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3리 여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금음3리 여심마을에서는 중구절에 마을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동제를 중구제라고 한다. 여심마을은 ‘최씨 터전에 박씨 골맥이’라 하여 최씨와 박씨 두 설촌조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비학산 밑의 할배당은 산신 또는 골맥이신, 바닷가에 위치한 할매당은 해신으로 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해안에 소금을 굽던 벌이 있었으므로 나실 또는 나곡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포동, 후근동, 곡리동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나곡리라 하였다. 해안에 소금을 굽던 벌이 있었으므로 나실 또는 나곡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울진군 원북면에 속하였다가 1916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포동, 후근동, 곡리동의 일부 지...
-
경상북도 울진군에 거주하는 영양·의령·고성을 본관으로 하는 남씨 종친들의 모임. 남씨대종회 울진군지회는 숭조(崇祖), 목족(睦族), 화합과 제사 등 종친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2년 남씨대종회 울진군지회 설립 초기에는 매년 8~9월 종친회를 개최하였으나, 최근에는 6~7월로 종친회 모임 시기를 변경하였다. 2007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누...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으므로 망양동이라 하였다. 약 790년 전에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처음 개척하였고, 후에 엄씨(嚴氏), 지씨(池氏), 최씨(崔氏)가 살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대곡천(大谷川)을 경계로 망양(望洋)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平海郡) 원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의 망...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2리 하밤티마을에서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행하는 굿. 삼율2리 하밤티마을에서는 원래 3년마다 별신굿을 행하였으나, 비용 문제로 5년마다 행하다가 최근에는 10년마다 행하고 있다. 또한 3일 동안 바닷가에 굿청을 설치하여 행하던 별신굿을 최근에는 당일에 한하여 마을회관에서 행하는 방식으로 간소화되었다. 삼율2리의 성...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송이며, 참의공(參議公) 심학홍(沈學弘)의 후손이다. 심천범(沈天範)은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더니 3년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집이 가난하여 고기잡이와 나무하는 일로 아버지 공양을 지성으로 하였다. 아버지가 두 어깨에 신경통을 앓아 수저를 들지 못하고 누워 있으므로 부축하여 일으키고 음식을 대접하는 등 정성...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효부. 본관은 강릉(江陵). 아버지는 최석육(崔錫育)이고, 남편은 청송심씨로 심천범(沈天範)이다. 평소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고 남편을 존경하였다. 시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스스로 머리를 빗지 못하므로 매일 세수를 시키고 머리를 빗어 주었다. 또 시아버지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최씨는 집에서 기르는 개[犬]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너를 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 고포마을에서 충견(忠犬)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고포는 조그만 도랑을 경계로 남쪽 마을은 경상북도 울진군 고포이고,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고포로 두 마을을 함께 고포리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말엽 울진 고포마을에 살고 있던 최씨가 강원도...
-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매화리는 윤촌과 최촌이라 불리기도 한다. 과거 파평윤씨(坡平尹氏)가 기성면 삼산리에 입향하여 살다가 1558년경에 이 마을에 와서 개척(開拓)하여 대대(代代)로 살았으므로 윤촌(尹村)이라 불리며, 마을의 또 일부분은 강릉최씨(江陵崔氏)가 지금의 북면 고목리 무령현(武靈峴)에 입향하여 살다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이곳에 와서 최씨(崔氏)가 집단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도동에 있는 장천말의 유허비. 고려의 멸망 과정에서 1392년(태조 1) 조선이 건국되면서 공양왕은 원주로 유폐당했다가 다시 삼척궁촌에 감금되었다. 이에 장천영, 장천길, 장천말 등은 울진 토반[임씨, 최씨, 전씨]들과 합세하여 군사를 일으켜 무력으로 이성계를 꺾고, 공양왕의 둘째 왕자 완석을 옹립하여 왕씨 복위와 고려 재건을 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