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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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城觀德里三層石塔 |
이칭/별칭 | 의성 관덕동 삼층 석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889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재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보물 제188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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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명칭 변경 일시 | 2010년 12월 27일 -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에서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으로 문화재 지정 명칭 변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889 |
성격 | 석탑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365㎝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의성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삼층 석탑.
[개설]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은 신라 하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하층 기단에는 비천상을, 상층 기단에는 보살상과 사천왕상, 초층 옥신에도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원래 상층 기단 갑석의 네 모퉁이에는 암수 1쌍씩 네 마리의 돌사자가 배치되었는데, 한 쌍은 1940년경에 잃어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 쌍은 현재 국립 대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의성 관덕동 석사자, 보물 제202호]. 석탑 뒤편에는 보호각을 조성하여 의성관덕동석조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36호]을 봉안하고 있다.
석탑 주변의 밭에서 금동 불상 2점이 출토된 바 있고,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어 이 일대가 절터임이 분명하다. 구전에 따르면, 계곡 주변 산세가 사자가 머리를 서북향 한 채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사자골로 부르고 있으며, 이곳 사찰을 ‘사운사(獅雲寺)’라고 불렀다고 하나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건립 경위]
현재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으나, 기단부에 비천상과 보살상·사천왕상, 탑신부에 보살상을 조각 한 점 등으로 보아 통일 신라 말인 9세기 후반 경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 1리 목촌 마을 뒷산 사자골[160m]에 삼층 석탑과 석조 보살 좌상 등이 위치하고 있다. 목촌 마을에서 북쪽으로 목촌길을 따라 약 400m 정도 올라가면 좌측편으로 약간 넓은 밭이 있고, 그곳에 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형태]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은 높이가 365㎝이고, 지대석은 한 변의 너비가 181㎝ 정도이다. 기단부는 4매의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석 위에 중석도 4매의 돌로 구성하였다. 중석에는 각 면에 1주씩 탱주를 새겨 놓았고, 각 면에는 비천상이 양각되어 있다. 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하였고 상면에는 호형과 각형의 굄을 나타내어 상층 기단 중석을 받치고 있다. 이 중석은 각 면이 한 돌이고 중앙에는 탱주를 새겼으며 왼쪽에는 사천왕상을, 오른쪽에는 보살상을 돌아가며 양각하였다. 갑석은 1매의 판석으로 덮었는데, 밑에는 부연이, 상면에는 하층과 같이 호형과 각형의 굄이 있어 옥신[몸체]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의 옥신과 지붕돌[옥개석]은 각기 한 돌인데, 초층 옥신에는 각 면에 우주를 표시하고 4면 모두 보살 입상 1구씩을 양각하였다. 지붕돌의 처마 밑은 직선을 이루고 낙수면에는 경쾌한 반전이 있다. 지붕돌의 층급 받침은 초층과 2층이 4단이며, 3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상륜부는 노반만 있고 나머지는 사라졌다.
[금석문]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전면에 위치한 배례석으로 보이는 석재는 장대석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앞면에는 오른쪽으로 치우쳐 2개의 안상이 있고, 우측면에 하나의 안상이 새겨져 있다. 윗면, 뒷면, 좌측면은 아무런 장식이 없고, 매끄럽게 가공되지도 않아, 전체적으로 보아 미완성의 석재로 보인다. 석재의 원래 위치는 석탑 뒤에 있었는데, 정비 사업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은 우측면의 안상 내에 새겨져 있다. 명문의 내용은 “광계사년세차무신 / □□□성백호문 / □심?단?월? □□ / 백?사?□□□ / □□□(光啓四年歲次戊申 / □□□成白乎文 / □心?檀?越? □□ / 白?士?□□□ / □□□)”이다. 이 중 ‘심단월(心檀越)’과 ‘백사(白士)’ 등은 확실하지 않다. 판독되지 않은 글자가 많고 전체적으로 몇 글자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광계사년세차무신(光啓四年歲次戊申)’은 서기 888년(진성 여왕 2)에 해당하는 당 희종의 연호와 간지이다. ‘성백호문(成白乎文)’은 이두 표기로 무엇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보이고, 문(文)은 다음 문단과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심단월(□心檀越)’과 ‘백사(白士)’는 해당 불사를 한 단월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명문의 내용은 “단월인 백사 □□□가 888년에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석탑의 조성 시기가 9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석탑 조성 공역과 관련된 일련의 공역이 이뤄졌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현황]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지정 명칭은 의성 관덕동 삼층 석탑이었으나 2010년 12월 27일 행정 구역 개편 결과를 반영하여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이중 기단과 3층의 탑신을 갖춘 화강암으로 건립한 석탑이다. 전면에는 배례석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석재가 있다. 석탑 주변으로 잔디를 심고 철제 펜스를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석탑 앞에는 안내판을 세워 관람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석탑 뒤편에는 보호각을 건립하여 석조 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은 웅대한 기상은 없으나 각 부에 특징적인 부조상을 조각한 화려한 양식의 탑이다. 특히 상층 기단 중석에는 한 면에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돌아가면서 각각 조각한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조각 수법은 섬약하나 신라 하대를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