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생으로 북한에서 월남하였다는 윤병두. 저동에서는 한때 오징어잡이의 지존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 배운 데에다가 성실하기가 그지없기 때문. 그는 해방이 되고 고향을 떠나 왔다고 한다. “북한 강계에 살았는데, 8·15 해방이 되자 남쪽으로 내려왔어. 서울에 살다가…… 한때는 묵호에도 있었지. 울릉도는 그 뒤에 왔어. 묵호서 살다가 울릉도에 온 것은 한 30...
윤병두 씨는 자녀교육에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열심히 잡아야 해. 애들도 내 배운 만큼은 해줘야 해. 아버지 노릇 할려면 내가 고등학교까지 배웠으면 애들도 고등학교까지 배워주어야 해.” 방탕한 생활에 곁눈질 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였기에, 그는 선주나 선장에게 인정을 받았다. 자신의 이야기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어줄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술...
“여기 묻힐려고. 편하게 나 혼자 여기 있는 게 제일 좋아. 할멈은 없어. 자식네 아파트에 가면 창살 없는 감옥이야. 울릉도는 돈이 거의 안 들어. 교통비도 안 들어. 애들 공부 끝내고 모아둔 돈으로, 나 혼자 먹고 지내고, 또 아들딸이 보내준 돈도 있고…….” 윤병두, 그는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활기찬 발전을 거듭할 때 조업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산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