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 남군보(南君甫), 할아버지는 풍저창 부사 남익저(南益㫝)이다. 아버지는 지영광군사를 지낸 남천로(南天路)이다.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로 중랑장 박종(朴琮)의 딸이다. 부인은 순창군부인(順昌郡夫人) 임씨(任氏)이다. 형은 시중(侍中)을 지낸 남을번(南乙蕃)이다. 아들은 남근(...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바위의 명칭 유래와 특징. 경기도 양주시에서 유래가 전해지는 바위로는 빗접바위·갓바위·개구리바위·농바위·마귀바위·배맨바위·벼락바위·선돌바위·선유동천바위·신암바위·애경바위 등이 있다.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97-1번지 보메기 북서쪽에 있는 바위이다. 큰 바위가 쪼개져서 빗접을 세운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는 수원 백씨 각처 선농기(水原白氏各...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감악산 정상 부근에 있는 바위. 신암바위는 고려 말 공양왕(恭讓王) 때 참지문하부사를 지낸 충신 남을진(南乙珍)이 1392년 조선의 개국 후에 태조(太祖)의 부름에 따르지 않고 감악산 남선굴(南仙窟)에 은거하면서 망국의 한을 풀기 위해 개성을 향하여 통곡하던 바위라고 한다. 충신의 피맺힌 원혼이 얽혀 있다고 하여 신암(神巖)이라 하였으며, 후생들이 남을진...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고려 후기의 행정 구역. 1308년(충렬왕 34) 심양왕(瀋陽王)이었던 충선왕이 중앙과 지방 제도 및 관제 개편 등을 단행하면서 양주에 한양부를 설치하였다. 이는 충선왕 자신의 왕권 강화 및 원의 체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진행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많은 부윤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의 독자성을 견제하고자 시도하였다. 『고려사(高麗史)』[권77, 지31...