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서 구천동과 박문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천동과 박문수」는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지방을 암행하던 길에 무주 구천동에 들러 천석두의 악행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구재서 집안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인물담이자, 박문수로 인해 이곳을 ‘구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서 구천동 및 설천의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천동과 설천」은 천씨와 구씨가 유안거의 아내와 며느리를 빼앗으려다가 저승사자가 나타나 어디론가 데리고 사라진 후 ‘구천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첫째 이야기, 백련사(白蓮寺)에서 구천 명 중의 쌀을 씻느라 냇가가 하얗게 되어 ‘설천(雪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둘째...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서 지혜로운 아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 판서 댁 도령」은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이나 어려서부터 글자 하나 깨우치기 어려울 정도로 능력이 없었던 어리석은 남자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 숨어 있던 재능을 펼치는 여성 지혜담이다. 「김 판서 댁 도령」은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리 마을에서 무우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무우당과 옥구슬」은 근심 없이 사는 노인을 시험하려 했던 임금의 계책으로 강물 속에 구슬을 빠뜨려 잃어버렸지만, 효심 깊은 자식들이 구해 온 잉어 뱃속에서 구슬을 찾게 되었다는 우행담이자 효행담이다. 이를 「무수옹(無愁翁)」이라고도 한다.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
-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도.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는 조선 후기의 선비 화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서화첩에 수록된 조선 전도로,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에 포함되어 있다. 윤두서가 1712년 해남으로 은거하여 1715년까지 생존했으므로 이 지도는 그 시기에...
-
1968년 간행된 전라북도 무주군의 역사와 문화 전반이 수록된 사찬 향토지. 무주군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세 지역의 접경지라는 지역적 특성과 적상산(赤裳山)과 덕유산(德裕山) 등 산악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특별한 역사를 갖게 되었으나 자세히 기록한 서적이 없어 이러한 지역의 특성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무주군사』[1968]의 저자 최낙철(崔洛哲)은 8...
-
1895년에 제작된 무주군이 수록되어 있는 지도. 『청구요람(靑邱要覽)』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분첩식 대축척 전국 지도인 『청구도(靑邱圖)』를 후대에 모사한 이본으로 지금의 무주군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외에 『청구도』 이본으로는 국립 중앙 도서관의 『청구 경위도(靑邱經緯圖)』 2책, 한국학 중앙 연구원...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신교라 함은 1세기 초에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활동하던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의 종교이다. 본래는 기독교라는 하나의 교명으로 통용되었다. 기독교라는 명칭은 ‘크리스티아누스’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기독교 사전』, 한영제 편]. 개신교는 16세기 초 유럽에서...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었던 천주교 공소. 1961년 3월 1일 황택규[토마스]가 괴목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가족과 함께 이 지역에 전교를 시작하였다. 같은 해 5월에 도광석[레오] 신부의 후원으로 임야 4,950㎡를 개간하고,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돈사를 신축하였다. 또한 도광석 신부의 후원으로 10월 1일 재건 중학교를 설립하여 전임 강사로...
-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운송 수단과 운송로. 무주군은 전라북도의 북동부 산간 지방에 위치하여 교통로가 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전라북도·충청남도·충청북도·경상북도의 경계에 위치한 중부 내륙 지역으로, 1970년대 이후 단계적으로 교통로가 확충되어 현재는 접근성이 양호하다. 산지가 많은 지형적 영향으로 교량과 터널이 도로 곳곳에 분포한다. 철도는...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에 의해 결합된 신자들의 공동체 또는 그 공간. 보통 ‘교회(敎會)’라 하면 뾰족한 탑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로 인식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성령에 의해 결합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영어로 ‘Church’는 헬라어 퀴리아코스(Kyriakos)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주께 속한’ 또는 ‘주의 집’을 뜻한...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지남 공원에 있는 이우기의 시비. 「내 고향 무주」를 지은 이우기(李禹基)는 1930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서 태어나 무주 초등학교와 무주 중학교를 나와 군산 사범 학교, 단국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교편 생활을 하였으며, 한국 문학 예술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주로 고향에 대한 아름다움과 정, 그리움 등을 주...
-
전라북도 무주군에 서식하는 족제비과의 포유류. 노란목도리담비는 비속 포유류 중에서 가장 크다. 성체의 경우 몸길이 33~65㎝, 꼬리 40~45㎝, 뒷다리 10~14㎝, 귀 3.5~5㎝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꼬리는 몸통 길이의 2/3 정도이다. 겨울털은 흑갈색, 목은 흰색, 가슴은 금빛을 띤 황색, 등의 앞부분은 황색 털이 섞여 있는 흑갈색, 몸 뒷부분은...
-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6·25 전쟁 당시 공비 토벌 작전에 참여했던 청년 단체.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大韓靑年團靑年防衛隊)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 내에 조직된 준군사 단체이다. 1949년 미군 철수 후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반영하여 대한청년단을 주축으로 청년방위대를 만들어 지역 방위에 투입시켰다. 6·25 전쟁 당시 전라북도 무주...
-
1728년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과 남인의 급진 세력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사건. 1724년 경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영조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으면서 즉위하였다. 노론의 집권으로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급진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세제(世弟) 책봉의 부당성, 경종의 사인(死因) 의...
-
1919년 4월 1일 무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시작된 전민족적·전민중적 봉기인 3·1 만세 운동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무주군에 독립 선언서가 전달된 것은 1919년 3월 7일경이었다. 무주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전일봉(全日奉)[1896~1950]으로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운동을...
-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세계 태권도의 성지 국립 태권도원. 세계 태권도의 성지 국립태권도원은 산지가 수려한 명승의 고장 무주에 위치하고 있다. 전라북도 무주군은 대한민국 내륙 지방의 정중앙부에 위치하여 동서 문화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무주군은 서울로부터 187㎞ 지점의 산악형 및 내륙형 도시로 무주읍, 무풍면, 설천면, 적상면, 안성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무주 출신 김환태의 비평가적 면모. 김환태(金煥泰)[1909~1944]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무주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아버지 김종원과 어머니 고씨(高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주에서 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전주 고등 보통학교로 진학하였으며, 2학년 재학 중에 일본인 교사의 차별에 항거하며 동맹 휴학을 선도하였다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학교 당국이 징...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무주 출신 김환태의 비평가적 면모. 김환태(金煥泰)[1909~1944]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무주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아버지 김종원과 어머니 고씨(高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주에서 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전주 고등 보통학교로 진학하였으며, 2학년 재학 중에 일본인 교사의 차별에 항거하며 동맹 휴학을 선도하였다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학교 당국이 징...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공용 버스 터미널. 기존에 전북 여객, 삼남 여객, 동아 여객, 영동 여객 등 각 운송 회사별로 분산되어 정류소를 운행하였다. 주민 편의를 도모하고자 정류소를 통합하여 1972년 12월 27일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216번지 일대에 무주 공용 버스 정류장을 건립하였다. 개인 사업자가 1972년 1월 26일 전라북도 정류장...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건강 식품 제조업체. 무주덕유산반딧골영농조합법인은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천마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농업 경영의 합리화를 통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산물의 공통 출하 및 가공 수출 등을 통해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설립하였다. 2001년 3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안성 농공 단지에 천마를 가공한 식품류를 생산 판매...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호남 합회 소속의 교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는 1830년대 말에서 1840년 초에 걸쳐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윌리엄 밀러 주도 하에 일어난 예수 재림의 대망을 강조하는 운동이 그 효시가 되었다. 당시 200여 교회의 목사와 5만여 명의 그리스도교 신도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이 운...
-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남평(南平). 본명은 문태현(文泰鉉), 별명은 문태진(文泰珍)·문태수(文泰洙), ‘문태서(文泰瑞)’는 의병장 시절의 이름이다.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24세손이며, 아버지는 문병현(文炳鉉)이다. 문태서[1880~1913]는 경상남도 안의군 서상면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순종 1) 제3차 한일 협약(韓日協約)이 체...
-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무주 문학’이라는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무주 지역을 대상으로 창작된 문학과 무주 지역 문인 혹은 무주 지역 출신 문인이 창작한 문학을 모두 일컬을 수 있다. 먼저, 무주 지역을 배경으로 쓴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에 무주 지역에서 벼슬살이를 하거나 무주를 여행했던 문인들...
-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방송 작가. 박성조(朴成祚)[1939~1997]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경동 고등학교와 고려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 『조선 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부에 인선(人選)하였으며, 1966년 1월 『동아 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부에 「여직공 달래」로 가작 입선하였다. 1968년 문화 공보부에서 실시...
-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박춘실(朴春實)[1875~1914]의 본관은 밀양(密陽), 본명은 박동식(朴東植)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비분강개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에서 “국가 존망의 이때 모두 분발하여 사심을 버리고 나라를 구하자.”는 내용의 창의(倡義) 격문을 돌렸다. 이러한 격문을 보고 모여든 의병 52명을 이끌고 용담...
-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근보(近甫), 호는 설계(雪溪). 임진왜란 때 선조(先祖) 가운데 한 사람이 난을 피하여 삼도봉(三道峰)에 들어왔다가 지금의 무주군 설천면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된 박태만(朴泰萬)이며, 아버지는 박세건(朴世建)이다. 어머니는 남원 양씨(南原梁氏)이며, 부인은 김육(金堉)의 딸인 광산 김씨(光...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지방 자치 단체나 의료 기관 등이 하는 활동. 광복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에서 영양 부족과 비위생적 환경 등의 원인으로 티푸스·콜레라 등 각종 감염병과 결핵·기생충 감염·나병 등의 질병이 만연하였다. 미군정 시대의 보건 행정은 발견해서 차단·격리하고 박멸하는 방식을 취하였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DDT...
-
조선왕조 25대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해 온 적상산 사고와 무주의 역사.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부터 철종(哲宗)에 이르기까지 왕의 사후(死後)에 연월일(年月日)의 편년체(編年體)로 25대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그 방대한 분량은 물론 내용에서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역사서로 평가받고...
-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최북의 그림과 일화. 최북(崔北)[1713?~1786?]은 조선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의 화가이다. 초명은 최식(崔埴), 자는 성기(聖器)·유용(有用), 호는 칠칠(七七)·월성(月城)·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호생관(毫生館)이다. 호의 하나인 ‘칠칠(七七)’은 자신의 이름인 북(北) 자를 반으로 쪼개어서...
-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최북의 그림과 일화. 최북(崔北)[1713?~1786?]은 조선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의 화가이다. 초명은 최식(崔埴), 자는 성기(聖器)·유용(有用), 호는 칠칠(七七)·월성(月城)·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호생관(毫生館)이다. 호의 하나인 ‘칠칠(七七)’은 자신의 이름인 북(北) 자를 반으로 쪼개어서...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항일 전적지. 문태서(文泰瑞)는 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1880년(고종 17)에 경상도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동학 운동에 관심을 갖고 가담하려 하였으나 어머니의 만류로 포기하였고, 25세가 되던 해에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서 1년간 수련하였다. 1906년(고종 43) 9월에...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공용 버스 정류소. 노상의 간이 정거장에서 이용객이 대기해서 차량을 이용하다가 주민의 편의를 위해 1987년에 매표소와 대합실을 갖춘 설천 버스 터미널을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904-123번지[무설로 1571]에 준공하였다. 2000년대 들어 이용객 감소로 사업성이 악화되어 2013년에 설천 버스 터미널 사업자가 폐업하였다....
-
삼국 시대~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흙이나 돌로 축조된 관방 시설.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합하여 이르는 명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지칭하고 있다. 즉, 성곽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의 활동 공간을 흙이나 돌 등으로 연결한 구조물로서, 일반적으로 성벽이라 불리운다. 고대 국가 초기에는 목책(木柵), 도랑과 같은 방어...
-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처음 무주에 이거한 인물은 권칭(權稱)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세거하였고,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로 이거한 권춘(權春)과 권귀열(權龜悅)이 있다.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은 안동에서 대대로 세거하던 집안의 인물로...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무주군 안성면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1987년 개인 사업자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1506-10번지[시장윗길 6-3]에 안성공용버스터미널을 준공하였다. 1987년 10월 14일 안성공용버스터미널 전라북도 정류장 사업 면허를 취득하였다. 준공 이후 40여 년 간 이용되어 왔으나, 적자...
-
전라북도 무주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신문, 방송, 잡지 등의 출판 및 언론 매체를 총칭. 언론(言論)은 매스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의 한 유형으로 신문사·시사 잡지사·방송국·통신사 등의 언론 기관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현상들에 관한 보도·논평·해설 등을 목적으로, 관련 뉴스와 정보 등을 취재하고 때로는 의견을 첨가하여, 기사나...
-
조선 후기 오희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주 일대 상황을 적은 일기.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비연(斐然)이다. 장성 현감을 지낸 오경민(吳景閔)과 남인(南寅)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와의 사이에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 있다. 『쇄미록』에 의하면 아버지 오경민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어린 시...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번의 충신각. 이만번(李晩蕃)[1680~1762]의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욱(君郁), 호는 두천(斗川)으로 찬성(贊成) 이서원(李舒原)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동조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일어나 서울로 진격하려던 정희량(鄭希亮)을 치기 위해 동생 이만경(李晩景)[1...
-
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이용이(李用伊)[1868~?]는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서 출생하였다. 문태서(文泰西)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며, 화약을 제조하여 공급하였다. 문태서는 대한 제국 군대의 하사 출신으로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반대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최익현(崔益鉉)을 만나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고 지리산에서 창의(倡義)하였다. 1907년...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의해 무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은 경상도 동래부의 부산진 공격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 후 7년 동안 조선은 일본과 전쟁을 하였으며,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이 참전하는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전쟁을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
-
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장광옥(張光玉)[1888~1966]은 전라북도 무주군 횡천면 상두리[현재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대한 제국기인 1908년(순종 2) 유종환(兪宗煥)[1859~1909]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유종환은 서울 출신으로 선전관을 역임하였는데, 1906년 고종(高宗)의 밀지를 받고 의병에 투신하여 육남 소모장(六南召募將...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있는 다리.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위치하여 장안교(長安橋)라 부른다. 장안리는 ‘큰 골짜기’라는 뜻으로 ‘한실’이라 불렸는데, ‘한실’을 한문으로 고치면 ‘대곡(大谷)’이 된다. 본래 ‘장안’이란 오랜 세월을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복지라는 뜻이 있어 서울의 성안을 나타내는 말인데, 고려 시대 국가의 특수 행정 지역인...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장안(長安)’이란 오랜 세월을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복지(卜地)라는 뜻이 있어 서울의 성안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됐는데, 옛적 이 지역을 관할하던 대곡소(大谷所)와 부남방을 관장하던 행정의 중심지였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는 옛날 이곳에 대곡장(大谷場)이 있던 곳이라서 ‘장안(場安)’으로 하다가 ‘장안...
-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할아버지는 전치선이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나라의 독립을 찾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위하여 일부러 선교사와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여 이후 집안사람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전일봉(全日奉)[1896~?]으로, 1919년 4월 1일 무주읍 장날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체포된 후 8개월 동안 형을 살았다. 전영...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국가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제반 활동. 광복 이후 각 사회단체들이 정치적 이념을 표방하고 정당을 결성하면서, 일시적으로 텅 비었던 해방 공간에 정당들과 정치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 서울에만 100여 개의 정당이 출현했다고 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인 1948년 5월 10일의 제헌 의회 선거에 참여...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적상면·무주읍·부남면을 거쳐 경기도 하남시와 경상남도 통영시를 연결하는 고속 도로. 중부고속도로는 서울~대전을 잇는 ‘중부 지방을 가로지르는 고속 도로’라는 의미로 명명되었다. 현재 고속 도로 제35호선은 중부선과 통영 대전선으로 구성되어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무주군 일부 지역을 지나는 통영 대전선은 2001년 진주~대전 구간이 완공된...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증산교회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 지역 7개 마을의 복음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1900년 어느 날 당시 평양이나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피난을 위해 증산리에 와서 은둔 생활을 하며 자신들의 처소에서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3년 말부터 전주로 부임해온 미국 남장로교...
-
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백남(柏南).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취은공(醉隱公) 하형도(河亨道)[1606~1678]의 8세손이다. 생몰년이 미상이나 8대조 하형도가 17세기 사람이니 개항기 정도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이 집안이 무주에 들어온 것은 하형도의 아버지 하위국 때이다. 하현(河鉉)은 과거에 뜻을 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