음을 안타까워함’이라는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울도 담도 없...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과 진주성에서 매년 10월 1일~12일에 열리는 등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시에서 매년 개최되는 개천예술제의 행사 중 남강변에서 유등띄우기를 진주성싸움과 연계하여 실시하는 하나의 독립된 행사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국의 각 지역에서 행해지는 천편일률적인 축제에서 벗어나 진주지역의 역사와 특색을 살린 축제로 자리...
-
해물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만든 경상남도 진주의 향토음식. 진주 인근의 산간지역에서는 냉면의 주원료인 메밀 재배가 성행하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메밀국수를 즐겨 먹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진주에서는 이를 고급화한 냉면을 개발하여 권력가나 재력가들이 야참음식으로 즐겨 먹었는데, 조리하는 방식도 독특하여 진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시...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개최되는 전통예술 축제. 진주논개제는 진주지역에서 독특하게 행해져 온 교방문화의 뛰어난 제의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의암별제와 탈춤을 중심으로 풍자와 해학, 놀이성, 축제성이 돋보이는 진주탈춤 한마당을 결합하고, 진주의 무형문화재 등 진주지역의 다양한 전통예술을 총망라한 진주시 고유의 축제이다. 논개의 충절정신 현창과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보존 및 복원, 의암별제...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근대식 금융기관. 당시 진주지역에는 은행다운 은행이 없었던 관계로 고리대금업이 성행해 한 달에 보통 5~6푼의 높은 이자를 주지 않고는 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릴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근대식 금융기관인 진주농공은행의 출현은 다양한 금융시책과 신용성 확보로 진주 지역민들의 대출욕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공업의 개량·발달을 위해 1906...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조직되었던 농민단체. 진주는 삼남지방의 미곡 주산지였으나 고율의 소작료 등으로 소작인들은 만성적인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었다. 고율의 소작료 인하와 소작인에 대한 부당한 조세부담 경감 등을 통한 농민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 진주지역의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한 진주노동공제회의 주도세력이 대거 검거됨으로써 1920년대 중반부터 농민운동...
-
조선 철종 13년(1862) 2월 14일 경상도 진주지역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봉건 농민항쟁. 진주의 농민항쟁은 그동안 누적된 삼정문란과 경상도우병사 백낙신(白樂莘)의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유계춘(柳繼春) 등이 농민들을 이끌고 일으킨 대규모 농민운동이었다. 엄격한 신분제와 자급자족적 경제체제에 바탕을 둔 지주(地主)·전호제(佃戶制)가 근간을 이루고 있던 조선왕조의 봉건적 사회체제는...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노동의 피로를 덜고 능률을 높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농요는 농사의 절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봄에 못자리에서 자란 모를 쪄내면서 부르는 모찌는 소리, 찐 모를 1포기씩 심으면서 부르는 모내기 노래, 김을 매면서 부르는 김매기 소리 등 수십 종이다. 이러한 노래들은 대개 처음에는 느린 속도에 자유리듬으로 부르나, 차차 빨...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인 어득강(魚得江)의 시집. 어득강[1470~1550]은 진주 출신으로 자는 자유(子遊), 호는 관포(灌圃), 본관은 함종(咸從)이다. 진사에 입격하고 149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1529년에는 벼슬이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이 되었으며, 1549년에는 품계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특히 시에 능했다. 하증(河憎)[1...
-
일본인 가쓰타[勝田伊助]가 1940년 진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책. 가쓰다가 1913년 사천 선진항을 통하여 진주에 온 뒤 머물러 살면서 진주에 관한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진주대관』에는 1919년의 3·1만세운동과 중일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 남강 치수사업과 경남도청 이전 반대운동, 진주지역의 인구·행정직제·상공업·종교·교통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모두 20개의 장으로...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위치한 남강 위의 다리. 교량의 길이는 1,160.0m, 폭은 상·하행선 각각 12.5m, 높이는 17.0m, 경간 수는 24개이고, 최대 경간거리는 50.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선이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SC상자형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 교각, 설계하중은 DB-24, 통과하중은 설계하중 DB-24이다. 2000년 12...
-
진주시 초전동에 위치한 사립중학교. ‘튼튼하고 참되며 슬기로운 사람을 기른다.’는 교육목표 아래 책임 완수와 창의 연구, 상호 이해를 경영 방침으로 하여 성실하고 실력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52년 4월 10일 재단법인 해인학원이 설립되어 개교를 계획하였으며, 1967년 9월 18일 진주강남중학교로 6학급의 설립인가를 받아, 1968년 5월 11일 진주강남중학교...
-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농민군. 한반도를 둘러싼 청·일간 각축은 마침내 청일전쟁으로 진전되어 일제의 독점적인 지배가 시작되었다. 한편 보수적인 지배층은 심각한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었다. 1894년 9월 진주지역 농민군은 농민적 토지소유와 부패한 탐관오리를 추방하여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새로운 지배체제와 외세...
-
박재호가 작곡한 경상남도 진주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노래 「진주라 천리길」은 1941년에 만들어진 곡으로, “천리길 진주 잘 오셨습니다.”라는 진주를 찾는 이들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인사말이 진주라 천리길에서 착안 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진주라 천리길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조명암이 작사하고 이면상이 작곡하였으며, 이규남...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류정(柳挺)은 원래 진주에 세거한 사족의 후예이다. 고려조에서 벼슬이 좌우위 상장군(左右衛 上將軍)에 이르고 진강부원군(晋康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류씨의 근원이 문화류씨(文化柳氏)에서 분파된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이에 대한 문헌적 고증이 명백하지 않다. 진주의 수곡면 일대에 50여 가구가 세...
-
고려 초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진주는 고려 초기 청주(菁州)라 하였다가 다시 강주(康州)로 환원하였고, 983년(성종 2) 2월 주제(州制)를 목(牧)으로 개혁하면서 진주는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성종 14년(995) 9월 처음으로 전국에 10도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산남도(山南道)가 설치되어 10주 37현을 통할했다. 현종 9년(1018...
-
조선 후기에 진주목에서 편찬한 관찬 읍지. 진주지역의 역사, 지리, 풍토는 물론, 인물, 사건 등 모든 문화현상이 서술되어 있는 문헌으로 세 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1832년(순조 32)의 임진본, 1871년(고종 8)의 신미본, 1895년(고종 32)의 을미본이 있으며, 이 중 임진본은 1991년 진주문화원에서 번역본으로 발간한 바 있다. 임진...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서민금융기관. 무진(無盡)이란 일정한 계좌수와 급부 금액(給付金額)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부금을 납입한 부금자(賦金子)에게 1계좌마다 추첨·입찰 등의 방법에 의하여 일정 금액을 급부하는 제도였다. 1914년 말 당시 서울에는 137조(組)의 무진강이 있었으며 무진구수(無盡口數)는 1,738구였다고 한다. 또한 1921년 7월 말 무진회사는 77개소에 이르렀고...
-
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에 있는 진주 문화예술 관련 비영리 재단법인. 진주문화예술재단은 비영리 재단법인으로서 전국문화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와 국가지정 최우수 문화관광축제인 진주남강유등축제를 주최하는 문화예술재단이다. 개천예술제를 주최하고 진주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드는 재원을 지원하기위해 설립되었다. 해마다 이어져 해를 거듭할수록 행사규모가 커진 개천예술제 개최의 재정조달이 어려...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진주시의 지역문화사업과 향토문화 연구를 위해 설립된 단체. 진주의 향토사 연구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및 각종 문화행사를 통한 진주지역문화의 진흥을 목표로 1949년 10월 1일에 설립되었다. 1949년 10월 1일에 USIS 진주지원으로 발족하여 박세제를 초대원장으로 하였다. 1950년 10월 10일에 진주미국공보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57년 9월...
-
1862년(철종 13)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났던 농민봉기. 1862년에 경상도우수사 백낙신(白樂莘)의 불법탐학에 반발하여 진주 출신 유계춘(柳繼春) 등이 일으킨 민란으로, 자진 해산하기까지 4일간 진주 일대를 휩쓸며 부정 관리와 부호들을 응징하였다. 이후 중앙조정에서 보낸 진주안핵사에 의하여 민란은 수습되었으나, 같은 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임술민란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선 후기...
-
진주에서 전승되어 온 각종 무형문화재를 보존, 발굴, 육성하는 모임. 진주민속예술보존회는 진주에서 전승되어 온 국가무형문화재 제11호 진주농악12차와 제12호로 지정된 진주검무를 비롯하여 국악 및 민속놀이 등을 발굴, 육성하였고, 무형문화재전수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진주지역에 전해오는 지역 전통의 국악 및 민속놀이 등을 발굴, 보존, 육성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처음에는 진주검...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만 사용되는 특수한 언어. 진주지역어는 기록이 없는 가야어에 대한 재구성에 기여하리라 본다. 진주의 언어 중 특이한 낱말은 에나(진짜), 디비리(뒷벼랑), 쑥쑥다(깨끗하지 못하다), 칼클타(께끗하다), 응가(형), 하모(그래) 등이다. 이런 어휘상의 특질 이외에도 음운, 문법 면에서도 진주지역어는 서부 경상남도가 공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
1895년(고종 32)부터 정부수립 후인 1949년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그동안 시행해오던 8도제(道制)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구분하고, 그 아래에 336군(郡)을 설치하는 획기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부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두고 군(郡)에는 군수(郡守)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지금의 도격인 진주...
-
진주지역의 전통산업인 견직양잠산업의 특산품. 진주지역에서는 삼한시대부터 견직물을 생산했으며, 이때부터 뽕밭을 조성하고 견직물을 생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근세에 들어서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견직공업의 선구는 1920년대에 진주에 설립된 동양염직소(東洋染織所)[현 대안동 우리은행 자리]이다. 당시 동양염직소는 일본에서 역직기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근대식 견직공장의 시작을 열었...
-
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고유한 향토음식으로 전해오는 비빔밥. 진주비빔밥은 제사에 쓰던 나물과 탕국을 즐기던 음식의 형태로 지금은 그 맛이 약간씩 변형되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진주비빔밥의 독특한 맛은 사골국물로 밥을 짓는 데 있다. 밥 위에는 숙주·고추·근대나물 등을 얹어 보탕국과 같이 내는데, 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흰빛의 밥테, 그리고 다섯 가지의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
-
경상남도 진주의 전통 비빔밥을 시식하는 행사. 진주비빔밥축제는 진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5월의 진주논개제와 10월 개천예술제의 특별행사로 열린다. 진주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인 비빔밥을 널리 알리고 많은 시민의 참여와 화합을 위하여 시작되었다. 2002년 5월 27일 진주논개제 때부터 선을 보였으며 2006년 현재까지 계속 되어오고 있다. 가운데는 원형이고, 그 옆으로 사각형 모양이 연...
-
경상남도 산청군에 있는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청년 사회단체. 국가의 자주·민주·통일과 지역사회발전에 앞장서고 청년들의 단결과 권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젊은 주역들이 모여 1988년 9월 17일 진주지역 민주청년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하였다. 1994년 1월 23일에 ‘지역사랑 나라사랑’의 기치 아래, 진주사랑청년회로 개명하였다. 진주사랑청년회는 단체...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사진예술을 연마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진예술연구와 활동을 통하여 사진예술을 연마하고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매년 회원전을 개최하고 연중 공동촬영 및 세미나를 개최한다. 또한 진주지역의 사진클럽들과 진주지역 사진단체 협동전에 참가한다. 2012년 32회 회원전이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진주시청 전시홀에서 열렸다....
-
경상남도 진주시와 삼천포시(현재 경상남도 사천시로 개편되었음)를 중심으로 전래되고 있는 농악. 진주삼천포농악의 유래는 농사안택축원설(農事安宅祝願說)·군악설(軍樂說)·불교관계설(佛敎關係說) 등이 있으나 농악의 목적에 따라서 당굿과 같은 마을굿·지신밟기·걸립굿·두레굿·판굿 등으로 분리 발전한 것으로 본다. 진주삼천포농악은 12차의 판굿으로서 걸립굿과 두레굿 등의 가락을 12종 36가락...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상무사의 진주 분사 사무소 건물. 상무사는 1895년(고종 32) 보부상 등 과거의 상업 조직을 정비하여 새로 설치한 상업 기관이다. 진주 상무사는 진주 인근 17개 지역을 관할하였다. 2011년 6월 2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33호로 지정되었다. 처음 세워진 진주 상무사는 진주 객사 근처 현 진주 중앙 유등 시장 자리에 있었을 것으...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과 상평동 일대에 있는 공업단지 기계부품 섬유업체의 집단화를 통한 지역산업의 구조조정 촉진을 위하여 조성되었다. 1978년 3월 15일 건설부고시 제25호에 의하여 지방공업개발 장려지구로 지정되었고 상공부 고시에 의하여 1986년 7월 19일 공업단지로 지정되었다. 1977년 10월 15일부터 1992년 12월 31일까지 조성하여 기업체에 분양하였다. 2014...
-
경상남도 진주에서 생산되는 상황버섯. 버섯 가운데서 항암효과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버섯은 진주 농민이 자체개발한 특수재배법으로 버섯에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는 고품질의 우량버섯을 생산해내고 있다. 진주 버섯돌이 3형제가 민간에서 사용하는 상황과 기타 느릅나무와 꾸지뽕나무 및 시호에 대한 단독 및 조합물에 대하여 개발가능성을 평가, 연구하였고, 그 결과물을 FDA[미...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불려오는 진주성 전투를 배경으로 한 노래. 노래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진주성 전투를 주제로 하여 총 2절로 구성된 음악 작품이다. 진주성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최종옥이 작사 및 작곡을 하였다. 1973년에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참신한 노래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당시 신예 작사자 및 작곡가의...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성. 진주성은 남강에 면한 단애상에 축조한 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삼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이며,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 시에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곳이다. 진주성은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居列城)이었...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는 1604년(선조 37) 이래로는 경상도 우병영, 1895년에는 진주관찰부, 1896년 이래로는 경상남도관찰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령 이하 모든 관리와 일반인은 말에서 내리...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서 전승되는 임진왜란 때 왜장과 함께 의암(義岩)에서 뛰어내린 논개에 관한 설화. 진주성(晋州城) 싸움 설화는 진주라는 특정 지역에서 전승되는 지역적 전설이며, 논개라는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인물 전설이다. 역사적 전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 사건의 설명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것이 전승자의 기억이...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포진지. 진주성 포루는 진주성을 방어하는 포진지로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내성의 포루는 3곳이니 삼가, 의령, 곤양 등 3읍의 소속”이고, “외성의 포루는 9곳이니 진주, 단성, 초계, 거창, 사천, 함양, 남해, 합천 등 8읍 소속”이라고 하였다. 1607년(선조 40)에 김태허(金太虛)에 의해 진주성 내외성에 포루 1...
-
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 진주성(晋州城)은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하며, 촉석성(矗石城) 혹은 진양성(晋陽城)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진주성의 내성과 그 주변 지역 176,804㎡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남강 가 돌벼랑 위에 세워진 우뚝한 누각으로, 남강 가 뾰족뾰족한 돌의 모양을 따서‘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주성의 남장대...
-
경상남도 진주시 성전암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중기의 불상. 진주 성전암 목조여래좌상의 배 안에서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1644년(인조 2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조로 제작된 높이 60㎝, 폭 43㎝의 작은 여래좌상이다. 머리 부분은 상투 모양의 육계와 중앙계주의 표현이 있으며, 작은 입을 꼭 다문 모습으로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모습이다. 옷자락은...
-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진주시는 동쪽으로 창원시와 함안군,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으로 산청군·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부 경상남도의 거점 도시로, 2005년 10월 경상남도의 혁신 도시로 선정되었다. 경위도상으로 동경 127°53′ 52″~128°22′ 21″인 수곡면 원계리 동월마을에서 이반성면 발산리 내동마을까지이며, 북위 35°03′...
-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에 있는 농민단체. 농자재 공동구입과 농산물 공동판매, 농지세 인하, 수세현물납부운동 등을 통하여 농민들의 권익옹호와 농가소득 증대로 활기차고 희망찬 농촌을 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진주시 금산면 관방마을은 1970년대부터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하였으나, 농산물 판매와 농자재 구입 과정에서 상인들의 농간이 극심하였다. 이에 따라 1980년 7월에 정현찬...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산 171-1에 있는 전통문화 공연장.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은 국가무형문화재 공연 및 계승, 발전을 위한 전통문화예술 공연장이다. 진주시 무형문화재의 계승 및 발전을 위하여 2002년 6월에 준공하였다.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은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시설로는 공연장, 사무실, 전시실, 연습실, 전수자 사무실, 분장실, 대기실, 식당 등...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청소년 문화시설. 진주지역 청소년문화의 정착과 민주시민의식 함양 등 청소년의 복지증진을 위하며, 지역주민에게 사회교육과 생활체육시설을 제공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생활권 내의 청소년 수련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2001년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2002년 12월에 완공하였다. 2003년 5월 23일 개관하여 현재까지 운영 되고 있...
-
경상남도 진주시 충무공동 8번지[동진로 415] 진주종합경기장에 있는 경상남도 진주시 체육회. 진주시 체육회는 진주시에서 운영하는 체육회로서 사단법인 대한체육회 산하단체인 경상남도 진주시 지부이다. 진주시 체육회는 체육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확산하여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의 진흥으로 국민의 체력 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을 진작시킴과 아울러 경기단체를 총괄 지도하고 우수한 경기자를 양...
-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근대적 실측 지도, 지형도 우리나라의 근대적 측량을 통한 지도의 제작은 1890년대 일본 육군에 의해 시작된다. 이 지도는 1871년 병무성 참모국 간첩대와 이후 일본 육군 참모본부 육지측량부의 주도로 조선의 1/50,000 지형도를 작성하였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로 칭하고 일본에서는 도엽 우측 상단에 있는 제목을 따라 약도(略圖) 또는...
-
경상남도 진주시의 관현악 단체. 1980년대에 들어와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여러 음악 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진주시립교향악단은 ‘진주관악회’와 ‘진주시립관현악단’을 거쳐 1989년 4월 1일에 창단된 관현악 단체이다. 공식명칭은 ‘진주시립교향악단’이며, ‘진주시립관현악단’ 혹은 ‘진주관현악단’으로도 불린다. 문화예술과 교육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경상남도 진주시의 문화예술 창...
-
경상남도 진주시의 국악 관현악 연주 단체.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은 국악인들과 사단법인 진주민속예술보존회(晋州民俗藝術保存會)가 주축이 되어 1986년에 진주시로부터 진주시립국악학교의 교육을 위탁받아 양성된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창단되었다. 정식명칭은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이며, ‘진주국악단’, ‘진주시립국악단’ 등으로도 불린다. 일반인에 대한 국악의 보급과 진주지역 음악활동의 활성화를...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국악 교육기관. 진주시립국악학교는 1986년에 경상남도 진주시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국악 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악 교육기관이다. 국악을 대중화하여 ‘예도 진주’를 가꾸는 데 기여하고, 시민들의 예술적 수준을 높이며 정서 순화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진주검무를 비롯한 전통무용과 창악, 기악 등의 교육이 주로 시행되는...
-
경상남도 진주시의 시립 합창단. 1986년에 진주관현악단(진주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이 창단되었고, 뒤를 이어 진주시립합창단, YMCA합창단, YWCA합창단, 어머니합창단, 피아노지도자회, 창작연구회 등이 창설되었다. 이 중에서 진주시립합창단은 진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경상남도 진주시의 음악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각종 기념 공연 및 음악 활동 지원을 통해 진주지역의 문화발전에...
-
1924년 일본인 회사의 부당이득 행위에 저항하여 벌인 진주시민들의 시위운동. 조선 말기의 개항 이후 일본인이 진주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02년 가을 요시무라[吉村俊二]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특히 을사조약 이후 급격히 늘어나 일제강점 후인 1914년 당시 진주관내의 일본인 가구수는 627호, 인구는 2,328명이나 되었고, 1923년에는 평거동·내동·도동면의 일부 지역이...
-
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에 소재하는 시외버스터미널.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의 교통체계 혁신을 위하여 1974년 11월 준공하였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리모델링 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진주시 중심부의 장대동 96-1번지[남강로 712]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남강이 2차선도로를 사이로 접해 있고, 논개로를 통하여 마산·부산 방면, 남명로를 통하여 산청·...
-
경상남도 진주시의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기관. 진주시를 대표하는 지방자치행정을 담당하는 기초자치단체로서 진주시 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하는 주체기관이다. 진주시정을 운영함에 있어 부자치단체장 등 보조기관과 소속행정기관, 하부행정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고, 주민의 복지증진과 지역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조선시대에 진주...
-
1990년 이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발간되고 있는 일간지. 1989년에 권력과 지방 토호세력을 견제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고자 진주시민 1,000명이 주주로 참여하여 만든 시민주 신문이다. 1989년 6월 진주YMCA가 주최한 ‘지방자치와 지역 언론의 역할’이란 주제의 시민논단을 계기로 창간 작업이 시작되었다. 논단에 참가한 사람들 중심으로 7월에 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그...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 1989년 10월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강주교회에서 시무하던 박영출 목사가 진주노회에서 할렐루야교회 개척전도처 허락을 받아 가좌동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그 후 1990년 5월 17일에 설립예배를 드리면서 할렐루야교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학사관을 무료로 제공하여 생활편의를 제공하...
-
1950년대에 경상남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아악 공연 및 연구단체. 1950년대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가 기획되어 많은 국악 공연이 함께 열렸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진주지역에는 국악 관련 단체가 여럿 결성되기도 하였다. 진주아악연구회도 당시에 생긴 단체의 하나로, 아악의 연구와 공연을 위한 단체였다. 지방예술제의 하나인 경상남도 진주 영남예술제(현...
-
경상남도 진주시의 여성 화가들의 모임. 진주여류화가회는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활동하는 여성화가 내지 그림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모임으로 작품 활동 외에도 친목활동, 봉사활동도 수행하는 미술 관련 단체이다. 작품활동을 통하여 회원 상호간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진주지역의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여성들의 미적 감각을 북돋우면서 정서를 순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매년 말에 진주여류화...
-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에 있는 기차역. 1923년 12월 1일 삼랑진과 진주를 오가는 열차가 처음으로 개통될 때 개시한 이 역은 1925년 6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6년 역사를 새로 건설하였고, 1968년 2월 7일 순천까지의 철로가 개통되었다. 1970년 4월 1일 진주에서 서울 사이에 순환열차가 처음으로 운행되었고, 1993년 3월 1일 서울까지의 새마을호...
-
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예술 무용 지도자들의 협의회.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을 보전 전수하며, 진주지역의 일반 시민들에게 무용을 보급하여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 풍토를 조성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1년 3월에 정혜윤을 회장으로 하고 김미옥, 배성련, 이순선을 부회장으로 하여 예술무용의 발전과 회원들의 권익확충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회장, 부회장, 사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사진예술단체. 진주예진사우회는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1988년에 창립된 사진창작 예술단체로서 매년 정기회원전 및 각종 그룹전 및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진주시민에게 사진예술과 접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진주시의 대표적인 사진단체이다. 진주예진사우회는 사진창작예술을 통하여 심신연마와 자아발전 기회제공은 물론 진주지역에 영상문화의 보급과 아름...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탈놀이. 진주오광대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다른 지방의 오광대보다 가락이 다양하여 타령, 세마치, 도드리, 염불 등 변화가 많고 덧배기춤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춤을 가미한 탈놀이이다. 진주오광대는 진주에 전승하는 서부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가면극(假面劇)으로 전문가들의 학술적 조명이 다른 지역의 탈놀음보다 앞서 있으며,...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진주 경로당은 조선 후기 양로 시설로 창건되었다. 1934년 일제 강점기에 중건되었다. 2004년 10월 21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59호로 지정되었다. 남강의 좌안이자 진주 시내 동쪽의 독립 구릉 남사면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이름은 ‘보로당(保老堂)’이었다. 이후 ‘진주 옥봉 경로당’으로 개칭하였다가, 2015년...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 산 456번지에 있다. 진주시의 동쪽에 있는 진주향교의 맞은편에 남북 두개의 봉우리를 가진 독립구릉이 위치하고 있다. 이 중 남봉은 해발 64.7m, 북봉은 해발 92.3m이며, 이 봉우리를 일반적으로 수정봉·옥봉으로 부르고 있다. 옥봉고분군은 이 구릉의 정상부인 두 봉우리 사이에 7기의 봉토분이 군을 이루...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 있는 정보통신부 소속의 우편기관. 진주지역의 우편사업 및 우체국 금융사업의 총괄 및 우편물(통상우편물, 소포우편물)의 접수·배달 등의 기본 우편업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우체국 예금, 우편환, 우편대체 업무를 취급하고 진주지역의 지역 정보화를 선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95년 6월 1일 칙령 제125호로 우체사관제가 제정·공포되어 진주가 우체사 설치위치로...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에 설립되었던 사립 유치원. 1922년 10월 오경표(吳景杓), 천명옥(千命玉)이 자신의 고장에 유치원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다가 진주청년회관을 빌려 80여명의 아동을 원아로 하여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후원회가 없이 운영되던 유치원이 경영난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나 장덕명(張德明)의 도움으로 간신히 유지되었다. 1926년 10월, 학부형회가 조직되었고 이어...
-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가 있는 진주의 도시적 구역. 읍치(邑治)란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治所)가 있는 도시적 구역으로, 흔히‘읍(邑)’혹은‘읍내(邑內)’라고 부르는 곳이다. 『삼국사기』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양지(晋陽誌)』 등에 기록된 건치연혁을...
-
풍수지리설과 관련한 진주 지역의 이야기 상고(上古)에 삼가(三嘉)에서 오는 길은 모태곡(毛台谷)의 철소원(鐵所院)으로부터 대자산촌(大雌山村)과 원동촌(院洞村)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원동의 재를 넘었고 또 남쪽부지(釜池: 가마못)의 고개를 넘어서 주(州)로 들어왔다. 의령(宜寧)에서 오는 길은 사죽(沙竹)·불천(佛遷)을 거쳐서 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한 상지관(相地官: 풍수)이 서울로...
-
진주의 봉황형국을 완성하기 위한 진압과 비보를 자세하게 기술한 작품 진주의 진산(鎭山)은 비봉(飛鳳)의 모습이요 안(安)은 금룡(金龍)이니 관기는 그 아래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무릇 사방에서 배포(排布)를 모두 봉(鳳)에 붙쳐서 이름하였으니 객사(客舍)의 앞에 누(樓)로는 봉명(鳳鳴)이 있고 관(館)으로는 조양(朝陽)이 있으며 마을 이름으로는 죽동(竹洞)이 있고 벌로수(伐老藪)와...
-
기녀(妓女)들을 중심으로 하여 노래와 춤을 관장하던 기관인 진주교방(晋州敎坊)을 중심으로 형성된 예술. 진주의 교방예술은 진주교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교방은 고려·조선시대 기녀들을 중심으로 하여 노래와 춤을 관장하던 기관이다. 교방청(敎坊廳)은 본래 중국 당나라 때 궁중 내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관기들과 악공들에게 가무악(歌舞樂)을 가르쳤다. 이러한 중국 교방의 전통은 우리나라...
-
절개와 풍류를 지닌 진주 기생들의 생활 모습과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상. 진주의 논개(論介), 평양의 계월향(桂月香)으로 인해 ‘남 진주, 북 평양’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진주의 풍류와 멋은 그 명성이 높았다. 그리하여 조선 기녀하면 “일강계(一江界), 이평양(二平壤), 삼진주(三晋州)”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1910년 1월 7일자 『경남일보』에 위암 장지연(張志淵)...
-
진주에 대한 애향심을 담은 가창곡. 「진주의 노래1」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정수범이 작곡하고 조재업이 작사하였다. (1절) 우러러 비봉산에 정기를 받고 남강물 고운여울 마음에 새겨 임진의 조상핏줄 잇고 또 이어 줄기찬 전통 속에 꽃피운 문화 희망의 동이 튼다 일터로 가자 오- 이 땅의 자랑 내 고장 진주. (2절) 우렁찬 향토...
-
경상남도 진주시를 배경으로 한 대중가요. 「진주의 노래2」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월견초가 작사 및 작곡하였으며, 박지연이 노래하였다. (1절) 열두 줄 가야금에 실은 풍류도 열두 폭 치마폭에 맺은 사랑도 지금은 어디로 가고 어디로 가고 낯설은 사람만이 진주를 찾는 진양성 옛 모습도 변하였구나. (2절) 비봉산 활을 쏘던 진주기...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타악 합주 음악. 옛날부터 진주는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교통·행정·교육·산업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도시를 이루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고, 닷새마다 큰 장이 서면서 신명난 놀이판도 벌어졌다. 서부 경상남도에서 제일 큰 목사골 진주장(晋州場)이 설 때면 각 지방의 농악패 우두머리나 농악잽이 명인들이 팔려 와서 장...
-
진주의 특산품으로서 삼한시대부터 시작된 진주지역의 전통산업인 견직양잠산업의 생산품. 진주지역의 견직공업은 이 지역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진주의 전통산업이다. 비단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비단에 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에서 찾아볼 수 있다.「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에 “마한은 그 민족이 토착하여...
-
진주지역에만 전래되거나 새로 생겨나고 있는 별미음식. 남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진주는 일반적으로 쌀과 보리를 섞어먹는 쌀보리밥을 주식으로 하고 있으며, 부식으로는 채소나 어육이 있는데, 특히 채소를 많이 먹는 편이다. 밥, 김치, 나물, 국, 묵, 떡, 생선회 등이 진주지역의 일반적인 음식인 반면 진주지역에만 전래되었거나 새로 생겨나고 있는 전통별미음식으로 진주비빔밥, 진주헛제사밥...
-
진주지역의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물을 공급하는 시설. 조선시대에는 덕천강 유역에서 수전농업(水田農業)이 크게 발달하였다. 적어도 덕천강 유역의 농업지대는 진주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역사적 사건과 활동을 해석하는 데 덕천강 유역의 수전농업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조선 초기에 남명 조식(曺植)이 덕천강 상류 덕산에...
-
진주의 소리는 진주지역의 교방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가곡, 시조 등 소리와 동편제를 중심으로 한 판소리. 진주는 일찍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토착부호들이 많아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성행했다. 또한 진주는 역사적으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여서 일찍부터 교방이 설치되어 관 주도의 문화가 전파되었고, 가무가 발달하여 많은 명창이 배출되었다. 진주는 신라시대부터 서부...
-
진주지역에서 발견되는 선사시대부터 가야 등 고대시대까지의 무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죽음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인 존재로서 죽는 것이므로, 장송의례(葬送儀禮)는 개인적·가족적 차원을 넘어서 한 집단 전체 차원의 사회적인 제도가 된다. 따라서 죽음과 이에 부수된 의례의 결과로 생겨난 무덤에는 당연히 사회적 제도인 의례행위(儀禮行爲)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고인돌처럼 만...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
진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수한 산물 진주에는 진주의 가장 대표적인 생산물인 ‘진주실크’를 비롯하여, 금곡면 정자리의 ‘장생도라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0호인 ‘은장도’, 목조가구의 보강품인 ‘장석’, 전래의 전통을 계승한 ‘목공예품’, 전통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도예품’, 매실과 태양초 고추로 만든 ‘하봉정매실고추장’ 등을 특산물로 생산하고 있으며, 진주시청에는 ’진주실크를...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 명암(明庵) 정식[1683~1746]이라는 선비가 진주 사민(士民)들로부터 금품을 모아 논개 의거의 징표로서 1722년(경종 2)에 다듬은 것이다. “비석을 다듬어 놓은 해로부터 18년 뒤인 1740년(영조 16) 가을에 진주 우병사인 남덕하[1588~1742]가 왕의 득명을 받고 이듬해 봄에 비를 세우다”라는 기록을...
-
1920년 의열단(義烈團) 최초로 국내에서 폭탄의거를 계획했다가 발각된 사건. 1919년 중국에서 창단된 의열단은 일본인 고관 및 한국인 민족반역자 처단과 식민통치의 주요기관 및 시설물 폭파를 목표로 삼았다. 즉 의열투쟁의 목적은 일반 대중의 각성과 아울러 대대적인 반일봉기를 촉발시킴으로써 일제의 식민통치 종식과 친일배를 응징함에 있었다. 맹목적인 테레리즘이 아니라 식민지 약소민족...
-
진주지역의 사진예술단체. 진주일요사진클럽은 1969년 2월 26일에 창립하여 37년이 지난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단체로 진주를 빛낸 사진작가 대부분을 배출한 사진예술단체이다. 1971년 5월 제1회 서부경상남도 아마추어 촬영대회에 최초로 참가하였다. 1973년 일본 쓰루가시와 국제 사진교환전을 열었다. 1978년 5월 함양 천령문화제 초대전에 출품하였고, 10월 삼천포 한려문화...
-
바다나 민물에서 나는 장어로 만든 진주지역 향토음식. 진주의 장어구이는 바다나 민물에서 나는 장어에 특유의 양념을 발라 구워서 먹는 진주의 대표적 음식으로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진주의 장어구이는 석쇠에 올려 5분 가량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초벌구이를 한 뒤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대형 냉장고에 넣어 이틀 정도 급랭시킨다. 여기에 다시 양념을 바르고 즉...
-
경상남도 진주시 장흥리 소재의 사제문이 새겨 있는 비석. 사제문(賜祭文)이란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지내주며 함께 내린 글을 말한다. 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는 1718년(숙종 44) 숙종이 지족당 조지서를 배향한 신당서원에 예조좌랑 이안국을 보내 치제하게 한 사제문을 새긴 비석이다.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길에 집현면 장흥리를 지나는 도로에서 약 30미터 떨어져 있는 보호각...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소싸움 전용경기장. 인근 관광지와 연계한 테마관광상품 개발로 머무는 관광 유도하고, 농촌지역 개발과 축산발전 촉진 및 전통소싸움 활성화하기 위하여 개장하였다. 3천명의 관람석과 376대의 주차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싸움소를 관리하는 계류사 100개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초의 최신식 투우장이란 명성을 얻고 있다. 주차장은 평...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진주정씨의 원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 6촌 중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다. 그러나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정씨가 여덟 파가 되어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진주정씨는 상계가 연결되지 않는 8파가 각각의 중시조를 시조로 삼고 고려시대부터 진주에 산거하고 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 위치하였던 영화상연, 공연, 강연 및 사회단체의 집회장소이며 형평사 창립을 선포한 장소 구한말 법제적인 신분평등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불평등은 지속되었다. 1923년 5월 13일 형평사 창립축하식을 시작으로 천대받는 백정들이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을 공공장소에서 벌였던 기록적인 사건이 되었다. 창립축하식에는 수백 명의 백정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
편을 갈라 줄을 당겨 힘을 겨루는 진주지역의 전통놀이. 진주시 문산읍의 줄다리기는 승부보다 의식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줄을 다룬다는 뜻의 ‘줄다루기’라고 한다. 해마다 정해진 날짜에 이런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따로 날짜를 정해서 하는 행사이다. 진주줄싸움은 농경중심지인 다른 어느 곳보다 멋있고 성대하였다. 진주줄싸움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하여 그 해 풍흉을...
-
한국전쟁 당시 진주지구 내 북한군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7월 29일 미 제25사단 ‘칸’ 기동부대가 진주지구에 쳐들어온 북한군 제6사단과 제9사단 병력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1958년(단기 4291년) 7월 10일 육군 제1206 건설공병단에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지구 전승비에 기록된 비문의 내...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대한제국군의 지방군대. 조선 말기에 진주에 설치되었던 지방군대인 진주진위대(晋州鎭衛隊)는 러시아식 훈련과 교육을 받은 신식군대로서 대구 주둔 제3연대 소속의 제2대대였다. 진주진위대가 진영에 주둔했던 관계로 진주진위대를 ‘진영대(鎭營隊)’라고도 불렀다. 진주진위대는 1907년 일본군에 의해 해산되기 전까지 대한제국군 진주 지방부대가 주둔하던 군사주둔지인...
-
진주시와 진주처녀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진주 처녀는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이철혁이 작사 및 작곡하였으며, 나훈아가 불렀다. (1절) 꽃피는 봄이 오면 가슴 설레며 남강에 노를 젓는 진주처녀야 꽃잎에 정을 담아 강물에 띄워 흐르는 물결에다 소원을 푸는 아- 그 얼굴 그리워라 진주처녀야. (2절) 물 맑은 남강에다 배를 띄우고 님...
-
경상남도 진주시 인사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1895년(고종 32) 황제의 교육입국(敎育立國)의 조서에 의해 각 도마다 소학교가 개설되면서 진주에는 경상우도 관찰사에 의해 1895년 9월에 경상우도소학교(慶尙右道小學校)가 개설되었다. 이것은 진주지역 최초의 근대적 교육시설이다. 1896년 4월 1일 경상남도 공립소학교로 개칭되면서 현재의 박물관 옆 구 문화관 자리에 학교를 열고 교...
-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있는 시우회. 애국충효사상과 민족화합정신을 고취시키고, 국악 중 정악(正樂)이며 정가(正歌)인 시조(時調)·가사(歌詞)·가곡(歌曲)의 창법을 교육, 연구, 전승, 보급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1) 건강하고 친목하자, 2) 참여하고 협력하자, 3) 연구하고 전승하자, 4) 수범(垂範)하고 봉사(奉仕)하자 등을 목표로 삼았다. 1948년에 창립된 진주시...
-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 등 여덟 곳의 비경. 진주는 예로부터 산과 들과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고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형승조(形勝條)」에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파한집(破閑潗)』의 내용을 인용하여 “진양의...
-
경상남도 진주 지방의 교방에서 추어지던 일종의 놀이춤. 원래 「포구락무」는 궁중에서 행했던 춤과 노래 중 하나로 공을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를 표현한 것이다. 진주포구락무는 채구(彩毬)를 구문(毬門)의 풍류안(風流眼)에 던져 넣는 놀이를 음악과 무용으로 형상화한 궁중정재가 진주권번에서 지역화 된 춤으로서 고종[재위 1863~1907] 때 진주부사를 지냈던 정현석의 『교방가요』에서...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진주하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을 지내고 평장사(平章事)에 추증된 하공진(河拱辰)이다. 그런데 하연(河演)[문효공(文孝公)]이 1451년(문종 1) 처음으로 족보를 내면서 그 서문에 ‘세계가 전함이 없고 『고려사(高麗史)』에 홀로 하시랑 공진이 있어 듣기에 기쁘나 동원(同源)이면서 분파가 확실치 않다.’고 한 것과...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향교. 교육 도시 진주의 오랜 명성을 잘 말해 주는 관학 교육기관이다.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 987년(고려 성종 6)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鄕學堂)으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232-1번지[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 99-3]에 소재하고 있다. 1011년(고려 현종 2)에 중수(重修) 및 서재가 중건되었고, 수학원(修學院)·...
-
1634년에 제작된 진주 지역의 향안(鄕案). 원 소장자는 강태중(기증당시 68세, 경상남도 진주시 주약동 거주)이었으며, 소장처는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531-29번지[강남로131번길 4-3], 기증일은 2004년 8월 17일이다. 강태중이 집안에서 전해오던 고문서 39점을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하였는데, 『진주향안』은 그 중의 하나였다. 『진주향안(晋州鄕案)』은 현재 3종이 전...
-
진주시 본성동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장석 전문 전시관. 이 향토민속관은 태정민속박물관 시기와 현재의 진주시향토민속관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83평의 전시실에 장석류 약 8만 점을 비롯하여 자물쇠 831점, 장석 제작 도구 15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태정민속박물관 시기는 평생 동안 가구 장석(옛 목가구에 사용되었던 모든 금속)과 민속품 수집에 전념했던 고 태정(苔井) 김창문(...
-
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내려오는, 제사상에 올리는 반찬을 비벼 먹도록 만든 음식. 진주헛제사밥은 쌀이 귀했던 시절에 드러내놓고 쌀밥을 먹지 못했던 유생들이 저녁 늦게까지 글공부를 하다가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제사음식에다 향과 축문을 읽는 헛제사를 지낸 뒤 그 음식을 먹은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선비의 고장인 진주에서 선비들의 해학적 풍류가 만들어낸 전통 향토음식이라 할 수...
-
1924년 진주에서 백정 청년들로 조직된 형평사의 하부 청년단체. 형평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진주 본사 임원들을 지원하는 한편 형평운동 진작과 진보적인 사회운동과 협력을 통한 백정들의 경제생활 향상과 사회적인 대우 개선 등을 목적으로 삼았다. 서울의 정위단과 진주형평청년회는 파벌 대립에 반발하는 젊은 활동가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은 노장층에 비하여 비교적...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2동에 소재하는 화물터미널.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의 화물수송체계 혁신을 위하여 1987년 11월 11일 설립하였다. 화물수송의 전문화와 체계화를 이루어 진주시를 비롯한 서부 경상남도에 위치하는 회사나 공공기관의 대형 화물을 전국 각지로 수송하고 있다. 상대2동 33-89번지[도동로 131] 대형화물 수송의 주요고객이 밀집되어 있는 상평공업단지 주변에 있...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환경운동단체. 진주시민을 중심으로 남강의 오염문제 해결 및 환경보전을 위한 환경운동단체이다. 주로 남강 및 지리산 생태보존에 앞장서고 있으며, 각종 환경보전활동을 전개·지원하는 환경운동단체이다. 남강과 남강권역을 오염·파괴시키는 모든 행위를 근절하고 오염원을 방지·제거하여 자연과 공존하며 더불어 사는 참된 인간상을 정립하며, 남강 물을 먹고 자랄 후손...
-
경상남도 진주시 중북부에 위치한 면(面). 집현면(集賢面)은 지역 내에 있는 집현산(集賢山)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집현산(集賢山)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 『진양지(晋陽誌)』의 산천(山川)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북면(北面)에 속해 동물곡리(冬勿谷里), 모태곡리(毛台谷里), 정곡리(井谷里), 신당리(...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명석면·미천면과 산청군 신안면·생비량면에 걸쳐 있는 산. 『진양지』에는 진주의 산으로 소개되어 있고, 지금도 집현산은 진주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주봉은 산청군 신안면에 있다. 일설에 의하면 산신령이 거처하는 산이라 해도 7평이면 족하다고 하여 칠평산(七坪山)이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동학혁명과 임진왜란의 아픔을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집현산의 식생은 오리...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에 있는 우물. 마을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이었다. 가뭄이 심한 시기에는 인근 농경지의 농업 용수로 사용되기도 하고 양조장에서 술을 빚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찬새미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입춘에 받아두면 입춘수(立春水)라고 했는데, 입춘수를 마시고 합방을 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대대로 자손이 귀한 집에서는 이...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성씨는 원래 중국 성씨로 주나라 문왕의 일곱째 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후 당나라 때에 학사 성경이가 우리나라로 건너왔고 백제에는 성충, 신라에는 성저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성씨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증할 수 없다. 시조는 창녕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이며 고려 때 향직의 우두머리인 호장 중윤을 역임한 성인보(成仁輔)이다. 그 후...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창렬사를 중수하고 지은 글. 창렬사는 1607년(선조 40)에 건립되어 수차의 중수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심히 퇴락하게 되었다. 따라서 1962년 11월 15일 퇴락한 창렬사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여 창렬사 중수기를 지었다. 경상남도지사 명의로 되어 있으며, 창렬사의 건립 경위, 일제강점기 때의 퇴락 모습, 진주 유림들의 중수를...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전승되는 창열사(彰烈寺) 중수와 관련한 설화. 창열사 중수 전설은 특정 지역을 한계로 하는 지역적 전설이며,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전설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민간에 전승되는 설화에서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다루어진 소재였다. 귀신담은 민담에서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널리 전승되는 소재이다. 사실 이러한 귀신...
-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있는 창원지방법원 산하의 시·군법원.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의 모체는 진주재판소로서 일제 강압으로 이루어진 1894년 갑오개혁으로 탄생된 지방 사법기관이었다. 수백 년 동안 관행화되어온 사법제도를 개혁하여 근대화에 걸 맞는 사법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1895년 5월 15일에 설치되어 1912년 4월 1일까지 존속한 대한제국 근대식 사법기관이었다.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조곡을 보관하던 곳이라 하여 의창(義倉) 또는 창말이라 하였다가, 후에 창촌(倉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옛날 무실마을[水谷]이다. 1906년(광무 10)에 진주군을 50면 298리로 재편할 때, 수곡면에 속했다. 이후 1914년 진주군 수곡면 창촌동, 조계동, 원당면 외동, 하동군 운곡면 가덕동의 각 일부를 합쳐 창촌리라 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에 전승되고 있는 ‘처자골’에 대한 지명 유래 설화. 지명 설화는 지명과 관련된 인물, 풍수, 자연 사물과 지명을 관련시켜 유래를 전하는 설화이다. 인물의 경우에는 인물의 기이한 행적이나 특별한 사건과 관련되는 경우가 보편적이고, 풍수의 경우에는 지리 형상을 밝히거나 지리 형상과 관련된 사건의 결과로 지명을 설명하고 있다. 풍수와 관련 없이 자연 사물이 관련되는 경우에...
-
처용설화에서 비롯된 탈을 쓰고 추는 향악정재.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로부터 기원된 것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걸쳐 궁중정재와 구나의(驅儺儀)의 뒤에 추는 향악정재이다. 주로 궁중에서 거행되는 세말의 나례에 공연되었으나, 민간의 처용희도 있었다. 의식무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놀이로서의 성격이 확대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가 1920년대에 『악학궤범』에 의거해...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솔기마을에서 전승되는 천고개에 관한 지명 유래담 설화. 천고개 설화는 특정 지역에서 옛날에 일어났으리라고 믿어지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전설로 지역적 전설에 해당한다. 지역적 전설은 대부분 지방의 지리적 특징이나 명칭의 유래, 습관의 기원 등을 이야기한다. 또 전승 집단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이 어떻게 하여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목적으...
-
1936년 병자년 8월 26일에서 8월 28일 사이에 진주 지역에 발생하였던 대홍수. 1936년 8월 26일부터 내린 호우는 27일 저녁 무렵부터 북동풍이 점점 강하게 불어 태풍 내습의 경보가 발령되었다. 오후 7시반경에는 전등이 꺼지고 곧 전신 전화도 불통이 되었다. 오후 8시 이후에는 상점가도 문을 닫았다. 밤 11시경에는 풍속이 40㎧ 정도의 폭풍우로 변하여 건물의 지붕, 간...
-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강상호(姜相鎬)의 후배로서 종이 가게를 경영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1923년 형평사 창립 전에 진주금주단연회·진주저축계·보천교소년회 등에 참여했으며, 형평사 창립에 적극 관여하였다. 1923년 4월 25일 양반 출신 사회운동가인 강상호와 함께 이학찬(李學贊)·장지필(張志弼) 등 경제력을 가진 백정들과 같이 진주에서 형평사를 창립하였다. 이후 형평사의 중앙집...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있는 재래시장. 천전시장은 중앙시장과 더불어 해방 이후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천전시장은 진주지방의 남부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1945년에 12월에 개설되었다. 당시 시가지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천전시장은 기존의 청과시장, 곡물시장, 포목상, 잡화상, 식료품시장 외에 귀환 동포들의 노점상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당시...
-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18세기 말엽이다. 당시 중국을 왕래하던 조선 사신들을 통해 시작된 중국의 선교사들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졌다. 천주교의 정착은 직접적인 선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들은 실학운동에도 자극...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월아산에 있는 사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진주를 지나갈 때, 푸른 학이 남강변에서 월아산으로 날아와 앉았다. 도선국사가 둘러보니 월아산에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하여 이곳에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禁山面) 갈전리(葛田里)에 위치한다. 879년(헌강왕 5) 연기조사인 도선국사가 월아산에 청곡사를 창건하였다. 1380년(우왕 6)에...
-
주요한 이기(利器)의 재료에 따라 구분하는 고고학상의 3시기법(三時期法: 석기·청동기·철기)에 따른 시대의 제2단계.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 연대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기원전 10세기경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계속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개시연대는 이론이 많은 실정이며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차후의 연구결과에 따라 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소급될...
-
매년 10월 진주지역 청소년들이 환경을 주제로 직접 준비하고 펼치는 축제. 진주환경운동연합에는 ‘푸른마당’이라는 진주지역 고등학생들의 모임이 있는데, 청소년환경축제는 ‘푸른마당’이 중심이 되어 어른들과는 달리 학업 등으로 활동에 제약이 많은 학생들을 위하여 마련된 축제이다. 청소년환경축제는 진주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하며 환경에 관한 다양한 전시작품들과 연극공연 등을 감상하고 직접 체험...
-
진주시의 옛 지명 진주는 가야 지역으로 거열성(居列城)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는 삼국통일 과정에서 문무왕 3년(663) 2월에 거열성을 공취하여 거열주(居列州)라고 하였다. 신문왕 5년(685) 봄에 처음으로 9주를 정비하면서 거열주를 높여 청주(菁州)라 하고 대아찬 복세(福世)로 하여금 청주총관을 삼았다. 「삼국사기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강주(...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이다. 한...
-
1954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설립되어 활동했던 아마추어 극단.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연극공연을 통해 군경(軍警)을 위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54년에 진주지역에서 주로 학생극 연출에 몰두하던 하만구(예명:하계림)의 제의에 의하여 정경태, 전미혜 등 기성연극인들이 함께 청포도 극회를 창단하였다. 1954년 창단기념공연과 1955년 순회공연 이후 후속적인 활동이 없어 해...
-
경쟁과 유희성을 가진 신체운동 경기에 관심이 있거나 직접 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체육 측면에서 군국주의 체육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1945년 대한체육회의 부활과 함께 각종 체육단체의 탄생으로 획기적이고 새로운 체육시대를 조성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학교 체육에만 관심을 가졌으나, 1986년 아시아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일반인들을...
-
체육활동을 통한 여가선용을 목적으로 하거나 각종 운동 경기를 개최하기 위하여 마련된 시설, 또는 장소. 체육시설의 설치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체육시설을 ‘체육활동에 지속적으로 이용되는 시설과 그 부대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국민체육진흥법 제 2조에 따르면 체육은 ‘운동경기 야외운동 등 신체활동을 통하여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기르고 여가를 선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
-
국민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 현대 학교교육의 제도상 가장 먼저 취학하는 학교이다. 따라서 설립자나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의 목표 아래 동일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근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교육이 국가의 기본기능으로 인식되어 국민교육의 제도적 확립과 확충·강화책이 강구되고 있다. 초등학교는 나라에 따라 초등학교·보통학교·기초학교·소학교 등으...
-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과 하대동 일대에 형성된 넓은 들. 초전들은 남강이 진주를 관통하여 흘러나가는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남강 건너 맞은편에 영천강이 합류하여 들어온다. 남강과 영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홍수로 인한 퇴적 현상으로 형성된 자연 제방에 해당하는데, 배수가 잘되어 밭농사를 하기에 유리한 지역이나 남강 제방이 쌓여지기 전까지는 항상 홍수의 위험이 뒤따랐다....
-
진주성 내의 촉석루에 걸린 현판의 시. 현재 촉석루에는 현판에 새겨진 9편의 시가 걸려 있다.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에는 훌륭한 시영(詩詠)으로 면재 정을보, 우곡 정이오, 상헌 안진[?~1360], 경은 설장수[1341~1399], 급암 민사평[1295~1359], 이재 허선생(누구인지 불명) 등 여섯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정을보와 정이오의 시가 촉석루에 걸...
-
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촉석루의 변천과정을 기록한 글. 진주하씨인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이 촉석루가 지어진 연대를 고찰하고 또 중수한 동기와 과정을 상세하게 그렸으며 이 누대가 개수됨으로 미치는 영향을 순차적으로 기술하였다. 촉석루의 명칭 유래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및 촉석루에서 바라보이는 장관을 시작으로 촉석루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가를 시대...
-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마음을 촉석루에 빗대어 읊은 대중가요. 노래 「촉석루의 하룻밤」은 논개의 한(恨)과 처량한 마음을 촉석루에 반영하여 그린 음악작품이다.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손로원이 작사하였고 이재호가 작곡하였으며, 손언호가 노래하였다. (1절) 하룻밤 울고 갈길 내 어이 왔던고 기둥 없는 주춧돌만 달빛 속에...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 앞에 있는 임진왜란 삼장사(三壯士) 기념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판서에 추증된 김성일(金誠一)[1538~1593]과 조종도(趙宗道)[1537~1597], 이조판서에 추증된 이로(李魯)[1544~1598]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삼장사에 대한 기록이 문헌마다 달라 국사편찬위원회의 유권해석과 경상남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1963년에 건립하...
-
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지은 촉석성 공사과정을 기록한 기문.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은 진주에서 태어나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쳐 진주에서 인생을 보낸 인물로서 진주성, 촉석루 등에 기문을 지어 진주의 역사적 경관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촉석성문기(矗石城門記)」로 촉석성은 지금의 진주성을 의미한다. 그 성을 왜 쌓아야 했는지,...
-
진주시 이현동 25번지[평거로 259]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능력과 창의성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기 위하여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예절 바른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실력 있는 어린이, 꿈을 가지고 특기를 키워가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하며 성실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 교육목표이다. 1979년 1월 12일 설립인가를 받아 1981년 2월 28일에 진주 봉안,...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지고 있는 처녀와 총각이 문답 형식으로 부른 비기능 민요. 「총각노래」는 정상박 등에 의해 1980년에 진주 명석면(鳴石面)에서 채록되었다. “지게 진 총각아/휘파람 소리에/물동이 인 처녀가/(조용히)입방굿 하는구나”로 시작되는 익살스러운 사설로 되어 있다. 하종갑의 『진양민속지』에 의하면 진주 지역에 유포된 「총각노래」는 세 가지 종류로 전승되고 있다. 이...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의병장 최강의 공적을 기리는 비.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최강(崔堈)[1559~1614]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로 1975년 후손 최정온(崔正蘊)과 최진모(崔震模)가 건립기금을 모아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뒤벼리 입구에 선학산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남강과 촉석루를 바라보며 서향으로 있다. 사각형의 시멘트 기초 위에 화강암 장대석 기단을 쌓...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문신, 의병장.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일휴당(一休堂). 전라남도 능주(陵州)[화순] 출신. 고려 명신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최천부(崔天符)의 아들이다. 1532년(중종 27)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의병장으로 왜적과 싸우다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양응정(梁應鼎)·기대승(奇大升)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관인 발견 유래담. 1992년 진주시에서 편찬한 『내 고장의 전통』에 기록되어 있다. 1747년(영조 23) 남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가 철인 하나를 건졌는데, 앞면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慶尙右道 兵馬節度使印)’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만력십삼년월일조(萬曆十三年月日造)’라 새겨져 있었다. 당시 병사 최진한(崔鎭漢)은 이 사실을 조정에 장...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전주.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출생년은 미상이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발라 일찍이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봉사가 되었다. 이후 진주부관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살며, 젊은 유생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지휘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의병장 최대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1752년(영조 28) 최대성(崔大晟)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세운 공로를 인정하여 “충신모의장군 증통정대부형조참의어모장군행훈련원정최대성지려(忠信募義將軍 贈通政大夫刑曹參議禦侮將軍行訓練院正崔大晟之閭)”를 내리면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안간지구대 옆에 동향하여 있다. 1999년...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설서(司設署) 영(令)을 지낸 최수명(崔守明)이고, 어머니는 숙인(淑人) 진강정씨(晉康鄭氏)이며, 부인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1349년(고려 충정왕 1)에 태어나 1374년(...
-
진주 출신의 국악인. 1892년 7월 7일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출생한 최순이는 조선 말 진주교방의 여기였다. 9살 때부터 검무를 전수받았고, 그 후 궁중에 들어가 어전에서 연희하다가 진주로 낙향하여 동기들을 가르치면서 검무의 계통을 이어온 진주검무보유자이다. 금보에게 9살에 배운 국문 해득이 전부이다. 검무보유자로 60년간 종사하였다. 14세에 선상기(選上妓)로 서울에 설치된 진...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화순. 자는 적원(積元). 아버지는 병조좌랑을 지낸 최세준(崔世俊)이고,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 현감을 지낸 손준(孫濬)의 딸이다.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의 아우이다. 부인은 정몽상(鄭夢祥)의 딸이다. 1575년(선조 8) 한양에서 형 수우당 최영경과 함께 선대의 토지가 있는 진주로 와서 도동에서 한집에 같이 살면서 섬기기를 부모같이 하였...
-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화순. 자는 효원(孝元), 호는 수우당(守愚堂). 아버지는 병조좌랑을 지낸 최세준(崔世俊)이고,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 현감을 지낸 손준(孫濬)의 딸이다. 1529년(중종 24)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인으로서 학문에 몰두하였다. 과거에 실패하고 1572년(선조 5) 경주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이후에도 조정으로부터 수령·도사·사...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사겸(士謙), 호는 죽계(竹溪).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대사간을 지내고 처음으로 진주에 자리잡은 최복린(崔卜麟)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부사정(副司正)으로 옥포만호를 지낸 대재(大哉) 최경천(崔景泉)이다. 부인은...
-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에 있었던 샘. 추새미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추수(秋收)마을의 샘물이었으며, 1990년대 말까지 진주 시내 도심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샘이었다. 옛 평안리 때 농청(農廳)이 있던 추수(秋收)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샘이라고 하여 추수새미, 줄여서 추새미[秋井]라 하였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화된 진주 시가지를 수복 후 신도시로 재건설할...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행하여지는 지역 축제에 대한 개관(槪觀). 축제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따르지만, 그로 인한 이윤 창출 역시 가능하다. 축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시공간에서 저절로 기쁨과 신명에 도취되는 흐뭇한 경험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축제의 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억압과 구속, 부족감, 상대적인 박탈감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축제...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임신부가 산기를 느낄 때부터 출산한 다음까지 순산과 태아의 건강장수를 위해서 행하던 습속. 임산부가 만삭이 되어 산일(産日)이 가까워지면 출산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일을 두고 ‘사잣밥을 지어 놓고 낳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었다. 따라서 순산을 비는 다양한 풍속이 행해졌다. 진주...
-
책·신문·잡지·소책자 등의 인쇄물을 제작하여 복제한 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여 판매 또는 배포하는 일. 출판의 책임을 지는 개인을 출판자(出版者), 그 기업체를 출판사라고 한다. 출판물은 보통 사회적 소통의 기능을 담당하는 매체에 해당하며, 특히 문화의 보호와 전승 및 발전에 관여하는 문화창조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한다. 대부분의 출판물은 근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는...
-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신은 전통시대의 사상을 포괄하여 내려오는 용어이지만, 나라에 충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는 기본적 덕목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후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은 그 마음이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어느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식실마을에서 전승되는 진주성 촉석루 위쪽의 공북당과 선하당 유래에 관한 설화. 충의당(忠義堂) 전설은 공북당과 선하당이 만들어진 기원에 대한 전설로 특정 지역에 전승되는 지역적 전설이자, 사물의 기원에 대해 설명해 주는 설명적 전설이다. 전설은 지역 주민들에게 관심 있는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새로운 해석의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섬겨온 측간, 즉 화장실을 지키는 신. 진주지역에서는 칙신이라 부르는데 측간을 방언으로 칙간이라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측신각시, 정낭각시, 측간신으로도 일컬어지는데, 성미가 고약한 신으로 생각하였다. 측신은 사람들이 꺼리는 신으로 음력으로 6이 든 날은 변소에 가지 않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이 변소에 갈 때 가래를 돋워 큰기침을 한...
-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의 행정작용. 치안의 개념은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을 목적으로 범죄자를 체포·구금하는 등의 국가의 통치권에 의한 계몽·지도·명령·강제하는 작용을 말한다. 1896년 8월 4일에는 칙령 제35호에 의하여 기존에 시행했던 23부제(府制)를 폐지하고 동일자 칙령 제36호로 전국을 다시 13도(道)로 개편하여 도에 관찰사...
-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진주 망진산 북동쪽에 있는 칠암동 김모씨의 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은 없다.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고인돌 1기가 보고되어 있다. 현재 칠암동의 도시개발로 인하여 유적을 확인할 수 없다. 주변에 칠암동고분군이 있어 고분군을 조사할 경우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
경상남도 진주시 계동에 있는 통신회사. KT[한국통신]는 전기통신사업의 효율적 경영을 위해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통신부문을 분리하는 공사화 전환 계획에 따라 1981년에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도 통신을 관장하는 KT 지역본부가 설립되었다. 그 중 진주지역을 담당하는 것이 KT 진주지사이다. 발달하는 통신장비 및 시설을 진주시민에게 보급하여 편익 증진과 공공복...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매년 10월 텔레비전 드라마를 대상으로 열리는 드라마 시상식.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은 TV 드라마를 대상으로 한 국내 단일 부문 최대의 드라마 시상식으로서 지방에서는 최초로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개최되었다. ‘한류(韓流)’가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드라마, 영화, 음반, 뮤지컬 등 문화 콘텐츠 수출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에 진주시에서는 특색 있...
-
진주지역에 내려오는 여자아이들의 민속놀이. 작은 돌을 수십 개 땅바닥에 흩어 놓고, 일정한 놀이방법에 의해 주워 먹기를 내기하는 놀이로, 이 놀이가 공기놀이에 쓰이는 돌과 거의 같은 것을 갖고 논다고 해서 공기놀이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놀이할 때의 돌의 수가 다르고 또 놀이 방법이 전혀 같지 않기 때문에 별개의 놀이로 볼 수 있다. 이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밤톨만한 둥...
-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논매기나 고기잡이, 잔치에서 부르는 민요.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치이나 칭칭나네」나 「캐지나 칭칭나네」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쾌지나 칭칭나네」의 변이형으로, 유희요 가운데서도 춤을 추면서 부르는 무용 유희요에 속한다. 무용 유희요에는 세시 때 놀이를 위해 부르는 것과 무시(無時) 때 놀이를 위해 부르는 것이 있다. 세시노래는 대개 일정한 순서...
-
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에 있는 문화예술단체. 큰들문화예술센터는 조상대대로 전해져 온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건강한 지역문화를 연구하여 현대에 맞는 우리 문화의 전형을 창조 보급해 가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3년 8에 ‘물놀이패’라는 이름으로 창단준비를 하여 1984년에 1984년에 ‘큰들’로 출범하여 「진양살풀이」로 창단공연을 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박원의(朴元義)는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세자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의 9세손 박을재(朴乙材)의 현손으로서 박원효(朴元孝)의 아우이다. 박원의는 고려 때에 광록대부 상서좌복야(光祿大夫尙書左僕射)로 태안군(泰安君)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이 본관을 태안으로 하였다. 시조 박원의의 8대손 박상덕이 진주정씨와 혼인하면서 진주에 입...
-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기반암이 풍화된 풍화 물질에 각종 생물체의 유해부식 물질들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딱딱하게 굳지 않은 부드러운 물질. 경상남도의 토양 분류는 토양형으로 나누는데 토양형은 크게 논토양과 밭토양으로 나눈다. 논토양은 잔적토-지질계통형, 운적토-대하천형, 소하천형, 해성형, 산간지형, 천수답형으로 나눈다. 밭토양은 잔적토-지질계통형, 운적토-대하천형, 소하천형, 해성...
-
경상남도 진주시 충무공동에 있는 토지 및 주택 관련 박물관. 토지 주택 박물관은 기업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려는 목적으로 개관하였다. 2015년 한국 토지 주택 공사가 진주시 혁신 도시로 이전함에 따라 1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진주에서 재개관하였다. 1997년 7월 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토지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1997년 12월 주거 문화...
-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교육에 반발하여 공립진주농업학교에서 조직된 비밀결사단체. 광주학생운동을 전후로 식민지교육에 반발한 동맹휴교가 중등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는 가운데 공립진주농업학교와 공립진주고등보통학교, 그리고 일신고등여학교 등에서도 학생비밀결사가 연대하여 활동하였는데, 공립진주농업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T·K단도 이 같은 학생비밀결사단체 중의 하나였다. T·K단은 사회과학...
-
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옛날 진주로 통하는 관문의 자리에 위치한 지역이라 하여 ‘널문이’라고 일컬어왔으며, 지형이 널따란 널문[板門]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여 ‘판문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평거면(平居面) 판문촌(板門村), 오동촌(梧洞村)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판문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
일반 사회인 또는 국민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평생교육은 대개 교육이 실시되는 장소를 기준으로 가정교육과 정규 학교교육 이외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지칭한다. 또한 평생교육은 시간을 기준으로 학교교육의 이전이나 다음에 오는 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평생교육의 의미가 분명하게 규정되지 못하는 이유는, 평생교육이 가정교육 및 학교교육과 상호 밀접한 연관 속에 실시되고 있으...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역의 동쪽에 있는 평촌저수지의 서쪽 야산에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현재 과수원과 밭으로 경작되는 곳과 잡목 등이 우거진 숲의 곳곳에서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유구는 도굴갱으로 보아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 주로 축조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발견되는 유구와 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고분군은 북...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상촌마을에서 전승되는 선생에게 피난지지(避難之地)를 찾아준 하동장에 관한 설화. 피난지지를 아는 하동장 설화는 후반부가 성씨 시조 신화의 형태를 띠지만 기본적으로는 민담에 속하는 이야기로 신이담(神異談)에 해당한다. 신이담은 의도적인 허구이니만큼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이나 공간도 제한이 없거나 막연하며, 이는 피난지지를 아는 하동장 설화 역시 마찬가지이...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익(子益). 목사를 지낸 하우치(河禹治)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하숙(河淑),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다. 어머니는 사천이씨(泗川李氏)이며, 부인은 동래정씨이다. 1555년(명종 10)에 출생하여 1579년(선조 12)에 진사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학업에 정진하였고 온후한 성품과 단정한 용모로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
조선 말기의 무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우석(禹碩). 호는 사헌(思軒). 아버지는 하한조(河漢祖)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기찬(朴基欑)의 딸이다. 1825년(순조 25) 진주에서 출생하여 이우빈(李佑斌+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3년(철종 4) 무과에 급제한 후 부사과, 훈련원첨정 등을 지내고 1862년 거제도호부사로 나갔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순...
-
근대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숙형(叔亨). 호는 회봉(晦峰) 또는 외재(畏齋).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1870년(고종 7) 진주에서 출생하여 13세에 사서오경을 익혔고, 24세부터는 성리학을 논하기 시작했다. 27세 때 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후 평생을 학문과 저술에 힘쓰다 1946...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경부(敬夫), 호는 춘당(春堂). 고려 문하시랑평장사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진평군(晉平君)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사천이씨(泗川李氏) 이륜(李綸)의 딸이다. 부인은 함안이씨 이인형(李仁亨)의 증손녀로 이응춘(李應春)의 딸이다. 1566년(명종 21) 태어나 형들을 따라 공부하였고, 자라서는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찾...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낙도(洛圖), 호는 해산(海山). 밀양부사와 안주목사를 역임한 하진보(河晉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예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 권중도(權重度)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기문의 딸이다. 1841년(헌종 7)에 태어나 뛰어난 재주로 과거공부를 하면서 명성을 날렸고, 성재 허전(許傳)의 제자가 되었다. 「주자서(朱子書)」를 매우 좋아하였고...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하승해(河承海)이며 어머니는 보성선씨 전객령(典客令) 선진기(宣眞起)의 딸이다. 조선 초에 병마도절제사를 지낸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 형이다. 진주 주위 고을 수령을 지내며 형 하경복을 대신하여 모친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효행의 명성이 높았다. 당시 하경복은 나라의 북경 수비를 맡아 15년간이나 국방과 영토 확장...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에 출생하여 조선 건국 후인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상호군을 지냈다. 1410년에는 무과중시에 다시 급제하여 첨지총제로서 함경도 경원과 경성의 군사 요새지를 수비했으며, 세종 때에도 경기도 및 경상도의 병마절제사를 지냈다. 1433년(세종 15)...
-
조선 전기의 선비·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공곽(公廓). 호는 매헌(梅軒).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모시고 상주에 갔다가 도중에 왜적을 만났다. 왜적이 아버지를 베려 하자 하경휘는 소리를 지르며 자기 몸으로 칼을 막았으나 무도한 왜적은 부자를 모두 무참히 살해하였다. 뒤에 조정에서 하경휘의 효행을 기려 효자의...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하계선(河継先)은 어린 선비의 몸으로 의병을 일으켜 계사년 진주성 함성 때 장렬하게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호조좌랑으로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
근대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성술(性述), 호는 학산(鶴山). 생원 하위보(河魏寶)의 12세손이며, 참봉 하경(河憬)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하영원(河永源)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 안재복(安在福)의 딸이다. 당대의 선비로서 명성이 드러난 회봉 하겸진(河謙鎭) 등과 교유하였으며, 선비로서 현사(賢祠)와 서원(書院)의 원임을 맡는 등 유림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족보 발간 등...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994년(성종 13)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고, 1009년(목종 12)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 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목종이 거처하는 궁궐 주변을 지켰으며, 얼마 후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하공진의 사적비.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하공진은 자신을 볼모로 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하공진의 이와 같은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69년에 하공진의 후손이 건립하였다. 방형의 대좌와 거북형태의 비좌가 한 돌로 되어 있고 비신 위의 비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희량(希亮). 진주 신당리에 살았다. 천성이 양순하고 인정이 두터우며 행실이 돈독하여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글재주로 이름이 있었고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은 하지 못하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
조선 중기의 효자·의병. 본관은 진주. 자는 희가(希可). 호는 신당(新塘). 대사간을 지낸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버이 생전에 봉양을 잘 하였으며,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시묘살이를 예에 따라 행하였다. 그의 4형제가 한집에 살았으나 전혀 다툼이 없이 화목하게 살아 고을 사람들이 ‘효우군자(孝友君子)’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선재(善哉).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하숙(河淑)이고, 어머니는 함종어씨(咸從魚氏)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의 딸이다. 부인은 진주강씨 강열의 딸이며, 사간(司諫) 하진보(河晉寶)의 아우이다. 1563년(명종 18)에 출생하여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1573년(선조 6) 생원시에 합격했다. 천성이 순진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였으며, 옛...
-
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진주. 조선 중종 때의 문신 강응태(姜應台)의 손녀이며, 사직(司直)을 지낸 강렬(姜冽)의 딸이다. 남편은 하국보(河國寶)이다. 평소에 부도(婦道)를 잘 지켰으며,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에 왜적을 만나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으며,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그 열행이 기록되어 있다. 뒤에 조정에서 절부의 정문(旌...
-
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일숙(一叔), 호는 단연(丹淵). 모송재(慕松齋) 하인상(河仁尙)의 현손이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일찍이 학문을 이루었다. 세도가 날로 기우는 것을 보고는 문달(聞達)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리의 학문에 잠심하였으며 괴천(槐泉) 유문룡(柳汶龍)[1753~1821], 홍와(弘窩) 윤동야(尹東野) 등 주위의 선비들이 모두 추종하였다. 진주에는 그 학문적 성과가...
-
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여삼(汝三). 조선 전기의 문신 하경복(河敬復)의 후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남원양씨 부인을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다. 그의 나이 14세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영약인 잉어를 구하기 위해 디딜방아 공이를 다듬어 읍내 장에 가서 팔려고 가다가 수곡의 조계마을 앞 길 위에서 쓰러져버렸다. 이튿날 햇살에 놀라 황급히 일어나 자기의...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하위보(河魏寶)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하변(河忭)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 이유눌(李惟訥)의 딸이다. 부인은 연일정씨(延日鄭氏) 정계(鄭戒)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 출생하여 일찍부터 문장에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았다. 1660년(현종 1) 25세에 생원에 합격했는데 스스로 이름을 숨기면서 성균관에 들어가 여러...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군학(君學).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윤청(河胤淸)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 남천해(南天海)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성(尹惺)의 딸, 연안이씨 이우하(李遇夏)의 딸, 진양정씨 정헌주(鄭憲周)의 딸이다. 1723년(경종 3)에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 스스로 학문을 익혀 경전을 귀히 여겼다. 평생 언행에 거짓...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용강(龍岡).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단지(丹池) 하협(河悏)이며, 어머니는 진양정씨 정승훈(鄭承勳)의 딸이다. 부인은 은진송씨(恩津宋氏) 참봉 송흠원(宋欽遠)의 딸과 현풍곽씨(玄風郭氏) 통덕랑(通德郞) 곽창후(郭昌後)의 딸이다. 용강(龍岡)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은, 남양 땅 와룡강(臥龍岡) 아래에 은거하면서...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몽징(夢徵), 호는 불우당(不憂堂)이다. 기개와 도량이 크고 두드려졌으며 말달리기와 활쏘기에 능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났을 때 선전관으로 있으면서 난의 진압에 큰 공을 세웠다. 무신란 때 세운 공으로 벼슬이 부호군(副護軍)에 오르고 2등 공신에 올랐다. 은궁(銀弓)과 옥시(玉矢)를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다. 『...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첨경(瞻卿), 호는 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대사헌에 증직된 설총(雪聰) 하철(河澈)이며, 어머니는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이다. 1664(현종 5) 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육례(六禮)에 통달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별세하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여막을 지켰는데, 모친에게 문안...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추사체 서예가. 하동주는 1879년에 경상남도 거제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진주로 이주하였으며, 아버지 하제봉(河濟峰)으로부터 추사체를 전수받아 추사체로 일가를 이룬 진주시의 대표적인 서예가이다. 하동주는 추사체의 행서에 주력하여 경지에 올랐다. 일생을 진주시에 주로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고, 진주지역의 서예가로 활동한 은초 정명수와 도연 김정에게 추사체를...
-
조선시대의 효녀·열녀.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하득곤(河得鯤)의 딸 하씨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 아버지가 병이 들어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으나 상태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정려(旌閭)되지는 않았다. 진주 운곡(雲谷)에 살았다. 진주는 예향(禮鄕)으로써 많은 지조있는 선비들을 배출했는데 그에 못지않게 효자와 효녀도 많이 배...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도원(道源), 호는 환성재(喚醒齋). 아버지는 생원 하인서(河麟瑞)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협(趙協)의 딸이다. 부인은 동래정씨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광세(鄭光世)의 손녀이며 생원 정충집(鄭忠輯)의 딸이다. 1530년(중종 25)에 태어나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남명(南溟) 조식(曺植)을 사사하였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장원하여 왕...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있는 조선 중기의 선비 하락(河洛)의 신도비. 하락(河洛)[?~1592]은 본관이 진주, 호는 환성재(喚醒齋)이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학행으로 추천받아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아들 하경휘(河鏡輝)와 함께 왜군에게 피살되었다. 1903년 하락을 기리기 위해 신도비를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에 있는...
-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1347년(충목왕 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 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에서 전승되는 죽은 하륜(河倫)의 부탁을 들어준 병사(兵使)에 관한 설화. 하륜의 영혼 설화는 특정 지역을 한계로 하는 지역적 전설이며,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전설이다. 귀신 이야기는 민담에서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널리 전승되는 소재이다. 사실 이러한 귀신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원령(怨靈)과 같은 귀신 그 자체가 아...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문충공의 후손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증손이며 하결(河潔)의 아들이다. 1546년(명종 1)에 태어나 상주에서 살다가 진주 금곡면 운문(雲門)으로 들어와 하씨 문중 대표로서 세 아들 하분(河濆), 하빈(河濱), 하호(河滸)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진주목사 이제신(李濟臣)이 병부(兵符)를 잃어버리고 진사 정대호(鄭大護)...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혼원(混源). 현감을 지낸 하형(河瑩)의 손자로, 아버지는 생원 하희서(河希瑞)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로 부사를 지낸 조상(趙瑺)의 딸이다. 부인은 함안조씨로 참봉 조정수(趙廷竪)의 딸이다. 1537년(중종 32)에 출생하였으며 진주 수곡리에 살았다.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여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 하였다. 그러나 하면의 세...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차해(次海). 할아버지는 창주(滄洲) 하증(河憕)이고, 아버지는 하달도(河達道)이다. 어머니는 함안조씨 주부(主簿) 조영기(趙英沂)의 딸이다. 부인은 전의이씨 승의랑(承議郞) 이전(李瑑)의 딸이다. 1630년 진주 단목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모친을 지극 정성 봉양했고, 1660년에 생원(生員)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하(子賀), 호는 단주(丹州). 할아버지는 하숙(河淑)이고,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진양강씨이다. 부인은 성산이씨이며,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우이다. 1581년(선조 14) 태어났다. 1597년 정유재란 때 17세의 나이로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적이 그의 풍모와 문사가 훌륭하고 예의가 반듯하므로 예(...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예암(預庵) 하우현(河友賢)이며 어머니는 분성이씨(盆城李氏) 이익의 딸이다. 부인은 은율임씨 임박(林璞)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에 출생하여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종조부인 함청헌(涵淸軒) 하이태(河以泰)에게 공부를 배웠다. 15세 때 어머니마저 별세하자 상례를 정성으로 치러 마을의 칭...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사윤(士潤), 호는 송대(松臺).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손자로, 아버지는 매헌(梅軒) 하경휘(河鏡輝)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이다. 1583년(선조 16) 진주 수곡면 효자리 효동에서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총명함이 뛰어나고 재주와 기개가 월등했다. 임진왜란을 맞아 조부와 부친이 상주성에서 순국하자 어린 나이로 왜적의 눈을 피해 시신을 모...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경(子敬),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참의를 지낸 이륜(李倫)의 딸이다. 뒤에 영모정(永慕亭) 하진보(河晋寶)에게 입양되었다. 1571년(선조 4) 태어나 최영경(崔永慶)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남도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곽재우(郭再祐)를 찾아가 군무를 도와 공을 세웠...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응서(應瑞), 호는 지명당(知命堂).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이며, 하무(河楙)의 아들이다. 1661년(현종 2) 진주 수곡면 사곡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재주가 뛰어나고 견문이 넓어 문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두 경전의 뜻을 전하였다. 당시의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와 눌암(訥菴) 이광정(李光庭)과 더불어 학문과 도의를 논하...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하억(河檍)이며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통덕랑(通德郞)노약(盧爚)의 딸이다. 부인은 현풍곽씨 곽약의 딸과 경주김씨 김필백의 딸이다. 1647년(인조 25)에 출생하여 1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7세 때 진양하씨의 집성촌인 진주 수곡 사곡으로 이주해 터를 잡았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면(河沔)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 조정견(趙庭堅)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언례(尹彦禮)의 딸과 밀성손씨 손천뢰(孫天賚)의 딸이다. 1553년(명종 8)에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전수받은 종숙 각재(覺齋) 하항(...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하경복(河敬復)의 손자. 성종 때 사람으로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참판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성품이 청간(淸簡)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시호는 경절(敬節)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민(汝敏).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손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있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벼슬길에 뜻을 끊고 후진을 가르치고 일깨우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고 한다. 후에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덕천서원(德川書院)과 경상...
-
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진주(晋州). 사인(士人) 하약(河瀹)의 부인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토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품팔이를 하였으나 제사에는 음식을 풍성히 하였다.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다가,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풍성히 하였다. 또한 염습과 의복을 모두 스스로 지었다. 진주 신당리(新塘里)에 살았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 부윤을 지낸 하자종(河自宗)의 아들이다.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나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396년(조선 태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춘추관 수찬관이 되었다. 이어 집의, 동부대언, 예조판서를 지냈다. 1423년(세종 5)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조계종...
-
조선 전기의 문신 하연(河演)의 묘. 하연의 본관은 진주,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나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365년(조선 태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판서·대사헌·대제학·형조판서 등을 지내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1449년(세종 31) 영의정에 올랐다. 문종이 즉위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있다가 1453년(단종 1...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평지(平之)이다. 진주 사죽에 살았다. 1514년(중종 9) 무과에 급제한 후 통훈대부와 사천현감, 여산군수, 안주목사를 지냈다.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으며, 나라의 재목으로서 장차 크게 쓰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안주에 있을 때 병을 얻어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20년 동안 휴양하다가 별세하였다. 어관포가 찬...
-
조선 후기의 유림. 본관은 진주. 자는 무원(武源), 호는 청계(淸溪).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12대 손이며, 하한주(河漢周)의 현손이다. 약관의 나이에 문장과 필법이 뛰어나 입신양명해 이름을 드러내니 사우(士友)들이 다투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사류(士類)의 숭상할 일이겠느냐?”라고 하고는 두문불출하고 성리(性理)의 학문에만 전념하면서 후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대중(大中), 호는 송파(松坡) 혹은 죽헌(竹軒). 성주목사와 김해목사를 역임한 영묘정 하진보(河晉寶)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장수 현감을 지낸 하성(河惺)이다. 아버지는 하달원(河達遠)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로 봉직랑 이명의(李明懿)의 딸이다. 아내는 울산김씨로 김극립(金極立)의 딸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다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미재(美哉). 안주목사를 지낸 하우치(河禹治)의 손자이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후 순충보조공신 자헌대부를 역임했고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진평군에 책봉됐다. 천성이 자상하고 형제간에 화목하였다. 장례와 제례는 한결같이 가례를 따랐으며, 몸가짐에 한 점 흐트러짐 없고 고을에서 처신함에 성신을 다하니 모...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수부(晬夫), 호는 운수당(雲水堂). 거제 현령 하계지(河繼支)의 아들이다. 운수당 하윤은 1477년(성종 1)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8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겸 호당(湖當)에 있다가 육서(六署)를 거쳐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1487년에 예조좌랑과 호조좌랑을 지내고, 형조 좌랑 직에 있다가...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택후(澤厚), 호는 인재(忍齋). 하호(河灝)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윤관(河潤寬)은 일곱 살 때부터 뜻이 맑고 깨끗하며 고상하고, 품은 뜻과 행실이 발라 글을 읽을 때에도 이해가 바르고 총명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찍부터 과거는 포기하고 다만 향시에 급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가 과거...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고려 말 공민왕 때 평안도 숙천군 수령으로 있으면서 원나라 군관이 들어와 번잡하게 굴었으나 접대에 소홀함이 없었고, 정사를 함에 인의로써 근본을 삼아 형벌을 가볍게 하니 주민들의 칭송이 높았다. 후에 벼슬이 순흥부사에 이르렀다. 『진양지(晋陽誌)』권3「임관조(任官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찬성사로 치사(致仕)하고 진주군(晋州君)에 봉해진 하즙(河楫)의 아들이다. 벼슬에 나가 여러 지방에서 백성들을 돌보았으며, ‘잘못된 것을 알고서 그릇 판단한다면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다.’라는 글을 써서 걸어놓고 일을 보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별세로 3년 동안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있었을 때 우왕이 ‘효를 옮겨 충으로서 삼고 그 애통함을 억제하고 부...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택선(澤善), 호는 죽촌(竹村). 증조할아버지는 단지(丹池) 하협(河悏)이고, 할아버지는 용강(龍岡) 하달한(河達漢)이며, 아버지는 진사(進仕) 하첩이다. 아내는 의령남씨로 남천해(南天海)의 딸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성품이 온후하여 말을 빨리하거나 갑자기 얼굴빛이 변하는 일이 없었다....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군직(君直), 호는 오오당(五吾堂). 괘곤정(掛壼亭) 하정(河瀞)의 아들이다. 두 번이나 향시에 합격했으나 최종적으로 예조에서 통과되지 못하였다. 이후 평생을 궁한 대로 살면서 검약을 지키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자경훈몽(自警訓蒙)』과 『궁격설역리(窮格說易理)』 등의 유집이 있다....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구장(九章), 호는 연정(蓮亭)이다. 평소 성품이 청아하고 인품이 넓고 후덕했다. 어릴 적부터 이미 도량이 컸고 학문을 함에 있어서 실천을 귀한 것으로 삼았다. 어버이의 병을 돌보아드릴 때 다섯 달 동안이나 백방으로 힘을 써도 효력이 없고 점점 위독한 상황에 이르자 북두칠성에게 빌었으며, 또 글을 지어 산에 빌었다. 지성을 다한 끝에 다섯 줄...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1344년(충혜왕 복위 5) 과거에 급제한 후 1363년(공민왕 12) 전공정랑(典工正郞)으로 있으면서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75년(우왕 1) 전라도원수 겸 도안무사에 있으면서 임의로 정원 외의 연호군(煙戶軍)과 별민군(別民軍)을 두었다하여 파면 당하였다. 이때 후임으로 온 원수 유영(柳瑩)이 채...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화가. 본관은 진주. 자는 대이(大而), 호는 청천(菁川).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1449년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1376~1453]의 5세 손이다. 1536년(중종 31)에 출생하여 1568년(선조 1)인 32세에 요절했다. 1558년(명종 13)에는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수찬(修撰)을 지냈으며, 대[竹]나무를 특히 잘 그렸고, 시·서·화(詩·書·畵)...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원룡(元龍). 호는 영무성재(寧無成齋). 1540년(중종 35)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효심이 깊고 우애가 남달리 뛰어나 3형제가 한 집안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대했다고 한다. 명종 때 진사시에 합격한 후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이 되었고, 임진왜란 후에는 이원익(李元翼)의 천거로...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성휴(聖休), 호는 치와(癡窩)이다. 타고난 자질이 영리하고 재치가 기발하였다. 효행과 우애가 돈독하였고 가학을 잘 이어받아 향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다. 그러나 조용히 학문을 갈고 닦으면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여등(汝登), 호는 습정재(習靜齋). 생원 하명(河洺)의 손자이며 하윤우(河潤宇)의 아들이다. 평소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고, 젊었을 때 문예가 이미 숙성해서 과거 급제에 필요한 글을 짓는데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향시에 3번이나 급제했으나 1721년(경종 1)~1722년에 걸쳐 일어난 신임사옥(辛壬邪獄) 등 당쟁이 극심한 것을 보고는 문...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여칙(汝則), 호는 자송당(自訟堂). 송파(松波) 하원(河沅)의 손자이다. 세 번이나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문과시험에 응했지만, 서리가 좋은 물건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는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 공부에 매진했다.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과 내수(耐叟) 허추(許錘)와 더불어 도의의 교분을 가졌는데, 진주목사 윤노동(尹魯東) 영(營)에 보고하기...
-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사언(師彦).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아들이다. 글 읽는 것을 상례(喪禮)에서 익혀 어릴 적부터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 명을 받아 밖에 나갔다 오다가 밤이 되어 문이 닫혀 있으면, 어버이가 잠에서 놀라 깰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부르지 않고, 또 돌아와서 얼굴을 대하지 않는 것도 염려스러운데다 자기 방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도...
-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응백(應伯), 호는 어은(漁隱)·초은(樵隱). 하맹산(河孟山)의 현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고 영특하였으며 지조가 높았다. 또한 효심이 지극하여 『소학』의 「내칙(內則)」에 뜻을 두어 힘써 익히다가 닭이 울면 어버이 침소를 돌아보고 보살펴 드렸다. 후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할 때는 까마귀 한 쌍이 날아와 여막에서 지새니, 사람들이...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후손이다. 집이 가난했지만, 어버이 봉양에는 맛있는 음식을 갖추어 올렸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려 소생시켰다. 어머니가 눈이 멀자 개구리를 구워 드려 시력을 회복하게 하였다. 효행 조정에 알려져서 벼슬을 추증하고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여 주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
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후손이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린 나이 때부터 아버지를 모셨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의 피를 입에 넣어 드렸고, 부모상을 당해서는 마치 어른과 같이 예를 다했다. 어머니를 모실 때는 약과 음식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마련했다. 어머니 병환 치료를 위해 눈 속에서 비둘기를 구했고, 얼음 속에서 잉어를 구했다. 또한...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오겸(五兼), 호는 함와(涵窩). 성품이 강직하고 중후하여 집에 있으면서도 몸을 단정히 하며 한결 같이 『소학(小學)』 「내칙(內則)」으로 모범을 삼았다. 밤이 깊어서야 여러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증손자들이 차례대로 들어와 인사를 올리게 하고 닭이 울면 세수하고 빗질하고 또 들어와서 살펴보게 하였다. 이처럼 80년을 하루와 같이 하였고, 여섯...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서중(敍中), 호는 사농와(士農窩). 효자 하진태(河鎭兌)의 아들이다. 일찍이 과거를 폐하고 송성담(宋性潭)에게 사사하였으며,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와 교유하였다. 성품이 굳세고 돈독하게 배우고 힘써 행했으며 예학(禮學)에 밝아서 추앙을 받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담상간답(潭上簡答)』과 『대...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임보(任甫), 호는 모송재(慕松齋).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배우면서 실천에 힘썼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영남 사림을 이끌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것을 조정에 청하는 소를 올렸다. 후진 양성에 힘써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
조선 중기의 효자·유림. 본관은 진주. 자는 천지(千之), 호는 이곡(梨谷). 월촌(月村) 하달홍(河達弘)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하인수의 효행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타고난 인품이 순수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했으며 효심 또한 지극하고 학문의 깊이도 매우 뛰어났다. 어릴 적부터 필법이 출중했으며, 한결 같이 어버이의 뜻에 순응하여 털끝만큼도...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이보(履甫), 호는 죽와(竹窩). 하윤관(河潤寬)의 손자이며 하응회(河應會)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일호(河一浩)는 타고난 자질이 너그럽고 후하며 마음이 넓고 깊어 사람들이 적자(赤子)의 마음을 잃지 아니했다고 평하였다고 한다. 만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 것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으며 학문과...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성회(聖會). 하찬(河瓚)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겸재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하였는데 주위의 기대가 자못 컸다. 훗날 하홍도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자 하홍도가 울면서 하직인사를 하고 추모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각재(覺齋) 하항(河沆)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익운(河益運)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재형(朴在亨)의 딸이다. 부인은 정선전씨(旌善全氏)로 전한순(全漢淳)의 딸이다. 1852년(철종 3)에 나서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근검한 생활로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교유가 넓었다. 평소 가풍을 엄히 지켜 향리에서 높이 추앙되었으며,...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경가(敬可). 쌍강(雙岡) 하홍운(河洪運)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와 형을 따라 공부하였으나 가난이 심하여 봉양할 수가 없음을 알고 가산을 잘 다스려서 집안을 일으켰다. 형이 병에 걸려 여러 해 고생하다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나 부인을 잃었을 때도 한 번도 수심스럽거나 괴로운 말을 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어...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덕언(德彦), 호는 도곡(道谷).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우현(河愚顯)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윤오(李潤五)의 딸이다. 부인은 인천채씨(仁川蔡氏) 채경진(蔡景珍)의 딸이다. 1812년(순조 12)에 태어나 사마시에 합격한 후 진사에 올랐다.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자는 복영(復榮), 호는 여인헌(與人軒).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성운(河聖運)이며 어머니는 재령이씨로 이인동(李麟東)의 딸이다. 부인은 광주노씨(光州盧氏)로 노이정(盧以挺)의 딸이다. 1860년(철종 11)에 출생하여 189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천품이 강직하고 효제충신을 생활의 신조로 삼았으며 부...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이해(爾海), 호는 괘호정(掛壺亭). 생원 하달제(河達濟)의 아들이다. 세 번이나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학문을 강하니 후진들이 많이 와서 배웠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득제(得濟). 호는 송헌(松軒), 시호는 원정(元正).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관직은 찬성(贊成)까지 올랐다. 일찍이 정치도감(整治都監)의 관원으로 있을 때 황후의 동생인 기삼만(奇三萬)을 장살하였다. 후에 강회백(姜淮伯)이 그의 초상화에 대하여 평하기를 “도량이 존...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평(子平), 호는 창주(滄州)이다. 진주 내당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균생원인 하위보(河魏寶)이고 어머니는 참의 이윤(李綸)의 딸이다. 숙부 하국보(河國寶)에게 입양되었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기질이 순후하고 지조가 독실하여 자기를 다스리기를 매우 엄하게 하였으며 독서에 충실하여 어려운 곳은 반드시 질의와 논란으로 해결했다고...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할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고, 아버지는 참봉 하경(河憬)이며, 어머니는 함안이씨로 대사헌을 지낸 이인형(李人亨)의 증손녀이다. 부인은 창녕조씨(昌寧曺氏)로 동곡 조경윤(曺慶潤)의 딸이다. 1586년(선조 19)에 출생하여 임진왜란 때 왜군에 억류되어 고초를 겼었다.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과 함께 광해군을 왕위에 옹립한 공으로 정운원종3...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청백(淸伯), 호는 초정(草亭). 태계(台溪) 하진(河溍)[1597~1658]의 계제(季弟)이다.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을 따라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그 재주가 일찍부터 뛰어나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망하자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두 형과 더불어 은거하면서 생을 보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있는 조선 중기 때 문신 하진(河溍)의 묘비. 하진(河溍)[1597~1658]은 본관이 진주, 호가 태계(台溪)이다. 1633년 문과에 올라 집의(執義)를 지냈다. 하진 묘비는 1675년에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위치한 하진의 묘 앞에 있다. 얕은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웠으며, 뚜껑돌은 생략하였다. 전면의 ‘집의태계하공지묘(執義...
-
조선 후기의 문신인 하진(河晉)[1597~1658]의 시문과 그에 관한 글을 모은 것. 하진의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이다. 1624년(인조 2)에 진사가 되고 증광시(增廣試)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였다. 사재감군직장(司宰監軍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늙으신 부모를 봉양하느라 취임하지 않았으며,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사간원 정언(正言),...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영서(英瑞), 호는 역헌(櫟軒). 부친은 하해호(河海浩)이며, 생부(生父)는 하수호(河壽浩)이다. 하진달(河鎭達)은 1778년 진주 단목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특해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았으며, 부모를 섬기는 데는 얼굴빛을 밝게 하고 정성을 다하였다. 훗날 부모상을 다해서는 자식의 예를 다하기도 했다. 선조들의 유업을 후세에 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재(德哉), 호는 영모정(永慕亭). 하숙(河淑)의 아들이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599년 주서가 되었다. 이듬해 세자시강원 사서가 되고 정언, 병조정랑, 지평, 예조정랑, 헌납 등을 역임했다. 1567년 선산부사가 되었고, 1573년(선조 6) 장령이 되었다. 그 뒤...
-
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자앙(子仰), 호는 모죽재(慕竹齋). 조선시대 진주 지역의 선비인 죽와(竹窩) 하일호(河一浩)의 아들이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고,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하였다. 젊어서부터 스스로를 자제함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형제들이 모두 학문에 정진하여 각각 이름을 높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평생토록 그 부친의 삶과 학문을 섬기고 사모하여 작은 재실을 짓고, ‘慕...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사중(師仲), 호는 용와(容窩).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종형인 예암공 하우현(河愚顯)을 따라 글을 읽다가, 부친의 명으로 남계(南溪) 이갑용(李甲龍)의 문하에 들어가 정식으로 학문을 연마하였다. 여러 번 서울로 과거를 보러갔으나 담당자가 뇌물을...
-
빗물과 그 밖의 지표수가 모여 물길을 따라 흐르는 시내와 강의 총칭. 하(河)는 큰 강, 천(川)은 작은 강을 뜻하고, 한국에서는 큰 강을 강(江), 작은 강을 천(川) 또는 수(水)로 나타내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 시내에는 국가 하천으로 남강 등 3개소, 지방2급 하천으로 미곡천 등 55개소, 소하천으로 소목천 등 182개소가 있다. 진주 지역에 국가 하...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망추(望秋)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강득용, 신남과 더불어 군대를 훈련시키고 위풍을 떨치니 군율이 엄정하였다. 허물어진 진주성을 수축하고 못을 다시 깊이 파서 장차를 대비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공이 인정되어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응(伯應), 호는 설총(雪聰) 또는 설창(雪牕).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가 큰아버지이고, 하홍달(河弘達)이 부친이다. 어려서부터 백부 하홍도 밑에서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여 겸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7세 때 연이어 부모상을 당해 극진한 예로써 장사와 제사를 받들고, 상복을...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굉지(浤之).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이며 어머니는 일선김씨(一善金氏)로 대사헌을 지낸 송파(松坡) 김지경(金之慶)의 딸이다. 부인은 남양홍씨로 현감을 지낸 홍억령(洪億齡)의 딸이다. 1469년(예종 1)에 출생하여 1496년(연산군 2)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참봉을 지냈다. 당시 연산군의...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양지(洋之). 아버지는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이며 어머니는 일선김씨(一善金氏)로 대사헌을 지낸 송파(松坡) 김지경(金之慶)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정귀(李正貴)의 딸이다. 1472년(성종 3) 출생하여 1496년(연산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천성이 지극히 순하여 어기는 일이 없어 사림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진주 백곡에 살...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내윤(乃潤), 호는 사연(舍淵). 하자호(河自灝)의 현손이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밭을 갈고 글을 읽었다.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극히 하였다. 만년에는 방장산(方丈山) 가운데에 살면서 학문에 진력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선비의 본분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몸소 실천한 진주의 대표적인 선...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대보(大甫). 호는 조산처사(螬山處士).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8년여 동안 서울에 걸어 다니면서 어머니의 열녀 정문을 내리게 하였다.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은 “어머니는 열녀요 아들은 효자라.” 칭송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그 효행이 수록되어 있다....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여해(汝海), 시호는 강장(剛莊). 할아버지는 증 병조판서 하승해(河承海)이고,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정씨(鄭氏)이다. 부인은 순흥안씨 순흥군의 딸과 함양박씨 박한의 딸이다. 1434년 회령진(會寧鎭) 절제사에 제수되었고, 동년 12월 영북진(寧北鎭) 절제사로 전임되었다. 143...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이호(而浩), 호는 제암(霽巖). 성종 때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워 우애가 있었으며 자신의 처자만 편애하지 않고 오직 부모를 봉양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부모가 그를 분가시키고자 하니 울면서 거절하고 형제가 함께 살며 부모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상중에 있을 때에는 그 슬픔이 지극하여 향리에서 이...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이태(而泰).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河崙)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형조참의를 지낸 하득형(河得亨)이며 어머니는 단양장씨(丹陽張씨)로 장식(張植)의 딸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 신기한(申起漢)의 딸이다. 1695년(숙종 21)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을 열심히 연마하였다. 숙종 대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할 마...
-
조선 전기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호원(浩源), 호는 각재(覺齋).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한 후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평소 효심이 지극하여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깨끗이 빗질한 후 어머니 침실로 찾아들어 문안을 드리니, 여러 문인들이 말하기를, 『소학』의...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상(子常), 호(號)는 송강(松岡). 안주목사 하우치(河禹治)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생원(生員) 하위보(河魏寶), 어머니는 사천이씨(四川李氏)이다. 아내는 참의(參議) 정륜(鄭綸)의 딸 진주정씨(晋州鄭氏)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애...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한경(漢卿), 호는 일헌(一軒). 집의를 지낸 하진(河溍)의 아들이다. 1634년(인조 12)에 출생하여 나이 13세에 허목(許穆)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년이 되어서는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남명 조식(曺植)의 학문을 사숙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덕천서원(德川書院)을 중심으로 남인계열...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성경(成卿). 대사간을 지낸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어버이에게 드릴 고기가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비둘기가 스스로 방에 날아들어 그것으로 봉양하였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추운 겨울에 배를 원했으나 끝내 구해 드리지 못하자 이것이 한...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여해(汝海). 진사 하협(河悏)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깨우쳤고, 성품과 행실이 효성스러웠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섬김에 있어서 몸을 다하여 공경하였고,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의 시묘를 정성을 다하여 예로써 마쳤다. 후일 마을 사람들이 그 산소가 있는 골짜기를 ‘하효자 시묘골’이라고 이름 붙여 그의 효행을 칭송하였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성종 때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참의를 지낸 하경호(河慶灝)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진주 운문에 살았다. 효종 때 훈련원주부를 지냈고 현량과(賢良科)를 통해 특별히 선전관이 되어 왕의 북벌 논의에 참여하였다. 효종이 승하하자 피를 토하며 곡을 하였다. 이후 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였다...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기(子幾), 호는 단지(丹池).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다. 1583년(선조 16) 출생하여 1606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세상이 어지러우므로 과거시험을 접고 초야에 묻혀 소요하면서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등과 교유하였다. 사람됨이 자상하고 얼굴과 기상이 단아하며 효우가 천성에서 나와 형제...
-
단지공(丹池公) 하협(河悏)[1583~1625]과 그 자손들의 유묵과 유적 일괄. 조선시대 진주에는 남명학(南溟學)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단목(丹牧)의 진양하씨(晋陽河氏) 또한 학문적으로 남명학파에 속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남인 가문이었다. 단지공 하협은 진사로 급제하였으나 출사를 하지 않고 평생 학문에 정진했으며, 그 후손인 하진보(河晋寶), 하위보(河魏寶), 하윤관(河潤寬), 하응...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중해(仲海). 선조 때의 학자 창주(滄洲) 하증(河憕)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효우에 돈독하였다. 어머니의 병을 모시기를 20년이나 계속하였으나 일심으로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 어머니가 한때 위중하자 손가락에서 피를 내고 하늘에 빌어 마침내 회생할 수 있었다. 상을 당하여서는 상복을 벗지 아니하고 죽을 마시며 슬퍼하다가 드디어...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와(樂窩). 인조 때의 학자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었으며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출세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전심하였다. 문장이 간결하고 필법이 힘찼으며, 천문과 산학, 의약과 병가(兵家)의 학문 뿐 아니라 활쏘기와 말 타기에까지 능통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만년에 형 하홍도를 따라 도의...
-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 아버지는 하광국(河光國)이며, 어머니는 강양이씨(江陽李氏)로 이광우(李光友)의 딸이다. 1593년(선조 26)에 출생하여 1666년(현종 7) 73세로 별세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상을 정성껏 치렀으며, 옛 성현과 같이 되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스스로 몸가짐을 엄숙히 하였다. 촌부(村...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오(省吾).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일찍부터 가풍을 이어 받아, 학문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옛 성현의 글을 마음에 두고 깊이 새겨 당시의 선비들이 군자다운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감사 우복룡(禹伏龍)은 효우(孝友)스럽고 독실한 선비라고 칭찬하였다...
-
10인 이상의 학습자에게 30일 이상의 교습과정에 따라 지식·기술·예능을 교습하거나 30일 이상 학습장소로 제공되는 시설. 평생교육기관 설립목적은 국민에게 실력보충의 학습기회 제공, 취업에 필요한 지식·기술의 습득기회 제공, 정서함양 및 소질개발 기회의 제공, 여가시간 활용방안의 제공, 승진 및 전직에 요구되는 능력향상을 위한 기회 제공 등을 들 수 있다. 학원은 학교교육 이외의...
-
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에 있는 정부투자기관. 도로의 건설 및 유지·관리와 이와 관련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도로 교통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9년 1월 17일 한국도로공사법이 공포되고, 같은 해 2월 15일 한국도로공사가 창립되었다. 이후 1988년 3월 2일에 부산, 창녕, 마산과 함께 한국도로공사 경남지사 진주지부가 발족하였다. 1995년 8월 10일 한국도로공사...
-
한국미술협회의 경상남도 진주시 지부. 한국미술협회 진주지부는 진주지역의 미술계 발전에 이바지 하고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권익옹호를 목적으로 1948년에 당시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 18-13번지[진주대로1069번길 9]에 사무실을 두고 창립되었다. 1948년 창립 당시 회원은 87명이었으나 현재 회원수는 49명이다. 1948년 창립 당시 지부장은 조영제였으며, 1976년에는 지부장...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한국서예협회의 진주지역 지부. 진주와 인근 남해·하동·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지역의 서예인들이 모여 민족예술과 서예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고 서예가의 권익을 옹호하며 서예의 국제적 교류와 서예인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89년 3월 19일에 한국서예협회의 취지에 찬동하는 서예가들이 모여 진주지회 창립총회 결성대회를 개최하여 설립하였다. 당시...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있는 실크 전문 연구기관. 견직의 제직·염색·가공·디자인에 관한 연구, 견직업체에 대한 기술지원 및 기술지도, 기술인력 양성과 생산비 절감 그리고 품질향상을 위한 시제품개발 지원 등을 통한 진주 견직산업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12월 9일에 사단법인 한국견직연구원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1988년 2월 24일에 민법 제32조(비영리법인의...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소속인 한국연극협회의 진주지부. 1962년 1월 5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예총)가 탄생함으로써 같은 해 8월 20일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진주지부로 그 명칭이 바뀌었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진주지부의 회원단체로 진주연극협회가 한국연극협회 진주지부로 인준 및 결성되었다. 향토연극예술의 발전과 창달,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
한국 예술문화인들의 친목과 권익옹호를 위하여 결성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진주지부. 진주지역 예술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들 간의 권익을 옹호하며, 진주지역의 향토예술의 계승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진주에서는 광복과 함께 설창수(薛昌洙)를 비롯한 진주지역 예술인들이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억눌렸던 예술의 혼을 되살리고자 1949년에 문화건설대를 조직하였다. 진...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의 진주지역 지부. 한국음악협회 정관 목적의 달성과 음악예술의 발전, 향토음악문화 발전에 기여함과 아울러 회원 상호간의 친선과 권익을 옹호함은 물론, 진주지역 음악환경의 발전과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49년부터 개천예술제 음악부 행사를 주관하면서 활동하다가 1962년 한국음악협회 진주지부로 인준을 받았다. 회원음...
-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2동에 있는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전력공사의 진주지점. 진주지역의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한국전력공사 진주지사를 두고 있다. 1898년 1월 창립 당시에는 한성전기회사였다가 1961년 7월 경성전기·남성전기·조선전업을 통합하여 한국전력을 창립했다. 그러나 1973년 석유파동 이래 급격한 물가 상승과 더불어 한국전력의 경영여건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공사로의 전환이 시작...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
-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교방 계통의 무용극. 진주한량무(晋州閑良舞)는 1979년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민속무용으로 우리나라 춤 중에서 내용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최초의 무용극이다. 진주한량무의 주요 등장인물은 한량, 승려, 색시, 주모, 별감, 상좌, 마당쇠이며 여기에 악사가 함께한다. 배역에 따라 성격이 다른 춤사위와 옷차림으로 구성되며, 음악의 장...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중명(仲明). 사직 한승리(韓承利)의 아들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품행이 매우 방정하고 효도가 극진하여 이름을 날렸다. 1543년(중종 38)에 생원이 되었고, 1548년(명종 3)에는 부묘별시문과(祔廟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후 예문관 검열을 지냈다. 1553년 무렵에 공조좌랑을 지낸 바 있으며, 이어 헌납 등을 거쳐 성균관...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시조(始祖) 이상(李尙)은 위위시주부동정(衛慰寺主簿同正)을 지낸 원조(遠祖) 이원서(李元敍)의 후손으로 고려 때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오르고 파산군(巴山君)에 봉해졌다. 그 후 문헌의 실전(失傳)으로 선계(先系)를 상고(詳考)할 수 없으므로 후손들은 선조(先祖)들의 세거지(世居地)인 함안(咸安)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모경(牟慶)은 중국 관서지방 홍농(弘農) 사람으로서 송(宋)나라 흠종(欽宗) 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고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에 올랐다. 고려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자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일등공신에 서훈되었으며, 그대로 고려에 머물러 평장사의 직책과 모평(함평)군에 봉해졌으므...
-
조선 후기 공연되었던 향악정재의 하나로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 고조 유방(劉邦)의 초(楚)와 한(漢)나라 사이의 승부를 정재화한 무극. 사마천의 『사기』「항우본기」에 기록된 중국 진나라 말기의 초한승부에 연원을 두고, 이들의 ‘홍문연’(鴻門宴) 고사를 의방(依倣)하여 이 장면만을 정재화한 것이다. 이러한 항장무는 진주의 교방에도 전하여져, 진주목사를 역임한 정현석이 지은 『교방가...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해주정씨(海州鄭氏)는 고려 신종[1197~1204]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법정랑(典法正郞)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의 관직을 지낸 정숙(鄭肅)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선계(先系)는 문헌이 전해오지 않아 상고할 수가 없으나,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세거했던 사족(士族)으로 고려 때에 정씨로 사성(賜姓) 받았다고 전한다. 시조 이후 고...
-
고향 진주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노래. 노래 「향수의 내 고향」은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음악작품이다. 향수의 내 고향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진주 출신의 대중가요인 이봉조(李鳳祚)[1931~1987]가 작사 및 작곡하였다. 진주 출신의 대중가요인 이봉조가 불렀다. (1절) 비봉산 기슭에 개나리 피었을...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향(東向)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향은 남명 조식의 ‘송인숙(送寅叔)’이란 시에 ‘사명동향군서향(寺名東向君西向)’ 이라는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향양리의 여러 자연마을 중 가장 오래된 마을로 짐작된다. 1914년 진주군 미천면 진교동, 장죽동, 개심동, 동향동을 통합하여 향양리(向陽里)라 하였다. 향양리는 동서 및 북쪽...
-
경상남도 진주시의 음악교사 단체. 향파회(鄕琶會)는 1973년에 경상남도 진주시의 중·고등학교의 음악교사들이 모여 결성한 진주음악교사 모임이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의 음악교사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교과연구와 진주시의 중·고등학교 음악회 주최 등을 통하여 음악교육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내 중·고등학생들의 음악교육 및 음악회에 관한 행사를 주최하고, 제반 음...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1911년에 당시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에서 출생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의기와 지조로 살았으며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사사하였다. 그림으로도 명성을 날렸고 또한 허준의 『동의보감』과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번역한 한학자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1967년에 57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한국화의 전통필법으로 산과 화조를 주로 그렸으며, 내고 박생...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형평사 활동 기념탑. 형평 운동 기념탑은 조선 시대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들이 신분 해방과 인간 존엄성 실현을 도모한 ‘형평사’의 활동을 기념하여 건립한 탑이다. 1992년 진주 남성당 한약방에서 형평 운동 70주년 기념 사업회가 구성되었고, 형평사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1993년 4월 24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함께 국제 학술 대회를 개...
-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운동단체. 백정은 도살업·제혁(製革)·유세공(柳細工) 등에 종사하는 천민층으로 주로 삼남일대에 많이 거주하였다. 갑오개혁의 중요한 성과는 법제적으로 이들에 대한 신분제 해방을 가져왔다. 그런데 강고한 인습에 따른 이들에 대한 차별대우는 잔존하는 등 이러한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도수규칙(屠獸規則)」 제정 등 각종 부가세는 이들에...
-
1923년 4월 24일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衡平社)의 활동을 총칭하는 말.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을 가진 형평사의 주목적은 조선시대에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이었다. 일차적인 목적이 ‘백정’이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권 존중, 평등 대우를 주창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 평등’이라는...
-
경상남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백정(白丁)들의 신분해방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衡平社)의 활동을 일컫는다.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을 가진 형평사의 주목적은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들의 신분해방이었다. 이때 백정들 가운데는 일반인을 능가하는 자산가가 많았고, 교육을 통해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분의 불평...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종. 1980년 12월에 선조들의 거룩한 호국의 얼을 계승, 선양하기 위하여 진주시민들의 뜻을 모아 제작하였다. 호국의 종 주조는 김철호(金哲怙)가 맡았으며, 처음에는 1972년에 준공된 촉석문에 걸었다. 그러나 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자 촉석광장에 호국의 종각을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다. 호국의 종각은 재일동포 최복순(崔福順...
-
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에 소재하는 공원. 공원의 공식적인 명칭은 없지만, 오래 전부터 호탄동 개양I.C 부근에 있는 고속도로 주변의 조경을 목적으로 조성된 묘포장을 중심으로 한 녹지대를 동의 이름을 따 ‘호탄공원’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소유권과 관할권이 모두 한국도로공사에 있기 때문에 시청이나 동사무소에서 공원으로 지정하여 공식적인 이름을 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탄...
-
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에 있는 가야시대 고분군. 『문화유적총람』(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에 ‘호탄동 일대에 직경 10m 이내의 삼국시대 고분 3기가 있었으나 일제 때 도굴 파괴되었다.’고 기록되었으며, 이후 1985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1985년 지표조사 당시 진주시 개양역의 북쪽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봉분의 흔적이 뚜...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행해진 혼인하기 전의 처녀와 총각이 선을 보는 일에서부터, 혼인하여 첫날밤을 치를 때까지의 관련 의례. 혼례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가 부부가 되는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의례이다. 전통적인 예법에 따르면, 친척이나 이웃을 통해서 중매가 이루어지고, 신랑집에서 신랑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이 적힌 사주단자(四柱單子)를 신부집에 보내며, 이를 받은 신부집에서 혼인날을...
-
진주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화가. 홍영표는 1917년에 출생한 진주지역의 화가로 호는 고운(槁雲)이다. 진주고등보통학교(현 진주고등학교)와 일본 동경 가와바타[川端]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인천상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진주사범고등학교, 진주고등학교, 진주여자고등학교, 진주농업고등학교, 해인대학 등에서 후진 양성과 서양화 지도 보급에 남다른 노력...
-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대기·수질·토양 오염 등으로 자연 환경이나 생활 환경을 손상시키는 현상. 공장·사업장 등의 생산 활동, 자동차·기차·항공기·선박 등의 수송 활동, 냉난방·취사·여가 선용 등 일상 생활을 포함한 각종 인간의 활동에 의해 유발되는 인위적인 대기 오염·수질 오염·토양 오염·소음·진동·지반 침하·악취 등의 발생으로 자연 환경이나 생활 환경을 손상시키고 궁극적으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윤경(潤慶). 호는 송암(松菴). 장무공(莊武公) 황윤(黃潤)의 8대손이다.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 때 의병장이 되어 적을 거창의 소사평(素沙坪)에서 크게 무찔러 공을 세웠다. 무신란은 청주 출신의 이인좌(李麟佐)가 주동이 되어 일으켰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
조선 후기의 문신 황석강(黃石江)이 받은 양무원종공신녹권.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공신으로 책봉된 인물들에게 발급된 공신 증서로서, 1권 1책으로 구성된 활자본이다. 반란이 일어나고 진압된 1728년 7월에 양무녹훈도감(揚武錄勳都監)에서 발행해 나누어 주었다. 황석강[1687~1760]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1883년에 하동에서 출생하였고, 진주에서 활동한 동초 황현룡은 목단을 특히 잘 그린 한국화가이다. 소치 허유에게서 사사하고 의재 허백련과 교유하였다. 전국을 돌면서 전시회를 열었고, 일본 화단과도 활발한 교류를 벌였다. 서양화가 이우환(李禹煥)은 황현룡의 「금강산도」를 보고 사실적 유상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화풍을 이룬 작품이라고 하였다....
-
부모를 극진히 잘 섬기는 아들. 효자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효녀(孝女)가 있지만, 전통적인 가족제도 하에서는 부모와 아들의 관계가 우선적이었으므로 ‘효자’라는 용어가 ‘효도를 하는 자식’의 개념을 포괄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의 효 또는 효도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일 등을 포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