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현
-
1872년 팔도감영에서 전국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고지도에 수록한 연기현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 3개월에 걸쳐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완성된 지도가 도별로 수합되었다. 수효는 모두 461장에 이른다. 『1872년 지방지도』 제작 시 진영(鎭營)을...
-
1872년 팔도감영에서 전국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고지도에 수록한 전의현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 3개월에 걸쳐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완성된 지도가 도별로 수합되었다. 수효는 모두 461장에 이른다. 『1872년 지방지도』 제작 시 진영(鎭營)을...
-
고려시대에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가림현(嘉林縣)은 고려시대 지명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부강면(芙江面)은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芙蓉面)이었지만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이 되었다. 현재 서남쪽으로는 금남면과 대전광역시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
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승로와 김오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강릉김씨 송오공파(松塢公派)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승로가 고려가 멸망한 직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으로 입향하였다. 기은공파는 임진왜란 때 김오가 전란을 피해 외향(外鄕)인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으로 이주하였다...
-
이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강진이씨는 고려 후기 역적으로 몰린 이진(李珍)이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눌왕리]에 입향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연기면의 수산리와 갈운리, 고정리[현 도담동, 아름동] 일대에 후손들이 거주하였다. 이진[1300년대 인물]은 고려 충렬왕조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308년(충선왕...
-
최익후를 시조로 하고 최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강화최씨는 제정공파의 최완이 16세기 중엽에 처향인 연기현으로 입향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조치원읍 봉산리에 세거하였으며 입향조의 묘소와 후손들의 효열 정려 등 관련 유적이 남아 있다. 강화최씨의 시조는 고려시대의 문신 최익후(崔益厚)이다. 최익후는 문과 출...
-
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하를 중시조로 하며 장효충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결성장씨는 장효충이 16세기 초에 사화를 피해 처향인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곡리]으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전의면, 연동면, 연서면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결성장씨의 시조 태사공 장정필(張貞弼)은 태조 왕건을 도왔던 인물로 알려져...
-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세종 지역을 포함하여 건설된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공사. 경부선 철도(京釜線鐵道) 부설 공사는 1901년에 착수하여 1904년 완공되었다. 경부선이 전의군, 연기군을 통과하기 때문에 경부철도부설공사에 전의 지역과 연기 지역의 많은 노동력이 수탈되었다. 조선 최초로 설치된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된 시기 세종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 세종특별자치시는 도읍지 개경으로부터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연기현(燕岐縣)과 전의현(全義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의현은 940년(태조 23) 청주에 영속되었다가 조선 전기인 1395년(태조 4) 감무를 설치하였다. 연기현은 1018년(현종 9) 청주에 영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주민들은 마을 뒤에 있는 비룡산을 고산(高山)이라 불렀고 아래에 위치한 마을을 복골이라 호칭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복리(高福里)가 처음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 지역이었다. 1914년 연기군 북이...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고운동은 ‘곱다’의 우리말로 대규모 주택 단지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아름답고 고운 주거 이미지를 강조한 명칭이다. 고운동은 가락마을로도 불리는데, 고운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가락골을 활용한 것이다. 고정리에 자리한 가락골은 갈림길에 있는 마을, 가락처럼 좁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의미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과...
-
전근대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세종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 세종특별자치시의 전신인 충청남도 연기군을 중심으로 세종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을 각각 조선시대부터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이후, 대학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은 관학인 향교, 사립교육기관인 서원과 서당이 있다. 세종[구 연기] 지역에는 연기현 연기향...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에 국화(菊花)가 많이 자라고, 국화꽃이 활짝 피어 국화 향기가 가득한 마을로 널리 알려져 국촌(菊村)이라고 불리었다. 국촌리에는 국말, 가느실, 후덕골, 독골 등 자연 마을이 있다. 국말마을은 가을에 국화꽃이 활짝 피어 붙은 명칭으로, 국촌(菊村)이라고도 한다. 국말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가느실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가늘...
-
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역. 금사역(金沙驛)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갈운리에 있던 역으로, 성환역(成歡驛)의 작은 소역이었다. 금사역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갈운리는 2012년 7월 아름동, 도담동과 함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 해밀리에 편입·분리되었다. 금사역은 갈운2리의 양지마을과 국도 제1호가 접해 있는 갈운리 검새울 마을 공동묘지 아래...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형무를 파조로 하며 유선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기계유씨는 동정공파 유선이 조선 전기에 연기현에 입향하였으며, 연서면 성제리와 와촌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유선의 묘소, 재실 경운사, 열녀 부안임씨 정려 등 유적이 남아 있다. 기계유씨는 신라의 아찬(阿飡)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형무를 파조로 하며 유선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기계유씨는 동정공파 유선이 조선 전기에 연기현에 입향하였으며, 연서면 성제리와 와촌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유선의 묘소, 재실 경운사, 열녀 부안임씨 정려 등 유적이 남아 있다. 기계유씨는 신라의 아찬(阿飡)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의 지형(地形)이 풍수지리적으로 보아 용(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形局)과 닮아 지명을 기룡(起龍)이라고 하였다. 기룡리에는 막은골, 동막골, 은골, 자룡, 정골, 신림, 시묫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막은골[망골]마을은 기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서울로 향하는 큰길이 있었는데 도둑이 많아 길을 막아서 생...
-
1797년부터 1802년까지 연기현의 공문을 베껴 기록한 책. 『기양문적』은 조선 후기 충청도 연기현(燕岐縣)의 공문을 모아 베낀 책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1987년에 발간한 『한국지방사자료총서』 보첩편(報牒編)에 영인·수록되어 있다. 『승정원일기』 1797년(정조 21) 7월 11일 기사를 보면 연기현감(燕岐縣監)으로 윤...
-
고려 후기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의 정좌산 전투에서 활약한 무신. 1291년 5월 2일 연기현 정좌산에 주둔한 몽골의 반란군 합단적(合丹賊) 무리를 기습 공격하여 궤멸 상태로 몰아넣었으며 이후 죽전으로 도망간 잔적을 추격, 소탕한 공신이다. 김흔(金忻)[1251~1309]은 고려조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둘째 아들이다.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어릴 적...
-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순손, 홍익청, 홍인성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에 남양홍씨는 남양군파와 문정공파가 거주하고 있다. 15세기 중엽 남양군파의 홍순손이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연기현으로 입향하였고, 병자호란 때 홍익청이 처향인 전의현[전의면 서정리]으로 입향하였으며, 금남면 성덕리의 남양홍씨 문정공파는 홍...
-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순손, 홍익청, 홍인성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에 남양홍씨는 남양군파와 문정공파가 거주하고 있다. 15세기 중엽 남양군파의 홍순손이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연기현으로 입향하였고, 병자호란 때 홍익청이 처향인 전의현[전의면 서정리]으로 입향하였으며, 금남면 성덕리의 남양홍씨 문정공파는 홍...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주변에 있던 나무로 된 넓은 다리에서 유래하는 명칭이다. 다리 이름은 너더리로, 마을 안쪽에 위치하여 안너더리 또는판교(板橋)·내판(內板)으로 불리었다. 내판리에는 너더리, 역전, 새말, 연못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너더리는 널다리[板橋]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마을 앞에 널로 만든 다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역전...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노송리는 마을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이 분포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는 노송(老松)이 많아 놀뫼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노산(老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노송리에는 마근터, 노리미, 강당, 움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마근터마을은 노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소나무...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누리리는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한글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누리리는 꽃재마을로도 불리는데, 누리리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꽃재마을을 활용한 것이다. 월산리에 자리한 꽃재마을은 산등성이가 들판 쪽으로 튀어나온 고개 밑에 있다는 의미이다. 누리리는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눌왕리는 군자(君子)라는 옛말에서 유래하는 마을 명칭이다. 군자림(君子林), 눌왕산(訥旺山) 아래에 위치하여 느랑이라고도 부른다. 눌왕리에는 눌왕마을·청룡마을·왕바위마을·원댓골마을·문암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눌왕마을은 눌왕산 아래에 자리하여 느랑이라고 불렀던 마을이다. 청룡마을은 느랑이 서쪽에 있는 마을로 땅의 형세...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다솜리는 의료·복지 지구로 지명에 사랑한다는 의미가 담아 따뜻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다솜리는 글미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연기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글미논을 활용한 것이다. 글미논은 용호리에 위치한 논으로 산의 끝을 의미한다. 삼국시대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는 연기현, 고려시대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는...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와 보통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와 보통리 사이에 있는 연기향교 뒷산으로 향교 쪽에서 보면 경사가 비교적 가파르다. 앞에 있는 당산(唐山)[156.5m]과 뒤에 있는 당산(堂山)[149.1m]의 두 봉우리이다. 당산(唐山)에는 테뫼식 산성으로 토성과 석성이 있다.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 백...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도담동이라는 명칭에는 야무지고 탐스럽게 살기 좋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도담동은 도램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도담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도램말을 활용한 것이다. 도램말은 방축리의 지형이 황소의 뚜레[고삐]와 닮아 불리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했다. 1...
-
백제시대에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두잉지현(豆仍只縣)은 백제시대 지명으로, 오늘날 정부세종청사를 포함한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백제시대 지명이다. ‘두잉지’의 어의와 어형에 대한 언어학 연구를 통하여 ‘두 내가 합쳐진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연기면이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해당...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명학리는 마을과 주변의 형상이 학(鶴)과 닮아 원명학 또는 알봉골로 불리었다. 마을은 학이 앉아 있는 형국이고 뒷산의 바위는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주변은 학이 날아가는 형국으로 뒷산은 머리에 해당하고 양쪽 산은 날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명학리에는 명학, 황우재, 외태, 내태, 서당말, 원당골 등 자연 마을이 있...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문의현(文義縣)은 충청북도 청원군 부강면 일대가 소속되어 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백제 때 일모산군(一牟山郡)이었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 연산군(燕山郡)으로 고쳐지고 고려시대인 1260년(고종 46)에 문의현으로 고쳐졌다. 그 뒤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앞에 맑고 아름답게 흐르는 미호천(美湖川)을 문관(文官)이 배를 타고 떠나는 것에 비유하여 문주(文舟)라고 하였다. 많은 인물이 배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문주리에는 갈말, 골말, 건넝, 치마바우마을 등 자연 마을이 있다. 갈말마을은 문주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앞에 갈대가 많아서 붙은 명칭이다. 처음에 인천채...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보통리는 보통용수(洑通用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보물과 같은 냇물이 흐르고 연기리에서 오는 보(洑)가 마을을 지나가서 보통이라 불렸다. 보통리에는 잣띄, 보통이, 큰뜸, 새뜸, 윗뜸, 아래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잣띄는 성산 북쪽의 기슭에 자리하며 마을에 잣나무[柏子木]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다. 보통이는 보통리 들이...
-
조선시대 지역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전통 시대의 통신 시설로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는 용수산(龍帥山) 봉수가 있었다. 봉수(烽燧)는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주변에 봉황을 닮은 바위가 있어 봉바위, 부엉바위, 봉암 등으로 불리었다. 봉암(鳳岩)은 봉바위[부엉바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봉암리에는 봉암, 주막거리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봉암리는 1리·2리·3리로 되어 있다. 처음 사람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한 곳은 봉암2리이다. 현재의 봉암마을이다. 주막거리마을은 봉암 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설립된 봉암서원의 터. 봉암서원(鳳巖書院)은 1651년(효종 2)에 건립되어 1665년(효종 6) 연기현에서는 유일하게 사액을 받은 서원이다. 제향 인물은 한충(韓忠),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등이었다. 봉암서원은 다른 서원 사우들과 마찬가지로 1864년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훼...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부동리(釜洞里)는 가마골 또는 부동으로도 불리었다. 명칭 유래는 가마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옛날에 그릇 가마를 묻은 장소가 있었고, 고려시대 연기대첩 때는 밥을 짓기 위하여 큰 가마를 설치한 곳이다. 부동리에는 가마골, 치암, 방죽안, 산수골, 오룡골, 홍촉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하천 북쪽에 위치한 가마골마을은...
-
세종특별자치시 에 속한 법정동. 산울동은 산울타리에서 유래한 한글 명칭으로 푸르고 포근한 주거단지를 의미한다. 산울동은 빗돌마을로도 불린다. 갈운리에 위치한 빗돌거리는 돌로 만든 할아버지 미륵과 할머니 미륵이 있는 양지말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뒷산이 성(城)과 같아서 성재·성작골·도맥(道脈)이라고도 불렀는데 남양홍씨 학자 가운데 성제(性劑)라는 사람이 있어 마을을 성제로 많이 호칭하였다. 마을 명칭에서 제가 재로 바뀐 것은 한자 표기의 오류이다. 성제리에는 둥구리재, 서당골, 새말, 골말, 성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둥구리재마을은 성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
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김제역과 금사역이 소속된 찰방역. 성환도(成歡道)는 조선시대 때 금정도(金井道), 시흥도(時興道), 이인도(利仁道) 등과 함께 충청남도 지역에 설치된 4개의 찰방역(察訪驛) 중 하나이다. 본역인 성환역과 속역 11개를 관할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의 김제역과 연기면 해밀리의 금사역이 조선시대 때 성환도의 속역 11개에 속하였다. 조선...
-
세종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 역사상 성씨의 유래를 보면 이미 백제시대에 8대 성(姓)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세종특별자치시의 성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지리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리지는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기록이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성씨 기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연기현과 전의현 외에 지금...
-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897m] 동쪽 사면에 있는 뜬봉샘에서 발원하며,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와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를 연결한 금강하굿둑을 경유하여 서해로 유입된다. 금강의 국가하천 유로연장은 397.9㎞, 지방하천은 42.81㎞로 우리나라 6대 하천의 하나이자 남한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상류의...
-
1454년에 간행된 현 세종 지역의 옛 행정 구역 위치가 설명된 관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당시 수도인 경도 한성부(漢城府)와 준수도 지위에 있던 구도 개성유후사(開城留後司)를 독립적으로 다루었다. 이어 경기도[41개], 충청도[55개], 경상도[66개], 전라도[56개], 황해도[24개], 강원도[24개], 평안도[47개], 함길도[21개] 등의 334개 고을...
-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는 전국 17번째 광역자치단체. 세종특별자치시는 충청권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충청북도 청주시, 서로는 충청남도 공주시, 남으로는 대전광역시, 북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 면적은 약 465㎢로 서울특별시의 약 4분의 3 규모이다. 동서로 가장 긴 연장선은 20.7㎞, 남북은 37.0㎞이다. 세종특별자치시는 2020년 6월 기준...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조선 후기에 마을 앞에 소나무가 정자처럼 서 있어서 송정(松亭)으로 불리다가 소정(蘇井)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소정리의 지명유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정이라는 지명은 1901년 경부선 철도의 소정리역이 설치되면서 소정(小井)이라는 명칭을 이미 사용하고 있어서 1914년 이전에도 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송용리는 마을 주변의 소나무[松]와 용(龍)에 대한 신앙에서 발생한 명칭이다. 마을 앞 하천의 많은 늪과 연못에서 이무기가 승천하였다고 전해져 용에 대한 믿음에 있다. 뒷산에는 많은 노송(老松)이 분포한다. 송용리에는 송산, 도룡골, 나븐, 꿩말 등 자연 마을이 있다. 송산(松山)마을은 송용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금병산(金屛山)이 수려(秀麗)하여 수산(秀山)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수산(水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산리에는 둔더기, 수산, 태천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둔더기는 국사봉 아래에 있는 마을로 둔덕(屯德)에 있어 둔더기라 불리며, 국사봉 또는 국사리(國士里)라고도 한다. 수산은 둔더기 서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금병산...
-
세종 지역에서 먹은 음식이나 음식과 관련된 지역 특성 및 생활 풍습. 세종특별자치시는 금강이 흐르고 장남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던 곳이다. 따라서 쌀을 주식으로 생활하였으며, 금강을 오르내리는 배를 통하여 서해의 해산물을 공급받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논농사를 지은 가장 오래된 유적이 발굴된 곳이어서 지역에서의 식생활 역사는 기원전 13~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19세기 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정착하여 약 40가구가 마을을 이루면서 ‘새로운 터’라는 의미에서 신대리(新垈里)가 되었다. 신대리에는 새터말, 숯골, 강골, 불당골, 송정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새터말마을은 신대리에서 가장 늦게 생긴 마을에서 유래하며, 숯골마을은 예전에 숯을 많이 생산하던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시 이름만으로의 역사적 변천은 불과 7년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특별자치시 이전의 명칭인 충청남도 연기군은 이제 점차 잊혀지게 되었지만 과거 연기군은 선사시대를 거쳐 역사시대로 이어지면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영위해 온 장소였음이 분명하다. 이는 연기군 일대의 자연지리적인 요인 덕분에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입지였기 때문이다....
-
조선 전기 세종 지역에 은거한 인물. 신준미(申遵美)[1491~1562]는 본관(本貫)이 평산(平山), 자는 사휴(士休), 호는 초려(草廬)이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스승인 조광조가 사사(賜死)[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되고 자신의 과거급제가 취소되자 공주현[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은거(隱居)[세상을 피해서...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초당산(草堂山)을 중간에 두고 양쪽 계곡[兩溪谷]에서 흐르는 냇물이 마을 아래에서 합쳐져 쌍류(雙流)라고 하였다. 쌍류리에는 생천, 송암, 벌말, 월정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생천마을은 북쪽 산속에 위치한 마을로, 임진왜란 때 천 명[1,000명]의 사람들이 피하여 목숨을 건졌다고 해서 생겨난 지명이다. 서북쪽에...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1914년 ‘쌍괴리’와 ‘전당리’가 병합되어 각 마을 명칭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쌍괴리는 마을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고, 전당리는 마을의 산세가 수려하여 마치 중국에서 경치가 최고인 전당(錢唐)과 흡사해서 붙은 명칭이다. 쌍전리에는 전당골, 쌍괴, 전성말, 오땀말, 큰말 등 자연 마을이 있다. 전당골...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둘레가 한아름 넘치는 주민들의 풍족한 주거지역을 바라는 의미에서 아름이라는 한글 명칭이 지어졌다. 아름동은 범지기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아름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범지기 마을을 활용한 것이다. 고정리에 자리한 범지기 마을의 모습이 범이 누워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보았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어진동은 정부세종청사가 입지한 중앙행정타운으로 어질고 덕행이 높은 사람들이 근무한다는 의미가 담긴 지명이다. 어진동은 순우리말에 해당하는 한뜰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연기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큰뜰을 활용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과 웅천, 고려시대는 공주목과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공주목과 연기현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후건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여흥민씨는 민후건이 17세기 초반에 연기현 월하방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흥민씨(驪興閔氏) 시조는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한 민칭도(閔稱道)이다. 민칭도는 공자의 10제자 중 한 사람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
-
세종 지역의 역사에 대한 개관. 세종특별자치시 관련 역사기록은 『삼국사기』 지리4 백제편에 ‘두잉지현과 구지현’이라는 지명으로 처음 등장한다. 따라서 역사 기록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종특별자치시의 역사시대는 백제시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된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세종특별자치...
-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전의현과 연기현을 관통하는 역로에 세워 통신, 교통 및 숙박 기능을 담당하던 역과 원. 역(驛)은 전근대 사회의 교통·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에는 기본적으로 말[馬匹]과 역장(驛長)·역정(驛丁) 등 관리 인원을 두고 국가 명령과 공문서 전달 업무를 맡았으며, 공무(公務)로 인한 여행자에게 필마(匹馬)를 제공하고 숙식 알선을 담당하였다...
-
조선 전기 이승소가 연기현의 객사에서 지은 한시. 「연기객사(燕岐客舍)」는 말을 타고 가다 낙마하여 부상한 상황에 놓인 이승소(李承召)가 연기의 객사(客舍)에 머물며 느낀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승소의 문집인 『삼탄집(三灘集)』에 수록된 작품이다. 「연기객사」는 칠언율시(七言律詩) 형식의 한시이다. 구마다 7자로 되어 있는 8개 구로 이루어져 있다. 1·2구...
-
1291년 세종 지역 정좌산 일대에서 원나라 반란군인 합단적을 물리친 전투. 침략의 원인은 원나라 내부의 황위 계승전에 있었다. 즉 1259년 몽고제국의 헌종[몽케]이 사망하자 동생들인 쿠빌라이[忽必烈]와 아리크부카[阿里不哥]가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쿠빌라이가 승리하여 황위에 올라 세조가 되었다. 그리고 1271년 국호를 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리크...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조선시대에 연기현(燕岐縣)의 읍터였으며, 마을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옛 고을 연기현의 이름을 따서 연기리(燕岐里)가 되었다. 연기리에는 교촌, 구향교골, 환재골, 옥터, 위사티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교촌(校村)은 현재 연기향교(燕岐鄕校)가 있으며, 구향교골은 조선 후기까지 향교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다. 환재골은...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는 법정면. 예전의 고을 명칭인 연기현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전의 연기군 남면 연기리 등을 유지한 명칭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조선시대는 연기현에 속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군내면 연기리에 군청이 소재하였지만, 1911년에 군청이 북면(현 조치원읍)으로 이전되어 중심지도 바뀌었다. 1914년에는 군내면을 개칭하여 연기...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는 법정면. 예전의 고을 명칭인 연기현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전의 연기군 남면 연기리 등을 유지한 명칭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조선시대는 연기현에 속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군내면 연기리에 군청이 소재하였지만, 1911년에 군청이 북면(현 조치원읍)으로 이전되어 중심지도 바뀌었다. 1914년에는 군내면을 개칭하여 연기...
-
1772년 이후에 편찬된 충청도 연기현의 읍지. 충청도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읍지로, 조선 후기 편찬본이지만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열녀 가운데 영종조(英宗條)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조대 이후에 편찬된 것을 알 수 있다. 표제명은 연기현읍지이다. 1책 필사본이다. 표지는 ‘연기현읍지(燕岐縣邑誌)’로 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
조선 전기 서거정이 연기에 묵으면서 지은 한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계룡산을 넘어 연기로 오면서 오는 길의 형세와 연기(燕岐)에 묵으면서 느낀 소회를 드러낸 오언율시이다. 「연기제시(燕岐題詩)」는 『사가시집보유(四佳詩集補遺)』 3권에 수록되어 있는 오언율시이다. 1·2구는 계룡산을 넘어 연기로 들어오는 길에 대한 내용이며, 3·4구에는 오면서...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수산리에서 발원하여 미호천으로 합류하는 하천. 연기천은 금강의 제2 지류이며,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수산리에서 발원하여 세종리에서 미호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연기(燕岐)’라는 지명은 옛 고을 이름인 ‘연기현(燕岐縣)’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기천이라고 명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기천 주변의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 흑...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연기현(燕岐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연기군으로 개칭되어 유지되다가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에 흡수·폐지되었다. 1...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도 연기현에 토착하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조선 전기 연기현의 토성(土姓)[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으로 위(魏)·하(河)·전(全)·경(耿)·장(萇)씨, 내성(來姓)[토박이 성씨가 아닌 다른 고장에서 들어온 성씨]으로 서울에서 온 왕(王)씨, 속성(續姓)[이전의 문서에 빠...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조선시대에 연기현 관아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일면(東一面)과 동이면(東二面)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통합하여 동면이라고 하였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에 속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으로 있다가 1414년 전의현과 합쳐져 전기현...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기군청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산군의 영현에 속한 연기현,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 북면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예(禮)를 기르고[養] 배우는 곳이라 하여 예양리(禮養里)가 되었다. 예부터 충신(忠臣)이 많이 배출되었고, 오부자(五父子)가 충신인 박천붕(朴天鵬)과 아들들의 충신문(忠臣門)이 있다. 예양리에는 양골, 미꾸지, 산속골, 강촌, 물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양곡(養谷)마을은 덕을 기르는 예양리의 중심 마을로, 인동·양골·...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와촌리는 기와[瓦]와 관련이 있는 마을 명칭이다. 와촌리에 부유한 사람들이 살던 기와집에 많아 와촌(瓦村)으로 불리었다. 기와를 굽던 장소이기도 하다. 와촌1리·와촌2리·와촌3리에는 대실, 기와말, 은암, 중말, 효방동, 번암터, 밤나무골[栗村]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대실(大室)마을은 와촌1리에서 가장 큰 마을...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에 있는 산. 용수산(龍帥山)[223.4m]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구릉성 산지로,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용수산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149권 연기현편에 “봉화가 1곳이니 연기현의 남쪽 용수산이다[熢火一處 在縣南 龍帥山]”라고 실려 있다. 또 “동쪽으로 청주...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용암리(龍岩里) 명칭은 금당산(金唐山)에 용거(龍居)하는 설산(雪山)이 있고, 용바위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고복저수지 중·상류에 위치한 용암리에는 위양골, 위줄, 검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1983년 고복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고복저수지 가운데에는 위양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위양골은 조선시대에 역이...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용호리 명칭은 용(龍)이 호수(湖) 속에서 노는 형상에서 유래한다. 마을 뒷산의 산세가 용(龍)같이 생겼고 용산(龍山)이 미호천을 감싸면서 노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용호리에는 불암, 상룡, 중룡, 하룡, 소정이, 구대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불암마을은 노적산 동북쪽에 있던 마을로, 부자가 많이 거주하여 부래미라고도 불리...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속한 법정리. 원리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鳥致院邑)에 있는 법정리이며 원1리[원리 남부]와 원2리[원리 북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원리는 조치원읍의 중심인 조치원역을 중심으로 알파벳 티[T] 자 구조로 형성되었으며 시장과 상권이 발달하여 있다. 원리는 조선시대 연기현 침산리 지역의 일부로, 연기현과 청주목의 경계 지점에 있었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연기군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월하리는 민후건의 호 월하(月河)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勢道家) 민후건이 정치를 접고 풍류를 즐기면서 보냈는데 세월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월동(月洞)이라 불렀다. 월하리에는 가래터, 구서원, 전동, 월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가래터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논밭을...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의 넓은 들판에 먹이를 찾아 매가 많이 날아와 서식하였으며, 마을 뒷산의 큰 바위에 매가 앉아 있다고 하여 매바위·응암(鷹岩)으로 불리었다. 응암리에는 매바위, 높은정이, 노곡, 가마골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매바위마을은 매 모양의 지형에 매가 많아서 붙은 명칭으로, 응암이라고도 한다. 높은정이마을은 매바위 북쪽의 높은...
-
고려 후기 세종 지역에 정착한 문신. 임난수(林蘭秀)[1342~1407]는 세종 지역 세거 성씨인 부안임씨 입향조이다. 고려 후기 벼슬이 공조전서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삼기촌[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으로 들어와 평생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하며 살았다. 후손들이 연기현 일대에 대대로 거주하며 세종 지역에서 가장 큰 집성촌을 이루었다....
-
고려 후기 세종 지역에 정착한 문신. 임난수(林蘭秀)[1342~1407]는 세종 지역 세거 성씨인 부안임씨 입향조이다. 고려 후기 벼슬이 공조전서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삼기촌[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으로 들어와 평생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하며 살았다. 후손들이 연기현 일대에 대대로 거주하며 세종 지역에서 가장 큰 집성촌을 이루었다....
-
세종특별자치시의 옛 지명으로, 조선 태종 때 전의현과 연기현을 합쳐 신설한 현. 전기현(全岐縣)은 조선 시대에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인 전의현(全義縣)과 연기현(燕岐縣)을 병합한 현(縣)의 명칭이다. 1414년(태종 14) 전의현과 연기현을 병합하였으나 병합된 군현의 원성과 반발로 1416년(태종 16)에 전의현과 연기현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조...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전동면(全東面)은 전의의 동쪽에 있는 면이란 뜻이다. 과거 전동면은 전의지역으로 원삼국시대에는 마한의 54개국 중 하나였고, 백제시대에는 구지현(仇知縣)에 속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지현(金池縣)이라 하여 대록군(大麓郡)의 영현이 되었다가 고려 때 전의현(全義縣)에 속하였다. 전동면은 조선시대인 1414년(태종 14)...
-
1895년 충청남도 전의를 중심으로 편성된 옛 행정 구역.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전의면, 전동면의 옛 행정구역이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도제(道制)를 폐지하였다. 전국을 23부(府)로 시행하고 충청도를 폐지한 것이다. 신설된 공주부(公州府)가 27개 군을 관할하면서 연기와 전의의 행정 지위가 군으로 승격되었다. 원래 면에는 존위(尊...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전의면(全義面)은 백제 때 구지현(九知縣)이라고 불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금지현(金池縣)이라 고쳐 부르다가 고려 때부터 전의(全義)라고 불렀다. 전의라 불리게 된 것은 백제시대 때 마을에 전씨(全氏)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된 석불비상에 새겨진 전씨라는 명문(銘文)과 일대의 지명을 전의·전동(全...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전의현(全義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전의군으로 개칭되어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연기군에 병합되어 일부 지역이 연기군 전의면으로 남아 있었다....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세종 지역의 역사. 세종특별자치시는 조선시대에 연기현(燕岐縣)과 전의현(全義縣)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독립적인 행정 구역으로서 독자적인 변천 및 역사와 함께 지리적 환경, 정치와 군사, 사회경제, 각종 국가시설, 성씨와 인물 등 다양한 문화적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조선시대 연혁을 정리하기...
-
조선 후기 7개 도의 군현을 방안식으로 그린 전국지도책에 수록된 연기현 일대 지도. 『조선지도』는 조선시대 군국기무를 관장한 비변사에서 사용하던 전국 군현 지도책으로 전국의 모든 고을을 동일한 축척과 표현 양식을 사용하였다. 산지는 ∧표시를 중첩하여 그리고, 그 위에 청록색으로 채색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하천은 겹선으로 표현되었으며, 규모에 따라 폭을 달리하면서 본류와...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역 조세를 거두어 중앙으로 운반하던 조창·조운로 등과 관련된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서 조세로 거둔 현물을 수도인 중앙으로 운송하였다. 이때 조운(漕運)을 통하여 내륙의 수로나 바닷길을 이용하였다. 수운(水運) 또는 참운(站運)이라 하였으며,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해운(海運)이라고 하였다. 조창에서는 세곡을 겨울철에 거두어들인 후 이른 봄철에...
-
1926년 충청남도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치원~대천 간 철도 부설인가 신청. 조선 후기의 조치원은 전형적인 한국농촌의 모습으로 연기현과 청주 경계 지역이었다.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그 유용성이 인식되면서부터 작은 장시에 지나지 않던 조치원에 역동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1926년 2월 6일 경남철도주식회사(慶南鐵道株式會社)에서 조치원(鳥致院)~대천(大川) 간 철도설치인가 신청서...
-
일제강점기 조치원 일대를 지나는 조천에 제방을 축조한 공사. 조치원 지역을 지나는 조천(鳥川) 제방의 축조 기원은 1427년(세종 9)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연기현감 허만석(許晩石)은 연기현 북쪽 15리 지점 청주 경계에 제방을 쌓았다. 세종 때 허만석이 제방을 쌓아 생긴 부지가 현재 조치원읍 평리와 상리 지역으로 비정된다. 조선 초기에 축조된 조천 제방은 다산 정약용...
-
조선 전기 연기현감 허만석이 조천에 제방을 쌓은 일.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의 읍내 일대는 조선 전기에 저지대인 곳이었다. 허만석(許晩石)이 연기현감으로 부임한 1427년(세종 9) 무렵에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또한 계속된 가뭄으로 농사가 잘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였다. 연기현감 허만석은 연기현 치소에서 북쪽으로 15리 되는 지점에 큰 제방[堤堰]을...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종촌동은 이전의 종촌리 지명을 유지한 명칭으로, 낮은 산등성이가 있다고 해서 밀마루, 종촌(宗村)으로 불리다가 장터로 통일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종촌동은 가재 마을로도 불리는데, 이는 종촌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명칭 가운데 가재골을 활용한 것이다. 고정리에 위치한 가재골은 마을의 중심에서 한쪽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를 의미한다. 삼...
-
정예를 시조로 하고 정윤필, 정업중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진주정씨는 15세기 후반 충장공파의 정윤필이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16세기 후반에는 연일파의 정업중이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남면 연기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다. 진주정씨(晋州鄭氏)의 원류는 신라 6촌...
-
1895년 김정호가 작성한 『청구도』를 모사한 이본.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 이전에 이미 『청구도(靑邱圖)』 등의 지도를 만들었다.『청구도』는 2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10리마다 점을 찍는 방식도 똑같다.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의 이본(異本)은 현재 국내에 9본, 국외에 8본(일본 7본, 미국 1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지형(地形)이 나발과 같다 하여 나발터 또는 청라(靑羅)로 불렀다. 예전에 나주나씨가 청자를 굽던 곳으로, 청(靑)자와 나(羅)자를 합하여 청라리(靑羅里)가 되었다. 청라리에 있는 자연마을로는 나발터, 양진터, 헌터 등이 있다. 청라리의 서쪽에 있는 청라1리의 나벌터[羅發址]는 나주나씨가 거주하다가 떠난 마을 또는 마...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우, 한필적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청주한씨는 청주와 인접한 지역에서 터를 잡아 살고 있다. 정당공파(政堂公派)로 한충의 손자인 한우가 1600년대 초에 전동면 심중리에 입향하고, 문정공파(文靖公派)인 한필적이 동면 응암리에 입향하면서 정당공파와 문정공파들이 청주 지역에 다수 거주하고 있다....
-
세종 지역을 배경으로 한문을 활용하여 쓰여진 문학 작품. 세종특별자치시를 배경으로 하여 지어진 한문학 작품들은 근대 이전의 지역에 대한 당대 인식을 드러낸다. 세종 지역의 한문학 작품은 세종특별자치시의 이전 명칭인 연기(燕岐)를 지나면서 느낀 주위 환경과 경치에 대한 감상을 적은 작품도 있고 독락정과 같이 지역에 있던 정자나 명소를 읊은 것도 있다....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한별은 큰 별을 의미하는 한글 명칭으로, 큰 별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주거단지를 상징한다. 한별리는 둔지미 마을로도 불린다. 둔지미는 ‘둔전으로 부치던 밭이 있는 마을’에서 유래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신라시대 경덕왕 때는 연산군,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 군내면 지역이었고 1914년에는 연기...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과거에 송원리는 큰 소나무의 군락지였다. 한솔동은 송원리의 소나무를 연계하여 만든 한글 명칭으로 큰 소나무와 같이 곧고 푸른 도시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당시 한솔동은 단 하나뿐인 최초의 행정동이었기 때문에 첫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과 웅천, 고려시대에는 공주목과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하...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한양조씨는 병참공파로 조극이 공주[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로 입향하였으며 조극의 5세손인 조길환, 조일환 형제의 후손들이 각각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과 연서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시조(始祖)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에 세거하여 온 토착 사족(士族)[문...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한양조씨는 병참공파로 조극이 공주[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로 입향하였으며 조극의 5세손인 조길환, 조일환 형제의 후손들이 각각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과 연서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시조(始祖)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에 세거하여 온 토착 사족(士族)[문...
-
세종특별자치시 에 속한 법정동. 합강동은 미호천과 금강(錦江)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고 해서 합강(合江)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시대에는 연기현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기군 동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합강1리, 용호3리 일부가 세종...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채윤호와 채윤구 형제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위치한 합강정(合江亭)은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구릉지대에 건립되었던 누정으로, 16세기 초반 합강리에 세거하는 인천채씨 집안의 채윤호(蔡允浩)[1485~1546]와 채윤구(蔡允龜) 형제가 창건한 정자로 추정하고 있다. 합...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채윤호와 채윤구 형제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위치한 합강정(合江亭)은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구릉지대에 건립되었던 누정으로, 16세기 초반 합강리에 세거하는 인천채씨 집안의 채윤호(蔡允浩)[1485~1546]와 채윤구(蔡允龜) 형제가 창건한 정자로 추정하고 있다. 합...
-
1750년대 초 전국의 군현을 회화식으로 그린 고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연기현 지도. 『해동지도』는 제1책 경기도, 제2책 해서전도관서전도, 제3책 관동전도·북관전도 및 군현지도 외에 「조선여진분계도(朝鮮女眞分界圖)」와 「요계관방도(遼薊關防圖)」가 수록되어 있다. 또 제4책 서북피아양계전도, 제5책 영남전도, 제6책 호서전도, 제7책 호남전도, 제8책 팔도총도 등으로 구성...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동. 해밀동은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 있는 주거지역을 가리키는 한글 명칭이다. 해밀동은 올목마을로도 불리는데, 해밀동 지역의 고유어 전래 명칭 가운데 올목 고개를 활용한 것이다. 갈운리에 있는 올목 고개는 오리 목처럼 생겨 중요하고 좁은 곳을 의미한다. 해밀동 지역에는 원사골마을·양지말마을·김새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원사...
-
고려에서 조선 전기 이전 군·현 행정 단위와 별도로 특수 설치한 지방 하급 행정구획. 고려시대에는 군현(郡縣) 밑에 촌(村)과 별도로 향(鄕)·소(所)·부곡(部曲) 등 특수 행정조직을 두고 있었다. 부곡과 향에는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 거주하였다. 소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금이나 은, 철, 종이, 먹, 도자기 등을 만들기 위하여 공장(工匠)들이 집단 거주하던 특수 구역이었다....
-
세종 지역의 역사, 지리, 민속, 경제생활 등을 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지역의 지리, 역사, 민속, 인물 등의 자료를 기록한 책자이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에 편찬된 군현의 읍지(邑誌)와 지리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사 지리지도 있지만 내용이 소략하여 향토지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대사회에서는 군지 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향토지가 편찬되고 있다....
-
조선 전기 연기현감을 지낸 문신. 조선시대 세종 때 연기현감으로 부임하여 하천 제방을 축조한 연기현 명환(名宦)[중요한 자리에 있는 벼슬아치]이다. 허만석의 본관(本貫)은 양천(陽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판도좌랑공 허관(許冠)이고 할아버지는 개성윤 허교(許僑), 아버지는 허응(許應),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허만석은 조선 세종조에 연기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재임...
-
조선시대 세종 지역의 정치와 사상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인 사족(士族)[문벌이 좋은 집안]으로, 호서 지역의 사족 활동에 연계된 가문과 인물을 말한다. 조선시대는 양반사족의 향촌 지배력이 강한 시대였다. 충청우도의 연기와 전의 지역은 토착성씨 및 사족가문의 활동이 주목되는 곳이었다. 세종 지역은 호서사족 활동의 중심지 공주·회덕과 인접한 지역으로, 사족들이 처향(妻鄕)[아...
-
1871년 충청도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와 사례들을 합편하여 편찬한 충청도의 도지. 1871년(고종 8) 충청도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와 사례들을 합편하여 17책으로 편찬한 충청도의 도지(道誌)로, 개항기 충청도 군현 사정과 함께 채색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이다. 2019년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총 17책이다.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이다. 가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