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1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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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漁-安全-祈願-台霞聖霞神堂祭 |
영어의미역 | Taehaseongha-Shrine Rite for Big Catch and Safety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559-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성태규,김기봉 |
[개설]
울릉군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일 서면 태하1리의 큰황토구미마을에 위치한 성하신당에서 태하성하신당제를 올린다. 성하신당은 태하초등학교 아래에 있는 큰황토구미마을 가운데 있는 숲 서남향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주변에 담장을 둘러쌓았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건물은 지금보다 남쪽으로 10m 정도 낮은 곳에 위치하였는데, 1934년 대홍수 때 유실되어 다음해에 중건하였다. 성하신당의 내부에는 동남동녀를 상징하는 ‘성하지남신위(聖霞之男神位)’와 ‘성하지여신위(聖霞之女神位)’가 모셔져 있다.
[전설이 이야기하는 태하성하신당제의 내력]
성하신당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들은 문헌이나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울릉도를 순회 온 관리가 다시 육지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풍랑이 심하여 돌아가지 못하던 중, 두 명의 남녀를 두고 가라는 꿈을 꾼 뒤 그대로 하였더니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훗날 다시 울릉도로 와보니 두 명의 남녀가 죽어 있어, 그들을 위하여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낸다”라는 내용들이다. 이야기 속의 관리는 영해부사가 되기도 하고 울릉도안무사가 되기도 하며, 두 명의 남녀는 어린 동남동녀, 또는 남녀 등으로 전하기도 한다. 성하신당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417년(태종 17) 조정에서는 종4품의 수군 장교인 삼척 만호 김인우를 안무사로 삼아 울릉도 사람들을 육지로 이주하게 하였다. 명을 받은 김인우는 전선 두 척을 끌고 와 황토구미[태하1리]에 정박시켰다. 섬사람들을 모조리 끌어 모아 육지로 출항을 앞둔 날 밤, 김인우의 꿈에 수염이 허연 해신이 나타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두고 가라고 하였다.
다음날, 김인우는 간밤에 꾼 꿈이 마뜩지 않았지만 출항을 명령했다. 그러자 갑자기 풍파가 일더니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가는데도 바람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래도 찜찜했던 김인우는 섬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과 소녀를 불러서는, 자기가 머무르던 곳에 필묵을 두고 왔으니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총총히 닻을 올리게 했더니 풍랑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육지로 돌아온 김인우는 언제나 그 사실이 꺼림칙하였다. 그렇게 8년이 지났을 무렵 조정에서 다시 안무사를 맡겼다. 그리하여 재차 울릉도를 가게 되어 예전에 자신이 머물렀던 곳으로 가보니, 소년과 소녀가 꼭 껴안은 채 백골이 있었다. 김인우는 용서를 빌면서 그곳에 사당을 짓고 제를 올렸는데, 훗날 사람들이 이곳을 성하신당으로 부르며 매년 음력 2월 28일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기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남동녀의 혼인식]
울릉군에서는 1969년 3월,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동남동녀를 혼인시키는 행사를 치렀는데, 당시 동남동녀가 어른이 되었다고 하여 어른 옷을 준비하여 바치게 하였다. 이때 남녀의 신상을 봉안하자는 의견이 받아들여 울릉군과 어업조합의 도움으로 1970년 9월 15일 신상 봉안식이 불교 형식으로 올려졌다. 그후 1978년 2월에 성황당을 성하신당으로 개칭하고, 성하신당 제일을 음력 3월 1일로 확정하였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성하신당에서는 울릉도와 관련하여 오고가는 모든 배들의 진수식이 거행되고 있다. 울릉 지역 사람들은 개인이 소유한 어선에서부터 울릉 지역과 육지를 오가는 여객선에 이르기까지, 처녀 입항하는 배들은 모두 성하신당에서 진수식을 올려야 바다에서 하는 모든 일이 안전하고, 동시에 풍어를 기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울릉도와 포항을 오가는 썬플라워호 역시 첫 입항 때 도동리 사람들을 태우고 성하신당에서 진수식을 올렸다.
[태하성하신당제 절차]
태하성하신당제는 매년 음력 3월 1일에 올린다. 제를 지내는 시각은 오전 8시에서 11시 사이로, 그날 상황에 맞춘다. 울릉군청에서는 제를 지내기 한 달 전에 울릉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성하신당제에 대해 알리며, 당일 울릉읍사무소에서 행사에 참여할 참석자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킨다. 태하의용소방대와 마을 사람들은 제의 3일 전에 성하신당 주변과 마을의 곳곳을 물청소하는 등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다.
태하성하신당제는 먼저 성하신당 유사가 성하신당의 연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초헌(初獻)[분향과 헌작례]-축관(祝官)의 제문 낭독-아헌(亞獻)[분향 및 헌작례]-종헌(終獻)[분향 및 헌작례]-분축(焚祝)[축관이 제문을 태움]-재배(再拜)[헌관 및 집사 일동]-제관 음복례-직일(直日)[각급 기관단체장과 주민들의 분향]-사신례(辭神禮)[참석한 기관단체장 및 주민들이 제전의 뜻을 기리며 신을 보내는 예] 순으로 진행한다.
2007년에는 울릉군수가 초헌을 맡고, 울릉군의회의장이 아헌, 그리고 울릉군수협장이 종헌관을 맡았다. 태하성하신당제가 끝나면 농악한마당과 읍면별 윷놀이 등이 행해진다. 태하성하신당제는 매년 울릉군수를 비롯한 울릉군의회의장, 울릉군수협장 등 군단위 기관장 및 어촌계장, 이장, 새마을지도자과 함께 어업인과 지역 주민 등 백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