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이곡부락에서 전해 내려오는, 병든 아버지를 구한 효자 이야기. 병든 아버지를 위해 지리산으로 노루를 구하러 간 아들이 산신령을 만나 노루를 얻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드렸다는 이야기이다. 1979년 8월 2일에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이곡부락에 사는 오천연(남, 64)이 구연한 것을 최래옥·강현모가 채록하여, 1980년에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
-
남원이 유서 깊은 도자기 고장이었다. 정유재란 때 남원의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생활해야 했고, 그 곳에서 일본의 도자기 수준을 향상시켰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고향 남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불렀으며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노래가 오리 노래이다. 1994년 남원문화원에서 이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오리 노래탑을 세웠다. 남원은 전라도...
-
남원은 판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전통 음악, 예컨대 좌도 농악이나 가야금·거문고·대금 등에서도 훌륭한 전통을 이어온 곳이지만, 남원이 국악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것은 단연 판소리 때문이다. 남원의 판소리 전통은 너무 깊고 넓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판소리는 남원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은데, 특히 「춘향가」에는 남원 지역의 많은 설화들이 스며들어 있다....
-
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시. 동남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전라북도 임실군과 장수군에 접한다. 인구는 2009년 말 현재 88,496명,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1월 1일 남원군과 남원시가 통합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고룡군...
-
지금은 옮겨갔지만 70여 년 동안 남원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남원역의 뒤에는 조그만 철책 안에 ‘만인의총유지(萬人義塚遺址)’라는 조그만 돌 표지석이 서 있다. 이 자리에서 동쪽으로 100m 거리에는 남원성 북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 남원역의 구내이다. 만인의총 유지 바로 뒤쪽에서부터 남원성 북문 자리로는 남원성의 북쪽 성벽이 가로...
-
남원 추어탕은 섬진강의 지류인 소하천이나 개울에서 자라는 미꾸라지를 잡아 남원 지역의 토란대와 운봉 지역의 고랭지 푸성귀를 말린 시래기를 주재료로 넣어서 탕으로 끓여 만든 미꾸라지국으로, 전국적인 사계절 보양 음식이자 남원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남원은 선사 시대 이래 천혜의 자연 환경인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유하는 전라도 동부 산악원의 중심 도시로 그 영역...
-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도로망 형태는 지형적인 요인으로 남북 축으로 이루어져 있어, 횡축 방향의 교통체계는 미흡한 편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광양만의 동북아 대형 중추항만 발전계획으로 중요성이 커지는 광양~남원~전주 간 고속국도가 건설 중에 있다. 또한 광주~남원~대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칙(士則). 헌납(獻納) 박증영(朴增榮)의 고손자이며, 이조판서에 증직된 박훈(朴薰)의 증손이다. 박은종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장(部將)에 이르렀다. 이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적이 하동으로 침입해오자, 장사 300명을 모아 무기를 갖추고 구례 석주(石柱)로 나아가 막았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쓰이는 토박이 언어를 통칭하는 말. 방언이란 공통어나 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만의 특유한 단어나 언어 사용법을 말한다. 보통 사투리라고도 불리나 이 단어는 규범적인 면에서 다소 비하된 개념이므로 언어학 용어로는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비해 언어학적 방언이란 한 언어가 분지적으로 발달하여 몇몇 개의 지역적으로 다른 언어 체계로 분화되었을 때...
-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기운이 높디높은 지리산을 형성하였다. 우리나라의 끝에 지리산이 있고, 백두대간의 끝자락이 지리산이다. 신령스럽고 웅장하기 그지없는 산, 남쪽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산이 지리산인 것이다. 지리산은 넓고 장대한 만큼 잘 개척된 주요 등산로만 50여 개 이상에 이른다. 지리산 서쪽의 최고봉 노고단에서 정상인 천왕봉까지 45㎞에 걸친 장...
-
뱀사골 이름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현재 전적기념관은 ‘송대사’라는 절터였다. 이 절에서는 섣달 그믐이면 노스님이 한 명씩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기이하게 여겨 원인을 밝히고자 밤나무로 스님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에 승복을 입혔다, 그리고는 밤나무로 만든 스님 형상에 비상을 발라두고 옷고름에는 명주실을 매어 두었다. 그 해 섣달 그믐에도 예외없이 자정...
-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로 좌익 계열과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지리산에서 조직된 유격대를 일컫는다. 지리산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은 민족사의 최대 비극이다.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자행된 살육과 약탈에서 보면, 빨치산이든 국군·경찰이든 모두 피해자였다. 또한 누대로 지리산 자락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무고한 주민들이 입은 인적·물적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평화와 용서 그리고...
-
서명분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천 가는 도중에 금대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그런데 부엌 앞에 큰 바위가 있어서 밥을 하러 갈려면 스님이고 공양주고 간에 애를 먹었대. 하루는 마천의 내마, 외마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옮겨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했어. 장정들이 모여 내일 아침에 옮기기로 약속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대. ‘부처님의 신통력이 있으면 이런 정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에 있는 국유림을 관리하기 위한 산림청 산하 행정 기관. 남한 내륙의 지리산과 섬진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에 펼쳐진 국유림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2년 5월 30일 서울영림서 남원·무주관리소가 설치되었다가 1969년 11월 서울영림서 직제 개편으로 남원·하동·함양·무주 관리소가 남원관리소로 통합되었으며, 1972년...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1,151m]의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전라북도 남원시와 전라남도의 동부 지역을 남류하여 경상남도 하동군과 전라남도 광양시 경계에서 남해로 흘러드는 국가하천. 남원 지역의 하천들을 동일한 하구로 흐르는 수계별로 구분하면 크게 낙동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로 나눌 수 있다. 운봉읍·산내면·아영면·인월면은 낙동강 수계에 속하고 나...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에 요천(蓼川)을 건너는 윗삽다리와 아랫삽다리 두 개의 다리가 있어 삽다리 또는 삽리라 하였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두 개의 다리’를 뜻하는 쌍교(雙橋)라 부르게 되었다. 1300년경 영천이씨(寧川李氏)들이 지금의 쌍교동 사무소 부근의 정문동[정문거리]으로 불리는 곳에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당시 오정자, 정문동,...
-
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의 전달, 오고 가는 관리들의 숙박에 활용되었다. 고려 성종대에 와서 더욱 구체화된 역참제는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구성되었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이 시기에 전라도에는 전공주도(全公州道) 21개 역...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하동(河東). 한림 정임(鄭霖)의 7세손이다. 정기남은 1592년(선조 25)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봉에 서서 적병을 크게 무찔렀다. 선조의 어가(御駕)가 의주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호위하였다. 그 공으로 감찰이 되었으며, 내금위장, 별군직 등을 역임하였다. 김해부사(金海府使)·부령부사(副寧府使)·창성부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응성(應聖)이고, 익혜공 정난종(鄭蘭宗)의 후예이며, 참봉 정대훈(鄭大勳)의 아들이다. 정기수는 힘이 세고 기개가 있었으며, 1574년(선조 7)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정에 이르렀다. 그는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 때 그의 6촌 아우인 정지심·정지우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들과 함께...
-
본인이 믿고 있는 종교는 없다. 마을에는 목사도 한 명 있고 스님도 한 명 있다. 그러나 목사는 목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으며 마을 주민들 중에서 기독교 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스님은 암자처럼 집을 꾸며 두고 있으나 그 곳에 다니는 주민은 한 명 정도 있다. 대신 비손을 하는 사람은 있다. 몸이 좋지 못하거나 일이 잘 안될 때 그리고 출산을 앞두고 비손하는 사람을...
-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정인지(鄭麟趾)는 조선 초기 문신으로 대통력(大統曆)과 역법(曆法)을 개정하였으며 천문·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다. 김종서(金宗瑞) 등과 『고려사(高麗史)』를 찬수하였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컸다. 안지(安止)·최항(崔恒)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음으로써 국어·국문학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하...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운봉읍, 산내면에 걸쳐 자리한 지리산 둘레로 조성된 숲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를 환형으로 연결하는 장거리 도보 길로 3개 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 5개 시군[남원시·구례군·하동군·산청군·함양군], 20개 읍면, 120여 개 마을에 걸쳐 있는 장거리 도보 길을 말한다. 2007년 1월 설립된 ‘숲길’에서 조사와 정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