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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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년 신라가 멸망하기 이전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 지역은 진한 소국의 하나인 우중국이 있다가 신라에 병합된 뒤, 한 때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지역이 되기도 했으나,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서 국가제사인 소사가 설치된 중요한 곳이었다. 진한은 3세기 중엽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연맹체였으며,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우중국(優中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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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의 시조는 가야의 김수로왕이고, 중시조는 신라의 김유신이다. 후손들은 98파로 분파되었는데, 김유신의 직계인 경파·사군파·삼현파가 대표적이다. 삼현파는 효자인 김극일과 그의 손자인 김일손 그리고 김일손의 조카인 김대유의 세 현인에서 비롯되었다. 1498년(연산군 4)에 일어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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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태실.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어 태를 묻었다. 태실은 아기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된다. 아기 태실은 최초로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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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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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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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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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의 남대천 위에 있는 다리. 울진(蔚珍)은 신라의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이 산림이 울창하고 금은보화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울진교는 울진군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205m, 총 폭 11.7m, 높이 3.5m이다. 차도의 폭은 10.2m이고, 차선 수는 총 2차선이다. 경간(徑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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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북동쪽 끝에 있는 군. 울진군의 북단(北端)은 국도 7호선 도로가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지나는 북면 나곡리 갈령치 부근 37° 8′ 38″ N이며, 남단(南端)은 국도 7호선 도로가 영덕군 병곡면과 울진군 후포면을 지나는 후포면 금음리 지경(地境) 부근 36° 38′ 24″ N로서 남북간의 위도 차는 30′ 14″이다. 동단(東端)은 전술한 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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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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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은 자녀가 태어나면 태실(胎室)을 조성하여 태(胎)를 땅속에 묻었다. 이때 땅 속에 뚜껑을 갖춘 돌로 만든 태함(胎函)을 마련하고 그 안에 태를 담은 백자 항아리와 생년월일 및 태를 묻는 날을 새긴 태지석(胎誌石) 등도 함께 묻었다. 태실 앞에는 태비(胎碑)를 새웠으며, 태봉산을 지키는 사람을 두었고, 태봉의 둘레 일정 구역을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금표(禁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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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신라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685년(신문왕 5)에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이때 동해안 일대를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편제하였으며, 울진을 명주에 소속시켰다. 울진이라는 명칭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와서 보배가 많아 울창할 ‘울(蔚)’자와 보배 ‘진(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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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의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정부의 활동. 행정은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나누어보거나 행정부의 활동 자체를 행정으로 보는 등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울진군의 행정은 중앙행정이 아닌 지방행정으로, 여타 지방과는 다른 울진군만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울진군의 행정은 경상북도의 하위 조직으로서의 역할과, 울진군 지역의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