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쌍송당(雙松堂) 김광석(金光奭)의 아들이다. 김경장은 품계가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고금정에서 임금을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피로써 맹세한 뒤 여러 고을의 의병과 여산에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쌍송당(雙松堂) 김광석(金光奭)의 아들이며, 김경장(金慶長)의 아우이다. 김경적은 창신교위를 지냈는데,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모시고 형 김경장과 의병을 일으켰다. 김경적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을 맹세하였다. 이어 여러 고을의 의병과 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굉(子宏), 호는 쌍송당(雙松堂).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8세손이며, 참의(參議) 김위(金偉)의 아들이다. 김광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자라서는 지절이 강개하여 서울의 사우들이 충의의 선비로 존경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이(子以). 개국원훈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다. 완암 김영진(金英振)의 아들이다. 김원건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늘 고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들이 서울로 쳐...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둘째 아들이다. 김원립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613년(광해군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 때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수(士秀), 호는 화우당(華憂堂).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판서 김인손(金麟孫)의 고손자이고, 충의위 김광보의 아들이다. 김원준은 일찍부터 가정의 가르침을 받아 효성과 충의의 마음이 지극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위(士威), 호는 당계(堂溪).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아들이다. 김원중은 효성이 지극하고 몸가짐이 간결하며 절의가 있었다. 광해군 때인 1618년(광해군 10)에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사건이 일어나자, 윤리가 무너짐을 슬퍼하고 남원에 은거하였다. 1627...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후잠(后潛), 호는 만회(晩悔).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方貴溫)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참판에 증직된 방덕유(房德騟)의 아들이다. 방원량은 조찬한(趙讚韓)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호원(浩遠), 호는 이촌(李村). 고려의 금오위 상호군 소희철의 후손이며, 7도병사를 지낸 소후(蘇後)의 7세손이다. 병마절도사 소기동의 고손자이며, 군자감정 소인세(蘇仁世)의 아들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주부 소제(蘇濟)의 동생이기도 하다. 소호는 지극한 효성심을 가지고 부모를 섬겼다. 부모의...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옥(汝玉), 호는 모와(慕窩). 문성공 회헌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안호덕의 아들이다. 안건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상을 당하자 9년간 시묘를 살았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흥발(李興發)의 격문에 발하여 가산을 털어 군량과 병장기를 갖추고, 두 아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이회(而會), 호는 풍계(楓溪). 문성공 회헌(晦軒)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풍와(楓窩) 안신손(安信孫)과는 오촌 간이다. 안경달은 문음(門蔭)으로 주부를 제수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기암 정홍명과 운암 이흥발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모아서, 과천에 이르러 수많은...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군보(君寶), 호는 모암(慕庵). 문성공 안향(安珦)의 14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안황(安璜)이고 아버지는 처사 안경덕(安敬德)이다. 안진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안황(安璜)에게 유학을 수업하여 아우 안건(安楗)과 함께 『가례(家禮)』·『소학(小學)』·『심경(心經)』·『성리(性理)』 등의 책을 공부하였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간숙(幹叔), 호는 농암(聾庵). 병부낭중 양능양(梁能讓)의 후손이다. 양진번은 남원 괴정에서 출생하여 김화(金樺)의 문하에서 배우고 정온(鄭蘊)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운암 이흥발 등 여러 선비들과 함께 창의하여 과천에 이르러서 적병을 많이 죽였다. 얼마 후 화의...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유(子有), 호는 사호(沙湖). 청백리로 칭송받던 낙봉(駱峯) 유헌(柳軒)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유감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유영립(柳永立)이다. 1595년(선조 28)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에 뽑혔다가 호당이 되었다. 광해조 때 삼강오륜의 질서가 무너지자 벼슬을 버리고 남원의 추사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장(德章), 호는 내성재(內省齋).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금헌(琴軒) 이대윤(李大胤)이고, 아버지는 판서에 증직된 이엽이며, 형은 춘파(春坡) 이유형(李惟馨)이다.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광해조 때인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괴정(槐亭).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이고, 아버지는 직제학 이덕열(李德悅)이다. 인조조에 생원과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중형인 이사영과 이흥발, 유즙, 최온 등 당시의 호남 지도자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과천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화의의 소식...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자허(子虛), 호는 죽암(竹庵). 문간공(文簡公) 이서(李舒)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송탄(松灘) 이점이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는데, 성균관의 여러 벗이 재장으로 추대할 만큼 학식과 인품이 돋보였다. 만년에는 초야에 집을 지어 ‘죽암’이라고 편액을 걸고 성리학을 공부하는 데 힘썼다. 163...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방로(邦老). 홍문관교리 이척의 증손이며, 한성우윤 이광업(李光業)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같은 고을의 정치·이유형·김원중 등과 함께 창의하여 과천에 이르렀으나, 강화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며 돌아왔다. 그후 영달에의 뜻을 끊은 채 산중에서 남은 생애를 마쳤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공실(公實), 호는 국담(菊潭). 청백리로 알려졌던 정명의의 6세손이며 만헌 정염의 손자이다. 정치는 1588년(선조 21)에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월곡리에서 태어났다. 1627년(이조 5)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으며, 성균관 사우들이 그를 추종하였다. 1636년(인조...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목이(目邇), 호는 정암(貞菴). 연촌 최덕지의 후손이며, 암계 최연손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예빈시정 최신립(崔信立)이다. 최계원은 효성과 우애가 깊고 강직하며 지조와 절개가 있었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그는 고을의 유생들과 함께 의병과 군량을 모았으며, 죽기를 맹세하고 왕을 호...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영중(永仲), 호는 후촌(後村).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후손이고, 암계(巖溪) 최연손(崔連孫)의 6세손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부윤(府尹)을 지낸 최엄조(崔淹祖)의 5세손이다. 참의(參議) 최태윤의 증손이며, 처사(處士) 최염의 아들이다. 최계인은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로(文路). 만육(晩六) 최양(崔養)의 8세손이며, 판결사(判決事) 최제의 아들이다. 최예달은 일찍이 벼슬길에 나아가 봉직랑(奉直郎) 조지서(造紙署) 별제(別提)를 지냈다. 또한 문장과 행실이 탁월하고 기백이 남달리 뛰어났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량과 의병을 모아 과천에 이르렀...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의병.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자금(子琴), 호는 오주(鰲洲). 문정공 최항(崔恒)의 8세손이며, 대사헌(大司憲) 최상중(崔尙重)의 손자이다. 좌윤(佐尹) 최연(崔葕)의 아들이다. 최휘지는 1598년(선조 31)에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1624년(인조 2)...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이(受而). 안양공(安襄公) 한종손(韓終孫)의 6세손이며 어모장군(禦侮將軍) 한응록(韓應祿)의 아들이다. 아저씨뻘인 한경생(韓慶生)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어버이의 병환에 살을 베어 구환하여 고을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적병에게 포위된 상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