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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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湖書院 |
영어공식명칭 | Guhoseowon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2길 44[구미리 508-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호석 |
건립 시기/일시 | 1730년 - 구호서원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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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777년 - 구호서원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98년 - 구호서원 중건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9년 - 구호서원 훼철 |
건립 시기/일시 | 1870년 - 구호서원 구호서원 백산단 설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4년 - 구호서원 백사단에서 구호서원 구호단으로 개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0년 - 구호서원 복원(중건) |
현 소재지 | 구호서원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2길 44[구미리 508-1] |
성격 | 서원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호서원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삼봉로에 있는 청완초등학교의 사거리에서 봉동읍 방향으로 가다가 도로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구호서원은 1730(영조 6)년에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의 유림이 공의(公議)를 수렴하여 창건하였다. 1777년(정조 1)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98년(정조 22)에 중건하였다. 그 뒤 1869년(고종 6)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의 유림은 1870년에 설단(設壇)[묘제(墓祭), 시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방법]하여 ‘백산(栢山)’이라고 이름했다. 1904년에 단의 이름을 고쳐 ‘구호(龜湖)’라 하였다. 1970년에 서원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상충(朴尙衷), 이성중(李誠中), 박은(朴訔), 송유저(宋有著), 임사수(林士壽), 박소(朴紹) 등 9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구호서원의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다. 4칸의 강당 백산재(柏山齋), 내신문(內神門), 모현문(慕賢門), 협문(夾門), 입덕문(入德門), 4칸의 수직사(守直舍) 등이 있다.
구호서원에서 배향하는 주벽은 박상충이며, 그 외에 이성중, 박은, 송유저, 임사수, 박소, 박종열(朴宗說), 임치우(林致愚), 유기섭(柳基燮) 등 8명이 배향되어 있다. 매년 2월과 8월의 중해(中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과 사우의 건립과 훼철, 중건의 역사는 유교사상의 영향 아래 선조와 선현을 숭배하였던 조선조 향촌사회의 성격은 물론, 유교의 폐단이 두드러지게 표출되었던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구호서원의 변천을 통해 전라북도 완주군의 지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