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후기 문신으로서 정치·경제·행정·군정·인재 등용 등 국정 전반에 걸쳐 경륜을 펼쳤으며, 문장에서도 뛰어나 책문·반교문·묘지명 등을 많이 썼다. 또한 국내외 기행문과 우리 역사에 대한 고증도 많이 남겼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령 남일성(南一星)이다. 남구만은 송준...
조선 중기 대마도사정관으로 활동한 일본인. 1693년(숙종 19) 안용복 등의 40여 명의 어부가 울릉도 해역에서 돗토리현의 어부들과 시비가 벌어졌고, 안용복 등은 일본의 오오야가[大谷家] 어부들에 의해 오키시마[隱岐島]로 납치되어 갔다. 이때 안용복은 그곳에서 울릉도와 자산도(子山島)[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들어 구금 납치의 부당성을 도주(島主)에게 따졌다. 안용복의 항의를 받게...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독도는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섬이다. 삼봉도(三峰島)·우산도(于山島)·가지도(可支島)·요도(蓼島)등으로 불리다가 1881년(고종 18)부터 독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독도가 주목받는 것은 한국 동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특히 한·일 양국간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가...
조선 후기 울릉도 순찰을 회피한 죄로 문책을 당한 관리. 1695년(숙종 21) 4월 13일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은 조정에 자산군수(慈山郡守) 이준명이 전년(前年)에 삼척첨사(三陟僉使)가 되었을 때 울릉도(鬱陵島)를 순찰하는 일을 싫어하여 회피하였음을 아뢰었다. 더불어 이준명을 파출(罷黜)시키고 이후에 다시 벼슬을 제수하지 말고 회피한 죄를 징계할 것을 청하였다....
이순신 장군을 빼고서는 통영을 말할 수 없듯이, 안용복을 빼놓고서는 울릉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숙종 23년(1697) 일본인이 우리의 울릉도를 일본의 영토인 죽도라 하여 불법으로 고기잡이와 도벌을 일삼고 있을 당시, 안용복은 평민의 신분으로 두 차례나 일본에 들어가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임을 확약한다"는 서계를 받아냈다. 민간인으로서 일본에 건너가...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는 1905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군[隱岐郡] 오키노시마[隱岐の島]에 편입한 지 백 주년이 되는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정을 강행하여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후 “독도를 돌려 달라”는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