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임금의 시험을 극복한 최진사 이야기. 「인자 100자와 무수옹」은 ‘경주 최 부자 이야기’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경주 최 부자와 관련한 이야기는 여러 지역에서 전해 오는데, 한 해 수확량의 반을 가난한 민중을 위해 풀었다는 최 부자에 대한 민중의 호의적인 태도가 최 부자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
-
조선 말기 남원 출신 김성열의 시문집. 김성열(金成烈)[1846~1906]은 1846년에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 두동에서 김인경(金仁鏡)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원중(源仲), 호는 겸산(兼山)으로 본관이 경주이다. 『겸산집(兼山集)』은 1934년에 저자의 손자인 김종가(金種嘉)가 자신의 발문에 민병승(閔丙承)의 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 6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권1...
-
1958년에 간행된 조선 말기의 학자 김인식의 유고 시문집. 김인식(金仁植)[1864~1939]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흥(士興), 호는 독수재(篤守齋), 초명(初名)은 복경(復經)이다. 김성진(金聲辰)의 후손으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독수재유고(篤守齋遺稿)』는 1958년 김인식의 손자 김영기(金永基)가 발문을 붙여 2...
-
조선 중기 남원 출신 김유경의 시문집. 김유경(金裕卿)[1646~1713]은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목동 출신이다. 자는 덕여(德餘), 호는 정와(靜窩)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문하에 출입하였고, 학행으로 알려졌다. 생원 이병은(李炳殷)·노익원의 서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발문을 붙여 1...
-
조선 후기 남원 출신 이종봉의 시문집. 이종봉(李鍾鳳)[1836~1903]은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목동리 출신이다. 자는 덕서(德瑞), 호는 졸헌(拙軒)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기존의 필사본을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1893~?]와 족제 이종원(李鍾元)의 서문에다 종손(從孫) 이상록(李相祿)의 발문을 붙여 1940년에 전라북도 남원에서 간행하였다. 5권 2...
-
조선 중기 남원 출신 김성진의 시문집. 김성진(金聲振)[1563~1644]은 전라북도 남원군 출신으로 계림군 김목의 후손이다. 자는 이원(而遠), 호는 취수당(醉睡堂) 또는 만옹(晩翁)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학행으로 알려졌다. 홍석희(洪錫憙)의 서와 기관(奇寬) 13세손 김세기(金世基)·김동기(金東基)의 발을 붙여 1979년에 전라...
-
조선 중기 남원 출신 이대유의 시문집. 이대유(李大유)[1540~1609]는 전라북도 남원군 출신으로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후손이다. 자는 경인(景引), 호는 활계(活溪)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만헌 정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여러 번 천거되어 조정에서 불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이이근(李頤根)의 서를 붙여 1657...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옛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된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선사시대부터 돌널이나 나무널만을 사용하는 간단한 구조의 무덤이 축조되어 이후 오랫동안 사용된다. 사회가 분화되고 부장품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큰 덧널이나 돌덧널이 축조되고, 그 안에 다시 널을 안치하는...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숙(惺叔). 고려 때의 판서(判書)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현령(縣令) 김원(金騵)의 아들이다. 김경로는 어릴 때부터 여력이 출중하고 총명하여 열심히 경전을 읽었으나, 중년에 안질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문무의 실력을 견줄 만했던 황진(黃進)과 같이 1576년(선조 9)에 무과에...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쌍송당(雙松堂) 김광석(金光奭)의 아들이다. 김경장은 품계가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고금정에서 임금을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피로써 맹세한 뒤 여러 고을의 의병과 여산에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쌍송당(雙松堂) 김광석(金光奭)의 아들이며, 김경장(金慶長)의 아우이다. 김경적은 창신교위를 지냈는데,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모시고 형 김경장과 의병을 일으켰다. 김경적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을 맹세하였다. 이어 여러 고을의 의병과 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굉(子宏), 호는 쌍송당(雙松堂).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8세손이며, 참의(參議) 김위(金偉)의 아들이다. 김광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자라서는 지절이 강개하여 서울의 사우들이 충의의 선비로 존경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원. 직제학 김작의 후손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현감 김사종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사 50여 명을 모아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으로 가려 하였으나 길이 막혀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후 광교산으로 들어가 전라병사 김준룡과 함께 적병을 맞아 싸워 큰 전공을 세웠으며, 여기에서 호장 양...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정(子淨). 수은 김충한(金冲漢)의 후손으로, 퇴한재(退閑齋) 김천로(金天老)의 아들이며, 월호 김집의 아우이다. 김급은 무과에 급제한 후 의금부도사를 거쳐 대구영장으로 옮겼다가 용양위부호군을 지켰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집과 함께 여산으로 달려가서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신라 경순왕 때 수은공의 후손이다. 김남중은 효성이 지극하여 병든 부모를 위하여 오줌과 변을 맛보면서 구환하였다. 부모의 병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부모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상을 당하여 부모의 장사를 치를 때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효성을 다하였으며, 이에 감동한 귀신이 불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계복(金啓福)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뛰어나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장으로서 자원하여 싸움터에 나아가 많은 적을 죽였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성이 적에게 포위되자 군량 수백 석...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도백(度伯), 호는 지족당(知足堂).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낙우당 김촬(金撮)의 아들이다. 김만익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성리의 학문을 닦아 세상에서 존경을 받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적을 치는 것이 자기의 소임이라 생각하고 의병을 일으켜 노비와 마...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이다. 1579년(선조 1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쳔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에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심(士心). 정숙공 김양경의 후손이며, 진사 김문세(金文世)의 아들이다. 두 아들 김덕원과 김덕흥은 모두 참봉을 지냈는데, 김덕흥은 뒤에 사헌부지평의 증직이 내려졌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인조반정 때 수문장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 데...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선(繼先). 판서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진사 김백준(金百俊)의 아들이다. 김사종은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사천현감(沙川縣監)으로 있었다.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을 따라 진주성에 들어가서 힘을 다하여 적을 맞아 싸우다가 황진과 함께 전사하였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회(汝晦).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예이며, 한림(翰林) 김미(金楣)의 고조손이다. 김성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판관(判官)으로 있었는데, 도탄(桃灘) 변사정(邊士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팔량치(八良峙)에서 적과 대치하여 싸워 많은 적을 베었다. 조정에서는 김성의 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여(用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다. 김약려는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따라서 사촌 동생 김용려(金用礪)와 함께 행동하지 못하였다. 김약려는 눈물을 흘리며 “은(殷)이 망하니 백이(伯夷)는 수양산에 숨...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뇌여(賚予).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최락당 김선(金宣)의 아들이다. 김여려는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함께 의병을 모아서 북으로 올라가 전쟁터로 나갔다. 그러나 도중에 이미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늙도록 세상에 나오지 아니...
-
조선 중기의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대여(代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수성재(守性齋) 김정(金定)의 아들이다. 김용려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일찍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며,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고 행의(行誼)가 고매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서 북으로 올라가는데, 강화...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이(子以). 개국원훈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다. 완암 김영진(金英振)의 아들이다. 김원건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늘 고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들이 서울로 쳐...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방(子方).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진사 김원건(金元健)의 아우이다. 김원구는 경서와 사기를 두루 읽어 문예가 일찍부터 뛰어났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노비를 이끌고 싸움터로 나갔다가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이후 과거 공부를...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둘째 아들이다. 김원립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613년(광해군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 때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수(士秀), 호는 화우당(華憂堂).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판서 김인손(金麟孫)의 고손자이고, 충의위 김광보의 아들이다. 김원준은 일찍부터 가정의 가르침을 받아 효성과 충의의 마음이 지극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위(士威), 호는 당계(堂溪).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아들이다. 김원중은 효성이 지극하고 몸가짐이 간결하며 절의가 있었다. 광해군 때인 1618년(광해군 10)에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사건이 일어나자, 윤리가 무너짐을 슬퍼하고 남원에 은거하였다. 1627...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기(汝器), 호는 만취정(晩翠亭). 계림군 김균(金稛)의 7세손이고, 선략장군 김귀손(金龜孫)의 손자이며, 현령 김사걸(金士傑)의 아들이다. 김위는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내외의 요직을 거쳐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형조참의(刑曹叅議)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
"특별한 태몽은 없지만 본시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했던 지라 어머니가 나를 낳기 전에 매동 뒤의 서진암에서 부처님에게 자주 기도를 드리며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소망했으니, 내가 세상에 나온 뒤 어머니는 ‘너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낳은 아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내가 성장하여 스님들이 쓰시는 발우(鉢盂)의 제작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은 것도 어머님의 말씀과 무관하다고...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경(揚卿), 호는 추곡재(楸谷齋). 참찬(參贊) 김충익(金冲益)의 후손이며, 참판(參判)에 증직(贈職)된 김신추(金愼樞)의 아들이다. 김익웅은 어버이를 효로 섬겼고 담력이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의 상중인데도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하간. 제학(提學) 김신민(金新民)의 후손이자 선무량 김영진의 증손이다. 김재백은 어려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문하에 나아가 유학과 예론 등을 공부했으며, 1682년(숙종 8)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스승 송시열이 유배될 때 스승의 무죄를 상소하기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숙(止叔), 호는 수성재(守性齋).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감정(監正) 김취련(金就鍊)의 아들이다. 김정은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고, 옳지 못한 것을 보면 분함을 참지 못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였으며,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시묘를 극진히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청(子淸), 호는 월호(月湖). 고려에서 판서를 지낸 수은(樹隱) 김충한(金冲漢)의 후손이며, 장사랑(將仕郞) 퇴한재(退閑齋) 김천로(金天老)의 아들이다. 정유재란 때 순절한 판윤(判尹) 김경로(金敬老)의 조카이기도 하다. 김집은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폄재(砭齋) 최온(崔薀), 해서(海西) 오정길...
-
고려 말기 전라북도 남원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수은(樹隱). 대제학(大提學) 김인경(金仁鏡)의 고손자이다. 본래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나 남원으로 귀양 와서 살게 되었다. 관직은 봉익대부예의판서(奉翊大夫禮議判書)에 이르렀다.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두신리에 신도비와 세거비가 있고, 두남사(杜南祠)에 제향되었다....
-
통일신라시대 남원태수를 역임한 귀족.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泰). 태종무열왕의 9세손이며, 왕위를 원성왕(元聖王)에게 빼앗긴 김주원(金周元)의 증손이다. 시중(侍中) 김장여(金璋如)의 아들이며, 김양(金陽)의 사촌형이다. 김흔은 822년(헌덕왕 14) 당나라의 국자감에 가서 수학하고, 1년 뒤 당나라 목종(穆宗)으로부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시태상경(試太常...
-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한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의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역사. 남북국시대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 신라와 발해가 대립하던 시기부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서기 936년까지를 의미한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936)하면서 남원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신라에서는 백제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의 하나로 685년(신문왕 5)에 남...
-
남원이 유서 깊은 도자기 고장이었다. 정유재란 때 남원의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생활해야 했고, 그 곳에서 일본의 도자기 수준을 향상시켰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고향 남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불렀으며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노래가 오리 노래이다. 1994년 남원문화원에서 이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오리 노래탑을 세웠다. 남원은 전라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 경내에 있는 통일 신라의 승려 홍척대사(洪陟大師)의 승탑비. 실상사에 있는 증각대사의 탑비이다. 증각대사는 일명 홍척 국사, 또는 남한 조사로 불리며, 통일 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다.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는 그의 입적 후 세...
-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판상석이나 할석을 사용하여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든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무덤. 돌방무덤은 구덩식과는 다른 굴식으로 된 매장 시설로서 무덤방의 측면을 통해 추가장이 가능한 구조이다. 한반도의 돌방무덤은 중국 묘제의 영향으로 축조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유행하였다. 백제의 돌방무덤은...
-
전라북도 남원시의 1세기 중반에서 서기 7세기 중반까지의 역사. 일반적으로 삼국시대는 삼국이 형성되면서부터 백제(660), 고구려(668)가 멸망할 때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들 나라 외에도 가야와 부여 등의 나라와 함께 소규모의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중반까지 남원 지역에는 섬진강 유역의 마한과 남강 유역의 변한이 있었다. 섬진강 유역은 마한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로,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신익룡의 처 이씨는 시집 온 지 몇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멀리 떨어진 마을의 친족 모임에 나갔다가 날이 어두워 귀가하던 중 갑자기 반노(叛奴)와 맞닥뜨렸다. 이들은 남편을 죽이려고 하였고 술에 취한 남편은 말에서 떨어져 인사 불성이었다. 이때 이씨는 위험...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에 속하는 행정리. 주변의 지세가 아담스러워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마을로서 피난처로 알맞아 초기에는 마을 이름이 야동(夜洞)이라 불리다가 경주김씨의 집성촌이라 하여 경주의 옛 이름을 따서 월성(月城)이라 하였다. 그 후 밤나무를 많이 심어 소득을 올리면서 유명해지자 1930년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밤골’이라 불렀다. 그 후 율동(栗洞)...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 율동마을에서 음력 12월 31일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율동마을은 원래 야동(夜洞)으로 불렸는데, 약 2백여 년 전 경주김씨들이 이주해 오면서 경주의 옛 이름을 따서 월성(月城)이라 호칭하였다. 그 후 1910년경 밤나무로 많은 소득을 올리면서 자연스레 밤골로 불리다가 율동(栗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산제는 처음...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존중(存中), 호는 퇴사암(退思菴). 감사를 지낸 이감(李堪)의 손자이다.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음직으로 관계에 들어가 참봉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퇴사암(退思菴)이라고 호를 짓고 학문을 연마하며 세월을 보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주에서 조헌...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선(而善). 대사간(大司諫) 검재 이감의 현손자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이조참판을 증직(贈職)으로 받은 이윤의 손자이다. 사복시(司僕寺) 첨정(僉正) 이천행(李天行)의 아들이다. 이희는 가법을 이어받아 행실이 바르고 출중하였으며, 육촌 형인 충장공(忠壯公) 이흘을 본받아 섬기며, 어려움이 닥치면 능히...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인헌(仁憲). 시중(侍中) 정현영의 후손이며, 참판 정염팔(鄭廉八)의 아들이다. 정덕승은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호군이던 그는 성만 최연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위해갔다. 적병의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밤낮으로 힘을 다하여 남한산성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광여(匡汝), 호는 송계(松溪). 안숙공 정종보(鄭宗輔)의 14세손이며, 정일화(鄭一華)의 아들이다. 정원세는 1732년(영조 7)에 전라북도 남원군 대강면 평촌리에서 태어났으며, 지기가 굳고 효와 충을 지극히 하였다. 일찍이 모친의 상을 당하여 애통해하는 모습이 도에 지나칠 정도였다. 나라에서 첨의벼슬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단종의 충신인 정흥덕의 7세손이며, 감찰 정훈(鄭勳)의 아들이다. 정원형은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예의범절을 잘 지켰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하자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모의청에 가서 종사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국왕이 남한산성으...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죽재(竹齋). 병조판서와 세자빈객을 역임하고, 단종의 충신인 정흥덕의 7세손이며, 감찰 정훈(鄭勳)의 아들이다. 정원훤은 효우가 돈독하고 옛 법도를 잘 지켰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아버지의 명으로 형 정원형(鄭元炯)과 함께 군량과 무...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가구(可久).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동생 정효종(鄭孝終)은 2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4년(단종 2)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경연사경(經筵司經)으로 있으면서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
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인. 수남방옹(水南放翁) 정훈(鄭勳)[1563~1640]은 조선 중기 광해군과 인조 연간에 주로 활동했던 문인이다.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며,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친을 모시고 남원으로 피란하였다가 그곳에 우거하며 생을 마쳤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방로(邦老), 호는 수남방옹(水南放翁). 남...
-
나는 1956년 4월 1일 생으로 나이는 만 50세이다. 전주 최씨이고,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가 고향으로 1988년까지는 이곳에서 살다가 결혼 3년 후인 1988년에 남원시 쌍교동으로 분가한 후 1991년부터 이 곳 향교동에서 살고 있다.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초등학교는 남원시 주생면에 있는 주생초등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는 남원 용성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다닐 때는 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동학 교주. 본관은 경주(慶州). 아명(兒名)은 복술(福述). 본명은 제선(濟宣)이며 자는 도언(道彦), 호는 수운(水雲). 아버지는 최옥(崔鋈)이며 어머니는 한(韓)씨이다.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 종교 체험을 통하여 득도한 후 1861년 11월 경주를 떠나 제자 최중희(崔仲羲)를 대동하고 12월경에 남원으로 들어왔다. 최제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