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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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岳同人會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순욱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었던 문예 단체.
[설립 목적]
화악동인회(華岳同人會)는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던 밀양 지역 인사들이 뜻을 모아 밀양 향토 문화의 창달과 향상에 이바지하고자 조직되었다. 동인회의 이름은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에서 따왔다. 광복기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극심한 상황 속에서 밀양 지역민들에게 장소 사랑을 통한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향토와 민족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자주적 민족 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기치로 삼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화악동인회의 주요 사업은 동인지 『화악(華岳)』 발간과 연구회 활동이었다. 동인회 사무실은 회장 박경호가 경영하던 제중의원에 두었다. 회장 박경호를 필두로 부회장에 박태을, 회원에 김문달, 신진기, 신학상, 이규석, 강혜수, 이달녕, 류장춘, 권태동, 이진화 들이 이름을 올렸다. 화악동인회의 인적 구성을 살피면 교육계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였고 금융인과 의료인, 경찰 관료, 출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악』의 창간호는 1947년 6월 15일에, 『화악』 제2호는 1947년 12월 1일에 각각 발행되었다. 시와 소설, 수필, 번역문 등을 수록하였으며, 창간호에서는 향토 문화 창달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밀양 영남루를 제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하여 밀양의 장소성을 드러내고 있다. 6개월에 걸쳐 동인지 『화악』을 두 차례 발행하였으나 제2호를 끝으로 종간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화악동인회의 활동과 『화악』의 발간은 좌우 대립이 극심하던 광복기의 혼란상 속에서 밀양 지역 문학 사회의 지식 권력이 재편되고 상징 권력을 획득하여 나가는 과정을 오롯이 드러낸다. 화악동인회의 활동을 기반으로 1950년대 밀양 문학 사회는 다채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화악』 동인이었던 이진화와 신학상은 밀양 교육계를 이끌며 향토 문화 수립을 위하여 『문림(文林)』, 『향토문화(鄕土文化)』 등의 매체를 간행하였다.
『화악』의 실질적 편집자로 활동하였던 강혜수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밀양지부 조직부장을 맡으며 지역 문화 발전에 정진하였으며, 류종관은 1954년 동인지 『아랑』을 발간함으로써 지역 청년 문사들을 규합하고 육성하였다. 『화악』에서 비롯한 문학 매체 발행의 전통은 1959년 밀양의 본격적인 문학 동인지 『석화(石花)』의 탄생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