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곡리
-
축관이 축을 읽고 함께 절을 한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소지를 올릴 차례가 된다. 소지는 마을의 대동소지부터 먼저 올리고 이장소지, 각반의 반원의 소지를 반장이 올린다. 이것을 시작으로 제관들과 여러 마을의 대표들이 각 가정의 소망을 이야기 하며 소지를 태워 올리는데, 이때는 크게 소리내어 소원을 빈다. 마을사람들의 다양한 소원을 담아 올리는 소지는 완전하게 잘 타올라야 소원 성취가...
-
마을 청년 중에서 일곱 번째로 젊은 양성직(52) 씨는 주곡리에서 태어나 농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버지는 8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남매 중 첫째인 그는 어린 나이에 3명의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책임져야 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터는 목수였던 작은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 일을...
-
마을의 모든 대소사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참여하는 동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곡리 동계는 1935년부터 마을 조직으로서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나 수 십 년 동안 마을 일을 돌봐오던 동계는 1972년 새마을 운동의 물결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주곡리에는 1972년도에 처음 새마을 운동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동계는 변화의 바람 속에 원래 역할이 크게 사라지게 되...
-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통을 이어갔던 주곡리 장승은 해방 후에 급속도로 산업화되는 사회가 전개되면서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자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고 전근대적 미신 타파, 부락제의 경비 절감으로 인해 수많은 마을 장승들은 급격히 소멸되어 갔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주곡리 장승 또한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곡리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이 지은 고택. 이삼 장군 고택은 1727년(영조 3) 이삼이 훈련대장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2등공신 함은군에 피봉되고, 건립비를 하사받음에 따라 지은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이다. 1985년 충청남도에서 안채와 사랑채를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하였다. 국도 23호선 노성면 나들목을 통해 지방도 6...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논산 백일헌 종택은 백일헌(白日軒) 이삼(李森)[1677~1735]이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영조로부터 받은 하사금으로 1700년대 초 지은 전통 가옥이다. 창건 당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가옥 내 영역 구성 수법이나 동선 체계 등 건축 구조나 양식적인 면에서 가치가...
-
주곡리는 1981년에 논산시에서 최초의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었다. 주민들은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된 이유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범죄가 없으니께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했지. 이게 뭐 도둑이 없다는 소린가? 도둑은 밖에서 들어오는 건디, 우리끼리 잘 지낸단 소리지, 다툼 없고 잘 지내니께. 특별한 사연이 뭐가 있겄어.” 이처럼 주곡리는 맘씨 좋고, 착하기로 면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청주 양씨 선조를 제향하는 사당. 논산 충헌사는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를 주향으로 하고,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 등을 제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양기의 본관은 청주, 호는 암곡, 시호는 충헌이다. 양치는 양기의 증손으로 호는 퇴은(退隱)이다. 세종 때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개척하고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황...
-
여느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61세가 되면 주민들은 노인회에 가입을 한다. 남자들은 노인회에, 여자들은 안노인회에 가입을 하는데, 워낙에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마을사람 대부분이 노인회 회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회에서는 마을회관 관리나 마을 길 청소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그러나 주곡리 노인회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노제(路祭)’이다...
-
주곡리는 마을 곳곳에 우물이 많아 물 걱정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한다. 마을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4개의 우물을 포함해 개인이 사용하는 것까지 총 12개가 있었다.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주곡리를 크게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구분하였을 때, 우물 수와 수질 면에서 두 동네가 다른 환경에 있었다. 윗동네의 경우 아랫동네보다 우물 수가 적고 수질이 좋지 않았다. 반대로 아랫동네는...
-
주곡리 마을 발전의 원동력은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여러 공동조직에서 나온다. 청년회와 부녀회, 노인회 등이 그것인데, 특히 주곡리 부녀회는 마을의 살림살이뿐 아니라 시ㆍ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행사와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돕는다. 화합이 좋은 마을 사람들은 자주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부녀회에서 어르신들과 마을주민들의 식사를 모두 책임진다...
-
현재 논산의 시의원인 이계천 씨는 주곡리 마을의 자랑스런 인물 중 한 명이다. 1962년 주곡리에서 4남 3녀 중 2남으로 태어난 이계천 씨는 출생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함평이씨 선조 이삼 장군의 탄생일과 같은 날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아이로 집안과 마을에서 장군감으로 유명하였다. 어려서 형편이 어려웠던 이계천 씨는 7살부터 농사를...
-
오랜 세월동안 꿋꿋하게 전통을 이어온 주곡리 장승제는 과거 존폐와 관련하여 두 번의 큰 위기를 맞았었다고 한다. 바로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주곡리에서는 매년 6기의 목장승(4기)과 짐대(2기)를 깎아 세웠으나, 일제는 삼림법을 엄하게 적용하여 장승목으로 쓸 나무를 벌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매년 새 나무로 장...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유형에 따라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 등으로 나뉘고,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구분된다. 2008년 현재 논산시에는 국가지정문화재 12점(보물 7점·천연기념물 1점·사적 2점·중요민속문화재 2점), 도지정문화재 44점(유형문화재 24점·무형문화재 1점·기념물 15점·민속자료 4점),...
-
주곡리 마을에서 양산계곡을 찾아 깊숙이 들어가면, 널찍한 바위 위에 선명한 글씨가 새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위 위의 글씨를 자세히 살펴보면 ‘삼우대 대공수자류(三友臺, 臺空水自流)’라고 쓰여 있는데, 예전에는 바위 한가운데에 맑은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마을 속 깊은 계곡 바위 글씨에는 벌써 천 년 전의 전설이 함께 내려져 오고 있다. 고려 초에 일어난 일이다....
-
주곡리는 계룡산 줄기에 기대어 주변의 산이 마치 삼태기 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마을 입구 방죽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이 살짝 마을 안을 가려주어 안온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마을 앞으로는 풍요로운 농토가 펼쳐있고, 갑사 계곡에서 흘러나온 노성천이 유유히 흐른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주곡리는 그 전통과 역사성 덕분에 논산의 역사마을로 선정되기도 하...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본래 노성군(魯城郡) 월오면(月午面), 상도면(上道面), 하도면(下道面) 지역으로, 월오면은 산성(山城)·원동(院洞)·주막(酒幕)·학당(鶴塘)·통산(通山)·중리(中里)·낙동(樂洞)·신리(新里)·충보(忠洑)·당산(堂山)·산소(山所)·왕정(旺井)의 12개리를 관할하였고, 상도면(上道面)은 무등리(無等里)·가척리(加尺里)·대야동리(大野洞里)·대명동리(...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술골에서는 장승을 마을의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장승제를 지낸다. 마을 입구 장승거리에 있는 남녀 장승은 각각 ‘천하대장군축귀신(天下大將軍逐鬼神)’과 ‘지하대장군축귀신(地下大將軍逐鬼神)’이라고 명명(命名)된다. 그 옆의 짐대에는 긴 장대에 나무로 깎은 오리를 앉혔다. 이들 장승과 짐대는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장승제는 기본적으로 분향(焚香)-...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에서 칠월 칠석과 백중을 전후하여 행하던 7개 마을의 연합 두레. 과거에는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를 공동으로 하기 위해 각 마을에서 두레를 조직하였다. 논산 지역에서도 대부분의 마을에 두레 조직이 있었다. 마을 별로 모내기를 마치면 두레를 총괄하는 좌상이 마을 총회를 소집하여 두레회의를 연다. 이때 좌상과 총각좌상을 비롯한 두레의 임원과 품값, 논...
-
주곡리 장승제는 논산시 향토유적 제2호로 선정된 유래 깊은 전통행사이다. 그러나 장승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오랫동안 마을에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하나는 조선 중종 연간에 청주양씨 첨정공 양춘건(楊春健)이 인근 신도내에서 숯골로 이사한 후, 동구 밖에 장승을 만들어 놓고 나라의 안정과 마을수호를 위해 제를 지내...
-
주곡리의 청주양씨는 서원백파(西原伯派)로 원래 한양에서 살다가 중종연간에 첨정공 양춘건이 주곡리에 정착하였다. 현재도 청주양씨는 마을 인구의 50~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마을에 사람이 한창 북적이던 1970~1980년대는 70%가 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장, 새마을지도자, 동계 회장, 총무 등등 대부분의 주요직을 맡고 있어 마을 일에 적극적이며, 마을 내에 가장...
-
2008년 5월 8일 아침. 부녀회원들은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고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동계 임원들은 전체 행사의 진행을 위해 분주히 돌아다닌다. 이날은 어버이날이자 주곡리 마을의 노인잔치 날이다. 이제 행사가 1시간 남짓 남았다. 곧 있으면 동네 모든 이들이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일 것이다. 올해에는 부녀회에서 특별히 생선회와 떡을 비롯한 돼지고기, 홍어, 과일 등 많은 음식을...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관한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에서는 「神農遺業」(신농유업)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인 농기가 있다. 이 농기의 크기는 가로 240cm, 세로 360cm 정도이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깃대는 그 높이가 무려 15~17m에 이르렀다고 하니, 당시 농번기마다 들썩였을 두레의 규모를 상상해 볼 만하다. 1906년에 만들어졌다는 바로 이 농기가 다름 아닌 주곡리 마을 두...
-
장승배기와 우물을 청소하고 금줄을 치는 동안, 톱을 든 마을사람 양성직 씨와 몇 해 전부터 장승 깎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문화재 조각 기능인 김태길 씨를 필두로 마을 청년들 몇몇이 장승으로 쓰일 나무를 베러 간다. 원래는 나무를 고를 때에도 소나 말, 닭 또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깊숙이 찾아 들어가 적당한 곳에 다다르면 술 한 잔을 붓고 엄숙하게 기도를...
-
주곡리의 윗뜸, 아랫뜸, 망가리는 청주양씨(淸州楊氏), 함평이씨(咸平李氏), 전주이씨(全州李氏)의 터전이기도 하다. 주곡리에 처음 터를 잡은 것은 윗뜸의 청주양씨로 전해지는데 입향조인 첨정공 양춘건이 중종 연간에 신도내에서 이곳 주곡리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그 후, 터를 잡고 살던 청주양씨와의 혼인으로 인해 함평이씨와 전주이씨가 각각 주곡리에 들어와 아랫뜸과...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사길의 묘비. 이사길(李師吉)은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나 사산감역관을 지내고 임기를 마칠 즈음에 병을 얻어 사망하자 노성 술골(주곡리)에 장사하고 후에 묘비를 풍비로 세워놓았다. 이사길은 1703년(숙종 29)에 사망하였는데, 1711년(숙종 37)에 아들이 출세를 하여 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에 증직되었다. 이에...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영조의 아낌을 받아 백일헌(白日軒)이라는 호를 받았다. 함평군 이사길(李師吉)과 남양전씨 사이에서 1677년(숙종 30)에 태어났다. 이삼의 가계는 상계로 올라가면 무반 가문의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고조 이후는 문반으로서의 성향이 더해져, 이삼이 ‘문무겸전’의 인물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삼은 윤증의...
-
주곡리에 함평이씨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함평군 이사길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사길이 언제 어떠한 이유로 양주에서 주곡리로 들어와 살게 된 것인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며, 후손들에게도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이사길이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 1616~1677)의 사위라는 점만이 그의 입향을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 아마도 처향을 따라 주...
-
이장 양현직 씨는 말했다. “안 힘드냐고? 힘들지, 그래도 하면 좋아, 바쁘고 귀찮아도 다들 알아주니께...” 이장은 행정구역의 최말단인 ‘리(里)’를 대표하여 모든 마을 일을 맡아보는 마을 대표이다. 양현직 씨(61)는 주곡리 15대 이장으로 마을 안팎으로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 60세 이하의 주민이 거의 없는 주곡리로서는 그나마 젊은 편에 속하는 양현직 씨가 행정업무와 모...
-
주곡리 전주이씨의 입향 과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청주양씨와의 혼인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하나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취 등 선대의 묘역이 경기도 고양, 양주 일대에 있다가 이취의 고손자인 이만근(李萬根, 1658~?)의 묘가 주곡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600년대 후반 이후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 앞에 큰길이 있었는데, 그 큰길에 술집이 많이 있어서 술골 또는 주막거리라 한 데서 주곡리라 이름 붙여졌다. 충청남도 노성군 하도면(下道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주막리(東酒幕里), 서주막리(西酒幕里)를 병합하여 주곡리(酒谷里)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
주곡리는 논산시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마을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동서로 주막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북적이던 곳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버스도 하루에 다섯 번 밖에 찾지 않을 만큼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자가용으로 마을에 들어가는 길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논산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를 따라 약 11㎞정도 가다 보면, 노성면...
-
주곡리 마을회관 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회관 앞으로 하나 둘 모이는 오토바이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마을회관에 모이는 오토바이들은 대략 10~20대 정도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수이며 마치 하나의 부대를 보는 듯도 하다. 이렇게 모인 마을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날의 일상이나 자신들의 이야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주곡리 술골 장승제는 부인당 산제와 더불어 논산 지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마을 제사이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치성을 받는 장승과 솟대[오릿대]는 마을 어귀 양쪽에 마주보고 있는데, 장승제를 지내면서 깎아 세운 20여 기의 목장승군이 장관을 이룬다. 이 마을 장승제...
-
장승제를 치르기 열흘 전, 마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며 풍장굿을 한다. 이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문을 열어 환영한다. 풍장굿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장승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걸립을 하는 것인데, 일종의 공동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활동인 것이다. 요즘에는 객지로 나간 사람들이나 농사를 짓지 않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들도 이때가...
-
이방헌 씨가 전해주는 주곡리 장승의 유래는 고려 말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마을에 장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천하일색으로 널리 소문난 강충신의 부인을 호시탐탐 탐을 내었다. 그러던 중 멀리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장정승이 강충신의 부인을 가로채고자 마음먹고 강충신을 자신을 돕는 부사로 함께 가게 하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장정승은 결국 강충신의 목숨을 빼앗...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 논산시는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지닌다. 본시의 개략적 지형은 서쪽인 금강 본류 쪽으로 트인 저위평탄면 형태로, 동쪽과 남쪽에 해발고도 200m 이상의 산지가 분포한다. 즉 동북부에서 동남부에 이르는 일대는 계룡산지와 대둔산 줄기가 연결되어 험준한 산악지를 형성하며, 이들 산지에 인접한 지역에는 해발고도 50m 내외의 산...
-
양기를 시조로 하고 양춘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는 청주양씨, 함평이씨, 전주이씨 세 집안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청주양씨는 주곡리의 터줏대감이라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 1920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따르면, 1920년대 논산의 동족마을에 대한 자료에서 청주양씨가 상월면 주곡리에 동족마을을...
-
우리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상의 양명석(65) 씨는 주곡리에서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평범한 주민이다. 이런 양명석 씨가 일 년에 딱 한 번 자신의 숨겨온 솜씨를 보여주는 날이 있으니, 그날이 바로 장승제를 지내는 날이다. 양명석 씨는 장승제의축관을 맡아 축문을 쓰며, 장승에 「天下大將軍逐鬼神」(천하대장군축귀신), 「地下女將軍逐鬼神」(지하여장군축귀신)이라는 명문...
-
대부분의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곡리에서는 특히 1980년대부터 딸기재배가 도입되어 마을의 주된 환금작물로 자리를 잡았다. 딸기 심어 대학 보낸다고 할 정도로 한때는 수익률이 높았던 작물이었기 때문에 금방 확산이 되어 대부분의 농가에서 벼농사와 딸기재배를 함께 하고 있다. 한 동네에서 한두 가지 특수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중에서도 혼자 토마토를 키우며 토마토를...
-
주곡리가 고향인 이경헌은 마을의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경헌의 아버지는 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으로 유랑을 떠난 후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이경헌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그의 농담을 그저 쉽게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산 밑의 오두막에 혼자 어머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