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죽헌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만들어진 개화기 이전의 문학. 논산 고전문학의 대상 범위는 논산 지역에서 출생하거나 활동한 인물들의 문학과 타 지역 출신이면서도 논산 지역을 대상으로 묘사한 작가와 문학작품이다. 논산 지역 관련 고전문학에서 한문으로 쓴 것들은 주로 이 지역 인물들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문집은 문학, 역사, 철학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대부분 시와 같은 문학작품을...
-
서필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이며 만죽헌 서익의 증손이다. 1614년 서운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는 부친과 조부가 ‘칠서의 옥’으로 인해 유배 중이었던 탓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칠서의 옥’은 7명의 서얼 출신 인물들이 영창대군을 보위에 올리려 역모하였다는 사건으로 당시 부여서씨 서양갑이 연루되어 그의 집안이었던 부여서씨들...
-
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아들 서융(徐隆, 부여융이라고도 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융은 660년(의자왕 22)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멸망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다. 당나라 고종은 서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후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서융의 원손으로...
-
마을 중앙에 자리한 행림서원은 부여서씨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자랑거리로 조선시대 그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행림서원의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서씨 집안에서는 1867년으로 보고 있으며 만죽헌 서익과 도애 이소(李韶, 1564~1646)를 배향하고 있다. ‘행림’이란 이름은 서원 앞에 서익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두 그루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그...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여(夫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만죽헌(萬竹軒). 아버지는 서진남(徐震男)이고, 어머니는 직제학 이약해(李若海)의 딸로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서익은 1554년(명종 9) 13세 때에 향시에 장원하고 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병조좌랑, 이조좌랑, 교리, 사인을 역...
-
부여서씨 집안의 대표적 인물이자 육곡리 봉례공파 후손들의 자랑인 서익 선생은 논산에 이거해서 뿌리를 내리고 대표적인 큰 가문으로 성장하는데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서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 또는 만죽헌(萬竹軒)이다. 1542년 태어나 1569년 처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던 중 1585년 의주 목사 재직 당시 정여립 등...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행림서원은 1867년(고종 4)에 세워진 부여 서씨의 문중 서원으로, 육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부여 서씨들의 상징적 유물이기도 하다. 논산시내에서 은진 사거리 쪽으로 가다가 왼쪽 가야곡면 방향으로 약 5㎞ 직진하면 노래골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야촌리 사거리 방면으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2㎞ 직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