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에서 도마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도마재와 근심 터」는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무주 지역의 도마재라는 장소와 공간에 결합되어 전승되고 있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도마재와 근심 터」는 1990년 무주군에서 편찬한 『무주 군지』에, 1992년 김경...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와 노는 모습에 얽힌 뜻을 엮어서 부르는 민요. 「새타령」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판소리에서 부르는 ‘새타령’으로 「적벽가」에서 부른다. 적벽 대전에서 죽은 조조의 군사들이 원귀가 되어 부르는 군사 설움 타령이다. 다른 또 하나는 남도 잡가 악곡의 ‘새타령’으로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하기도 하고,...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지신밝기를 할 때 성주님께 가정의 번영을 축원하며 부르는 의식요. 「성주굿」은 정초에 풍물패가 주체가 되어 각 가정마다 행하는 지신밟기 과정에서 부르는 ‘성주풀이’ 노래이다. 지신밟기는 가신이 거처하는 각 처소를 풍물패가 돌면서 마당굿, 조왕굿, 샘굿, 천륭굿, 성주굿 등을 연주한다. 「성주굿」은 이들 가신 중에서 가장 어른인 성주신을 대상...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지신밟기를 할 때 부엌에서 부르는 의식요. 「지신밟기 소리-조왕굿」은 정초에 마을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 풍물을 칠 때 부엌에서 부르는 고사 소리이다. 이를 ‘정지굿’이라고도 한다. 지신밟기의 목적은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빌며, 마을과 각 집을 축제적 공간이 되게 하는 데 있다. 「지신밟기 소리-조왕굿」은 1990년...
-
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에 수록 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1872년 군현 지도』 「무주부」 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명령으로 그린 지도로, 당시로서 가장 자세한 지리 정보를 수집하여 모은 지도였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전라도의 무주를 포함하여 전국 8도를 부(府), 목(牧), 군(郡), 현...
-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19세기에 이르러 국가가 기호식 지도를 정책 과정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회화식 지도는 그 비중이 감소하게 되었다. 더불어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회화식 지도가 민간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광여도(廣輿圖)』는 이러한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해동 지도(海東地圖)』와 같은 회화식 지도가 민간으로 흘러들면서 만들...
-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도.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는 조선 후기의 선비 화가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서화첩에 수록된 조선 전도로,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에 포함되어 있다. 윤두서가 1712년 해남으로 은거하여 1715년까지 생존했으므로 이 지도는 그 시기에...
-
1968년 간행된 전라북도 무주군의 역사와 문화 전반이 수록된 사찬 향토지. 무주군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세 지역의 접경지라는 지역적 특성과 적상산(赤裳山)과 덕유산(德裕山) 등 산악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특별한 역사를 갖게 되었으나 자세히 기록한 서적이 없어 이러한 지역의 특성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무주군사』[1968]의 저자 최낙철(崔洛哲)은 8...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무주부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제작자와 제작처 및 제작 시기 등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편찬 경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선명한 색감과 화려한 화법, 정선된 글씨체는 물론 지도첩에 수록된 지도들이 국내외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국가에서 제작하여 사용했던 지도일 가능성이 높다. 20...
-
1871년과 1899년에 편찬된 『호남읍지』에 수록된 무주부 읍지. 전국에 내려진 읍지 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호남 읍지(湖南邑誌)』를 편찬한 것으로 보이며, 전라도 감영에서 1871년에 47개 읍지, 1899년에 56개 읍지를 만들었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1은 10책으로 되어 있고, 이 중 9책에 무주부(茂朱府)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 지도는 부분 채색되어 있...
-
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남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무주부 지도. 『호남지도(湖南地圖)』는 전라도 각 군을 그려 전체를 7첩으로 묶고 비변사인(備邊司印)을 찍은 채색 지도 필사본이다. 0.3~1.5㎝의 방안(方眼)에 그렸으나 방안의 크기가 지도별로 일정하지는 않다. 그중 「무주부」는 7첩 중 진안, 용담, 장수, 운봉, 임실, 곡성, 구례, 광양 등과 함께 제3첩에 속해 있...
-
경계와 융합의 상징 지역으로서 전라북도 무주군이 가지는 지리적 위치의 특성. 전라북도 무주군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가 접경을 이루는 경계 지역이면서, 3도의 사람과 문화가 교류하고 융합하는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전라북도의 경계 지역 무주 무주군은 전라북도 14개 시·군 중의 하나이며, 전라북도 최동북부 끝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
경계와 융합의 상징 지역으로서 전라북도 무주군이 가지는 지리적 위치의 특성. 전라북도 무주군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가 접경을 이루는 경계 지역이면서, 3도의 사람과 문화가 교류하고 융합하는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전라북도의 경계 지역 무주 무주군은 전라북도 14개 시·군 중의 하나이며, 전라북도 최동북부 끝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
서기 918부터 서기 1392년까지 존속하였던 고려시대 무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무주 지역은 아직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체로 무풍현(茂豊縣)과 주계현(朱溪縣) 두 고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오늘날의 무주군 안성면 지역 등 일부 지역은 현재 충청남도 금산군에 해당하는 부리현(富利縣)과 진례현(進禮縣)의 일부였다. 부리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제원군 남부...
-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 하나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인 지석을 비롯하여 시신이 안치되는 무덤방, 돌을 쌓거나 깔아서 무덤 영역을 나타내는 묘역 등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되는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덤뿐만 아니라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의 표석, 종...
-
조선 시대에 제작된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옛 지도. 조선 시대에 무주부 또는 무주군을 그려 놓은 지도들을 고지도라고 하며, 그림식 또는 회화식(繪畵式) 지도가 대부분이며, 이외에 목판본(木版本) 지도들도 포함되어 있다. 무주부를 그린 고지도들은 무주 읍치를 중심으로 행정 경관[동헌, 내아, 객사, 아사, 창고 및 옥 등을 포함], 제사 경관[향교, 사직단, 성황단, 여단], 자연...
-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운송 수단과 운송로. 무주군은 전라북도의 북동부 산간 지방에 위치하여 교통로가 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전라북도·충청남도·충청북도·경상북도의 경계에 위치한 중부 내륙 지역으로, 1970년대 이후 단계적으로 교통로가 확충되어 현재는 접근성이 양호하다. 산지가 많은 지형적 영향으로 교량과 터널이 도로 곳곳에 분포한다. 철도는...
-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칭. 구비 전승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승 문화를 가리킨다. 구비 전승물에는 문학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욕설이나 금기어 같은 비문학적인 것들도 있고,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증언처럼 역사적인 것들도 있다. 구비 전승이라고 할 때는 이러한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다. 다만 ‘구전’에 ‘문학’...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대불리 유물산포지(大佛里遺物散布地)1과 대불리 유물산포지3은 대불 저수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불리 유물 산포지1은 내북 마을 회관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불 저수지 남동쪽에서 내북 마을로 향하는 소로를 따라 300m가량 가다 보면 남쪽으로 내북천이 흐르고 있는데, 소로와 내북천 사이의...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서 매년 8월 15일 덕유산을 중심으로 봉기한 의병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문화 행사. 덕유산(德裕山)은 전라도·경상도·충청도 지역 의병의 집결지이자 항일 항쟁을 벌이던 격전지로 산세가 높고 험해 국난이 있을 때마다 구국 항쟁을 벌이던 의병들의 성지이다. 의병 항쟁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선열들의 유해는 1975년 칠연 의총(七淵義...
-
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이거나 무주 지역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항일 운동가. 일제의 국권 침탈이 이어질 때에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국권을 잃게 된 후에는 독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무주 지역에선 전일봉(全日奉)이 1919년 4월 1일 무주 장날 만세 운동을 일으켰고, 학생들은 동맹 휴학을 주도하거나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무주군은 영호남을...
-
1894년 전라북도 무주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동학 교도와 농민이 일으킨 반봉건, 반외세를 지향한 운동. 1860년 최제우(崔濟愚)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내천(人乃川) 사상을 주장하며 동학을 창시하여 전라도를 비롯한 삼남 일대의 농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876년 일본과 불평등한 근대 조약,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강제로 개항한 이후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경제적 침투가...
-
전라북도 무주군 일대에서 수확한 메밀을 갈아서 앙금을 앉혀 그것으로 쑤어 만든 묵. 메밀은 가뭄이나 추위에 잘 견디면서 생육 기간이 짧고, 영양가와 저장성이 높아 예전부터 구황 식물로 많이 재배되었다. 메밀은 다른 곡식에 비해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고, 비타민 B1과 비타민 B2, 니코틴산(nicotinic acid)이 들어 있어 영양가가 높고 칼로리는 낮다. 메밀에는...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무주 적상산성(茂朱赤裳山城)의 중요성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방어 시설인 산성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부각되었다. 전라도 동부 내륙 지역의 주요 방어 시설로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광해군(光海君) 당시 후금(後金)이 강성해짐에 따라 국방 시설의 점검과 정비, 그리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보존...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무주군 관할 행정 기관. 무주군청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행정과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수행하고, 주민 복리 증진과 지역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으로 무주부(茂朱府)가 무주군이 되었고, 당시 무주부 관아였던 와선당(臥仙堂)은 최초의 무주군 청사로 사용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고종...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에 있는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마을. 무풍 하늘땅 정보화마을은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의 행정리인 상덕리에 있다. 상덕리는 도마(道馬, 倒馬) 마을, 부흥(富興) 마을, 북수(北首) 마을을 병합한 것이다. 무주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뜻으로 ‘하늘땅 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각 마을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도마 마을은 영호남을 오...
-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남평(南平). 본명은 문태현(文泰鉉), 별명은 문태진(文泰珍)·문태수(文泰洙), ‘문태서(文泰瑞)’는 의병장 시절의 이름이다.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24세손이며, 아버지는 문병현(文炳鉉)이다. 문태서[1880~1913]는 경상남도 안의군 서상면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순종 1) 제3차 한일 협약(韓日協約)이 체...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이 마치 미륵(彌勒)이 올 땅이라 하여 ‘미래(彌來)’라 부르다가 아름다운 내[川]가 흐르는 곳이라 하여 미천리(美川里)라고 하였다. 조선 말까지 풍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로 개설하였다. 하미[아랫미래] 마을, 장자동[장자터] 마을, 중미[윗미래]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이...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 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주민 자치 센터를 지나 원평 삼거리에서 설천면 미천리 방면으로 삼도봉로를 따라 4.5㎞ 이동하면 하미 마을이 나온다. 미천리 유물산포지(美川里遺物散布地)는 하미 마을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하미 마을의 동쪽에 있는 고봉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민요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민중의 노래이다. 즉, 민요는 전문 예능인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 민중들 스스로가 삶 속에서 만들어 낸 노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요에는 민중의 사상·감정·풍속 등이 진솔하면서도 소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민요의 곡조는 누구나 따라 부...
-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쓰이는 토박이 언어를 통칭하는 말. 무주의 방언은 지리 언어학적 측면에서 접촉 방언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무주 방언은 행정 구역상 전라북도에 속해 있지만, 북쪽으로 충청도 방언권인 충청남도 금산, 충청북도 영동 지역어와 접촉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경상도 방언권인 경상북도 김천, 경상남도 거창 방언과 접촉하여 이들 방언권의 언어가 혼재하고...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고사에 있는 조선 후기 아미타불상.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고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북고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北固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조성 당시인 1657년(효종 8)의 복장 발원문 외에 1736년(영조 12)과 1928년 중수 발원문을 살펴보면, 1657년 4월 조성하기 시작하여 5월에 완성된 후, 덕유산 운수암...
-
조선왕조 25대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해 온 적상산 사고와 무주의 역사.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부터 철종(哲宗)에 이르기까지 왕의 사후(死後)에 연월일(年月日)의 편년체(編年體)로 25대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그 방대한 분량은 물론 내용에서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역사서로 평가받고...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에 있는 민주지산의 한 봉우리.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세 개 도의 경계에 있다고 하여 삼도봉(三道峰)이라고 부른다. 삼도봉[1,178m]은 세 개 산줄기의 중심점인데, 북동쪽 산줄기는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면서 경상북도 김천시 황악산(黃嶽山)[1,111m]과 연결되고, 북서쪽 산줄기는 석기봉(石奇峰), 민주...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삼도봉 정상에서 매년 전라북도·충청북도·경상북도의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삼도 화합 기원제.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에 있는 민주지산(岷周之山)[해발 1,242m]은 전라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고 있고, 옛 삼국 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접경을 이루던 산이다. 민주지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충청북도 영동군의 절경 물한리 계곡과...
-
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이는 생활 문화가 지리적으로 분포하는 범위. 무주군은 소백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한 산간 지역이다. 총면적은 631.59㎢로 전라북도 전체 면적의 7.84%를 차지하며, 동서 길이는 37㎞, 남북 길이는 30㎞이다. 무주군의 전체 면적 중 82.4%가 임야이며, 경작 면적은 논 5.7%, 밭 6.0%로 전체 면적의 11.7...
-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법정면. 설천면은 무주군의 동부에 위치하는 면이다. 소백 산맥의 산간 지대로 북쪽은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과 무주군 무풍면과 접하고, 서쪽은 무주읍과 적상면, 안성면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무풍면과 접한다. 1724년(영조 즉위년) 문관 이봉상(李鳳祥)이 이곳에 살면서 설천(雪川...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 있는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피란과 보신에 적합한 장소. 십승지지(十勝之地)는 풍수지리설에서 지칭하는 피란(避亂)과 보신(保身)에 적합한 열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승지(十勝地)라고도 한다. 주로 『정감록(鄭鑑錄)』·『징비록(懲毖錄)』·『유산록(遊山錄)』·『운기귀책(運奇龜責)』·『삼한 산림 비기(三韓山林秘記)』·『남사고 비결(南師古秘訣)』·...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산리에 있는 바위 절벽 위의 평탄지. 안렴대(按廉臺)는 고려 시대 거란병이 침입했을 때 삼도의 안렴사(按簾使)가 피난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거란의 2차 침입 시기인 1010년(현종 1)의 고려 초 행정 구역과 직제상에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3도가 형성되지 않았고, 안렴사라는 직제가 확립되어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 앞섬마을의 법정리인 내도리(內島里)는 모양이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육지 속의 섬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인데, 앞섬마을은 내도리의 앞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전도(前島) 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 건너에는 뒷섬, 즉 후도 마을이 있다. 앞섬마을은 본래 금산군...
-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체계.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분화하는데 기본 문법은 동일하지만 음운, 문법, 어휘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분화체를 방언이라고 한다. 방언은 지리적 경계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지역 방언[regional dialect]과 사회 계층, 연령, 성, 종교, 인종 등 사회적 변화 요인에 의해 형성된 사회 방언[so...
-
전라북도 무주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무주군은 비록 산간 지대이지만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삶을 영위하였음이 나타난다. 구석기 유적은 발견된 바 없지만, 남대천(南大川) 수해 복구 현장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가 발견된 바 있고, 설천면 기곡리 일대에서 간 돌도끼[마제 석부], 간 돌살촉[마제 석촉]이 수습되었으며, 적상면 사천리 일대에 고인...
-
고려 시대~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 시설. 전통 시대에 역원(驛院)은 원활한 교통과 통신, 여행자를 위한 휴식과 숙식, 이동 수단의 교체와 수리, 정비를 위한 시설로 활용되었다. 그 가운데 역(驛)은 전령(傳令), 사신 영송(使臣迎送)과 같은 공적 업무를 위해 파견되는 관리들의 여행을 위해 관에서 운영하던 기관이었다. 역을 이용하는 관리는 마...
-
조선 후기 오희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주 일대 상황을 적은 일기.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비연(斐然)이다. 장성 현감을 지낸 오경민(吳景閔)과 남인(南寅)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와의 사이에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 있다. 『쇄미록』에 의하면 아버지 오경민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어린 시...
-
고려 후기 무주 지방에 침입한 일본인 해적 집단과 그들의 침략 행위. 고려 시대 왜구는 고종(高宗) 때부터 고려 멸망까지 빈번하게 침략해 왔는데,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 이후 공양왕(恭讓王) 4년까지 약 40년간이며, 그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간에 가장 극심하였다. 기록상으로 볼 때, 고려 시대 전국적으로 529회 정도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이...
-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화중(和中)이다. 유경제(柳景堤)[1802~1856]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친부모의 품을 떠나 작은아버지의 양자(養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가(養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친가(親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언제나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특히 양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유경제...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이루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주희(朱熹) 등 유학 선구자들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생활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된 것은 한자(漢字)의 도입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교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 말해 주는 것과...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진(君珍), 호(號)는 두촌(斗村). 형은 이만번(李晩蕃)이다. 이만경(李晩景)[1691~1776]은 1691년(숙종 17)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태어났다. 이만경은 성품이 올바르고 학문도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 사사로운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은 늘...
-
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의해 무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은 경상도 동래부의 부산진 공격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 후 7년 동안 조선은 일본과 전쟁을 하였으며,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이 참전하는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전쟁을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 현재까지 나타난 고고학(考古學)의 성과로 보아 무주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근의 전라북도 진안군, 대전광역시 또는 충청남도 공주시 등을 보면 구석기 시대로 소급될 여지도 높지만 사람들이 무주 지역에 모여 마을을 이루고 마을 공동체를 형성한 시기와 그 형태를 정확히 추정하기에는 자료...
-
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장광옥(張光玉)[1888~1966]은 전라북도 무주군 횡천면 상두리[현재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대한 제국기인 1908년(순종 2) 유종환(兪宗煥)[1859~1909]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유종환은 서울 출신으로 선전관을 역임하였는데, 1906년 고종(高宗)의 밀지를 받고 의병에 투신하여 육남 소모장(六南召募將...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 역사.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1414년(태종 14)에 전국을 8도제로 바꾸는 행정 구역 개편을 실시하였다. 주계(朱溪)와 무풍(茂豊)이 통합되어 무풍의 '무(茂)'와 주계의 '주(朱)'를 따서 '무주(茂朱)'라는 새로운 지명이 만들어졌...
-
고려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일대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太祖)는 940년(태조 23) 전국의 군현(郡縣) 명칭을 개정하였다. 당시 군현 명칭의 개정이란 이전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새로운 명칭으로 고치기도 하여 고려식의 지방 군현으로 정비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방 군현 조직은 지속적인 변동을 거쳐 1018년(현종 9) 완성을 보게...
-
조선 시대 무주 지역의 인문 환경 및 자연 환경을 비롯하여 지역 정보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 무주와 관련된 지리지로는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수록본, 1871년에 제작된 『호남 읍지(湖南...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활동하는 로마 가톨릭교. 무주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1866년(고종 3) 이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여우내에서 시작되었다.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모여 교우촌(敎友村)을 형성하면서 이 지역에서 천주교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그 당시 여우내를 비롯한 여러 곳에 교우촌이 형성되어 최양업 신부와 다블뤼 신부 등이 이 지역을 사목 방문하였다...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있는 사립 대안 교육 특성화 고등학교. 교육 이념은 '인류의 위기, 교육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는 학교로서 생태 교육을 그 대안으로 삼는다.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교육, 즉 생명 현상에서 삶의 원리를 깨우치고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배우고 나아가 자연계의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발견하며,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공동체임을 인식...
-
조선 전기 무주 백산 서원 타진사에 배향된 문신.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상왕(上王)이던 태종(太宗)과 세종 사이를 오가며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영상(領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고...
-
조선 전기 무주 백산 서원 타진사에 배향된 문신.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상왕(上王)이던 태종(太宗)과 세종 사이를 오가며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영상(領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고...
-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무주(茂朱)’라는 명칭은 조선조 1414년(태종 14)에 전국을 8도제로 바꾸는 행정 구역 개편과 함께 만들어졌다. 이때 주계(朱溪)와 무풍(茂豊)이 통합되고 무풍의 ‘무(茂)’와 주계의 ‘주(朱)’를 따서 ‘무주’라는 새로운 지명이 만들어졌다. 이...
-
1945년 광복 이후 현재까지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주군은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으로 인한 분단과 6·25 전쟁,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이루어 낸 경제 발전 등 한국 사회의 성장 및 발전과 그 궤적을 함께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23부(府), 331군(郡)으로 개편함에 따라 무주 지역을 관할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