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촌리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형무를 파조로 하며 유선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기계유씨는 동정공파 유선이 조선 전기에 연기현에 입향하였으며, 연서면 성제리와 와촌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유선의 묘소, 재실 경운사, 열녀 부안임씨 정려 등 유적이 남아 있다. 기계유씨는 신라의 아찬(阿飡)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형무를 파조로 하며 유선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기계유씨는 동정공파 유선이 조선 전기에 연기현에 입향하였으며, 연서면 성제리와 와촌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유선의 묘소, 재실 경운사, 열녀 부안임씨 정려 등 유적이 남아 있다. 기계유씨는 신라의 아찬(阿飡)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에 속한 법정리. 눌왕리는 군자(君子)라는 옛말에서 유래하는 마을 명칭이다. 군자림(君子林), 눌왕산(訥旺山) 아래에 위치하여 느랑이라고도 부른다. 눌왕리에는 눌왕마을·청룡마을·왕바위마을·원댓골마을·문암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눌왕마을은 눌왕산 아래에 자리하여 느랑이라고 불렀던 마을이다. 청룡마을은 느랑이 서쪽에 있는 마을로 땅의 형세...
-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에서 일제에 항거하여 전개된 일제 저항 운동.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전국 도처에서 항일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하자 일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식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런 가운데 1919년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은 한국민임을 대외에 천명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3·1 운동이었다. 이때부터...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 주변에 봉황을 닮은 바위가 있어 봉바위, 부엉바위, 봉암 등으로 불리었다. 봉암(鳳岩)은 봉바위[부엉바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봉암리에는 봉암, 주막거리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봉암리는 1리·2리·3리로 되어 있다. 처음 사람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한 곳은 봉암2리이다. 현재의 봉암마을이다. 주막거리마을은 봉암 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부동리(釜洞里)는 가마골 또는 부동으로도 불리었다. 명칭 유래는 가마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옛날에 그릇 가마를 묻은 장소가 있었고, 고려시대 연기대첩 때는 밥을 짓기 위하여 큰 가마를 설치한 곳이다. 부동리에는 가마골, 치암, 방죽안, 산수골, 오룡골, 홍촉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하천 북쪽에 위치한 가마골마을은...
-
1919년 3월과 4월 세종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운동. 전의면에서는 1919년 3월 13일부터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정리 농민 이수욱이 광무황제 국장에 참례하고 3월 6일 귀향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3월 13일 전의시장에서 130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참여한 23명이 일경에 잡혀 갔다. 4월 21일 유천리(柳川里)에서 주민 1명이 단독 만세시위를...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공주지구 소속 성당. 2014년 6월 16일 성당 부지 구입을 시작으로 2014년 11월 4일 건축, 대수선, 용도변경 허가를 받았다. 2015년 1월 9일 조치원성당에서 분가하여 조치원도원성당이라 가칭하였다. 2015년 1월 24일 조치원성당 부속 건물 마리아홀에서 첫 주일 미사(missa)[가톨릭에서 예수의 최후 만...
-
세종특별자치시 보람동에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관할 자치 행정 기관.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제1조(목적)와 제6조(설치 등)에 의거하여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청이 설립되었다. 1. 관할 구역 1895년(고종 32) 전국 지방관제를 개정함에 따라 각각 군이라 칭하고 군수를 두게 되었다. 1909년 군면 폐합에 따라 전의군 7개 면 전부, 공주군...
-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창과 안윤희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는 순흥안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와 연동면 합강리에 입향한 이래 50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유력 성씨이다. 순흥안씨의 시조는 안자미이다. 고려 신종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기군청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이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산군의 영현에 속한 연기현,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 북면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와촌리는 기와[瓦]와 관련이 있는 마을 명칭이다. 와촌리에 부유한 사람들이 살던 기와집에 많아 와촌(瓦村)으로 불리었다. 기와를 굽던 장소이기도 하다. 와촌1리·와촌2리·와촌3리에는 대실, 기와말, 은암, 중말, 효방동, 번암터, 밤나무골[栗村]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대실(大室)마을은 와촌1리에서 가장 큰 마을...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유물산포지. 연서면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4㎞ 지점에 연서면 와촌리 기와말 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입구에서 북쪽으로 인접한 지역에 옛 와촌초등학교가 있었으며, 백제토기 출토지는 와촌초등학교 뒤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나지막한 능선의 하단부에 해당한다. 현재 유물산포지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일부...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장수바위」는 연서면 와촌리에 기와를 굽던 노인이 아내와 자식을 얻었으나 아내와의 약속을 어겨 가족을 잃는 암석 유래담이다.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연기군지』에 실려 있다. 고려시대부터 연서면 와촌리는 좋은 기와 생산지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 동쪽에서 온 노인이 좋은...
-
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희, 성중의, 성한취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창녕성씨는 금남면 달전리에 회곡공파 성희가 15세기 중엽, 연서면 와촌리에 동고동파 성중의가 15세기 후반, 연동면 내판리에 상곡공파 성한취가 18세기 중엽에 각각 입향하여 세거해 오고 있다. 창녕성씨(昌寧成氏)는 고려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
세종 지역에 거주하는 창녕성씨가 1년 중 행하는 가족 의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창녕성씨가 세거하는 곳은 금남면 달전리와 연서면 와촌리이다. 창녕성씨는 달전리와 와촌리 마을에서 수백 년 동안 살아 오면서 가정 신앙을 지키고 있다. 주로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녕성씨 가정에서 최고의 가신(家神)으로 성주를 모신다...
-
장유를 시조로 하고 장경지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흥성장씨는 흥덕장씨라고도 불리며, 감사공파의 장경지가 15세기 초에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입향하였다. 와촌리의 번암동은 한때 ‘장씨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흥성장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도 거주하고 있다. 흥성장씨(興城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