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10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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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器具 |
영어의미역 | Agricultural Tool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경혜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도구.
[개설]
농경(農耕)은 신석기 문화 단계 후 충적세(沖積世)에 들어와서 현재와 거의 같은 자연 환경이 되면서 싹텄다. 그리하여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 여러 대륙에서 각기 다른 자연 환경에 대응한 농경이 개시되면서 각기 다른 작물의 종류와 땅의 특성, 문화의 전통에 의해 농기구를 비롯한 농경 기술은 천차만별로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말까지는 인력 중심의 재래 농구를 사용하여 왔으며, 그밖에 축력을 이용한 경운 용구로 쟁기와 파쇄용구(破碎用具)인 써레가 이용되었다. 또한 운반 용구로 우마차가 쓰였고 가공 용구로 방아 등이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변천]
울릉도에서 철기시대나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갈돌과 갈판, 민무늬토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울릉 지역에서는 이미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부터 농기구를 이용한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현종 대에 여진족의 침입으로 피폐해진 울릉도에 농기구를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울릉 지역에서 이미 농업이 지속되고 있었고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울릉도민에게 농기구를 들여보내 계속 농사를 짓도록 도와주었음을 의미한다.
수토정책 이후 다시 농업이 재개된 것은 개척 시기부터이다. 나리분지와 인근 구릉지대에 거주하던 이주민들이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발판이 되었다. 이들은 주로 구릉지대의 밭과 화전을 일구어서 보리, 감자, 옥수수 등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늘어난 어업 인구로 인해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많지 않다. 과거 식량 자원을 생산하던 땅에는 산채류와 약초류가 재배되고 있으며 남아 있는 농기구는 농업이 가내 생산의 주를 이룰 때 사용하던 것으로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종류]
1. 되[되박]
곡식이나 액체 등의 분량을 재는 그릇으로 장방형이나 자루가 달린 장방형, 통나무 모양의 장방형, 사다리꼴이 있다. 윗부분이 닳아서 분량이 부정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엽을 붙이기도 했다.
2. 박 바가지[꼬두박]
가을에 딴 박을 반으로 켜고 속을 파낸 뒤 삶아서, 다시 안팎을 깨끗이 긁어낸 후에 말린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꼬두박이라고도 부르는데 쌀을 퍼내는 쌀바가지, 물을 퍼내는 물바가지, 소의 먹이를 떠내는 쇠죽바가지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3. 키[체이]
지역에 따라 체 또는 체이라고 불렸던 키는 탈곡한 곡식 따위를 담고 까불러서 쭉정이나 검부러기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구이다. 곡식을 담고 까부르면 가벼운 것은 날아가거나 앞에 남고 무거운 것은 뒤로 모여 구분할 수 있다.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대나무로 만들기도 했으나 주로 육지에서 싸릿대로 만든 것을 사다 썼다. 싸릿대로 만들면 대나무로 만든 것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4. 디딜방아
발로 밟아서 곡식이나 고추를 찧거나 빻는 농기구이다. 끝이 가위다리처럼 벌어져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마주 서서 찧는 양다리방아와 한쪽이 벌어지지 않고 곧아서 한 사람이 찧는 외다리방아 두 종류가 있다. 울릉 지역에서는 주로 양다리방아를 사용했다. 공이로는 나무나 돌을 쓰지만 나무공이 끝에 겉을 우툴두툴하게 만든 쇠통을 끼우기도 하였다. 울릉도에서는 공이를 고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한 마을에서 서너 집 정도에 디딜방아가 있어서 방아가 없는 집에서 빌려다 쓰기도 하였다. 방아를 빌려다 쓰는 대신 디딜방아창고를 지을 때나 억새풀로 지붕이나 우데기를 지을 때 또는 디딜방아 고를 보수할 때 가서 도와주었다. 이외에도 각 마을에 토지가 많은 집에서는 연좌방아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자연석을 깎아 만든 연좌방아 바닥은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
5. 나무망치
나무를 찍거나 패는 연모의 하나로 자루가 짧았다. 도끼는 철제연모의 하나로 공구로서의 의미가 크지만 당시에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6. 도리깨
곡식의 이삭을 두드려서 알곡을 떠는 데 쓰는 농기구로 보리·밀·콩·녹두·팥·조·메밀 등의 타작에 쓴다. 기름한 작대기 끝에 구멍을 뚫어 꼭지를 가로로 박아서 돌릴 수 있게 한 뒤, 그 꼭지 끝에 2~3개의 휘추리를 잡아매었다. 두 손을 이용하여 선 채로 어깨너머로 넘기고 돌리면서 앞으로 내리쳐 알곡을 떨어낸다.
7. 발채
볏단이나 보릿단 등을 소에 실어 옮길 때 사용하는 기구로 돔발채 또는 두엄발채의 준말이기도 하다. 로마자 이자(Ⅱ字) 모양의 틀을 짜서 길마 위에 얹는데, 틀의 좌우 바깥쪽으로 바닥이 방석 모양이 되도록 새끼로 짠 그물을 매어 놓았다. 바닥은 띠풀이나 억새 등으로 짠 것을 따로 매달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걸채가 있는데,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8. 종다래끼
다래끼보다 작은 바구니로 짚이나 싸리, 대나무 등으로 만든다. 짚으로 만든 것은 아가리가 좁고 밑이 넓으며 바닥은 네모꼴이고 멍석을 엮듯이 짠다. 아가리 양쪽에 끈을 달아 허리에 둘러 감아서 배에 달거나 한쪽 어깨에 끈을 걸어 메거나 목에 걸기도 한다. 콩, 팥, 감자 등을 심을 때 씨를 여기에 담아서 메고 뿌린다. 산의 나물을 캐거나 고추를 딸 때, 논밭에 비료를 줄 때도 이용된다.
9. 쟁기
논밭을 가는 데 사용한 농기구로 보습과 볏 외에는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몸체는 참나무·소나무 등으로 만들며 술은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한 나무를 사용한다. 쟁기는 술·성애·한마루를 세모꼴로 맞춘 형태이다. 술 끝에 보습을 끼우고 그 위에 한마루에 의지하여 볏을 덧댄다. 한마루 끝이 보습까지 내려오므로 논밭을 갈 때 보습과 볏이 힘을 쓰도록 되어 있다. 성애 앞 끝에 줄을 매고 그것을 물주리 막대에 연결해 멍에 양쪽에 이르게 한다.
10. 작두
짚이나 풀 등을 써는 농기구로 퇴비용 잡초와 사료용 곡초 등을 잘게 썰 때 이용한다. 기름하고 두둑하며 끝이 양쪽으로 벌어진 나무토막 위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두 개의 짤막한 쇠기둥을 박아 세우고, 그 틈에 길고 큰 칼날 끝을 끼워 고두쇠로 꿰고 한쪽 끝의 나무자루 안쪽에 쇠고리를 박아 새끼로 끈을 매어 놓은 것이다.
11. 삼태기
쓰레기·거름·흙·곡식 등을 담아 나르는 데 사용한 농기구로 싸리·댓가지·칡덩굴·짚·새끼 등으로 엮어서 만든다. 짚이나 새끼로 만든 것은 앞은 벌어지고 뒤는 우긋하게 울타리를 삼고, 위의 가장자리는 나무를 휘어 둘러 테를 만들어 손잡이를 삼는다. 싸리·댓가지·칡덩굴로 만든 것에는 뒤가 우긋한 것과 앞이 넓게 헤벌어진 것 두 가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